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임무와 봉사

 

주미혜

 

 

 

교회 안에 있는 다양한  직무들은 그것들의 전제와 기초로서 교회의 하나의 그리고 공동의 직무를 가지고 있다. 봉사의 다양한 형태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공동봉사를 전제하고 있다. 공동체 안에 있는 다양한 임무들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고,  그리스도에 의한 공동적인 위탁과 관련되어 있다. 직무라는 전통적인 표현은 몇몇 전통 속에서 교권제도적 관료주의적 색채를 가지고 있어서 오해를 받아왔다. 현대적인 표현인 '봉사'는 적어도 지배요구들을 배제해야 한다.

우리는 여기서 두 표현이 의미하는 일을 위하여 임무라는 표현을 선택하는데 이것은 신분과 인격 위에 실제적인 기능을 부여하기 위함이다. 임무는 늘 어떤 특별한 목표를 갖는다. 그것은 그 임무를 부여하는 사람에게 의존하며, 그것을 수행해 나가는 과정을 통하여 확증된다.(1)

 

1. 공동체에 위탁된 임무-복음 증언

 

1) 교회 공동체 - 오고 있는 나라의 메시야적 백성

 

교회, 기독교인 전체 그리고 기독교는 그 자신의 실존과 역사 내에서 자신의 과제를 메시야적으로 이해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삶은 선취(先取), 저항(抵抗), 자기포기, 대속에 의해서 결정된다. 성령의 권능 안에 있는 교회는 아직 하나님의 나라는 아니지만 하나님의 나라의 역사 내에서의 선취다. 기독교는 아직 새로운 피조물은 아니지만, 새롭게 창조하는 성령의 활동이다. 기독교의 메시야적 잠정성(暫定性)은 교회로 하여금 사회적, 역사적  한계를 스스로 초월하도록 만든다. 기독교의 역사적 궁극성은 언제나 불확실한 역사 속에서 교회에게 확실성을 갖다주며, 저항을 이기는 고난 속에서 기쁨을 얻는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역사 한복판에서 역사의 목표로 증거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다.(2)

 

2) 복음

 

복음을 하나님의 말씀, 설교, 선포, 보고 또는 전승 따위의 표현들로 번역하는 것은 복음과 그 실천, 즉 하나님의 미래 안에서의 세계 해방의 전체 내용과 배경을 포괄하지 못한다.(3)

복음과 복음화는 종말론적인 개념들이다. 예언과 묵시문학은 우리로 하여금 말씀을 말할 메시야의 기쁜 소식을 가져오는 자를 기다리게 하는데, 이 말씀은 하나님의 영의 능력 안에서 새 시대와 새 창조를 열어줄 것이다.(4)

복음이란 하나님의 통치의 도래 관한 소식인데, 이것은 회개한 자들, 즉 인자의  공동체에게는 구원을 가져오지만,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화와 심판을 가져온다.

바울이 말한 복음은 "십자가에 달려 죽고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구원의 소식"을 의미했다. 그 내용은 그리스도 자신, 하나님의 아들, 주, 종말론적 사건으로서의 그의 죽음과 그의 부활이다. 복음이란 이제 구원하여 주는 구원의 소식을 의미하는데, 이 구원의 소식은 하나님에 의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미 지금 보편적이고 결정적으로 개시된 구원을 화제로 삼고, 믿게 만든다. (5)

복음은 그리스도의 계시로서 새 시대의 메시야적인 표징이고 새 창조의 카리스마적인 능력이다. 복음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인간을 자유케 하며, 미래의 성례전이다. 복음과 세계의 복음화 속에서 이 미래는 말씀 속에서 현존할 것이다. 그것이 일으키는 믿음과 희망 안에서 이 구원의 미래는 현재의 비참에 저항하는 강력한 힘이 된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예언과 묵시문학에 의하여 기대된 종말론적인 기쁨의 소식으로서 선포되는 곳에서 종말론은 역사적으로 실천된다. 거기서 하나님의 미래적 영광과 인간의 해방은 역사적 형태를 취한다. (6)

복음의 선포는 언제나 한 공동체 안에 속해 있다. 왜냐하면 모든 언어는 하나의 공동체 안에 살아있거나 하나의 공동체를 창조하기 때문이다. 복음에 일치하는 공동체는 메시야 공동체이다. 이 공동체는 그리스도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이 역사와 함께 자기 자신의 역사를 이야기한다.(7)

이 메시야적 공동체는 메시야와 메시야적 말씀에 속한다. 이 공동체는 그것이 가진 힘을 가지고 이 메시야적 시대의 가능성들을 이미 지금 실현하는데, 그 나라의 복음을 가난한 자들에게 가져오며, 비천한 자들의 높아짐을 비천한 자들에게 선포하며, 가난한 자들, 슬퍼하는 자들, 입을 다물도록 선고받은 사람들이 친교 속에서 희망의 행위들을 통하여 오고 있는 하나님 대한 찬미를 시작한다.(8)

