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왕국론

 

조현숙

 

 

Ⅰ. 천년왕국의 기원

 

   천년왕국론의 성서적 뿌리는 다니엘서 7장 18절의 "가장 높으신 분의 성도들이 나라를 얻을것이며 영원히 그것을 누릴 것이다"라는 구절과, 27절의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열국의 위력이 가장 높으신 분의 거룩한 백성에게로 돌아갈 것이다."에 근거하며, 그 외에 에스겔 37장22절과 24절, 28절, 그리고 38장 16절의 "마지막 시간에 '곡(Gog)과 마곡'의 공격이 있을 것이며 시온을 위한 마지막 투쟁과 하나님의 궁극적인 승리가 있을 것이다.”라는 구절에 기인한다. 1000이라는 상징적 숫자는 추측건데 에스겔서 38장의  "많은 날들"과 시편 90편 4절의 "천년이 하루와 같다"는 랍비적 해석에서 유래한다(1)

   이러한 "천년의" 메시아적 왕국은 새롭고 영원한 창조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일 이전의 마지막 시대를 말한다. 여기서 메시아의 통치는 이 세계의 역사에 속하며, 최후심판과 시작하는 모든 사물의 새 창조는 그 다음에 온다. 이스라엘의 이 메시아적 희망들은 분명히 신정적 재난들과 포로생활의 경험들에 직면한 이스라엘의 신앙의 위기와 관련되어 있고, 이 희망들은 삶에 대한 내적, 외적 저항에 용기를 주는 미래의 확신들이다. (pp.264-265) 그러나 메시아니즘을 단순한 재난이론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하지만 재난으로부터의 메시아적 희망이 재난을 지시하는 묵시사상과 결합되어있는 것은 타당하다. 메시아니즘 없는 묵시사상은 있지만, 묵시사상 없는 메시아니즘은 없기 때문이다.(2)

   그렇다면 예수는 이러한 메시아적 희망을 선포하였으며, 그는 과연 천년왕국론자였는가? 예수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메시지는 이스라엘에 제한되어 있었고, 이에 반하여 고난의 예고, 통치에서 종의 신분으로의 전향,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리고 그의 제자들의 십자가의 뒤를 따름은 메시아적 승리의 희망을 벗어난다.

   선견자 요한은 최후심판과 모든 사물의 새 창조 이전 메시아적 왕국에 대한 유대교적인 묵시사상적 전통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는 이 전통에 대한 새로운 기능을 부여하는데,  "짐승", 곧 로마의 통치세력에 대한 승리를 나타내기 위하여 메시아적인 개념을 사용하였다. 여기서 요한은 순교자들의 종말론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그가 말하는 천년왕국은 그들을 의롭다고 인정(Rechtfertigung)한 상징적 표현이요, 하나님이 없는 로마에 대한 신적인 거부의 모습이다. 요한의 천년왕국적 희망은 순교자들의 희망이다. 이 희망의 실천은 하나님이 없는 세계제국들 속에서의 저항과 그들의 우상숭배와 권력숭배의 거부이다.  이 희망은 메시아적 희망이라고 볼 수 없다. 오히려 저항과 순교 자체를 그렇게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역사 속에서 순교를 당하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역사적 미래가 약속되는 것은 논리적이다. 그리고 그들이 순교 당한 바로 거기에 하나님이 그의 주권을 세우지 않는다면, 그들의 순교는 무의미할 것이다. 기독교의 메시아적, 천년왕국론적 희망의 비판가들도 이것을 인식하였다. 천년왕국론의 가장 중요한 신학적 근거는 기독교 희망의 필연적 차안성에 대한 암시이다.(3) 그러나 모든 희망은 두 가지의 면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현재를 저항으로 이끌 수도 있고, 정신적 도피로 이끌 수도 있다. 계시에 대한 수많은 근본주의적 해석과 정치적 해석은 이것을 증명한다.(4)

