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축복'(몰트만)에 대한 논평  

몰트만의 발제

 

이신건

 

부족한 사람이 저의 존경하는 스승 몰트만 박사님을 한국에서 한번 더 뵐 수 있게 됨과 그분의 글을 논평할 수 있게 됨을 큰 영광과 기쁨으로 생각합니다. 한국교회와 한국신학을 매우 사랑하시는 몰트만 박사님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분의 제자로서 그분의 견해에 대해 대체적으로 동의합니다. 하지만 조용기 목사님의 신학과 비교하는 가운데서 생산적인 대화를 위해 몇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1. 몰트만 박사님은 현대신학에서 무엇보다도 기독교적 종말론의 중요성을 재발견함으로써, 우리 시대의 다양한 도전에 적절하게 대답하셨습니다. 이로써 그분은 현대신학에 하나의 전환기를 마련하셨으며, 세계의 신학적 발전을 위해 크나큰 공헌을 하셨습니다. 특히 한국교회와 신학은 그분의 신학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1970년대를 전후하여 한국은 경제적으로는 눈부시게 발전하였지만, 그것은 인권의 희생 위에 이루어졌습니다. 그리하여 독재자에 대항하는 많은 운동들이 생겨났습니다.

샤마니즘적이고 보수적인 대개의 한국 교회와 신학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침묵하거나 심지어 협력함으로써 격렬한 비판을 받았습니다. 소수의 교회들과 신학자들은 저항 운동에 열렬히 참여하였지만, 이를 위한 신학적인 토대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종종 마르크스주의에 호소함으로써, 기독교의 정체성을 위태롭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몰트만 박사님의 '희망의 신학'은 한국인에게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것은 위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역사의 변혁을 위한 신학의 토대를 마련하는 데 기여하였습니다.

제가 서울신학대학에 다니던 시절에 종종 조용기 목사님의 설교를 그분의 교회에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우리 대학은 그분의 교회와 가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분도 종종 재림과 종말에 관해 설교하셨다고 기억합니다. 비록 그 당시에는 종말론이 순복음 신학과 그분의 설교의 본질적인 핵심은 아니었지만, 그분의 종말론적인 설교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던 한국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용기와 위로를 주었습니다. 그분의 설교들에는 예컨대 '꿈', '비전', '성공', '축복', '번영', '소망'과 같은 단어들이 자주 나옵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신학도 역시 '희망의 신학'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칼 바르트가 바젤에서 의심하였듯이, 몰트만 박사님은 에른스트 블로흐를  추종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그의 '희망의 철학'에 기독교적인 세례를 베풀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분이 중요하게 여긴 것은 '죽은 자들의 부활과 영생'에 대한 희망이었고, 그와 함께 성서적인 하나님 증언에 기초한 기다림이었습니다.1) 그리고 사람들이 조용기 목사님의 설교를 비판하였듯이, 그분도 한국의 샤마니즘을 추종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미국의 '번영의 신학'을 계승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분의 신학도 철저히 성서적인 증언 위에 기초해 있습니다. 그분은 축복이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항상 매우 강조하십니다.

하지만 몰트만 박사님과 조용기 목사님은 특정한 관점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몰트만 박사님에게서 구원은 단지 영혼의 구원, 악한 세상으로부터의 개인적 구원, 양심의 시련 속에서의 위로만이 아니라 종말론적 희망의 실현, 인간의 인간화, 인류의 사회화, 온 피조물과의 평화이기도 합니다.2) 예언자적인 종말론의 지평 안에서는 단지 이방인들의 신앙적 순종만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구약성서가 축복과 평화, 공의와 생명의 충만함이라고 말하는 그런 희망도 드러난다는 것입니다.3)

물론 조용기 목사님에게서도 축복과 평화와 생명은 자주 강조되지만, 이것들은 매우 개인주의적인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그분은 사회 정의와 인간화, 온 피조물의 평화는 적게 강조하시거나 전혀 강조하시지 않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분도 구원의 사회적, 우주적 지평에 대해 점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조용기 목사님은 몰트만 박사님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실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2. 몰트만 박사님이 희망을 말하심으로써 온 피조물의 고난을 무시하신 것은 아닙니다. 그분은 언제나 고난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고난을 극복하는 희망을 말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희망의 신학'은 또한 언제나 '십자가의 신학'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특히 그분은 자신이 경험한 집단적인 고난 속에서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고, 하나님은 누구이신가?"를 물으셨으며,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고난 안에서 우리를 위한, 그리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고난을 발견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은 고난을 당하는 한국 백성들에게 마음의 위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절망을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이 되었습니다.