 

 3) 증언

 

공동체에 위탁된 임무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그리스도를 통해서 믿는 자들을 하나님 나라로 부르는 것에 있다. 이 임무는 세례의 표징을 통하여 보여질 수 있다. 세례 받은 사람들의 공동체는 부름을 받은 사람들의 공동체이다. 모든 사람들은 영원한 생, 그 나라의 영광, 메시야적 친교로 부름 받았으며, 이 종말론적  미래의 메시야적 현재 속에서 살며, 그것을 증언하도록 위탁받았다.(9)

예언자적 백성은 그의 삶과 그 삶의 형태를 통하여 하나님의 약속과 미래를 세상에 증언한다. 온 백성은 그리스도의 헌신으로부터 살아가고, 그들은 자유로이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내어놓는다. 그러므로 온 백성은 분리되지 않는 온전함 속에서만 하나님과 세상과의 화해를 증언한다.

제사장적 백성은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중재하며, 세상에 그리스도의 자유케 하는 대속행위를 증언한다. 온 백성은 마침내 그리스도의 통치를 통하려 새로운 삶으로 해방되었다. 그들은 제각기의 방식으로, 또 공동으로 온 세상의 해방을 위해 봉사함으로써 왕의 백성이 되며, 하나님의 통치에 참여한다. 그리스도와의 친교를 통해서 온 백성은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서 각인되어 있는 자유의 역사의 주체가 된다.(10)

 

2. 임무의 목적

 

공동체 내에 있는 다양한 그리고 구별될 수 있는 임무들은 오직 교회 자체의 공통된 임무에 의해서만 발생하게 된다. 그리스도의 메시야적 공동체로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임무들을 분배한다. 교회 내의 임무들은 그리스도에 의해서 주어진 것이다.(11) 임무들은 하나님 나라에 봉사하는 것이지, 현존하는 교회의 이익이나 그 교회 안에 있는 인간들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이 아니다. 공동체는 선포를 위하여, 세례를 위하여, 만찬을 위하여, 축제를 위하여 그리고 대화를 위하여 함께 모인다.

그렇다면 임무를 위탁받은 이 사람들의 위치는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부터 나와서 하나님의 백성 앞에 서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동한다. 그들은 모든 백성들과의 유대 속에서 그리고 그 백성의 임무의 이름으로 수행한다. 그러나 위탁받은 일은 그 백성들 자신으로부터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들이 그의 이름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바 그들의 하나님으로부터 생긴 것이다. 메시야적 교회로서 하나님의 백성은 그들과 분리된 사제적 계급의 우월성을 인정할 수 없다. 임무를 위해 사람들이 교회에서부터 나오게 되나, 이 임무들은 교회에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은사들은 성령의 능력이다. 그리고 임무들은 하나님 나라에 의해서 규정된다. 그것들은 그리스도의 메시야적 통치의 기능이다.(12)

교회로부터 교회에 의해 부름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위탁받은 자로서 그리스도에 대한 책임이 있으며, 또한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서 그가 섬겨야 할 그 나라를 위하여 그를 원하는 모든 자들에 대한 책임이 있다.(13)

 

3. 임무들의 연관성

 

교회 전체의 위임과 교회 안에서의 다양하고 구별될 수 있는 임무들은 서로 발생학적 관련을 가진다. 여기에는 어떠한  시간적 우월성이나 가치의 우월성은 없다. 교회와 특수한 임무는 동시에 함께 발생하며,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한다.(14)

임무는 오직 하나님의 백성의 친교 안에서만 위탁되고 수행된다. 오직 그리스도의 위탁에 의해서만 하나님의 백성은 모여진다. 이 발생학적 관련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자는 카리스마적인 교회를 파괴한다. 오래 동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일방적으로 그리스도로부터 직무(직제)를 도출하였으며 그 다음에 친교를 도출하였다. 이같은 생각은 직무를 하나님의 백성과 분리시켜 놓았으며, 하나님의 백성을 평신도의 '교회백성'으로 무력하게 만들었다.(15)

위임된 교회와 교회 안에 있는 위임들에 대한 삼위일체적 이해만이 하나님의 백성 전체의 존귀와 특수한 봉사의 존귀를 표현할 수 있으며, 양자의 발생학적 관련성을 파악할 수 있다. 사회화와 개인화는 성령의 역사 안에 있는 동일한 작업의 두 면이다. 성령은 모든 사람들을 메시야적 백성의 친교로 인도하며, 동시에 그 자신의 위치와 그의 특수한 임무를 부여한다. 메시야적 역사 속에서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새로운 주체성을 발견하며, 개인적으로 속해 있는 위치를 발견한다. 특수한 임무는 공통된 임무를 강하게 하며, 공통된 임무는 특수한 임무 속에서 그 자신을 나타낸다. 모든 신자들의 보편적 제사장직은 특수한 임무들과 대립될 수 없으며, 특수한 성직들도 모든 신자들의 보편적 제사장직과 대립될 수 없다.(16)

