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아버지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대구 보육정보 2003년 5월호




교육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은 아버지가 없이 자란 아이들은 문제아가 될 가능성이 많다고 보고한다. 물론 독신녀가 아이를 훌륭하게 키운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그 배후에는 더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아무리 자유로운 생활 양식을 주장하는 시대라고 할지라도, 아버지의 위치와 역할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매우 중요한 존재이다. 아버지는 자라나는 자녀들에게 그 누구보다 가장 강력한 영향을 끼친다고 할 수 있다. 위대한 작가 토마스 울프(Thomas Wolfe)도 자신의 생애를 회고하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쓴 적이 있다. "인간의 생명을 깊이 탐구해 들어가면, 결국 인간들은 자기의 아버지를 탐색하고 있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다. 육신을 준 아버지 혹은 어렸을 때의 아버지에 대한 추억 정도가 아니라 '나에게 남겨진 아버지의 이미지'를 우리는 탐색하고 있다. 아버지의 힘과 지혜와 사랑과 사상과 신앙 등이 나에게 가장 중요한 뿌리가 되었다."

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생각은 나이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그래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을 듣게 된다. 4세 때에는 "아빠는 무엇이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7세 때에는 "아버지는 이것도 모를 거야."라고 생각하고, 14세 때에는 "아버지는 가망이 없을 만큼 케케묵었다."고 생각하고, 21세 때에는 "아버지와 같은 구세대는 지나갔다."고 생각하고, 25세 때에는 "아버지는 조금은 안다."고 생각하고, 30세 때에는 "이 일을 아버지는 어떻게 생각할까 알고 싶다."고 생각하고, 35세 때에는 "우리 부부가 결정하기 전에 아버지의 의견을 한번 들어보자."고 생각하고, 50세 때에는 "아버지는 내 나이 때에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셨을까?"고 생각하며, 60세 때에는 "내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이 일만은 꼭 의논하고 싶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비단 나이에 따라서만 달라지겠는가? 문화와 종교, 시대와 성별, 성격과 환경에 따라 아버지에 대한 생각은 분명한 차이를 나타낸다. 특히 생활수단과 종교문화는 지금까지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를 가장 강하게 지배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까마득히 먼 어느 시대에 모계사회가 서서히 끝나고 인간의 생활 방식이 채취로부터 사냥과 수렵, 농업과 목축으로 바뀐 이후로 이런 일에 능한 아버지는 곧 권력과 지배의 상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가정과 사회는 아버지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종교도 가부장 제도를 강화하였다. 즉 하늘의 아버지는 땅의 아버지의 가장 강력한 후견인이 되었고, 군주와 성직자와 가장은 강한 아버지의 이미지를 통해서 합리화되었다. 오랫동안 유교의 영향 아래 살았던 우리에게도 아버지와 군주와 스승은 곧 일체였다. 지난 시절에 우리는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산업화를 거쳐서 정보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오랫동안 가부장 문화 속에서 억압을 받고 길들여오던 여성이 남성의 분야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하였고, 그래서 막강한 아버지의 위치도 서서히 침식되기 시작하였다. 이제는 도리어 어머니가 아버지를 지배하는 역전 현상도 나타나기 시작한다. 과거의 자녀들이 강한 아버지의 이미지에 따라서 힘있는 군주와 군인, 재력가와 권력가가 되기를 소원하였지만, 지금은 강한 어머니 아래서 자라나는 자녀들은 마마보이가 되거나 여성화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더욱이 페미니즘의 거센 조류 앞에서 아버지는 점점 더 무력해질 뿐만 아니라, 때로는 가정에서 소외되거나 실종되는 상황이 빚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머니의 울타리 안에서 자라나는 자녀들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자위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는 어머니도 자기 인생의 실현을 위해 가정과 자녀들을 쉽사리 팽개치는 현상이 점점 더 강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물질적으로 풍부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요즘의 어린이는 정서적, 정신적으로는 도리어 빈곤한 시절을 살아가는 것으로 여겨진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곧장 학원과 유아시설로 내몰리는, 그래서 고아가 아닌 고아로 변해 가는 우리의 자녀들이 불쌍하기 짝이 없다. 그 얼마나 많은 자녀들이 방황하고 절망하며, 심지어는 죽음의 벼랑으로 내몰리는가! 무척 가난했던 시절에도 우리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아이를 잘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것이 인생은 아니다"라고 생각하면서도, 도도한 시류 속에서 어찌할 도리가 없는 오늘의 아버지는 그 어느 때보다 더 큰 무력감을 느낀다.

