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장학사업에 바란다! 

 

 



이신건 목사
(해외장학회보 2010년 기고)



 

지하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물려받은 자산도 많지 않던 우리나라가 짧은 기간 동안 세계 최빈국에서 선진국 수준으로 비약한 까닭은 교육에 대한 투자에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가히 세계 최고의 수준이다. 오히려 지나친 교육열을 걱정할 정도가 되었다. 외국의 지원이 미약한 상태에서 자생적으로 출발한 성결교회가 이만큼 크게 성장한 까닭도 일찍부터 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고 이를 위해 과감히 투자했기 때문이다.

필자가 신학을 공부하던 시절에 외국 유학은 감히 꿈에도 생각해 보지 못한 일이었다. 가끔 외국 유학을 떠나는 선배들이 모든 재산을 털고 심지어 자신의 책과 소품까지 내다팔았다는 소식을 들었던 나는 무척 씁쓸하고 우울했다. 그래서 나는 다른 교단을 기웃거렸고, 다른 교단으로 옮겨 볼까 수차례 고민했다. 삼대에 걸쳐 성결교회에 출석해 온 가문의 전통을 무시하지 못하여 결국 성결교단에 남았지만, 여건이 훨씬 나은 다른 교단이 나로서는 여전히 부러울 수밖에 없었다.

선배들처럼 나도 얼마 안 되는 재산을 모두 털어 독일 유학을 떠났지만, 나의 경제력은 얼마가지 않아 바닥이 나기 시작했다. 나를 지원해주는 교회는 하나도 없었고, 교단도 장학 사업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방학 동안 공장에서 일하기도 했고,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는 한인 교회에 가서 설교자로 봉사하기도 했다. 하루는 멀리 떨어진 지역(뉘른베르크)의 한인 교회에서 설교하고 밤늦게 돌아오고 있었는데, 운전 중에 졸음을 이기지 못해 순간적으로 눈을 감는 사이에 자동차가 길 밖으로 튀어나간 적도 있었다. 만약 작은 자동차(피아트)가 옹벽이나 전신주를 들이받았다면, 가족 전체가 외국에서 졸지에 목숨을 잃었을 뻔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지금도 감사할 따름이다. 

유학 시절에 나는 성결교회에 속한 유학생들이 얼마나 불리하고 힘든 상황에서 공부하는지를 더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한국교회협의회(KNCC)에 속한 다른 교단 출신의 유학생들이 넉넉한 장학금 혜택을 누리며 여유 있게 공부하는 것을 바라 볼 때마다 내 입에서는 한숨과 탄식이 절로 나왔다. 만약 부모가 자식을 부양할 능력이 없다면, 부자 집에서 양식을 꾸어 오거나 도움을 받을 능력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더욱이 다른 교단의 목사들이 독일 교회의 후원을 받아 한인 교회에서 목회하고, 그런 후에는 넉넉한 형편에서 공부까지 하는 모습은 너무나 부러웠다. 지도교수(몰트만)에게 장학금을 알아 봐 달라고 부탁드렸을 때, 한국교회협의회에 속하지 않은 것이 그리도 불리할 줄은 차마 몰랐다. 그 당시에 성결교회는 8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고 있었지만, 외국인들의 눈에 성결교회는 여전히 미지의 교회에 불과할 뿐이었다. 유감스럽게도 지금도 이런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던 중에 갑자기 해외 유학생들에게 소정의 교단 장학금이 전달되기 시작했다. 오랜 가뭄 끝에 맛보는 단비와 같았다. 하루하루를 겨우 연명하던 나에게 한 달의 생활비도 얼마나 크게 보였던지! 물론 한 해에 한 번 받는 장학금은 한 달의 생활비를 겨우 충당할 정도였다. 차라리 이렇게 작은 장학금을 여러 명에게 나눠주기보다는 시급하고 유능한 유학생에게 장학금을 몰아주는 것이 훨씬 더 나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눠먹기 방식이나 생색내기 방식의 장학정책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성도들의 정성 어린 장학금은 정말 교단이 필요로 하는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는 일에 집중되어야 한다는 소신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하지만 첫술에 어찌 배가 부를 수가 있겠는가! 무엇보다 우리교단이 장학 사업을 전개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상징적으로도 의미가 작지 않았다. 지금은 장학금 액수가 훨씬 많아지고, 수혜자도 꽤 늘어난 것으로 안다. 나의 좁은 식견으로는 다른 교단에서는 아직도 교단 차원의 해외 장학사업은 하지 않고 있는 줄로 안다. 이 모든 일에 헌신하셨고 지금도 헌신하고 계시는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지금은 꽤 많은 유학생들이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 교회와 학교를 열심히 섬기고 있다. 이제는 그들이 일할 자리를 걱정할 정도가 되었다. 교회와 교단의 적극적인 후원이 없었더라면, 이처럼 짧은 기간에 이처럼 많은 인재들이 배출되지 못했을 것이다. 성결교단 100주년을 회고하면서, 나는 우리 교단이 자랑할 만한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헤아려보았다. 물론 교회와 성도의 숫자도 엄청나게 늘었고, 사업과 활동도 비약적으로 많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교단에 자랑할 만한 큰 교회와 큰 인물은 여전히 부족한 편이다. 하지만 교단의 슬하에서 성장한 인재들은 다른 교단이 부러워할 정도로 상당히 많아졌다. 그리고 그들의 활약상은 눈부실 정도다.

그러므로 교단의 장학 사업은 더 활기차게 진행되어야 한다. 지식과 정보가 가장 중요한 자산이 되는 사회가 이미 오지 않았는가! 그러므로 교육과 장학은 과거보다 더 중요하고, 더 긴박해졌다. 우리교단이 인재를 많이 배출했다고 벌써부터 자만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여전히 추수할 일꾼을 애타게 부르신다. 땅이 좁은 우리나라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다. 온 세계에 흩어진 교회와 선교지역과 교육기관, 더욱이 계속 밟아야 할 광활한 땅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아직도 인재에 배고프고, 여전히 장학에 목마르다.

더 나아가 교단이 배출한 인재를 무관심하게 방치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계속 지원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도 찾아야 할 것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장학금을 받고 돌아온 인재들의 네트워크를 효과적으로 구축하여, 그들을 통해 더 많은 장학금이 모아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장학금을 받은 분들은 자신들이 받은 금액만을 돌려준다는 안이하고 편협한 사고방식을 버리고, 자신을 키워준 해외장학회의 평생회원으로 적극 헌신해야 한다. 만약 그들이 앞장서서 헌신하지 않는다면, 누가 이 일에 헌신하려고 하겠는가! 장학 사업의 필요와 효과를 그들보다 더 절절히 느끼고 그들보다 더 생생히 고백할 수 있는 자들이 어디 있겠는가? 이들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날로 더 풍성하게 참여함으로써 해외 장학회가 날로 더 발전하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이제 기도 제목이 하나 더 생겨난 것이 부담이 아니라 기쁨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