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19)

 

칭의론 논쟁
(2016년 5월 11일)

  

김세윤 박사의 이른바 "유보적 칭의론"이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나도 구원론을 쓰려고 하니 자연히 관심거리가 된다. 그런데 칭의론이 바울 신학의 핵심이므로 바울의 칭의론 또는 구원론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견해가 매우 엇갈리는 것 같다. 바울 신학의 대가인 김 박사의 견해를 비판하기란 만만하지 않지만, 토론은 매우 바람직하다.

김 박사도 완전한 존재가 아니므로 당연히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그를 비판하는 자도 마찬가지다. 김 박사를 특히 예민하게 비판하는 진영은 전통적인 개혁주의자들인 합동측 사람들로 보이는데, 그들도 나름대로 칼빈주의에 대한 절대적인 맹종자세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예컨대 절대적 이중예정론, 성도의 견인 등이다.

바울도 로마서에서 이를 말하지 않았고, 예수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예컨대 "마지막 심판의 비유"(마태의 신학?)에서 예수는 심지어 예수를 알지 못하고 선행한 사람들에게도 구원을 선언하며,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선포한 바울도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선언했다. 이 글을 쓴 사람은 이런 구절은 보지 않고, 칼빈주의를 절대적인 진리처럼 신봉하는 듯이 보이며, 그래서 웨슬리-알미니안 신학을 완전히 왜곡하고 폄하하고 있다.

물론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은 사람은 성령의 능력 안에서 당연히 선한 행위를 하게 된다"고 주장하는 그도 행위의 가치와 중요성을 인정한다. 그렇다면 증거를 보여라! 여성안수를 거부하고 여성을 차별하는 것이 선행인가? 표절과 거짓말, 성추행을 한 자들을 두둔하고 제대로 치리하지 않는 것도 선행인가? 대통령에게 아부성 발언을 하고 정권을 비호하는 것도 선행인가? 사회적 정의를 외치지 않고 큰 교회를 만드는 것도 선행인가? 수많은 (150개 이상?) 교파로 분열하고, 믿음의 형제를 정죄하고, 감투싸움에 혈안인 것도 선행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