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고대 교회적-헬레니즘적 모형

 

 

Ⅰ 들어가는 말

우리는 지난 세미나를 통하여 모형이라는 최초의 언급과 더불어 제1모형이라 부를 있는 '원시그리스도교적-묵시문학적 모형'을 살펴보았다. 여기에서 잠시 모형에 대한 개략을 전하면,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묵시문학은 예언자 중심으로 흘러왔다. 그것이 후기, 즉 원시 기독교의 태생 시기와 맞물리는 시점에서는 이전의 모형으로는 답할 없는 상황이 새로운 모형을 갖게 만들었으며, 이러한 배경이 원시그리스도교적-묵시문학적 모형임을 보았다. 물론 이러한 모형을 '종말론'과 관련하여 설명하였음을 안다. 그러나 한가지 다음의 모형을 발제하는 입장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원시 기독교에서의 모형의 소개가 계시록만이 아닌, 바울의 서신들과 밖의 문서들에서 찾을 있었다면 정확한 모형 소개가 되었으리라 본다.

 

Ⅱ 새로운 모형에 대한 요구

신약시대에 들어오면서 우리는 성서의 사건들에 대한 해석이 제각기 자기 나름대로 분분해짐을 있다. 대표적으로 유다적 해석과 헬레니즘적 해석이 예라 하겠다. 둘은 어떤 경우에는 전혀 상관없는 위치에서 비롯하기도 하며, 어떤 경우에는 위치에서 함께 놓여지기도 한다.

역사적인 상황은 이제 복음이나 성서의 조각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고수 없게 되었다. 흩어지는 상황 속에서 제일 먼저 만난 것이 바로 헬레니즘이었다. 물론 역사적 상황 - 로마의 집정 헬라 문화의 도입 등 -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밀려들어오기도 하였다. 또한 1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임박한 종말과 주님의 재림을 고대하던 성도들에게 위기의 상황이 도래하였다. 묵시적 종말론의 답을 대치할 필요가 주어지게 것이다. 결국 같은 유대-묵시문학적 모델은 외형적으로는 사라지게 되었고, 내용적으로는 누가문서를 비롯한 목회서신의 몇몇이 성서로 유입되었다. 이제 교회는 유다-묵시문학적 기원을 점차 소멸하게 되고, 이에 반하여 헬라화하는 경향과 제도화하는 경향을 띄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헬라 문화와의 접촉은 헬레니즘 속에서 기독교의 정체성을 묻는 물음을 야기했으며, 이제 기독교가 이방인과 이방 세계에 대하여 기독교를 변증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게 된다. 또한 이어서 등장하는 기독교 이단들의 등장은 기독교의 정체성을 묻게 되는 이유가 된다. 대표적으로 2세기에 크게 대두하는 영지주의가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 이들은 기독교의 역사적 기원을 도외시하고 비역사적-신화적 신학 작업에 힘을 기울인 그룹이었다. 또한 2세기에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방세계에 대한 기독교의 변증이 필요하였기에 소위 기독교 변증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새로운 모델이라고 있는 철학적 신학 방법을 도입하여 기독교의 정체성과 보편 타당성을 합리적으로 옹호하려고 하였던 이들이다.

이러한 배경 아래에서 2세기의 전반부가 흐르고 3세기로 넘어가는 시기에 이레네우스가 등장한다. 그는 영지주의적 신화들을 거부하고 성서와 사도 전승으로 돌아가려 시도한 인물로서 그의 신학은 성서적-구원사적 신학이라고 불린다. 이레네우스를 거쳐 3세기 중엽 서방의 테르툴리아누스과 더불어 동방의 알렉산더 학파인 클레멘스와 오레게네스의 신학이 등장한다. 이 신학은 기존의 시도들을 대담하게 정리하고 다듬었는데, 특히 신플라톤 철학과 대결하여 처음으로 성숙하고 영속적인 모델의 신학을 발전시켰다. 이러한 오리게네스의 신학은 알레고리적, 상징적, 의역적, 정신적-영적 성서해석을 시도한 것으로서, 역사-문법적인 안티오키아 학파와는 대립하는 모습을 가진 신학이었다. 이러한 신학의 흐름은 콘스탄티누스에 의한 전환점을 기점으로 하여 4세기의 아타나시오스 카파토키아 신학자들에 이르기까지 수정되면서 발전해 나간다.

