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현대적-해방주의적 모형


 


1. 근대적-계몽주의적 모형과 부르즈와 세계

근대-계몽주의 시대는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 이전과는 현저하게 달랐다. 근대-계몽주의 신학의 공통점은 개인적 실존의 종교적 규정에 한정된 신앙과 모든 면에서 자유로워진 합리적 이성 사이에 새로운 동맹을 형성하였다는 데 있다. 그리하여 신앙은 이성을 방해하지 않고 이성은 신앙을 해체하지 않게 되었다. 종교적 세계는 사회에서 더 이상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특수한 의미만을 갖게 되었고, 그 결과는 사회에 대한 교회의 영향력 감소였다. 이처럼 점점 다원화하는 사회 안에서 기독교의 위상을 새로이 설정해야 될 상황을 맞아, 이를 극복하고자 했던 대안적 모색이 근대 계몽주의 기독교였다. 이들은 보편적 그리스도의 정신이 사회의 모든 제도를 관통하는 종교적 실체라고 보았다. 소위 자유주의 신학은 기독교에 근거한 문화국가를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자유주의 신학"으로 일컬어지는 개신교 신학은 19세기 초반부터 이미 부르즈와 정신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개인의 주체성, 자율성, 시민 윤리와 정치적 자유 등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은 기독교가 추구하는 내용이었다. 인간 역사의 진보에 대한 신뢰, 과학이 세계를 하나의 원리로 설명해 낼 수 있다는 신념의 생성과 발전, 이 신념 하에 정치·사회적으로 감행되는 통합적 실재들, 이와 같은 부르즈와적 이데올로기들은 19세기 독일 문화개신교주의와 미국 시민종교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신앙의 자유, 양심의 자유, 집회의 자유는 신학 자체의 자유를 위한 전제조건이기도 했다. 이처럼 자유주의적 개신교에서 기독교 신앙과 합리적 이성 사이에 맺어진 평화협정은 부르즈와 세계가 "기독교 세계"로 간주될 수 있는 한에서만 유효했다.

 

2. 새 모형 요구

1. 세계사적 사건

1) 세계대전과 이성에 대한 신뢰상실

유럽과 아메리카의 현대세계가 가지고 있던 진보에 대한 믿음은 20세기에 이르러 1,2차 세계대전-혁명적 사회주의와 이에 반대하는 파쇼 독재정치를 포괄하여-의 공포 속에서 깨어지고 만다. 인간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도 잃어버리고 말았다.

20세기의 교회와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모순과 저항과 박해를 경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련의 사회주의 하에서의 교회 탄압, 파시즘 하에서의 교회 투쟁, 라틴 아메리카의 독재 하에서의 그리스도인 박해는 교회와 국가의 전통적인 통합과 기독교와 문화의 전통적인 공생 구조를 와해해 버렸다. 과학·기술문명을 가동시켰던 미래 낙관주의는 이 운명에 의해 초래된 복구할 수 없는 황폐화에 직면하자 "파국이 오고야 말리라"는 숙명주의(Katastrophenfatalismus)로 변했다. "신은 죽었다"는 말이 19세기 무신론의 표현이었다면, "인간은 죽었다"는 말이 20세기 허무주의의 표현이었다. 여하튼 기독교는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되었고, "부르즈와 종교"라는 틀 안에서는 그의 메시지가 지니고 있는 비판적·해방적·치유적 잠재력을 펼칠 기회를 가질 수 없었다.