   전천년왕국과 후천년왕국론의 차이는 과소평가되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현재의 구원사적이며 세계사적인 위치결정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우리 앞에 있는 것으로 보느냐, 뒤에 있는 것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콘스탄틴 황제 이전 교회의 종말론을 지배하던 것은 전천년설이었다. 즉,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신앙은 그리스도의 영광의 나라를 필연적으로 가진다는 것이다. 이 천년왕국론적 기다림이 순교자들의 종말이라면, 확실히 그것은 로마제국 속에서 기독교인들이 당하던 박해의 시대에 지배하던 종말론이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콘스탄틴적 전기"를 그리스도의 고난을 벗어나 그리스도의 다스림으로 넘어가는 전이(轉移)로, 또 천년왕국의 시작으로 환영하게 된 이유였다. 로마제국은 더 이상 "짐승" 이 아니라 기독교 제국이 되었고, 박해를 당하던 기독교가 지배적인 제국종교가 되었다. 현재적 천년왕국론은 이때 생겨났다. 거룩한 제국은 하나님의 통치의 대변자가 되었다. 그 다음 십자가와 칼을 통한 민족들의 선교가 시작되었으며, 따라서 이미 성취된 희망 가운데 사는 사람들은 개방된 미래의 희망을 견딜 수 없었다. 그러므로 431년 에베소 공의회는 고린도전서 15장 28절에 반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그리스도의 통치는 영원하며, 끝이 없고, 그리스도의 나라의 현재적 대변자들은 교회와 황제를 통하여 보장을 받았다.(5)

   현재적 천년 왕국론의 다른 형태는 로마의 몰락 후 제국 서부에서 발생하였다. 티코니우스와 아우구스티누스는 천년왕국의 시간을 그리스도의 승천에서 재림까지의 교회시간으로 해석하였다. 세례는 첫 번째 부활이며, 성도들의 통치는 그리스도의 첫 번째 오심으로부터 두 번째 오심까지 이른다. 요한계시록 20장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교회를 통하여 이미 지금 그의 통치를  행사한다. 이러한 연대기적, 축자적으로 이해된 "천년"이 지난 다음 기독교 제국에서는 물론 서구의 지배적 교회에서도  묵시사상적 위기가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유럽에서는 후천년왕국론이 널리 퍼졌다. 천년 다음에는 종말론적인 환난과 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와의 마지막 투쟁이 오며, 그 다음 빠른 시간 내에 거대한 최후심판이 올 것이라고 보았다. 중세 후기에 이미 후천년왕국론적 종말론이 강해졌는데, 루터는 자신이 마지막 시대에 살며 로마와의 적그리스도적인 투쟁에 연루되어 있다고 확신하였다.(6)

 

Ⅱ. 천년왕국의 형태

 

1. 정치적 천년왕국론

  

1) 거룩한 나라

 

기독교에서 메시아적 희망의 성취는 정치적 성격의 것이었다. "콘스탄틴 황제의 전환"을 통하여 고대의 묵시사상적 순교자 종말론은 천년왕국론적 제국신학으로 변천되었다.(7) 아우구스투스 황제에 의해 시작되었고 콘스탄틴 황제에 의해 성취된 로마의 평화는 메시아적 평화의 실현이었다. 로마는 계시록 13장에 나타난 반신적이고 적그리스도적인 성격을 잃어버리며, 그리스도의 나라를 땅위에 실현하기 위한 구원사적인 세력이 된다. 하나님 없는 자들의 묵시사상적 도성이 이제 영원한 구원의 도성이 되었다. 이리하여 영원한 도성에 대한 신정이론(神政理論)이 시작되었다. (그 첫 번째는 로마, 두 번째는 비잔틴, 세 번째는 모스크바이다. )

   기독교의 유일신론을 통하여 로마황제의 왕정은 제국의 통일성을 위한 보증이 되었으며, 종교적으로 정당화되었다. 시저의 지상왕정은 하늘에 있는 단 하나의 신적 왕정에 상응한다. "한 하나님, 한 로고스, 한 황제". 제국의 평화와 왕정과 유일신으로부터 로마제국의 새로운 신정적 통일성이 생겨났다. 이는 성서에 의해서 뒷받침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황제'를 존경하십시오(벧전 2:17)" 그러나 '황제들'을 존경하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황제의 나라는 그리스도가 하늘에서 다스리시고 황제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통치하는 한 끝이 없을 것이다. 그의 나라는 단 한 분 하나님의 우주적 통치를 대변하기 때문에 다른 제국이나 국가에 의해 아무런 제한도 받지 않는다. 그의 나라는 땅이 끝나고, 시간이 끝날 때까지 제국주의적일 수 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 다니엘서 2장과 7장, 계시록 20장이 말하는 천년왕국은 이 나라에서 인식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제국신학자들의 묵시사상적 약속들이 바로 그들 앞에 생겨난 "기독교제국"으로 넘겨졌을 때, 그들은 이 제국에게 메시아적 소명의식을 함께 부여하였다.(8)