여기에는 한가지 흐름이 있는데, 앞에서 언급한 신학적 흐름이 동방교회의 흐름이었다면, 서방교회는 테르툴리아누스에 이어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이 등장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은 성서 해석에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희랍적 신학(즉 위의 동방교회에서의 신학적 흐름을 대표하는 표현)과는 매우 달랐다. 어거스틴 신학은 이원론적인 마니교 아카데미적 회의주의와 결별하고 교회적 신앙, 신플라톤주의, 알레고리, 바울, 금욕적 기독교, 주교직으로 향했던 개인적 위기에 근거해서 생겨났다. 이러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이 결정되는 데는 다음의 가지 사건이 배경이 되고 있다. 하나는 서방의 교회이해와 성례전 이해에 관한 도나투스 논쟁이며, 다른 하나는 종교개혁과 얀센주의(Jansenismus) 이르기까지 죄와 은총의 신학을 제기하였던 펠라기우스 논쟁이다.

 

Ⅲ 대표적인 신학자

고대 교회의 대표적인 신학자로는 동방기독교의 전통이라 있는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게네스와 서방 교회의 아우구스티누스를 예로 있을 것이다.

1. 새로운 모형의 창시자 오리게네스

안티오키아의 이그나티우스(Ignatius von Antioch) 그의 서신들에서 기독교적 순교를 교회의 최고 직분이며 완전한 헌신으로 찬양하기에 신학적 서정시의 창조자로 존경받는다면, 이레네우스와 테르툴리아누스가 서방에서, 그리고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가 동방에서 반영지주의적 기독교를 종합적으로 대변한 이들로서 인정받는다면, 초기 교회와 교부시대에서 오리게네스는 과학적 신학의 창안자로 인정해야 것이다.

1) '관행'으로 표현되는 체계적인 연구 규칙들이 있다. 오리게네스는 구약성서의 헬라어 본문을 모두 언어학적으로 검토하려고 시도하였다. "원리들에 대하여"(Peri archon)이란 자신의 글을 통하여, 그리고 성서의 여섯 가지 비판적인 본문들(Hexapla) 통하여헬레니즘화한 유대교적 성서에 대한 본문비판과 자신이 전해 받은 유대-기독교적 신앙과 헬라-기독교적 신앙에 대한 형이상학적 해석을 구체적으로 진행하였다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관행은 어떤 학설로 보여지기보다는 성서의 주석서과 동일시 되었다.

2) 오리게네스에게서 '관행'보다도 모형변경에서 긴밀한 관계를 지니고 있는 '이론'이 있다. 이 '이론'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들이 있다. a. 신적 계시는 자체로서는 절대적이다. b. 하나님이 아닌 모든 존재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유래한다. c. 신적 계시에 의해 일깨워지는 우리의 피조된 정신은 비록 피조물의 제한된 능력 안에서이기는 하지만 신적 충만을 반영한다. d. 원리들의 논리적 규명은 하나님의 내적 구조에 접근할 있는 길을 열어주며, 창조와 구원에 대한 신적 경륜을 온전하고 체계적으로 해석할 있게 한다. e. 체계는 인간적일 밖에 없다. 영적인 우주의 일부로서 자신을 이해하여야 한다. f. '인식적' 또는 '영적' 우주에 거주하는 자들의 공동적인 본성은 마음이라고 불린다. 오리게네스는 '마음'을 자신에게 제기되는 물음의 핵심의 위치에 놓는다. g. 항상 성서의 검증을 받는다. h. 그의 신학적 입장은 하나님에 대한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 구원의 경륜과 결부된 모든 신비에 대한 체계적 해석자, 성서에 대한 주석으로 시작하는 해석자의 입장이다.

2. 모형 교체에 대한 오리게네스의 경험

1) 고상한 순교

오리게네스는 기독교 집안에서 출생하였으며, 아버지는 순교자가 되었다. 당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편만한 인식이었던 순교의 절대적 가치는 오리게네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순교자가 되려는 시도는 어머니의 설득과 친구들의 도움으로 저지당하게 된다. 데치우스 황제 때의 박해시기에도 투옥되기까지 하였지만 순교자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순교의 실패는 오히려 신비적 자극의 원천이 되었다. 한스 캄펜하우젠은 말하기를, 오리게네스는 엄격한 금욕의 이상(理想)순교의 철저한 희생을 대신할 있는 유일한 것으로 보았다.

