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현대이후적-생태학적 모형

 


들어가는 말

우리는 그 동안 인간 이외의 것들에 대하여 철저히 대상으로 인식했다. 이는 근대를 지나 현대에도 나타난 현상들이었다. 이러한 대상화로 인하여 인간 중심적인 입장에서 자연을 이해해 왔으며, 자연은 인간에 의해 철저히 유린되어 왔다. 자연에 대한 유린은 부메랑처럼 인간에게 다시 돌아오고 있으며, 이로 인해 우리의 시대에는 생태계 파괴의 문제가 심각한 문제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이제 주체와 객체 간의 분명한 구분에 기초한 현대적(모더니즘적) 인식론에 대한 반론을 우리는 여기저기서 들어볼 수 있다. 따라서 주체와 객체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이 시대를 현대 이후로 규정하고, 우리에게 다가오는 생태계의 문제와 현대 이후의 사유 모형의 교체와 대화하는 신학의 모형 교체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본고에서 현대 이후-생태학적 모형의 배경, 특성, 이전 모형과의 비교에 대해 고찰해 보고, 이 모형의 한계와 전망으로 결론을 대신하고자 한다.

1. 모형 변경의 배경

우리가 고찰하려는 시대는 '현대 이후', 즉 근대 사유모형의 연장선 상에 서 있는 '현대' 다음의 세대이다. 따라서 '현대 이후'라는 용어의 시대규정이 있어야 논의를 진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이후'는 Post-Modern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세계를 새롭게 이해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전제하는 말이다. 즉 현대 속에서 우리의 삶을 형성하고, 우리의 삶을 규정해 나가던 것과는 다른 새로운 사상이 설정되었다다. 그러므로 현대 이후의 사회를 Post-Modern, 그리고 그 시대의 사상을 Post-Modernism이라고 부른다. 이 사상의 핵심은 "절대적 권력과 가치는 없다", 즉 "절대적 중심의 해체"이다. 그러므로 여러 개의 중심을 의미하는 다원주의가 Post-Modernism의 핵심이다.

Post-Modernism의 대표적 학자인 푸코는 과거의 계급이나 국가가 행사하는 광범위하고도 거대한 권력의 개념을 부인하고, 권력은 이제 사회의 여러 지점에서 발생하는 미시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푸코의 관점은 고전적인 마르크스주의 계급이론과 그로부터 파생하는 모든 거대 이론들을 벗어난다. 주체 문제에서도 Post-Modernism은 현대 사회의 인간은 자신이 맺고 있는 다양한 사회적 관계 내에서 다중적이고 모순된 주체이며, 그러한 주체들은 자신들이 만나는 상황에서 적절히 접합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Post-Modernism의 패러다임은 오늘의 우리의 현실에 급속히 다가와 있다. 한 중앙 일간지에 나온 글이다: "근 300년간 군림해온 대상(물질)과 연구자(의식)의 이원화, 전체를 부분으로 잘라놓고 설명하려는 환원주의, 연속성과 인과율, 그리고 거기서 결과된 기계론적 우주관과 결정론적 사고가 저물어가고 있다. 대신 근년에 와서는 '부분이 아닌 상호작용적, 연속적이 아닌 불연속적, 주객분리가 아닌 주객합일로써 자연'을 인식하고자 한다." 우리들 가까이에서 Post-Modernism은 인간 중심적 구질서에 대한 한계를 소리치고 있으며, 우리에게 "'주체'가 과연 있는가?" "'절대적 권력'이란 과연 있는가?"라고 질문하고 있다. 이러한 질문은 현대 이후를 사는 우리에게 새로운 국면으로의 패러다임의 전환, 새로운 모형 변경을 요구하고 있다.

 