   제국교회는 더 이상 "당신의 나라가 임하는 것"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다. 오히려 종말의 연기를 위해 기도한다. 콘스탄틴의 제국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서 출발하였으나 이것은 골고다의 십자가가 아니라 "이 표지 아래서 너는 승리할 것이다"라는 콘스탄틴 황제의 꿈의 십자가였다. 이리하여 그리스도의 순교자들의 십자가는 황제의 승리의 표지가 되었다. (9)

   기독교적 비잔틴 제국의 메시아니즘과 묵시사상은 상징들에서 가장 잘 식별될 수 있다. 유명한 정교회의 부활절 초상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천년왕국과 결합한다. 또한 유세비우스는 콘스탄틴 황제가 자신을 용의 투쟁자로 그리게 하였다고 밝힌다. 비잔틴에서 용은 신앙의 적인 동시에 제국의 적으로서 천상의 용의 투쟁자요, 승리자인 미가엘은 기독교제국의 수호자로 간주되었다. 정치적 왕정은 하나님에 대한 모방(Imitatio Dei)으로 이어졌으며, 하늘의 광채와 영광으로 옷 입혀졌다. 신앙을 가진 황제는 땅위에 있는 모든 권력의 단 하나의 근원이요 법의 유일한 원천이다. 그러므로 그는 무한한 권력을 가지고 다스린다. 이 독재적 절대주의는 비잔틴의 정치체제와 정치사를 형성하였으며, 1453년 제3로마에 콘스탄티노플이 몰락한 다음 모스크바에 있는 러시아 차르의 독재정치를 통하여 1917년까지 계속되었다.(10) 정교회와 그리스-로마제국의 합일은 여기서부터 출발했으며, 교회나 국가도 그 속에서 서로 분리될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의 실존을 갖지 못한 특별한 유기체였다.(11)

   교회와 세계사이를 중재한 것은  "천년왕국적 세계"가 아니라 교회와 세계를 위하여 교회가 기대하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역사속의 하나님 나라의 현현(Epiphanie)인 교회는 세계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며, 이 비전을 잠정적인 역동성 속에서 진지하게 받아들인다.(12)

 

 2) 구원자 국가

 