2) 전후. 제3세계의 상황

부르즈와적 자유주의 신학은 현대세계에서 국가가 경제·정치 문제를 관장하고 교회는 개인의 사적인 영혼을 구원하도록 하는 역사적 상황을 만들어 냈다고 주장했으나, 눌린 자들에게는 이러한 자유주의적 신화가 전혀 기능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식민주의로부터 여러 민족들이 해방되었지만, 중국을 제외하면, 그것이 곧 공업국가들의 경제적 제국주의로부터의 해방을 가져다 주지는 못했다. 자유주의 신학의 근본취지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아무 것도 하지 않았고, 정교분리의 원칙은 땅 없는 농노들이나 산업 프롤레타리아트에게 해방을 가져오지도 못했으며, 보수적으로 말해서, 그들을 보호하지도 못했던 것이다. 1950년대와 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개발정책과 개발원조를 통해 "제3세계" 민중들의 저개발상태를 극복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제1세계"와 "제3세계" 사이의 차이는 점점 더 커지고, 종속이론은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는데 효과적이었다. 종속이론은 세계의 총체적 발전은 항상 권력의 중심부와 대도시들에게 이익을 줄 뿐, 가난한 민중들은 점점 더 주변화한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노동분업적인 세계경제로 인해 세계시장을 위한 단일작물재배가 가난한 나라들에게 강요되는데, 이 단일작물 재배 때문에 토착자급경제는 파괴되고 있다. 사람들이 몰려 살고 있는 도시들은 농촌을 궁핍하게 하고, 문화적으로 황폐하게 한다. 이런 현상이 단일 국가 내에서가 아니라, 제1세계와 제3세계 사이에서 일어난다. 따라서 오늘날 "제3세계"에서는 세계사회의 프롤레타리아가 발생하고 있다.

현대에 이르러 겪은 기독교의 이 같은 경험들은 또 다른 "매개 신학"을 필요로 하게 되었는데, 정치신학은 일련의 이와 같은 종류의 모든 매개 신학들, 즉 혁명신학, 해방신학, 흑인신학, 여성신학, 그리고 그밖에 지역의 성격에 따라 규정되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상황"적 신학의 출발점이 되었다.

2. 신학의 전환

1) 바르트, 자유주의 놀이터에 던져진 폭탄

바르트는 아돌프 하르낙 등의 신학자들 아래에서 자유주의 신학으로 훈련받았으나 목회를 하면서, 그리고 93명의 독일 지성인들이 독일 황제의 전쟁정책을 지지하는 성명을 공포했을 때, 자신의 스승들도 역시 이에 가담한 것을 보고 자유주의 신학의 허점을 실감한다.

1919년에 「로마서 주석」은 "하나님은 하나님이다"라는 근거 하에 자유주의 신학에 반기를 들어, 하나님과 인간, 시간과 영원 사이의 질적 차이를 강조한다. 자유주의적 문화와 사회질서의 정치적 실패는 신인간론적으로 숙고되었다. 즉 인간 소유욕에 의해 인간의 '우상생산'과 인간의 사고와 행동의 '물화'를 이루게 하는 권세들인 "자본주의", "국가" 및 "군국주의"가 바로 자유주의적 사회질서의 주인들인 것이다. 그런데 바르트에 의하면 이런 자유주의 비판은 바로 자유주의 신학 비판과 이어진다. 왜냐하면 그의 신학적 성찰은 사회의 구조도 함께 성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의 현실성과 실재성을 신학의 출발점으로 삼음으로써, 인간과 인간의 상황을 신학의 출발점으로 삼는 자유주의 신학 방법론을 뒤집어 놓았다.

2) 사회·정치적 해석학

이러한 실존적 해석은 다른 한편으로 그 선포에 대한 정치적 해석으로 확대되었다. 정치적 해석학과 사회사적 주석은 성서의 신화적인 세계상을 통해 그 시대 사람들의 세계 이해와 자기이해가 표출되어 있을 뿐 아니라, 사회적 갈등들과 정치적 권력투쟁들이 반영되어 있다는 사실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성서의 전통들은 예언자들의 약속과 복음이 "정치적 종교"와 대결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신약의 모든 전통들은 로마인들이 괴수로 몰아 십자가에 매단 그리스도가 하나님에 의해 부활하였다는 것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것은 생생히 경험되고, 그리고 종말론적으로 희구된 해방의 메시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의 선포는 오늘날에도 비판적, 해방적으로 정치적 현실세계에 관여하는 것이며, 경건한 부르즈와들의 "사적인 일"로 한정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렇듯 사회·정치적 해석학은 성서가 비인간적인 폭력과 무신적인 권력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전복적이고" "혁명적인 책"으로 읽힌다고 생각한다.