2. 모형의 특징

독일의 신학자 몰트만은 현대신학이 감당해야 할 향후 세 가지 과제를 다음처럼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각 교파 중심의 기독교 시대에서 에큐메니칼한 기독교 이해로의 전이이고, 둘째는 유럽 중심에서 세계공동체 중심으로의 전환, 그리고 셋째는 기계론적이라고 할 수 있는 근대적 사고모형으로부터 유기체적인 사고모형으로의 전환이라고 주장한다. 미국의 과정 신학자 존 캅 역시 향후 인류는 생명의 해방, 즉 외적인 억압으로부터의 해방과 내적인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두 차원의 생명해방을 신학의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보았다. J. B. 밀러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변화된 세계관(실재관)을 다음처럼 요약하고 있다. "세계는 계속되는 창조(진화 과정)이며, 인간은 이러한 신화의 산물이자 동시에 참여자이다." "세계는 상대적이요, 비결정적이며, 참여적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대두는 새로운 물리학의 등장으로 탄력을 받았는데, 세계는 외적인 기계부속품들의 집합체가 아니라 내적인 관계를 갖고 있는 현실적이면서도 잠재적인 역동적 유기체라고 하는 사실이다. 이는 오늘날 고대 여신숭배 신앙체계의 과학적 현대화를 뜻하는 가이아(Gaia) 학설 곧, 유기적 생명체로서의 지구에 대한 이론의 타당성을 뒷받침해 주고 있는 듯이 보인다.

앞서 말한 데로, 같이 포스트 모던시대의 세계관을 위와 같이 파악할 수 있다면 우리는 기계론적 모델에 의해 야기된 초자연과 자연, 주관과 객관의 모호성, 탈자아성 등의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본질적인 특성은 상호의존적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우리는 이러한 자연경험에 근거한 유기적 세계관이야말로 생태학적 위기 시대에 신학적 구성을 가능케 하는 적합한 모형으로 상정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생태학적 신학의 자연 이해를 간단히 정리해 보면, 생태학적 신학은 자연을 창조론적으로 이해한다. 다시 말해 자연은 하나님이 창조하셨기 때문에 거룩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생태학적 신학은 자연을 기독론적으로 이해한다. 즉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연을 구속하시기 위하여 들어오셨기 때문에 자연은 거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기독론적으로 이해된 자연은 성례전적 성격을 갖는다. 이는 성례전을 통하여 빵과 포도주가 거룩해지는 것처럼, 자연은 하나님의 임재로 인해 거룩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생태학적 신학은 자연을 성령론적으로 이해한다. 자연은 하나님의 성령의 거하심으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의 광장이 된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던 생태학적 신학에 의하면 자연은 삼위일체론적으로 이해된다.

3. 현대적-해방주의적 모형과 현대 이후적-생태학적 모형의 비교

1. 현대인들은 더 많이 소유하여, 그것으로 보다 강력한 힘을 얻으려 한다. 이를 위해 현대 사회는 경쟁적으로 생산을 확대하고, 노동의 효율성을 높이며, 새로운 과학 기술을 개발하여 '진보'라는 가치를 이룩한다. 해방주의적 모형은 이러한 현대 사회의 잘못된 가치관의 부산물인 지배와 착취라는 불평등에 주목하였다.

그에 반해 생태학적 모형은 진보를 위한 경쟁적 발전, 이로 인해 야기되는 비관용적인 태도보다는 협동, 상호신뢰, 그리고 상호관계를 중시하는 가치관을 주장한다.

2. 힘과 권력의 불평등한 관계에서 비롯하는 지배와 착취는 세계에 만연해 있다. 그러므로 이로부터의 해방이 절대적으로 시급하다. 하나님의 전능성은 이 세계를 지배하고 다스리는 '힘' 있는 존재로서의 하나님을 뜻한다. 이러한 하나님 이해는 가족, 민족, 종교간의 관계를 힘의 논리 하에 설정하였다. 그러므로 이러한 힘의 관점이 서로에 대한 비관용적인 태도를 가져왔다.

그러므로 새로운 하나님 이해가 필요하다. 이것을 내적인 해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생태학적 모형은 이러한 작업의 일환으로 어머니의 이미지를 착상한다. 벤더빌트 대학의 조직신학자 S. Mcfague가 '하나님의 몸으로서의 우주'를 이야기한 것이 이에 해당한다.

3. 계몽주의 이래로 사람들은 물질의 가장 기본 단위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실체는 독립적이기에 내적으로 어떠한 영향도 주고받지 못한다. 이러한 사상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사이에도 확대되어 비관계적인 특성들이 나타났다. 그 대표적인 예가 자연을 객체화한 결과로 초래한 생태계의 위기이다.

그에 반해 생태학적 모형에서는 인간은 결코 독립적이지 않고 상호 연결되어져 있다. 그러므로 나와 다르게 느끼고 행동하고 사유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상호의존성을 생태학적 모형은 강조한다. 그러므로 관계적 사유에 근거한 유기체적 세계관은 생태학적 모형의 중요한 특징이다.