   기독교가 지닌 천년왕국론적 희망의 다른 하나의 정치적 성취는 국가를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따라 세계의 구원을 위하여 결정된 것으로 보는 이념이다. 여기서 진지하게 고려해야할 것은 미국의 독특한 천년왕국론적 신화인데, 미국은 이에 대한 실제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 유럽과 아시아 스페인 민족들은 이민을 통하여 미국을 세웠고, 미국의 범문화적 문명을 형성하였으며, 미국을 세계의 중심국가로 만들었다. 청교도 시대로부터 미국의 정치철학은 메시아적 신앙으로 결정되어있었다. 로버트 벨라가 미국의 "시민종교"라 불렀던 것에는 세계구원의 메시아적 정신이 베어있다. 윌슨 대통령은 "미국은 그의 운명을 성취하고 세계를 구원할 수 있는 무한한 특권을 가진다"고 주장하였으며, 케네디와 존슨은 그들의 "메시아적 신앙"을 지키기로 맹세하였고, 닉슨은 "세계를 변화시키고 자유를 위한 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우리의 신앙은 십자군의 열심히 충만해야한다"고 주장했다. 클린턴은 1993년에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우리의 희망과 우리의 가슴과 우리의 손은 민주주의와 자유를 건설하는  모든 대륙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있다. 그들의 일은 곧 미국의 일이다." 이들은 모두 미국의 소명과 세계 속의 미국의 종말론적인 역할의 특별한 메시아적 의식을 증명한다.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요 "새 이스라엘"이라는 자의식은 옛 청교도들을 통하여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왔다. 미국은 자신을 "천년왕국적 국가"로 이해하였다. 이것이 앵글로 색슨족이 지닌 우월감의 꿈이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에 의하여 이집트에서 해방된 것처럼 이주자들은 봉건적이며 절대주의적인 국가교회인 유럽의 노예신분에서, "새로운 세계"의 자유로운 삶으로 해방되었다고 느꼈다. 유럽은 이집트요, 미국은 "약속된 땅이다." 메시야왕국을 위해 선택받은 사람들은 언제나 "주님의 전쟁"을 싸운다. 그러므로 그의 전쟁은 십자군 전쟁을 뜻하게 되지만, 사실은 세력을 얻기 위한 싸움일 뿐이다. 이러한 "선택받은 백성"은 정치적으로 죄가 없다는 의식을 갖고있다. 이는 유럽에 있는 옛날의 죄 많은 나라들에 비해 미국은 나이가 어리며, 전자의 나라들은 정복의 국가들이요 미국은 이주민의 나라이고, 그들은 추방하고 미국은 초대하기 때문이다. 1813년 토마스 제퍼슨은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가 부패하기까지는 수백년이 필요하며, 우리의 순수하고 고결한 연방합중국은 영원히 존속할 것이며, 지구를 다스리고 인간의 완전함을 이끌 것이다." 미국은 "자유로운 세계"이고, 저기는 어두운 "악의 세계"이다. 선한 사람들은 깨끗하고 밝은 옷을 입으며, 악한 자들은 더럽고 어둡다. 서부활극에서부터 시작하여 공상과학 영화까지 이 이원론적이고 묵시사상적인 역사상이 넓게 퍼져 있다. 그리스도든 슈퍼맨이든, 언제나 동일한 승리로 끝난다.(13)

 

2. 교회적 천년왕국론

  

   콘스탄틴의 정치적 천년왕국론은 서방에서는 로마에 대한 게르만 민족의 침입과 서방 고트족의 정복과 함께 붕괴되었다. 서방에서 이 "거룩한 제국"의 붕괴는 땅에서 교회의 힘을 이루 말할 수 없이 강화하였으며, 종교적 동경이 하늘에서 성취되기를 바라는 피안의 종말론을 초래하였다. (14)

   정치적 붕괴와 함께 제국에 대한 기독교의 이념은 사실상 기독교 황제로부터 교황에게 넘어갔다. 이제 세계의 민족들에게 구원을 가져오는 것은 거룩한 제국이 아니라 거룩한 교회이며, 따라서 교회는 1961년 요한 23세의 교서 서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민족의 어머니와 교사"로서 인정받고 특권을 가져야 한다. 로마제국의 정치적 중앙집권주의는 이제 로마의 교회적 중앙집권주의로 변천하였다.(15)

   로마 제국에서 오직 한 황제만 있을 수 있다면, 거룩한 제국에서는 단 하나의 교황만이 있을 수 있다. "군주체제적 교직제도"는 정치적 군주를 철저히 모방하였다.  여기서 교회는 그 자신을 싸우며 대립하며 고난 당하는 교회로 이해하지 않고, 승리하고 지배하는 교회로 이해한다. 이제 교회는 더 이상 그리스도의 투쟁과 고난에 참여하지 않고, 그리스도와 함께 그의 왕국 안에서 심판하고 지배한다. 지배 체제적 교회개념이 천년왕국론적 교회개념으로 바뀌었다.(16)

   교회적 천년왕국론은 특히 겔라시우스 1세때에 공개적으로 또 공식적으로 태동하는 상태에 있었다. 이미 그 이전에 도나티스트 티코니우스는 "천년왕국"을 영적인 현실로 파악하고, 이를 교회의 시대, 곧 세계의 여섯째 시대에 적용하였다. 그리스도와 성도들의 이 왕국은 그리스도의 첫 번째 오심에서 그의 재림에 이르는 "교회의 시대"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한걸음 더 발전시켜 "교회는 이제 그리스도의 왕국이고 하늘나라이다" 라고 말했다. 그동안 마귀가 천년 동안 묶여있기 때문에 의심할 바 없이 그리스도의 첫 번째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 동안 다스릴 것이다.(17)