3) 세속적인 세계, 세속화 신학

"세속화"는 교회 없는 사회, 종교 없는 도덕, 신학 없는 학문, 신 없는 인간을 뜻한다. 근대 이래로도 교회와 신학은 이와 같은 사태를 무신론으로 정죄했고, 2차대전 이후에야 비로소 세속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디트리히 본회퍼의 "성숙한 세계"는 세속화가 긍정적 의미를 갖는 데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신학은 세계의 세속성을 존중해야 하며, 자유로운 인간의 성숙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신학이 현대세계를 향해 지금까지보다 더 분명하게 자기 나름의 해석을 제공할 때에만 가능하다. 본회퍼에게서 종교적 세계 해석은 이미 하나님의 성육신에 대한 기독교의 신앙을 통해 극복되었다. 하나님은 세계현실 속으로 들어왔으며, 더 이상 세계현실과 대립하지 않는다.

미국의 신학자 하비 콕스는 "세속도시"를 옹호하는 신학을 시도했다. 현대의 대도시에서 자연은 그 신성을 박탈당하고, 역사는 운명으로부터 벗어나며, 종교는 개인적인 것으로 되고, 도덕은 다원주의로 변하고 인간은 점점 더 활동적으로 된다. 그것은 종교가 없고 합리적이고 다원주의적인 시대의 사회적 현실이다. 만일 기독교가 도시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고자 한다면, 근본적인 전환이 꼭 필요하다. 교회는 역동적으로 스스로를 하나님 나라의 자발적인 전위로 파악해야 하고, 신학은 사회 변화의 신학으로 되어야 하며, 기독교 신앙은 문화적인 귀신축출의 능력을 개발하여야 한다. "정치 신학"은 이와 같은 입장을 수용하여 두 가지 기본사상을 가지고 세속세계에 관여하였다.

가) 세계의 철저한 세속성을 인식하는 것은 세계의 역사성을 통찰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역사의 미래는 기독교에서는 항상 하나님의 나라라는 상징으로 파악되었다. 이와 같은 종말론적인 지평에서 교회와 세계는 더 이상 서로 대립하지 않고 공동의 길을 걷는다. 현대 세계는 희망으로서의 신앙을 요구하고, 미래의 근거설정으로서의 신학(종말론)을 요구한다.

나) 세계의 역사성에 대한 인식과 인식에 대한 실천의 우위성은 서로 결합되어 있다. 현대의 종교비판은 더 이상 종교의 본질에 대해 묻지 않고 단지 종교의 실천적, 심리적, 정치적 기능들만을 묻는다. 그러므로 신학은 더 이상 순수한 이론일 수 없다. 신학은 실천적 이론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정치 신학"이 된다. 이것은 복음에 비추어 실천을 성찰하는 일, 즉 공적인 정의를 위해 헌신하면서 신앙을 실천적인 것으로 만드는 일이다. 정치신학은 이 시대의 부르즈와적 종교의 한계를 넘어서게 한다.

 

3. 대표적 체계들

1. 정치신학

『희망의 신학』에서 '희망과 약속'이란 두 개념을 중심으로 삼고 있는 몰트만은 종말론을 새롭게 이해했다. 그는 종말론을 신학의 한 부분이나 신학의 한 교리가 아닌, 신학 전체로 간주했다. 기독교는 "전적으로 종말론이며 희망이며 앞을 향한 전망과 성취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또한 현재의 혁신과 변화이다. 종말론적인 것은 기독교의 한 요소가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매개체"이다. 따라서 교회의 주요한 과제는 사회구조의 개혁이다.