항상 축복을 강조하시는 조용기 목사님도 결코 고난을 외면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다음과 같이 설교하십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그의 몸은 망가졌고 그의 피는 흘려졌다."4) "십자가 위에서 고난을 당하심으로써, 그는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죄를 구속하셨다."5) "예수는 우리의 연약과 질병을 짊어지셨다."6) "예수님은 그의 고난을 통하여 우리를 모든 저주로부터 분명히 구원하셨다."7)

저서 '생명의 샘, 성령과 생명신학'에서 몰트만 박사님은 조용기 목사님의 '고난의 신학'에 주목하셨습니다. "한국의 카리스마적인 조용기 목사님은 병자들을 기도원에 보낼 때에 병자들로 하여금 매일 다음과 문장을 여러 번 쓰도록 합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8) 여기서도 두 분의 신학은 일치점을 갖습니다.

하지만 몰트만 박사님은 개인적인 해방을 넘어서 사회적, 우주적인 해방을 지향한다면, 조용기 목사님은 주로 개인적인 해방을 강조하십니다. 그리고 몰트만 박사님은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과의 연대를 추구하시지만, 조용기 목사님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나눔을 추구하시는 편입니다.9)

 

3. 덧붙여 여기서 저는 몰트만 박사님에게 몇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1) 세계적으로 유명한 당신의 저서 '희망의 신학'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말하는 하나님은 세계 안에 계신 하나님이나 세계 밖에 계신 하나님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출애굽과 예언들을 통해 알려진 "희망의 하나님"(롬 15:13), "미래를 존재의 속성으로 지니신"(E. Bloch) 하나님이다. 우리는 이 하나님을 우리 안이나 우리 위에 가질 수 없고, 처음부터 항상 오직 우리 앞에서만 존재하시는 분으로 생각할 수 있을 따름이다."10) 당신의 마지막 조직신학적인 기여도 '오시는 하나님'을 말하고 있습니다.11) 하지만 생태학적인 위기 앞에서 당신은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사고를 요구하십니다. 당신의 생태학적 창조론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은 더 이상 하나님과 세상의 구분이 아니라 세계 안의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 안의 세계의 임재에 대한 인식입니다.12) 여기서 다음과 같이 질문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오시는 하나님이 어떻게 동시에 우리 안에 계실 수 있습니까? 혹은 세계 안에 계신 하나님이 어떻게 동시에 세계로 오실 수 있습니까?

(2) 당신은 그리스도의 음부 강하와 부활, 기독교의 첫 부활절 노래와 시편 103편 3-4절을 근거로 삼아 논쟁의 여지가 많은 보편구원론 혹은 보편화해론을 주장하시는 듯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음부강하'가 보편구원론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부인합니다. 당신의 주장은 주석적, 교의학적으로 타당한 근거가 있습니까?

(3) 당신은 죽은 자들의 부활을 근거로 하여 산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의 사귐을 믿습니다. 한국교회는 '조상숭배'를 거절한 이유로 유교적 전통과 격렬한 마찰을 빚었을 뿐만 아니라 심한 핍박도 받았습니다. 만약 조상들과의 놀라운 사귐이 가능하다면, 어떻게 살아 있는 자들이 죽은 조상들과 생생한 사귐을 나눌 수 있습니까? 다른 말로 하면, 살아 있는 자들과 죽은 자들이 서로를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1) J. Moltmann, 이신건 옮김, 삼위일체와 하나님의 역사, 대한기독교서회, 1998, 334쪽.
2) J. Moltmann, 이신건 옮김, 희망의 신학, 대한기독교서회, 2002, 353쪽.
3) 같은 책, 354쪽.
4) David (Paul) Yonggi Cho, Born to be Blessed, Seoul Logis Co., Inc, 1993,  116쪽.
5) 같은 책, 117쪽.
6) 같은 책, 120쪽.
7) 같은 책, 121쪽.
8) J. Moltmann, 이신건 옮김, 생명의 샘, 대한기독교서회, 2000, 91쪽.
9) David (Paul) Yonggi Cho, 같은 책, 125쪽.
10) J. Moltmann, 이신건 옮김, 희망의 신학, 대한기독교서회, 2002, 23쪽 이하.
11) J. Moltmann, 김균진 옮김, 오시는 하나님, 대한기독교서회, 1997.
12) J. Moltmann, 김균진 옮김, 창조 안에 계신 하느님, 한국신학연구소, 1987
, 27쪽 이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