문명과 생활 양식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특히 오직 돈줄의 역할만을 하도록 강요를 받는 오늘의 아버지는 특히 가정에서 자신의 적절한 위상과 역할을 확립하는 일에 매우 큰 어려움을 느낀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가장 많이 방황하고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사람은 아버지나 어머니가 아니라, 바로 자녀들이다. 이들을 위해 오늘의 아버지는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할까? 필자라고 모든 사람을 시원하게 만족시킬 수 있는 정답을 제시할 능력이 있을 리가 없다. 다만 한 사람의 종교인으로서, 그리고 두 아들의 아버지로서 오늘 우리 시대에, 아니 어느 시대든지 한결같은 아버지의 진정한 역할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간단히 피력해 볼까 한다.

첫째로 아버지는 가정의 울타리가 되어 주어야 한다. 특히 어리고 여린 자녀들을 위해서 아버지는 물질적, 정서적, 정신적 울타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이것은 자녀들을 가두어 놓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이 자립할 때까지 보호하고 미래를 위해 준비해 주기 위함이다. 그리고 울타리가 싸고 있는 마당과 가정 안에서 아버지는 자녀들의 좋은 안내자와 친구가 되어 주어야 한다. 이제 아버지가 어머니와 자녀를 강압적으로 지배하는 시절은 지나갔으며, 자녀를 부모의 욕구실현과 노후보장의 수단으로 사육하는 시대도 지나갔다. 칼릴 지브란의 말대로 자녀들은 부모의 소유가 아니라 자녀들을 쏘는 활이다. 그들이 자유롭게, 그리고 멀리 날아갈 수 있도록 시위를 힘껏 당겨주어야 한다.

둘째로 아버지는 자녀들의 정신적 기초가 되어 주어야 한다. 특히 아버지의 가치관과 인격과 이상은 성장하는 자녀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런 요소는 자녀들이 앞으로 살아갈 인생의 목표와 수단의 든든한 기초가 된다. 만약 아버지가 이런 요소들을 세우는 데 실패한다면, 기초가 튼튼하지 않는 건물이 제 아무리 화려하고 웅장해도 언젠가는 반드시 무너지고 말듯이, 자녀의 성적과 성공도 물거품이나 사상누각(砂上樓閣)처럼 반드시 무너지고 말 것이다. 세상에서는 성공했다는 사람이 도중에, 혹은 말년에 비참하게 추락하는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조기교육의 중요성은 공부에 있기보다는 건전한 가치관과 인격과 이상의 함양에 있다. 공부는 조금 늦어도 향상시킬 수 있지만, 가치관과 인격과 이상의 형성은 늦을수록 점점 더 어려워진다.

셋째로 아버지는 자녀들이 인생을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하며, 자녀들의 바람직한 진로와 이를 달성하는 효과적인 방법을 제시해 주도록 노력해야 한다. 가치와 인격과 이상의 형성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기본적인 생존과 보람있는 생활을 위해서도 아버지는 자주 자녀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학교와 사회가 이런 일을 잘 해 줄 것이라고 소박하게 기대하면서, 자녀들을 아무렇게 방치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렇지만 아버지가 자녀들의 인생에 지나치게 개입하거나 그들의 인생을 일방적으로 주도해서도 안 될 것이며, 자녀들을 사랑한다는 그럴 듯한 명분으로 자녀들을 지나치게 보호하려고 해서도 안 될 것이다. 탈무드의 교훈대로 자녀들에게 고기를 잡아주기보다는 그들에게 낚싯대를 주고 직접 낚시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더 지혜로운 일이다.

"나는 좋은 아버지인가?"를 알려면, 다음의 문항에 답을 달아보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각 문항마다 10점을 만점으로 채점하여, 합계가 80점 이상이 되면 훌륭한 아버지이고, 70점 정도가 되면 그나마 괜찮은 아버지이고, 60점 정도가 되면 많이 반성해야 할 아버지이며, 50점 정도가 되면 심각하게 반성해야 할 아버지이다. 만약 그 이하가 된다면, 아버지 자격은 전혀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1) 자녀들에게 행동과 말의 좋은 본을 보이고 있는가?

2) 매일 30분 이상 자녀들의 활동에 참여하거나, 함께 놀거나, 대화하는가?

3) 자녀들에게 물질적 가치보다 정신적 가치가 더 중요함을 가르치는가?

4) 자녀들에게 안정감을 느끼게 해주며, 그들이 사랑을 받고 있다는 분위기를 조성해 주는가?

5) 자녀들에게 '좋다'와 '나쁘다'를 양심적으로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는가?

6) 자녀들이 지역사회의 협동생활에 적극적으로 참가하도록 권장하는가?

7) 자녀들이 집안 일을 분담하는 책임있는 가족이 되도록 가르치는가?

8) 자녀들의 친구, 학교생활, 취미활동 등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9) 자녀들에게 신임을 받고 있다고 확신하는가?

10) 자녀들의 걱정과 고민을 늘 파악하고 있으며, 이 문제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