그의 두 번째 저서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에서는 십자가가 정치적 의미로 부각된다. 이제 십자가는 그리스도인의 정치 활동의 출발점과 근거가 된다. 근본적으로 로마의 정치 종교에 혼란을 일으킨 예수는 정치범으로 죽었으나, 십자가에 못 박힌 자가 하나님의 의가 되었다면, 이로써 정치적 십자가의 신학은 정치적 우상숭배와 인간의 정치적 무력화와 소외에 대한 해방의 비판 세력으로서 작용한다. 현대세계의 악순환의 고리는 바로 가난, 폭력, 인종적·문화적 소외, 산업에 의한 자연 파괴이다. 이런 악순환을 마지막 고리처럼 걸어 잠그는 악순환은 무의미와 하나님에 의한 버림받음이다. 이것은 죄책의 악순환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적 고난으로 인한 해방적 사죄 속에서 분쇄된다. 경제적 사회주의, 정치적 민주주의, 인간 소외의 철폐, 자연과의 평화는 악순환으로부터의 해방의 상징이 될 수 있다.

2. 해방신학

기독교회들은 한동안 "개발의 신학"과 그에 상응하는 윤리를 추구해 왔으나, 그 후 특히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해방의 신학"이 탄생하였다. 해방신학은 남미의 "불공정한 상황을 제거하고 보다 자유롭고 인간적인 사회를 건설하려는 공동노력의 체험에서 생긴 신학사상"이다. 이 신학의 기본이념은 부분적으로는 유럽의 희망의 신학과 정치신학에서 비롯하였지만, 출발하고 있는 조건들은 다르다. 왜냐하면 그 조건들은 "제3세계"의 가난하고 억눌리는 민중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 상황 속에서 신학은 근본적으로 복음에 비추어 실천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일이다. "실천"은 삶의 경험이며, 이 경우 그것은 민중이 당하는 가난과 착취, 그리고 야만적인 억압의 경험이다. 그러므로 비판적 신학은 우선 교회의 자리를 민중의 삶에서 발견한다. 신학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의 복음에 비추어 교회의 존재를 성찰해 본다면, 그 신학은 사회 비판적이고, 교회 비판적인 신학이 되어야 한다. 그 신학은 세계를 단지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세상을 변혁하고자 한다. 죄는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의 왜곡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에게 삶의 터전으로 허락한 역사·정치적 세계의 왜곡이다.

해방신학은 탁월한 실천적 이론이다. 바른 실천이 먼저이고, 바른 이론은 그 다음에 온다는 것이다. 역사적인 참여가 먼저이고, 그 다음에 신학적인 성찰이 이루어진다. 특별히 라틴 아메리카에서 전개된 "해방신학"은 메델린 라틴 아메리카 주교협의회가 있었던 1968년 이후 점점 더 그 영역을 넓혀왔다. 해방신학의 행동, 성찰의 방법은 "흑인신학" 및 "여성신학"에 수용되었다.

3. 여성신학

여성 신학 형성의 직접적 요인은 여권 신장 운동과 여성학의 발전 및 해방 신학의 영향에서 찾을 수 있다. 이것은 세계와 교회에서 여성의 억압과 불평등 구조를 자각하고 남성과 동등한 여성들의 자유와 권리를 주장하는 여성들에 의해 1960년대 말에 일어난 신학 운동이다. 여성 해방신학은 특히 주목받을 만하다. 왜냐하면 여성의 억압은 초기의 모권제도가 공격적인 가부장제도에 의해 배제되면서 형성된 문화들 속에서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소위 고등문화와 세계종교는 모두 이에 속한다. 초대교회에서 남자와 여자가 모두 세례를 받았다 해도, 초대교회는 남자의 우위성을 종교적으로 증거한다. 이러한 가부장제 문화와 종교의 결과로 형성된 것이 이원론적 세계관이다. 여성신학자들은 이원론적 세계관이 여성과 자연을 억압하는 사상적 토대가 되었다고 본다. 인간을 자연의 주인으로 간주하되, 여성과 자연은 존재의 하부 구조에 속한 것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적인 여성해방의 가장 큰 동기는 예수 자신에 의한 여성해방과 여성 존중이다. 여성신학은 종교적으로 재가된 남성우월성으로부터 여성을 해방시키는 데 관심을 기울일 뿐만 아니라, 정신의 우월성으로부터 육체를 해방시키고, 인간에 의한 착취로부터 자연을 해방시키는 데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억눌린 자, 피지배자, 가난한 자 등의 해방에도 관심을 갖는다.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신학과 마찬가지로 여성신학도 총체적인 해방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4. 해방주의적 담론이 남겨놓은 것들

