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해석의 관점

 



조직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하는 사람은 대개 역사적 해석의 방법과 목적에 이미 친숙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조직적 해석과 역사적 해석의 차이를 밝히는 것이 도움이 된다.

역사-비판적 방법이 발전된 이래, 신학에서 텍스트에 대한 역사적 해석은 교회사와 신학사에 중요한 의미를 준 상황들, 견해들과 자료들의 형성 과정을 재구성하는 목적을 추구해 왔다. 가장 이상적인 재구성의 시도는, 한 텍스트의 형성과정을 인위적으로 재현해 보기 위해, 그리고 텍스트가 무엇을 포함하고 있으며 어떻게 텍스트가 되었는지를 밝히기 위해, 가능한 한 모든 형성과정의 조건들을 경험케 하려고 노력한다. 역사-비판적 방법은 한편으로는 텍스트의 형성과정의 조건들, 즉 다양한 종류의 사실 설명들과 견해들의 증명가능한 전승과정만이 아니라 설명가능한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상황들도 밝혀 보려고 점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다른 한편으로 해석과정이 이해의 과정으로 이해되는 한, 역사-비판적 방법은 해석의 주체, 즉 해석자 자신이 해석과정에 대한 계속적인 성찰의 대상이 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 해석과 성찰의 과정은 이해의 이론, 즉 해석학에서 다루어진다. 다른 말로 하면, 해석학은 "해석학적 원"(Hermeneutischer Zirkel), 해석의 운동에 관해 말한다. 해석학적 원 안에서 해석과 텍스트는 더 이상 주체와 객체로서 서로 마주보지 않는다. 오히려 해석자의 "전이해"(前理解)는 해석에 영향을 주기도 하고, 텍스트의 주장에 의해 수정되기도 한다.

이처럼 역사적 해석에 관한 연구는, 현재의 입장(해석자)으로부터 한 텍스트가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지에 관한 질문에 집중하는 독특한 유효성 문제(Geltungsproblem)를 발전시켰다. 종종 적절한 이해는 그 자체로서 이미 유효성의 질문에 대한 대답처럼 생각된다. 우리가 오늘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우리에게 유효하다. 그리고 유효성에 대한 요구는 오로지 이해가 제대로 이루어진 바탕 위에서만 인식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텍스트는 우리에게 낯선 것으로 남게 되며, 그 텍스트는 결국 전통을 논하기 어려움을 실증하는 대상이 되고 만다.

이른바 역사주의와 해석학적 이해의 이론(해석학적 철학, 해석학적 신학)에서 조직신학도 이러한 문제제기에 종속되었다. 거기서 조직적 해석은 전통의 현재적 해석과 그 이해로, 즉 역사적 해석과정의 마지막 과정으로 축소된다. 이리하여 조직신학은 그때마다의 현재를 위한 신학적 전통의 응답으로 변한다. 이런 관점은 역사의식에 의해 지배된다. 여기서 우리는 언제나 역사과정의 마지막에 서서 역사를 생각한다(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통시적[通時的: diachron] 과정, 역사는 시간배열과 장소결정이 필요한 흐름의 형태로 이해된다).

이에 반해 조직신학적 해석은 진술들의 공시적(共時的: synchron) 구조를 지향한다. 여기서 역사적 배열은 진리가 될 수 있는 조건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조직신학적 해석은 지금 주어져 있는 텍스트의 형성과정의 완전한 재구성을 목표로 하지 않고, 텍스트의 논증적 구조(그것은 자신이 말하는 내용의 근거를 어떻게 설명하는가?)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것은 한 텍스트의 효용성을 확인하거나 (발생학적으로) 설명하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텍스트 자체를 질문한다. 그것이 어떤 효용성을 주장하는지, 그것이 자신의 주장의 근거로서 무엇을 끌어오는지, 그것이 어떤 의도를 드러내는지를 질문한다. 이런 의미에서 조직신학적 해석은 텍스트의 "말꼬리"를 잡는다. 조직신학적 해석은 텍스트의 역사(歷史)를 설명하지 않고, 텍스트 그 자체를 설명한다. 왜냐하면 그 목적이 진술들의 진리와 무관한 텍스트의 유효성을 묻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진술들의 진리를 묻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조직신학적 해석은 유효성의 질문을 진술들의 진리 검증으로 집중시킨다. 그에 반해 역사에 관심을 가진 해석자는, 예를 들면 이해의 조건들을 지적하거나 텍스트가 권위를 갖게 된 과정을 강조함으로써, 한 텍스트의 증명가능한 유효성을 위한 조건들을 설명한다. 예를 들면, 바울 서신들의 텍스트는 역사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분명한 유효성의 문제에 종속된다. 즉 그것이 실제로 바울로부터 유래하는지, 그것이 왜 신약성서에 포함되었는지, 그가 어떤 전통을 수용하고, 이를 어떻게 다루는지, 텍스트가 어떻게 계속 수용되었는지 등이 질문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질문은 그의 주장들이 신학적으로 타당한 것이지, 그리고 왜 타당한지 검증하는 것과 무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