 

4. 임무들의 형태

 

서로 다른 임무들은 세상의 메시야적 해방의 기능들이기 때문에 그것들이 취하는 형태는 역사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 공동체에 의해서 완성되어질 임무들은 공동체 안에 활기 있게 존재하고 있는 성령의 권능에 의존한다. 그리고 공동체가 직면하고 있는 과제에 의해서 결정되어진다. 그러나 공동체 자체가 그리스도에 의해서 위임된 메시야적 백성이기 때문에 긴요한 위임들, 즉 필연적이고 본질적인 위임들이 있다. 본질적이고 중심적인 과제라고 간주되는 임무들이 교회 전체에 의해서 수행되어야만 한다.

교회의 특수한 임무들은 다음과 같이 열거할 수 있다. ⅰ)복음을 선포하기 위한 임무 ⅱ)세례를 주고 성만찬을 집행하기 위한 임무 ⅲ)교회의 모임을 인도하기 위한 임무 ⅳ)봉사를 위한 임무. 교회에서 본질적인 것들은 선포, 친교 그리고 봉사이다. 이것들을 위하여 교회는 설교자와 장로와 집사를 필요로 한다.(17) 이러한 임무들을 수행하는 데 그때 그때의 상황과 아울러 성령의 자유와 충만이 고려되어야 한다.

우리가 열거한 임무들은 특정한 사건에 혹은 전 생애를 통하여 수행될 수 있다. 임무 수행이 끝나면 그 인간의 임무도 동시에 끝나며, 은사의 구별도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위임 자체는 끝나지 않는다. 그 위임은 모든 교회에게 부여된 복음의 선물이며, 그러므로 율법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 임무들은 남자나 여자에 의해서, 기혼자나 미혼자 그리고 신학적으로 훈련된 사람이나 신학적 훈련을 받지 못한 그 누구에 의해서도 수행될 수 있다. 전통적인 편견들이 성령을 무력하게 해서는 안되며, 하나님의 나라를 섬기는 은사의 능력들을 방해하도록 내버려두어서도 안된다.

교회 안의 그리고 교회가 당면한 여러 가지 임무들의 구체적 형태는 그들의 기능을 고려해야만 하며, 따라서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늘 전 공동체의 사명에 그 뿌리를 두어야 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존재해야 한다.(18)

 

5. 친교

 

카리스마적인 교회의 통일성은 위임받은 교회와 특별히 위임받은 개인들의 친교의 문제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한 장소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친교의 문제이다. 부르심을 받은 모든 사람들은, 그들이 평범한 일원이든 특수한 임무를 맡은 일원이든, 동등한 품격과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는 것에서 출발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임무를 가진 것이 아니라 모두가 그 자신의 고유한 임무를 갖기 때문에, 인물들이 아니라 이 임무들이 전면에 서 있다. (19)

메시야적 공동체의 형제애는, 다양한 은사들을 고려해 볼 때, 획일성을 통해서가 아니라 다양성을 통해 표현된다. 위임받은 사람들의 형제적, 동지적 친교 안에서 성령의 한 친교가 표현된다. 특수한 성직에 대한 요구와 교회의 민주화 요구는 교회의 모임의 근거와 사명의 목적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된다. 특수한 위임을 받은 사람들은 교회 회중들과 협력하고, 또한 그들 서로간에 협력한다. 협력의 두 영역은 서로 함께 속하며, 분리되어서는 안된다.(20)

한 지역 안에 있는 개개인 혹은 모여진 교회들을 가까이 있는, 그리고 멀리 있는 다른 교회들과 연합시키는 일도 한 지역에서의 교회의 일치를 위한 사업에 속한다. 모든 개개 교회는 전체 교회와의 친교와 조화, 즉 선포와 성례전에서의 조화, 보편교회와의 형제애를 필요로 한다. (21)교회는 하나님의 모여진 백성이다. 따라서 교회는 지방적, 지역적 그리고 보편적 영역 안에 있는 모임들을 통하여 일치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교회의 일치를 위해 봉사하는 것은 교회의 모임들에 봉사하는 것이다. 그 모임들은 그리스도의 파견과 성령의 경향에 따라 보편적이며 또한 범교회적이다.(22)

 

 

[주]

 

(1)위르겐 몰트만저,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교회」(서울: 한국신학연구소. p 323)  

(2) Ibid., p218

(3) Ibid., p239

(4) Ibid., p240

(5) Ibid., p241

(6) Ibid., p243

(7) Ibid., p247

(8) Ibid., p248

(9) Ibid., p323

(10) Ibid., p324  

(11) Ibid., p325

(12) Ibid., p326

(13) Ibid., p327

(14) Ibid., p327

(15) Ibid., p328

(16) Ibid., p329

(17) Ibid., p330

(18) Ibid., p331

(19) Ibid., p332

(20) Ibid., p332

(21) Ibid., p333  

(22) Ibid., p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