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화내고 욕하지 말라

 마 5:21-26

2003년 11월 12일, 현풍제일교회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앞에서 예수는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하였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란 하나님의 계명을 멋대로 가감하지 않고 온전히 지키는 것, 하나님의 계명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실천하는 것, 그리고 행위로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철저히 순종하는 것이다. 이제 예수는 분노와 간음과 맹세와 보복과 원수사랑을 예로 들어서, 제자들이 어떻게 '더 나은 의'를 실천할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구약성경의 제6계명은 "살인하지 말라"(출 20:15, 신 5:17)고 명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영화와 존귀의 관을 씌우셨다(시 8:5). 사람의 생명은 천하보다 더 귀하다. 더욱이 사람의 생명은 오직 하나님만이 주관하신다. 그러므로 사람의 생명을 죽이는 것은 하나님의 권한을 침범하는 일이다. 생명의 처분 권한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속해 있다. 그러므로 실수로 남을 죽인 자는 도피성 안에서 보호받을 순 있지만, 고의로 남을 죽인 자는 하나님의 제단에서라도 잡아내려 죽여야 한다(출 21:14). 하나님이 명하신 거룩한 전쟁에 의한 살인과 죽을 죄(우상숭배의 죄, 하나님 혹은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거나 저주하는 죄, 고의로 사람을 죽인 죄, 부모를 저주하거나 불순종하는 죄, 간음죄, 사람을 유괴한 죄)를 범한 사람에게 내려지는 사형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

하지만 예수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노하지 말라"고 명한다. 형제에게 화를 내고 욕설을 한 사람도 중한 심판을 받는다. 정당한 분노, 거룩한 분노는 허락되는가? 본문은 이에 대해 분명히 말하지는 않는다. 루터는 사람에게는 호의적이어야 하지만 죄에 대해서는 분노를 품어야 한다고 말한다. 루터는 이를 '사랑의 분노'라고 불렀다. 그러므로 예수가 금한 것은 의로운 분노, 사랑의 분노가 아니라 교만과 허영과 미움과 악의와 복수심에서 나오는 분노라는 것이다. 하지만 본회퍼는 의로운 분노와 불의한 분노를 구별할 수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모든 분노는 형제의 생명을 노리기 때문이다. 여하튼 성경은 우리에게 화를 낼 권리를 주지 않는다. 야고보는 "화를 내는 사람은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없으므로 듣기는 빨리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라"고 말하며(1:19-20), 바울은 "사랑은 성을 내지 않는다"(고전 13:5)고 말한다.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된다. 어떤 학자에 의하면 '라가'는 아람어로서 지능적 결함에 대한 경멸(바보, 깡통머리)을 뜻하고, 미련한 놈은 마음과 성격에 대한 경멸(윤리적 결핍)을 뜻한다. 또 어떤 학자에 의하면 '라가'는 이웃 관계를 맺지 못하는 자를 경멸하는 욕이고, 미련한 놈은 하나님과 관계 맺지 못하는 불신자를 가리킨다. 또 어떤 학자(본회퍼)에 의하면 '라가'는 무의식 중에서 내뱉은 욕설을 뜻하고, 미련한 놈은 의식적으로 내뱉은 욕설을 뜻한다

중요한 것은 예수는 분노를 살인만큼 무거운 죄로 여긴다는 사실이다. 왜 그런가? 단지 마음의 작은 분노가 언젠가는 형제를 죽이는 끔직한 대형 살인죄로 발전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작은 말 한마디도 형제를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형제에게 욕설하는 것은 욕설에 상처를 입고 죽으라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의식적인 욕설은 사회에서 형제의 명예를 박탈한다. 형제에게 노하고 욕하고 공공연하게 헐뜯고 멸시하는 사람은 곧 살인자요, 그래서 그는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사람이요, 그래서 반드시 심판을 받고야 만다(본회퍼).

형제와 불화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그래서 예수는 "제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말한다. 예배보다 이웃과의 관계가 앞선다. 이웃과의 화해가 하나님과의 화해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웃 관계를 잘 맺으면, 예배는 드릴 필요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만약 이웃과 올바른 관계를 맺지 않는다면, 하나님도 올바르게 예배할 수 없다는 말이다. 만약 인간 관계가 깨끗이 해결되지 않았다면, 하나님과의 관계도 깨끗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기 전에 먼저 이웃에게 가서 그와 화해하라"고 명한다.

당시의 관습에서 볼 때, 예수의 이런 가르침은 상당히 파격적이다. 바리새인의 생각에 의하면 이웃 문제로 제사가 중단되는 일은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예수는 정반대로 가르친다. 형제와의 불화는 예배를 무효로 만든다. 만약 형제가 나에게 원한을 품고 있다면, 나와 하나님의 사이에는 담이 가로막혀 있다. 형제가 멸시를 당할 때, 하나님은 찬양을 받기를 원하시지 않는다(본회퍼). 그러므로 먼저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하나님에게 예배를 드려야 한다. 형제에게 고소를 당하여 감옥에 들어가기 전에, 빨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기 전에 형제에게 진 빚을 갚아야 한다. 너무 늦기 전에 이웃과 화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