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정치신학적 체계

 

 

"정치적" 출발점을 대변하는 신학자들은 순수한 전통보존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정치신학의 대표적 신학자인 밥티스트 메츠(Baptist Metz)와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이 "정치적"이라는 말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신학이 사회에 의해 결정되며 사회적 결정에 참여해야 한다는 의식(意識)이다. 물론 이것은 일상 정치와 정당 정치적인 의미에서 신학을 정치화하자는 말은 아니다. 새로 각성된 이 의식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비판적인 태도다.

"정치적 출발점을 갖는 신학은 초월적인 출발점과 실존적인 출발점이 개인주의적 성향을 갖는다고 비판한다. 또한 신학의 내용을 조화롭게 주장하거나 세계의 현실을 무가치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성도 비판에 처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참되고 구체적인, 역사-상황분석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현 사회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회의 변화하는 상황에 대하여 중립을 지키려는 소원도 기만적인 행위로 폭로당한다. 왜냐하면 한편으로 신학은 세상적 관심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 신학이 그리스도교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한, 가장 작은 자들의 편에 서라는 부름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 출발점의 철학적 근거는 헤겔 좌파 혹은 신맑스주의에 있다. 메츠가 많은 점에서 프랑크푸르트 학파(Th. Adorno, M. Horkheimer)를 따른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몰트만도 나름대로 블로흐(E. Bloch)의 "희망의 철학"에 어느 정도 빚지고 있다. 자본주의적, 반(半)해방적, 신식민주의적 경향을 갖는 산업사회에 대한 그들의 비판은 앞에서 말한 철학의 분석에 빚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세속적, 비개혁적 맑스주의의 집단주의적 극단으로 치우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개인의 "주체화"를 촉진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인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교 신앙은 이웃을 사랑하는 신앙이고, 이웃 사랑은 동료 인간들의 올바른 생활 관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물질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조건들과 메카니즘에 의존해 있다는 점을을 생각하는 정치신학자들은 이 모든 영역에서 해방케 하는 능력인 복음을 전달하려고 한다. 이런 맥락에서 역사의식은 매우 결정적인 것으로 드러난다. 특히 메츠의 역사의식에서는 죽은 자들에 관한 이야기와 정의와 사랑의 요구가 두드러진다.

정치신학의 방법은 "상황적"이다. 여기서 상황분석은 사회과학과 커뮤니케이션 이론을 빌려서 수행된다. 특히 라틴 아메리카의 정치적 출발점의 대표자들은 저개발을 영속화하고 빈곤화를 촉진하는 사회-경제적 구조의 고발에 앞장선다. 여기서 복음의 수신자인 가난한 자들의 구체적 생활 조건들이 연구된다. 물론 억압하는 자들과 그들의 합리화 시도에 대한 관심도 배제되지 않고 포함된다.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도 사회심리학적으로 내면으로 가난하고 해방을 필요로 하는 자들로 인식된다.

정치적 출발점의 둘째 단계는 선택적인 성서읽기다. 여기서 엑소더스, 예언자들의 정의의 메시지, 예수의 실천과 선포, 십자가의 신학, 보편적 해방을 기대하는 종말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된다. 셋째 단계는 실천을 목표로 한다. 행함이 없는 신앙은 생각할 수 없다. 그러므로 신학은 현실의 해석으로 만족할 수 없고, 이를 변혁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정치적 변혁실천은 교의학적 복음 해석학의 완성 단계와 같은 것이다. 여기서 "사회비판적인 신앙의 자유의 기관"으로서 큰 집단의 형태를 갖든, 아니면 바닥 공동체로서 작은 집단의 형태를 갖든, 교회는 없어서는 안될 기능을 떠맡는다. 정치적 출발점을 갖는 이런 신학이 영향을 행사하는 곳이 제3세계라는 사실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성서 구절과 구조의 직접인 인용, 주석적 연구의 부족, 역사적 내용의 일방적 해석, 비학문적 열정, 그리스도교의 본질에 관한 명백성 결여, 사회적 상황에 대한 지나친 개방 열의에 의한 교리 조작, 좌파주의적 순응, 선동정치가적 어법은 정치적 출발점의 약점과 문제점으로 지적되곤 하였다. 그렇지만 이런 용기있고 필요불가결한 이런 출발점은 주목할 만한 가치를 지닌다.


정치신학이란 무엇인가?