4. 신이해: 현대적 해방주의적 모형은 하나님을 인간에게 결코 강요하지 않고, 인간의 가능성을 진작시켜 창조의 사역을 지속하는 분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신이해는 '타자성(他者性)'이라는 말로 표현된다.

그에 반해 생태학적 모형에서는 인간과 더불어 관계를 맺지 않은 타자로서의 신은 의미가 없다.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가 중요하게 생각된다.

5.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의 면류관으로 만드셨다. 그러므로 인간은 모든 피조물 위에 있으며, 인간이 자연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인간을 위하여 존재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연 지배의 주체이다.

그에 반해 생태학적 신학에서는 인간은 피조물의 생명의 고리에 속한 존재로서, 이 고리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연 위의 존재가 아니라, '자연 존재'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연 만물과의 생명 공동체 안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야 한다. 이러한 이해는 안식일에 대한 새로운 이해로 지지된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의 일곱 번째 날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창조의 왕관이 아니라 안식일이 창조의 왕관이다. 안식일 앞에서 인간은 안식일을 위한 피조물일 뿐이다.

6. 해방주의적 모형은 하나님의 구원을 인간의 죄 용서와 불평등한 현실 타파로 이해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는 인간의 해방자이시다.

그에 반해 생태학적 신학에서는 인간의 영혼뿐 아니라 온 우주도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피조물이다. 그러므로 온 우주도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수 있는 거룩한 곳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은 우주적 보편성을 띠어야 하며, 그리스도는 온 우주를 구원하는 분이시다.

 [도표]


현대적-해방주의적 모형

현대이후적-생태학적 모형

세계관

기계론적 세계관-비관계적 사유

유기체적 세계관-관계적 사유

가치관

'힘', '소유', 그리고 '진보'의 가치관

협동, 상호신뢰, 그리고 상호관계를 중시

창조 이해

창조의 면류관은 인간이다

창조의 면류관은 안식일이다

그리스도 이해

해방자 그리스도(인간의 지평)

우주적 그리스도(우주적 지평)

해방의 초점

외부적인 억압으로부터의 해방

내부적인 억압으로부터의 해방

신이해

타자성

인접성(범재신론적)


나가는 말

우리는 지금까지 현대 이후-생태학적 모형에 대해 살펴보았다. 요컨대, 현대 이후적-생태학적 모형이 전달하려는 핵심적인 요지는 자연에 대해서 인간이 저지른 잘못은 결국 인간에 대한 피해로 되돌아온다는 것이며, 이러한 사고는 현대 이후라는 시대에 인간에 대한 자연의 위협과 중심성의 이동, 주객체 관계의 모호성에 의해 지지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자연신학에서 범했던 오류처럼 자신에 독립적인 신성을 부여하여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흐리게 한다면, 또 하나의 위협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현대 이후'에 나타나는 시대조류와 대화할 뿐 아니라 기독교 신학 안에서의 비판적 논의들도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자연을 파괴하는 것은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빼앗는 것이나 다름없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아이들의 미래를 빼앗는 것은 어린이 학대의 또 다른 모습이 될 것이다. 나 하나와 이 세계를 관계적으로 조망하고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것이 오늘 우리에게 요구되는 시대적 요청이자 하나님과 바람직한 관계를 맺는 일일 것이다.


참고 문헌

1. 이정배, "현대 이후주의와 기독교", 다산글방, 1993.

2. 원용진, "대중문화의 패러다임", 한나래, 1996,

3. 조선일보 98년 1월 1일자.

4. 한스 큉·데이비드 트라시, 박재순 역, "현대신학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한국신학연구소, 1989.

5. J. B. 밀러, "근대 후기 세계의 출현", 『포스트모던 신학』, 프레데릭 번행 편, 세계신학연구원, 1990.

6.숭실대 교수인 김영한 교수가 1994년 서울신대 신학과 제5회 학술 세미나 심포지움에서 "생태계의 위기와 생태 신학, 생태 윤리"라는 주제로 강의 자료.

7. 김균진, "생태학의 위기와 신학", 대한기독교서회, 1991.

8. 김균진, "생태계 위기와 해석학", 기독교 사상 9월, 1996.

9. 로지노 지벨리니, "생태신학의 최근 흐름", 심광섭 역, 서울: 기독교사상 12월,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