3. 판단하기


판단력 형성의 조직신학적 특징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하나의 맥락(연관성)을 이루는 진술들의 상호결합에 있다. 예를 들자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우리의 희망,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창조적 행동, 하나님과 대적하는 우주와의 사귐으로서의 화해, 하나님과의 평화를 이루기 위한 인간의 소명에 관한 설명 등이다. 다시 말하면, 조직신학의 진술들 전체가 하나의 동일한 대상영역에 관한 진술이기 때문에, 또 그런 한, 서로가 한 몸을 이루고 있다. 우리에게 진술의 연관성을 제공하는 이런 일관성이 존재함으로써 주장들과 확인들, 가정들은 비로소 신학적인 특징을 갖게 된다. 만약 이러한 연관성이 없다면, "신학"은 목표없고 산만한 떠돌이가 되고, 그래서 분명한 인식을 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것은 판단력을 상실하고 말 것이다.

하지만 신학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분명하고 제한된 내용에 관해 말할 수 있는지, 말할 수 있다면 어떻게 말할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그것에 관해 하나의 신학적 진술들을 정리하고, 이를 통해 그 진술의 신학적인 본질을 밝히는 것이다. 혹은 그 내용에 관해 추론하는 것, 그것을 다른 방법으로 개관하는 것, 그것을 이런 다른 방법으로 해석하고 그래서 다른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상황이 절망적이다", "어떤 행동은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증명하지만, 다른 행동은 그렇지 않다", "어떤 태도는 예수의 권능과 동일하다", "어떤 사귐의 형식은 하나님과 인간의 계약과 일치한다", "다른 정치적 행태는 그것과 모순된다" 등을 말할 때, 이를 판단할 필요가 생긴다. 그러한 주장들에 관해 어떻게 판단할 수 있겠는가? 이 주장들은 신학적 진술이 지향하는 내용과 일치해야 한다. 실로 판단력 형성은 항상 개별적인 진술들을 서로 연결하는 인식의 방법(길)을 따른다. 이를 통해 분명한 인식은 직접적인 직관, 개인적인 인상을 넘어서며, 주관을 초월하는(초주관적인) 것으로 드러난다. 여기서 어떤 진술들은 사실이 아니라거나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는 역할, 타당한 진술들의 근거를 대는 역할을 한다. 이런 진술들은 모든 신학적 논증들이 의존하는, 그리고 다른 진술들이 도출되는 하나의 연관성(맥락)을 형성한다. 여기서 어떤 진술들은 다른 진술들을 배제하고, 다른 진술들을 논증의 요소로 포함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