도주환

1. 정치신학의 기원

정치신학은 원래 기독교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 이교도의 국가종교의 산물이다. '정치신학(genus politikon)' 혹은 '시민신학(teologia civilis)' 이라는 표현의 어원은 스토아 철학에서 유래한다. 고대 국가론에 따르면 국가와 신은 함께 속해 있었기 때문에, 신을 경배하지 않는 국가나 국가가 없는 신이란 존재할 수 없었다. 초대 교회는 로마의 국가신을 예배하지 않는 이유로 박해를 받았다. 콘스탄틴 대제 이래로 기독교는 국가종교가 되었다. 그 결과로 한 하나님 - 땅의 한 황제, 법, 국가라는 군주론적인 형이상학을 통하여 기독교의 첫 정치신학이 생겨난 것이다.

2. 정치신학의 과제

대표적인 정치신학자 몰트만(J. Molmann)의 정의에 의하면 정치신학은 현대 기독교 신학이 의식적으로 수행되어야 할 마당, 환경, 공간 및 무대를 나타낸다. 정치신학은 단지 신학과 정치, 교회와 국가를 주제로 삼으려는 것만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을 모든 책임있는 신학으로 미리 나타내려는 부호(Vorzeichen)로 삼으려 한다.

정치신학은 단지 정치를 도와주는 일종의 시녀역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기독교 신학의 정치의식을 각성시키려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신학은 매 시대의 사회적 컨텍스트 안의 해석학적 시도이다.

3. 오늘날의 정치신학의 주요동기

첫째로, 칼바르트의 정치적 예배이다. 바르트는 자신의 신학적 의식을 항상 정치적 행동과의 상관관계 안에 놓음으로써, 그 인식이 자연히 정치적 행동의 동기가 되도록 하였다. 정치적 예배란, 하나님의 칭의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바로 그 때문에 질서, 평화, 자유의 문제들과 논쟁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예배, 혹은 인간의 법(정의)를 인정, 촉진, 방어, 연장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예배이다. 국가와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 안에 있고 밖에 있지 않다. 즉 국가와 교회는 언제나 하나님의 질서와 법 안에 있는 것이다. 교회는 모든 정치적 영역 안에 있는 사람들을 봉사하며 기도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의 현존은 정치적이다. 따라서 교회의 정치적 활동은 교회의 기독교 신앙의 고백이기도 한 것이다.

둘째로는 맑스주의의 종교비판이다. 정치신학은 고백교회에서 새롭게 배태된 '그리스도 통치설'의 복음적 능력과 함께 다른 한편으로는 맑스주의의 종교비판을 수용한다. 종교비판의 착안점이 모든 종교를 신화로 환원시킨 데 있었다고 한다면, 맑스의 종교비판의 핵심은 신화를 혁명으로 전환시키는 데 있었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으로 받아들여지는 공산주의 하에서 실존적으로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교회는 해방을 위하여 사회적, 정치적으로 기여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신화에 그칠 염려가 있다.

4. 정치신학자들의 입장

1) 메츠 - 가톨릭신학자인 메츠(J. B. Metz)는 독일어권에서 최초로 정치신학을 신학의 논쟁 안으로 끌어들였다. 그에 의하면 기독교 복음의 정치적 해석을 위하여 신학적 해석을 탈개인주의화하려고 하였고, 신학적 해석학을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회상'으로 정위시키려고 애쓴다. 메츠는 교회를 '사회비판적 자유의 기관'으로 실천적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또한 그는 시민종교의 포로가 되어 있는 교회를 변화시켜 메시야적 희망의 미래로 탈출시키려고 하고 있다.

2) 죌레 - 여성신학자인 죌레는 불트만의 불트만의 신학적 논리를 받아들이면서도 이와 비판적으로 대화하는 독자적 방식으로 '정치신학에 기여하고 있다. 죌레는 '정치신학을 신학사적으로 평가하려고 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불트만의 탈신화화의 작업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칭찬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불트만이 변증법적 신학의 영향으로 숙명적으로 '역사적 예수'를 포기하게 된 것을 비판하였다. 죌레는 하비마스(J. Habermas)의 진리 개념과 메츠, 몰트만의 입장에 의존하여 신앙의 실천이론을 전개한다.