   천년왕국론은 "소멸되지도" 않고 "마비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위에 기술한 것처럼 정치적, 교회적 소명의식과 자의식으로 전이되었다. 기독교적 제국과 기독교적 나라들이  천년왕국적으로 될 때, 자연히 그들은 어떠한 미래의 천년왕국론도 기대할 수 없게되며, 오히려 그것을 자기 자신을 위험스럽게 만드는 것으로 보게 되며, 그것에 대한 희망을 이단으로 말살 할 수밖에 없게 된다.(18)

   천년왕국론적 이해에 따르면 교회는 "사회의 왕관"이다. 교회는 국가와 사회를 견제하며, 그것을 파괴하기보다는 오히려 완성한다. 왜냐하면 교회는 자연적인 것을 계시의 빛 속에서 해석하고 조정하며, 교회만이 자연적인 것을 진리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모이기를 힘쓰며 자기 자신을 통치하는 공동체가 교회로 간주되지 않고, 지배체제가 교회로 간주된다. 이 지배체제는 요한계시록 20장의 모형에 따른 영적인 세계통치권이다. 교회 안에 그리스도인의 사귐 대신 교회와 함께 하는, 그리고 그리스도를 대변하는 교회의 우두머리 아래 있는 사귐이 등장한다.(19)

   교회의 천년왕국론적 해석의 또 다른 표징은 종말론을 심판의 기다림으로 축소하는 일과 기독교적 희망의 정신화이다. 교회가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의 천년왕국으로 이해할 때, 교회의 현재와 천상적 영원의 피안적 미래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다. 아우구스티누스 이후 서방에 퍼진 "피안적 종말론"은 천년왕국론이 마비됨으로써가 아니라, 교회가 천년왕국을 장악함으로써 생겨났다.(20)

   지배체제적 조직을 가진 모든 교회는 중앙집권적인 교회이며, 교회 밖에는 아무 구원도 없다. 교회는 영적 세계통치권을 요구하는 교회이다. 교회 밖에는 저주와 지옥만이 있다. 교회의 이해는 한 하나님, 한 주님과 그리스도, 한 교황, 한 교회라는 추상적 통일성의 개념으로부터 출발한다.(21)

   천년 왕국론적 교회는 승리주의적이며 환상적이며 교만한 존재이다. 그러나 천년 이전에는 어떠한 거룩한 통치도 존재하지 않는다. 천년에 이르러 비로소 순교자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할 것이며 민족들을 심판할 것이다. 천년 이전에 교회는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그의 뒤를 따르는 가운데서 자유로운 사귐을 낳는다.(22)

 

3. 근대적 천년왕국론

 

   역사의 가능성에 대한 계몽주의적 이념의 뿌리는 17세기 에언자적 신학과 천년왕국의 부흥, 유대교 메시아니즘, 크롬웰시대의 유대인 보호주의, 청교도적 묵시사상, 독일의 개혁경건주의에 남아있다.

   근대세계를 향한 유럽의 두 가지 중요한 출발은 아메리카의 발견과 정복, 코페르니쿠스에서 뉴턴에 이르는 새로운 자연과학의 발견이다.  이 두 가지 사건은 근대를 승리로 이끈 이성과 자연과학의 힘이다. 실험적 이성은 전통을 따르는 이성의 자리를 대신 차지한다. "옛부터 말하는" 것이 참된 것이 아니라, 실험을 통하여 증명될 수 있는 것만이 참된 것이다. 근대적 도구의 이성은 과거의 수용적 이성을 몰아내고 역사적으로 중재되는 교회의 신앙을 폐기하였다.(23)

   세계에 대한 유럽문명의 이 같은 이중적 권력획득에 대한 종교적 해석의 틀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동안 세계를 지배하고 민족들을 심판할 것이며, 이 기독교적 메시아 왕국은 세계의 종말 이전 인류의 마지막 황금시대일 것이라는 메시아적 희망에서 발견된다. 계몽주의는 땅에 대한 인간의 지배의 실현이며, 자신의 죄책으로 인하여 상실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것이다. 죄책감에 빠진 비성숙으로부터 이성의 자유롭고 공개적인 이용으로의 탈출이 이루어지고 있다. 궁극적인 엑소더스는 이제오고 있다. 이 희망만이 역사 내의 미래에 대한 희망이다.