미국 내의 흑인해방 투쟁, 유교중심 문화권에서의 여성해방 운동, 남아프리카에서의 인종차별주의 정책에 반대하는 투쟁, 남미에서의 가난한 자들과 연대하는 기독교 기초 공동체들의 움직임, 핵무기 국가에 대한 세계적인 반대, 미국의 군사적 간섭에 대한 저항 등 기독교 신앙과 정의와 자유와 평화를 위한 근간의 투쟁들과 운동, 현재 진행되고 있는 변화와 이슈들은 오늘날 신학에서 중심적인 문제 중의 하나가 되고 있다.

비록 비판가들은 교회가 진정한 선교를 하지 않고 해로운 정치 활동과 인간 편향주의에 빠져버렸다고 비난하고 있지만, 사회·정치·문화·경제적인 억압구조는 불의한 것으로서 개선되어야 하고, 이 문제에서 교회가 어떤 식으로든 긍정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고 있는 듯하다.

우선 현대적-해방주의적 모델은 '악'에 관한 개념의 폭을 넓혔다는 것을 수긍해야 할 것이다. 해방신학은 다양한 상황 속에서 신정론적 질문을 진지하게 던져야만 했다. 왜냐하면 가난한 자들과 억압받는 자들이 고통 당하는 계속된 현실은 하나님이 가난한 자들을 이 세상 속에서 해방시키는 일을 하고 계시다는 해방신학의 주장에 반대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몰트만은 십자가 사건과 하나님의 삼위일체 사이의 관계를 깊이 강조함으로써 이런 표면적 딜레마를 해결하고자 한다. 고난과 죽음 속에서 하나님의 아들은 세상을 향한 사랑 때문에 고통과 죽음을 경험한다. 아버지 또한 아들을 잃는 슬픔을 경험하신다. 고통을 나누는 사랑이었던 이 사건으로부터 새로운 삶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성령이 오게 된다. 아들의 고통과, 아버지의 슬픔, 그리고 만물이 새로워지도록 기도하고 일하도록 용기와 희망을 갖게 하는 성령의 위로가 세상의 모든 고통을 끌어안는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능력은 미숙한 전능이 아니라, 고통 당하고 해방시키고 화해시키는 사랑의 능력인 것이다. 몰트만을 비판하는 이들은, 그가 하나님 안에서의 고통을 거의 영원한 것으로 만들었고, 그리고 신정론을 거의 이데올로기로 변화시켰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몰트만의 의도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고통 당하신다고 강조하였고, 모든 악에 대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종말론적으로 승리한다는 희망을 하나님의 영원한 기쁨 속으로의 피조물의 참여와 결부시켜 생각하고자 했던 것이다.

신앙 전통은 십자가에서 악에 대항하는 하나님의 투쟁을 보며, 부활에서 악에 대한 최후 승리를 거둔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준다. 하나님은 힘없는 이들에게 힘을 주셔서, 지금 여기에서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에서 자신들의 것으로 밝혀진 그 자유를 위해 싸운다. 이 해방 신정론의 중요한 진리는, 악에 직면하여 수동적인 경향을 가진 많은 고전적인 신정론과 비교될 때, 잘 드러난다. 해방 신정론의 강조점이 일방적이라 해도, 전통이 갖고 있는 일방성보다는 덜하다.