3) 몰트만 - 몰트만은 메츠와 함께 '정치신학'의 개념을 받아들인 최초의 신학자이다. 메츠와는 달리 몰트만은 바르트의 신학의 영향으로 생겨났고, '그리스도의 통치설'의 사회적 ·신학적 표상의 범주 안에서 계속 발전되어 온 '정치적 예배'의 전통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몰트만은 맑스주의와 비판적 대화 속에서 복음의 정치적 해석학을 발전시킴으로써, 해석학의 심화와 세분화에 기여했다.

가) 정치적 해석학 - 몰트만의 정치적 해석학은 역사를 메시야적으로 해석한다. 그의 정치적 해석학은 역사에 참여하면서 역사를 인식한다. 몰트만은 『희망의 신학』,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삼위일체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정치적 십자가의 신학을 심화하였다. 그는 힘의 원리, 권위와 순종 대신에 동의의 원리, 대화와 일견의 일치와 조화를 제시함으로써, 교회를 '지배로부터 자유로운 사귐'으로 형성하려고 하였다. 해석학은 문서주석의 기술이며, 언어, 문장, 역사 및 상징이 그 시대에서 무엇을 의미했는지 역사비판적으로 밝혀야 한다. 그리하여 정치적 해석학은 과거를 현재로 번역하는 것이다. 정치적 해석학은 과거의 역사의 회상을 통하여 미래를 예언하는 것이고, 그 회상을 통하여 미래의 역사에 대하여 인간의 해방적 방향성을 제시해 준다. 정치적 해석학은 역사 안에서 역사를 인식하며, 역사와 접목한다. 정치적 해석학은 그리스도인의 고난과 행동 속에서 경험되는데, 가난하고 억눌리고 압제당한 자와 죄인의 시각을 배우게 한다. 정치적 해석학은 이론과 실천의 만남이며, 그리스도의 실천적 희생과 해방을 추구한다.

나) 정치신학의 전개와 특징 - 몰트만은 그의 저서인「희망의 신학」에서 현대사회가 교회에 거는 사회적 역할을 세 가지로 분석한 후(인격적, 개인적 인간성의 보호, 공동체로서의 역할, 공공성을 동반하는 제도로서의 역할). 새 출발의 교회를 제시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교회는 '세상을 위한 교회'이다. 그것은 세상 속에서 '샬롬'을 실현하는 '창조적 제사직'을 수행하는 교회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실천적 저항과 창조적 개혁에서 다른 제도를 찾는 소명을 자기고 있다. 이로써 몰트만은 교회가 절대자를 숭배하는 종교로서 단순히 현대 사회로부터 받는 기대를 넘어서 세계의 변혁을 추구하는 희망의 공동체로 탈출해 나갈 것을 제시한다.

몰트만의 정치신학은 그의 둘째 저서인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에서 정치적 십자가의 신학으로 정초되고 심화되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인의 정치활동의 출발점과 근거가 되었다. 정치적 십자가의 신학은 정치적 우상숭배와 인간의 정치적 무력화(금치산 선고)와 소외에 대한 해방의 비판 세력으로서 작용한다. 몰트만의 정치신학의 개념과 범주는 보다 넓다. 그는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의 고난사로부터 현대세계의 악순환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정치적 신학을 전개한다.

몰트만은 「삼위일체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삼위일체론을 통해 정치적·교권적 일신론을 비판했다. 그는 피터슨(E. Peterson)의 정치군주의 유일신적 요소를 지적하는 입장을 받아들여 피터슨의 입장을 심화하였다. 그는 삼위일체론을 통하여 교권적 일신론의 체계를 일소시키고 대립의 해소와 회복 그리고 지배로부터 자유로운 사귐의 길을 제시하였다.

정치신학은 아직도 논의되고 발전되고 학습되고 있다. 정치신학은 정치를 돕는 것이 근본 목적이 아니라 십자가의 도를 정치적으로 실현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오게 하는 주요한 방법론이다. 보수적인 사람이든지 진보적인 사람이든지, 정치를 떠나서는 설 수 없다. 어느 한 쪽에 자리하고 있거나 어느 편에 치중해 있다.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소리치는 것 자체도 이미 정치적 행동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치는 인간의 삶의 현장과 역사에 깊이 얽혀 있다. 따라서 가난하고 억눌리고 압제 당하는 사람들에게 궁극적이고도 적극적인, 그리고 해법을 제시해 줄 수 있는 해방적 실천의 희망을 주는 도구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