   천년왕국론만이 하나님의 나라를 묵시사상적으로 파악하지 않고 목적론적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 세계의 파괴적인 종말로 보지 않는다. 1750년 크루시우스(C. A. Crusius)는 인류의 역사 밑바닥에는 "신적인 구원의 계획"이 숨어 있다고 하였는데, 레씽(G. E. Lessing)은 이 "신적인 구원의 계획" 대신에 인류의 정신적 - 도덕적 발전으로부터 인식될 수 있는 교육적 섭리를 등장시켰으며, " '계시'는  이성과 윤리성으로의 '교육'이며, '계시'된 진리를 이성의 진리로 형성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고 말하였다.

   레씽에 의하면, 천년왕국에서는 그리스도 자신이 현존할 것이다. 말씀과 성례전을 통한 그의 역사적 중재들은 멈출 것이며, 그리스도의 재립 속에서 어떤 인간도 다른 인간을 가르치지 않고 모든 사람이 그를 있는 그대로 인식할 것이다.(24)

   칸트는 이러한 레씽의 사상을 "철학적 천년왕국론"이라 불렀는데, 그는 프랑스 혁명에서 보다 더 나은 것을 향한 인류의 도덕적 성향의 "역사적 표징"을 보았다. 그는 이를 종말론적 표징으로 이해했다.(25)

   하나님의 나라가 온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에 의하여 일어나는 묵시 사상적 혁명의 결과가 아니라, 이성과 윤리성의 인간적 진보의 결과일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이는 자연의 삶에 대해서는 아무 영향도 주지 않을 것이며, 오직 인간의 삶 속에서만 일어날 것이다. 여기에 "철학적 천년왕국"과 "신학적 천년왕국"의 차이가 있다. 그러나 통일적이며 계획된 역사의 과정과 진보와 궁극적 완성의 목적이라는 전제들은 동일하다. 유럽의 근대의 힘은 먼저 영국을 세계의 제국적 중심으로 만드는 산업혁명에서 유래한다. 근대의 열정(Pathos)은 미국의 독립선언과 프랑스 혁명의 열정에서 유래한다. 그것은 종말론적 열정이다. 그 이후의 인권선언들, 곧 "모든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다" 는 선언 속에 담겨진 법의 유토피아와 사회적 유토피아는 천년왕국과 토라의 안식일 계명에 따른 세계사적 안식일의 비전을 반영한다. "근대"는 언제나 "마지막 시대"라고 생각되었다. 근대 다음에는 어떤 시간도 올 수 없다. 그것은 인류의 마지막 시대이며, 그러므로 근대의 종말은 없다. 근대자신이 종말이기 때문이다. 종교적 천년왕국론에서,정치적 천년왕국론으로,  신학적 천년왕국론에서 철학적 천년왕국론으로의 이와 유사한 전이는 영국과 프랑스에서 이루어졌다. 프랑스에서는 종교와 형이상학의 시대 대신에 "이성의 시대"가 등장하였고, 따라서 프랑스의 계몽주의는 반종교적이요 반교권주의였으며, 무신론적이었다. 이와는 반대로 영국의 계몽주의는 자유교회적이며 종교적이었다. 영국에서의 이신론(理神論)은 앞당겨온 영광의 나라에 있어서 안식일 신학의 한 형식이었다. 영국의 계몽주의는 구약성서적으로 형성된 천년왕국론적이었는데 이는, 메시아의 나라가 오기 이전, 하나님의 영을 통한 인류의 계몽이 앞서 일어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26)    

   다른 민족들에 대한 지배, 자연에 대한 힘의 장악, 인간을 역사의 주체로 만드는 문명의 기획이 "근대"의 천년왕국적인 꿈을 구성한다. 이것의 현실은 "근대"의 과학-기술적 문명이며, 이 문명의 내적 모순들과 외적 모순들로 인하여 우리는 점점 더 강하게 고통 당하며, 이 모순들을 경험하고 있다.(27)