그에게서 당대의 어떠한 철학적 흔적들을 찾는다는 것은 시간낭비일 것이다. 오히려 교리문답교시자 학교에서 가르치던 시절에 -피타고라스 학파의 모범을 따라 학생들과 공동체적이고 금욕적인 생활을 시작했다는 것이 그에게는 중요하다. 그는 자신의 시대와 지역적인 구분과는 상관없이 불규칙적으로 일어났던 교회의 박해를 알고 있었다. 고난받고 죽은 예수와 완전히 동일시되는 표준들이 반드시 피흘림을 요구하지는 않는다고 그는 결론을 내리면서, 피흘림(순교) 대신에 표준들을 윤리적 영적 차원에서 자신의 희생을 요구한다고 일단락한다. 그에게 순교는 교회공동체를 위한 승화된 형태의 순교이념을 가르킨다. 이러한 그의 요구는 세속사회에 있어서의 기독교적 금욕생활을 초래, 수도원적인 금욕생활을 낳게 하였다.

2) 현대정신의 수용

오리게네스는 교리문답교시자 학교의 생활을 통해 교리교육의 방법론적 표준들을 적용시키고 있다. 표준들을 살펴보면, 첫째는 기독교적 교설의 합리적이고 평이하고 유용한 논술이었다. 그는 성서본문의 문제들에 대하여 기꺼이 유대인들과 논쟁을 벌인다. 둘째 표준은 역설적으로 오리게네스의 창조적인 수법을 엘리트적으로 강조한다. 그의 강의 수준은 높은 수준의 학생들을 고려한 교육이었다.

그의 이러한 교육은 교회적 경험의 깊은 중심에서 비롯하며, 오직 교회를 위해서 말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성서 문구들의 의미에 대한 낡은 견해들에 관해 언급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과거의 교회 전통에 대해 논하지 않는다. 오리게네스는 당대의 모든 문화적 힘을 가지고 교회 안에서 그리고 교회를 향해 말한 신학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를 문화적 중개자로 표현하기도 한다.

3) 오리게네스적 "모형교체"

오리게네스는 "신념, 가치, 기법들의 전체적 성향"을 반영한 "이해모델"을 창안했다. 순교에 대한 오리게네스의 열정이 성서와 우주 안에서 계시되었던 "제1원리들"에 대한 형이상학적 탐구에 바쳐졌는데, 이를 통하여 엄청난 경험을 있는 길이 열렸다. 그는 중도적-플라톤 전통에 대해 개방적이었으며, 형이상학적 종교성의 본질적 가치들을 무조건 기독교화시켰다. 그는 새로운 영지주의적 신비주의에 대해 개방적이었으며, 자신의 '요한주석'에서 논박하였던 발렌티누스적 기독교 영지주의자 헤라클레온의 요한 해석에 매우 근접한 경우도 많았다. 또한 유대인과 학문적 대결을 , 당대의 편견없는 세련된 그리스도인이 그였다.

 

고대교회에서 모형교체가 이루어진 8가지 배경을 소개하고자 한다.

a. 고대교회에서는 신학적 창조성이 목회적 교회적 공동체의 욕구들과 비학문적 방식과 결부되어 있다.

b. 새로운 모형은 고대교회가 지녔던 신비적 교리적 욕구와 관련하여, 각기 증인으로서, 예언자로서 행동한 신학자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c. 모형적인 것은 신학자들의 오성과 정열에 의해 각인된 하나님 앞의 기본자세였다.

d. 세대에서 세대로, 지역에서 지역으로 기독교적 자의식과 상관성이 주장되었다.

e. 기독교적 하나님 개념을 창안된 모형의 형식적 중심점으로 삼았다.

f. 고대교회 신학자들의 고대적 역동성은 현대교회의 분리적이고 배타적인 '신학자들의 공동체'에 대한 정당화를 의문시한다.

g. 모형교체는 교회 공동체 전체의 목회적 봉사에 대한 혁신적 참여를 요구한다.

h. 현대적 기독교의 신학의 학문적 기구를 재검토하는 것이 모형교체의 일부가 것이다.

