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그리스도와 율법

 마 5:17-18

2003년 10월 22일, 현풍제일교회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구약성서 39권은 역사와 율법, 문학과 예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에서 예수가 '율법과 선지자'라고 말한 것은 구약성서에서 이 두 가지만을 특별히 좋아했다거나 이 두 가지를 가장 중요한 것을 보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 당시 '율법과 선지자'는 일반적으로 구약성서 전체를 일컫는 말이었다. 하지만 곧 이어서 예수는 선지자를 생략하고 율법만을 말한다. 이로써 예수는 다시금 율법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율법'은 구약성서의 하나님의 모든 계시를 나타내는 포괄적인 용어였다. 그러므로 오늘의 본문에서 예수는 구약성서와 자신의 관계 혹은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의 관계를 가르친다고 할 수 있다.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의 관계는 신학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되어 왔다. 유대인은 구약성서만을 믿고, 그리스도인은 구약성서와 함께 신약성서도 믿는다. 이로써 우리는 유대인과 갈라진 셈이다. 하지만 신약성서는 시대적으로나 내용적으로 구약성서를 이미 전제하고 있다. 그러므로 만약 구약성서를 빼버린다면, 신약성서도 온전히 이해될 수 없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구약성서의 전체나 일부를 빼버리곤 했다. 왜냐하면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의 내용은 많은 점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구약성서의 하나님은 악한 하나님이고, 신약성서의 하나님만이 선한 하나님, 참 하나님이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구약성서의 가르침은 너무나 율법적이고 이스라엘 중심적(국수주의적)이고, 반윤리적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구약성서의 많은 내용들은 신약성서와는 종종 모순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신약성서는 원수 사랑을 가르치지만, 구약성서는 원수 보복을 가르친다. 신약성서는 은혜를 강조하지만, 구약성서는 율법을 강조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가 구약성서를 폐기하려기 위해 왔다고 생각하였다.  

이런 잘못을 미리 방지하려는 듯이, 예수는 오늘의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구약성서를 폐하려고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려고 왔다." 예수는 어릴 적부터 구약성서의 가르침을 배워왔다. 예수는 구약성서를 원칙적으로 긍정하였다. 예수는 구약성서의 가르침을 긍정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성취하였다. 예수는 하나님에게 보냄을 받은 자로서 구약성서의 가르침을 완전하게 풀이하였다. 하지만 예수는 단지 구약성서의 가르침을 반복하지 않았다. 그리고 구약성서를 단지 완전히 풀이하지만 않았다. 예수는 구약성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성취하였다. 즉 예수는 구약성서가 말하는 내용을 온전히 이루었다. 즉 예수는 자신의 삶과 행위를 통해 구약성서를 온전히 성취하였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가르치기만 하고 그것을 행하지 않았지만, 예수는 율법을 실천하였으며, 자신의 운명을 통해 구약성서에 드러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였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한다."라는 말은 무슨 말인가?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히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율법의 단 하나도 없어질 수 없고, 또 없어져서도 안 된다는 말이다. 천지가 없어질 때까지, 즉 하나님의 나라가 성취될 때까지 율법의 모든 요구를 지켜야 한다는 말이다. 이 말은 그 당시 유대인들의 잘못된 관행을 비판하고 있다. 그 당시의 유대인들은 어떤 율법은 더 가볍게 만들었고, 어떤 율법은 더 엄중하게 만들었다. 어떤 율법은 완화하였고, 어떤 율법은 강화하였다. 하지만 예수는 모든 율법을 실천해야 한다고 하였다. 오직 그런 자만이 하나님 나라의 약속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하였다.

예수 당시에 율법은 248개의 명령과 365개의 금령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더욱이 그 당시의 서기관들은 율법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해 수천 개의 규례를 만들어 내었다. 과연 누가 그 많은 율법과 규례를 일일이 다 기억하고, 또 지킬 수 있겠는가? 실로 예수는 종종 율법과 규례를 공공연히 공격하였을 뿐만 아니라, 공공연히 어기지 않았는가! 예수는 안식일에 배고픈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먹는 것을 허용했으며,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 주지 않았는가! 예수는 손을 씻고 음식을 먹어야 하는 습관도 어기지 않았는가! 그 당시에 이런 행위들은 율법에 의해 엄격히 금지된 것들이었다. 그렇다면 예수가 율법을 폐하려 오지 않았다는 말은 사실과 다르지 않은가? 그렇다면 예수는 거짓말을 일삼는 거짓 교사인가? 예수는 자신도 질 수 없는 무거운 짐을 우리에게 지우는 비겁한 스승인가?  

실로 어떤 의미에서는 분명히 예수는 율법을 폐기하였다고 할 수 있다. 예수는 자신의 희생적인 죽음을 통해 구약성서의 희생제사를 폐기하였다. 그런 점에서 예수는 율법의 마침이라고 할 수 있다(롬 10:4). 하지만 예수는 율법의 마침일 뿐만 아니라 율법의 완성이기도 하다. 즉 예수는 율법을 성취함으로써, 율법을 폐기하였다. 예수는 율법을 완성함으로써 율법을 해체하였고, 율법을 해체함으로써 율법을 완성하였다(라가츠). 예수 안에서 구약성서의 모든 가르침, 율법의 근본 정신은 완성되었다. 그러므로 예수가 가르치고 몸소 실천한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사람은 이미 율법을 실현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율법의 근본 정신은 하나님 사랑과 인간 사랑으로 요약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바울의 말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롬 13:10)은 예수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한다. 어거스틴의 다음과 같은 말도 예수의 가르침과 일치한다. "사랑하라. 그리고 당신 마음대로 행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