   근대사회에서 중요한 문제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들과 사회적 평등의 권리들을 조화시키는 일이다. 자유의 정치적 형식이 민주주의라면, 평등의 경제적 형태는 사회주의/공동체주의이다. 평등한 삶의 조건들과 평등한 삶의 기회가 없다면, 민주주의는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개인의 자유가 발전되지 않고는 어떠한 사회적 정의의 체계도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칸트 이전의 종교는 인간의 허무한 삶을 조정하는 기능을 행사하였다. 그러나 역사에서의  삶은 미래에 의하여 자극을 받거나 위협을 받는다. 구원하고 성취하는 미래만이 역사속에 있는 삶과 행동에 위로와 의미를 줄 수 있다. 그러므로 근대와 함께 미래가 초월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되었다. 신학적 사고는 희망에 대한 사색이 된다. 기독교 신학은 메시아적 교만과 묵시사상적 체념을 미래에 대한 근대의 입장에서 몰아내야 할 것이다. (28)

                 

Ⅲ. 몰트만의 평가

 

   역사적 천년왕국론과 종말론적 천년왕국론을 구분할 때, 먼저 역사적 천년왕국론은 정치적, 종교적 혹은 보편사적 현재의 천년왕국론적 해석을 말하며, 종말론적 천년왕국론은 세계의 종말과 새 창조의 종말론적 연관 속에 있는 미래의 기다림을 말한다. 위에서 알아본 바와 같이 역사적 천년왕국론은 정치적 세력이나 교회적 세력을 종교적으로 정당화하는  이론이며, 메시아적인 폭력행위와 역사의 실망으로 빠질 수 있다. 이에 비하여 종말론적인 천년왕국론은 이 세계의 저항과 고난과 추방 가운데서 필연적인 희망의 상이다. 천년왕국론은 종말론과 결합되어야 한다. 종말론으로부터 분리된 그 자체로서의 천년왕국은 역사의 재난으로 인도한다. 그러나 종말론과 결합될 때, 그것은 생존과 저항에 대한 힘을 준다.(29)

   천년왕국론적 종말론만이 종말을 역사의 목적으로, 미래의 역사로, 역사의 완성과 마지막 상태로 이해한다. 비천년왕국론적 종말론은 현재의 에토스와는 아무런 연관성도 가질 수 없는 역사의 단절을 말할 수 있을 뿐이다.(30)

   종말론적 천년왕국론의 포기는 역사적 천년왕국론에 근거해 있다. 자신의 정치적 현재와 교회적 현재를 그리스도의 천년왕국으로 간주하는 자는 자기와는 다른 그리스도의 나라를 그 자신 곁에 허용할 수 없으며, 오히려 이러한 희망으로 말미암아 심각하게 문제에 봉착하고, 불확실하게 되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의 현재적 나라 안에서 혹은 그것의 종말에서 전개되는 종말론들은 단지 "곡과 마곡"의 묵시사상적 재난과 최후의 날에 있을 거대한 세계심판만을 보게 한다. 이러한 후천년왕국론적 종말론들은 현재의 잘못된 구원사적 자리매김으로 말미암은 것이다.(31)

      

         

                      

[주]

 

1.J. Moltmann, 「오시는 하나님」김균진 역, (서울:대한기독교서회,1997)p.264.

2.Ibid., p.265

3.Ibid.,pp.268-269

4.Ibid.,p.271

5.Ibid., pp.272-273

6.Ibid., p.282

7.Ibid., p.282

8.Ibid., p.287

9.Ibid., p.287

10.Ibid.,p.290

11.Ibid.,p.290

12.Ibid.,p.291

13.Ibid.,pp.304-305

14.Ibid.,p.314

15.Ibid.,p.315

16.Ibid.,p.316

17.Ibid.,p.318

18.Ibid.,p.320

19.Ibid.,p.321

20.Ibid.,p.322

21.Ibid.,p.323

22.Ibid.,p.325

23.Ibid.,p.327

24.Ibid.,p.328-330

25.Ibid.,p.332

26.Ibid.,p.334

27.Ibid.,p.335

28.Ibid.,p.337

29.Ibid.,p.338

30.Ibid.,p.339

31.Ibid.,p.3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