3. 아우구스티누스

오리게네스보다 더욱 현대정신의 수용을 드러낸 인물이 바로 아우구스티누스이다. 그는 기독교적 신학의 모든 문제들에 대한 필요한 해명을 주고 있다. 그는 "참회록"을 통하여 이기심의 근원으로, "창세기 주석"을 통하여 세상과 인류의 기원으로, 많은 "설교"들을 통하여 그리고 "신국"을 통하여 교회의 기원과 신비적 토대로, "삼위일체"를 통하여 기독교적 하나님의 관념의 요소로, 형이상학적 요소로 돌아간다. 마니교와의 만남, 밀라노에서의 신플라톤 철학과의 깊은 관계, 그리고 밀라노의 감독인 암브로시우스의 설교, 그리고 교회를 비롯한 곳에서의 현대성에 대한 직면은 아우구스티누스로 하여금 새로운 모형을 만들어내게 하는 기초가 되었다. 이같은 근본적인 경험들이 자신의 신념을 이끌어냈으며, 모든 원리들에 대한 열정적 추구를 가져왔다.

한편 "모형"이라는 말은 기독교 신학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공헌을 말하는 적합하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a. 신학적 "모형"은 비기독교적 문화와 전통과의 상관성을 전제한다. b. 이 모형은 교회공동체 전체에 적용되어야 한다. c. 오리게네스와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모형"과 "모형교체"의 개념이 쿤의 것과 유사하다. d. 신학자는 비기독교적 현대성을 비신학적으로 경험한다. e. 이 모형은 예언자의 역설적 경험이다. f. "모형교체"를 위한 창조성의 형식은 신비적인 바탕에 근거한다. 개별적인 신학자의 경험이 비신학적 교회 공동체에 의해 목회적 차원에서 확증됨으로써 초월적 의미를 갖게 된다.

 

Ⅳ 나오는 말

우리는 앞에서 고대교회적 헬레니즘적 모형을 인물 - 오리게네스와 아우구스티누스 - 중심으로 살펴 보았다. 시대적 요청에 의한 이들의 창안은 개인적인 경험과 열정을 토대로, 그리고 성서와 전통을 기준으로 하여, 당대의 교회의 물음과 이방세계에 대한 변증의 답을 제공하고 있음을 있었다. 기독교를 총체적인 입장에서 바라보기 시작한 고대교회의 신학자들 - 교부들이나 변증가들이라 칭함 - 과거의 신앙적 물음과 기대에 대한 좌절을 딛고 일어 있도록 하였으며, 이들의 열정이 새로운, 그러나 우리에게는 생소한 것이 아닌 모형을 제안하고 있음을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고대교회적-헬레니즘적 모형이 온전한 것으로 이해하기에는 역시 부족한 점이 많다. 예를 들면, 오늘날 오리게네스의 성서해석의 관점을 그대로 수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의 시도와 열정은 우리에게 반드시 있어야 것으로 보이나, 내용을 많은 부분이 정리될 필요를 느끼기 때문이다.


[도표]


원시그리스도교적 -묵시문학적 모형

고대교회적-헬레니즘적 모형

기 준

공동체 중심

교회중심, 제도중심

관 점

임박한 종말관

(때의 종말로의 그리스도)

구원사적 종말관

(때의 중심인 그리스도와 오래 지속되는 교회의 시대)

범 위

유다적 기독교

헬라적 기독교(제도화 되었으며, 세계 개방화)

세계관

우주적 초월적 세계관

역사적 초월적 세계관

문화 이해

전통적(비문화적)

문화수용적(개별적 신학자의 경험을 공동체에 적용)

내 용

케류그마(복음적)

교리적(철학적 신학)

성서 이해

문자주의적

해석학적

공통점

 1. 그리스도 중심(약간의 차이점-신학자의 체험이 부각됨)

 2. 신비적(상징, 숨은 언어, 종말론적-체험적 신비, 금욕적, 고난받는 그리스도와의 합일, 동일시)

 3. 공동체 중심의 신학전개(신앙공동체-교회공동체)

 4. 박해 (유대인-이방인)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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