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신학 40주년

- 몰트만 박사의 강연에 관한 소감 -

이신건 

 

 

 '희망의 신학'이 출간된 지 어언 40년이 되는 뜻깊은 올해 6월 1일에 세계적인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 박사(튀빙겐 대학 명예교수)가 네 번째로 한국 땅을 밟았다. 칼 바르트의 '로마서'가 인간중심적이고 세계낙관적인 이른바 '자유주의 신학'의 결정적인 붕괴를 알리는 새벽 닭소리의 울음 역할을 했다면, 몰트만의 '희망의 신학'은 제2차 세계대전 후의 폐허 속에서 우렁찬 희망의 메시지를 전함으로써, 신학의 방향을 순식간에 바꾸어놓았다. 뉴욕 타임즈(New York Times)는 "희망의 신학 때문에 하나님의 죽음의 신학은 기반을 잃어버렸다."고 하였고, 슈피겔(Der Speigel)은 "희망의 신학이 그리스도인의 창백한 피 속에 철분을 공급하였다"고 하였다. 이 책은 8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한국에서도 20쇄를 넘어설 만큼 사랑을 받았다. 이 책은 희망을 애타게 갈구하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열렬한 갈채를 받았다.

연세대, 영산아트홀(2004년 영산국제신학세미나), 서울신대와 감신대(한국조직신학회와 기독교사상 공동주최)에서 행한 강연에서 몰트만은 '희망의 신학'이 나오게 된 동기와 배경, 그 영향을 설명한 후에 희망의 신학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서도 자신의 의견을 소상히 피력하였다. 그가 가는 곳마다 신학생들과 교수들의 질문이 쏟아졌고, 몰트만은 78세의 고령과 신체적인 피로에도 불구하고 정성껏 질문과 토론에 응하였다.  

'희망의 신학'의 저술에 결정적인 동기를 준 것은 블로흐(희망의 원리)였다. 이 책을 읽은 후에 몰트만은 "왜 기독교 신학이 희망을 내팽개쳤는가? 희망은 원래 기독교의 중심적인 메시지가 아닌가?"를 진지하게 되물었다. 곧이어 출간된 '희망의 신학'에서 몰트만은 기독교가 믿는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롬 15:13)임을 새롭게, 그리고 가장 효과적으로 부각하였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이 흔히 오해하듯이, 무신론적인 신(新)-마르크스주의자 블로흐의 이론을 답습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구약성서의 탈출과 약속의 신학, 메시아 사상, 묵시사상과 신약성서의 그리스도의 부활과 강림의 신학, 홀랜드의 사도직의 신학 등을 자료로 삼아 블로흐에 필적하는 신학을 전개하였다.

그 당시 희망은 유행을 타기 시작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카톨릭 교회의 문호 개방, 미국의 민권 운동, 동유럽의 '인간의 얼굴을 지닌 사회주의', 라틴 아메리카의 혁명, 동독의 민주화, 유럽의 반핵 운동에서 보듯이, 1960년대는 희망을 통해 거듭난 시대였다. 그리고 희망의 신학은 정치신학, 해방신학, 흑인신학, 여성신학 등에 이르기까지 세계적으로 광범위한 영향을 끼쳤으며, 한국의 민중신학도 분명히 그 영향을 받았다.

'희망의 신학' 이후로 그의 신학적 초점은 서서히 변하였고, 그의 관심의 대상도 조금씩 바뀌었다. '희망의 신학' 다음에 출간된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에서 그는 하나님과 인류의 고난의 의미와 그로부터의 해방의 과제를 진지하게 다루었으며, '사회적 삼위일체론'을 전개함으로써 하나님과 온 피조물의 상호적인 친교의 토대를 놓았다. 그리고 후기로 갈수록 그는 '창조신학' 혹은 '생명신학'에 점점 더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의 신학을 관통하는 일관된 초점은 바로 '희망'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마지막 조직신학적 역작인 '오시는 하나님'도 바로 이를 입증한다.

'희망의 신학'이 나온 지 40년이 된 지금에도 종말론적인 희망에 근거한 그의 신학은 수정되거나 약화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견고해졌다. 이번의 강연에서도 그는 기독교 신앙과 신학에서 희망의 중요성을 시종일관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희망의 신학'이 오늘날의 위기에 어떤 동기를 주는지를 설명하였다. 유럽의 전통적인 기독교 국가의 붕괴는 새로운 교회연합운동을 위한 기회를 제공한다. 테러와 폭력의 시대에 희망은 생명 사랑의 동기가 된다. 지구가 멸망하지 않기 위해 생태계를 위한 '희망의 신학'이 요구된다. 그리고 종교 간의 대화와 공존의 시대에 윤리적, 환경적, 사회적, 정치적 사안에 대한 대화와 생명 선교가 요구된다.  

몰트만에게 쏟아진 질문은 매우 다양하였다. 학생들의 질문은 비교적 단순하였으나, 신학자들의 질문은 매우 전문적이었다. 희망의 능력은 어디서 오는가? 절망 밖에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희망할 수 있는가?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악 혹은 사탄의 위협 앞에서 희망은 너무 허무맹랑하지 않은가? 인간은 무엇을, 그리고 어디까지 희망할 수 있는가? 죽은 자들에게도 구원의 희망이 있는가? 재림과 강림의 차이가 무엇인가? 동양 종교와 자연과학, 과정신학과의 대화가 필요하지 않는가?

희망에 대해 회의하고 공격하던 청중들에게 몰트만은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 독일의 예상치 못한 통일, 남아프리카의 인종차별 체제의 평화적인 붕괴 등을 예로 들면서, "역사는 우리의 작은 믿음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왜 우리는 더 위대한 희망을 품지 않았는가?"고 반문하였다. 그 어떤 도발적인 질문도 세계적인 석학의 박학하고 노련한 주장을 완전히 반박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몰트만도 결코 지식의 백과사전이나 완전한 신학자로 자처하지는 않았다. 우리 시대의 질문에 대해서는 그는 늘 열린 자세로 귀를 기울였으며, 우리 시대의 도전에 대해서는 그는 우리가 자신의 지혜로 슬기롭게 극복하기를 제언하였다. 신학 거장의 사상의 깊이와 너비와 높이는 예상보다 컸다. 하지만 이보다 더 돋보인 것은 한국 신학과 한국 교회를 위한 그의 진솔한 애정이었다. 그가 떠나간 후에 우리의 뇌리에 여전히 맴도는 것은 거창한 그의 신학논리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는 우정어린 격려의 말이다. 자살이 줄을 잇고 위기가 확대되는 한국 땅에서 그는 다시금 우리에게 희망의 말을 던지고 우리 곁을 홀연히 떠났다. "숨을 쉬는 한, 여러분은 희망할 수 있다. 희망하는 한, 여러분은 살아 갈 수 있다."  

(2004. 6.7 한국성결신문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