더불어 이것은 구원사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가져왔다. 하나님은 인간 밖에서 인간의 감정과 상태와는 무관하게 일방적으로 구원하는 분이 아니다. 화려한 왕관을 쓰고 전리품을 나누어주는, 전쟁에서 승리한 황제가 아니다. 또한 하나님은 각 개인들의 경험 안에서만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는 분도 아니다. 그리스도는 개별적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모두의 구원을 위해 성육하였으며, 십자가에 달렸다. 우리를 구원하는 하나님은 친히 고통을 경험했기 때문에 사회·정치·경제·문화·인종적으로 억압받는 자들의 고난이 무엇인지 안다. 삶이 유지되고 향상되는 곳에서만이 아니라 삶과 삶의 성취를 위협하는 모든 것들의 실체를 파악하고 있으며, 나아가 그러하기 때문에 이를 막아내고 심판을 받게 하는 곳에서도 활동한다. 피조물이 강하고 적극적이든, 약하고 소극적이든 하나님은 언제나 활동하며, 피조물이 홀로 고통 당하는 것을 원하지도 않는다. 이로써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곳에서 활동하며, 하나님의 통치를 준비하고 희망의 씨앗을 뿌리며, 모든 만물을 새롭게 하고 변화시킨다. 더불어 이런 하나님을 믿고 있는 신앙인들, 이런 하나님의 구원을 확신하는 신앙인들은 고통 당하고 구원을 외치는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하나님의 새로운 세상을 위해 계속 기도하고 투쟁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도표]

 


근대적-자유주의적 모델

이성·진보·사회적 다수에 의한 통합. 부르즈와 세계에 대한 희망

현대적-해방주의적 모델

부르즈와 가치의 해체. 다양성 속의 통일성. 사회적 소수의 가치

성 서

인간에 의해 말해진 하나님의 말씀 가난한 자, 소외된 자들이(에게) 말한 하나님의 말씀
개인의 주관적 의미 공동체에 대한 책임과 당파성

내재성 내재적 초월성
하나님 사랑의 보편성 하나님 사랑의 편향성
사람이 하나님에게로 움직임 하나님의 성육. 낮은 자로 오심

인 간

절대적 자유 강조 자유는 모든 이들의 완전한 해방

신성인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는 진정한 인간성에의 미달을 의미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는 사회적 구조들과 개인적 태도에서 표현됨
원인 : 사랑의 결핍 원인 : 탐욕
결과 : 의존으로부터의 고립 결과 : 자신, 이웃으로부터의 소외

그리스도

인간의 원형. 비현실적 인물, 신인간의 중간존재. 전인적 해방자. 민중. 그리스도의 사건은 민중사건의 절정

은총

화해. 용서. 마음의 변화 해방. 사회적 관계 회복. 인간 삶의 변화, 인간성의 전체적 회복



◆ 참고문헌 ◆

-국내 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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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창균, 『현대신학논쟁』, (서울: 두란노, 1995)

손승희, 『여성신학의 이해』, (충남: 한국신학연구소,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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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건, 『조직신학입문』, (충남; 한국신학연구소, 19943)

최인식, 『문화신학』, (부천: 서울신학 대학교, 1998 강의안)

 

-국외 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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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L. 미글리오리, 『현대신학입문』, 이정배 역(서울: 나단, 1994)

데이비드 L. 뮬러, 『칼 바르트의 신학사상』, 이형기 역(서울; 엠마오, 19962)

도르테 죌레, 『현대신학의 패러다음』, (충남; 한국신학연구소,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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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르겐 몰트만,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김균진 역(충남: 한국신학연구소, 199310)

, 『오늘의 신학 무엇인가』, 차옥숭 역(서울;한국신학 연구소, 19934)

한스 큉·데이비드 트라시 編, 『현대신학 어디로 가는가』, 박재순 역(충남: 한국신 학연구소, 19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