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맹세하지 말라

마 5:33-37

2003년 12월 17일, 현풍제일교회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찌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

 

옛날부터 사람들은 서약할 때에 자주 맹세를 했다. 오늘날의 사람들에게도 그러하지만, 옛 사람들에게도 맹세는 아주 큰 역할을 했다. 맹세란 무엇인가? 맹세는 약속과 달리 자신을 주장할 때에 더 높은 권세의 이름을 끌어들이는 행위를 말한다. 대개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맹세를 하곤 했다. "만약 내가 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것이다." "만약 내가 계약을 어기면, 하나님이 보복하실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도 종종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였음을 알 수 있다. 다만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를 하는 행위는 엄한 비판을 받았다.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레 19:12).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출 20:7)에 따라 가급적 하나님의 이름을 직접 부르지 않고, 그 이름을 다른 것으로 대체해서 맹세를 하였고, 그렇게 한 맹세는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유대인들이 무엇에 걸고 맹세하였는지는 마태복음 23장 16-22절에 잘 나타난다. "화 있을찐저, 소경된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우맹이요,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금이냐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너희가 또 이르되 누구든지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그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하면 지킬찌라 하는도다.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예물이냐?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그러므로 제단으로 맹세하는 자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 맹세함이요, 또 성전으로 맹세하는 자는 성전과 그 안에 계신 이로 맹세함이요, 또 하늘로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로 맹세함이니라." 여기서 유대인들은 성전이나 제단 혹은 성전의 금이나 제단의 예물로 맹세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성전이나 제단으로 맹세한 것은 지키지 않아도 상관이 없고, 성전의 금이나 제단의 예물로 맹세하는 것은 지켜야 한다는 유대인의 생각은 궤변처럼 들린다. 그래서 예수는 이와 같이 어처구니가 없는 궤변을 통박하고 있다.

하지만 예수가 유대인들과 다른 점은 잘못된 맹세 관행을 비판하고 올바른 맹세의 방법을 가르친 사실에 있지 않고,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는 요구에 있다. 그런 점에서 예수의 요구는 유일하고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절대적인 맹세 금지에 관한 말에 이어 예수는 맹세를 걸지 말아야 할 세 가지 대상을 구체적으로 예로 든다. 하늘과 땅과 예루살렘은 유대인들이 맹세할 때에 하나님의 이름을 피하기 위해서 자주 애용하는 어투들이었다. 그러한 대상으로도 맹세하지 말라는 말은 구약성서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하늘과 땅에 맹세하는 것은 이사야 66장 1절을 근거로 거부되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을꼬?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그리고 예루살렘에 맹세하는 것은 시편을 근거로 거부되었다. "여호와께서 만민을 우리에게, 열방을 우리 발 아래 복종케 하시며"(시 47:3).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이고, 땅은 하나님의 발등상이다. 예루살렘은 큰 임금, 곧 하나님의 성읍이다. 이러한 맹세의 대상들은 모두 하나님의 이름을 둘러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과 관련을 맺게 된다. 만약 사람이 맹세로 자신을 하나님과 관련시킨다면, 하나님의 권한을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것처럼 끌어내리는 셈이 된다. 또 만약 맹세를 지키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위엄을 손상시키게 되는 셈이다. 더욱이 예수는 머리에 맹세하는 것도 금지하였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기의 머리색조차도 변하게 할 수 없는 무능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은 자신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록 자신의 머리에 맹세하더라도, 인간은 하나님의 통치와 창조능력에 의존해 있기 때문이다. 모든 맹세는 하나님의 권능을 인간의 조작 대상으로 끌어내리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직접 끌어들이지 않는 서약도 모두가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한다.

모든 맹세를 금한 예수는 인간의 진실성을 요구한다.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해야 한다. 인간 안에 두 종류의 진리는 없다. 진실한 말과 그렇지 않은 말 사이를 구별해서 사용하는 일은 철폐되어야 한다. 더욱이 자신의 진실성을 입증하기 위해 다른 존재를 불러들일 필요가 없다. 사람을 속일 마음이 없다면, 애당초 맹세는 불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죄인이나 거짓말쟁이는 대개 거짓을 은폐하기 위해 장황한 말로 맹세한다. 오늘의 본문에서도 예수는 맹세 속에 숨어 있는 속임을 폭로한다. 더욱이 인간은 자신의 미래를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하며, 맹세를 한 상대방의 미래도 전혀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예수의 제자들은 맹세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예수의 제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투명하게 살아가고 있다. 죄악과 진실은 하나님 앞에서 숨겨질 수 없으므로 예수의 제자들은 전적으로 진실해야 한다. 제자의 길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솔직하게 사는 것을 뜻한다(본회퍼).

우리 나라 사람들도 맹세하는 일에 익숙하다. "하늘이 두 쪽이 나도 ... 하겠다." 만약 ... 하지 못하면 성을 갈겠다. 손에 장을 지지겠다. 배를 가르겠다" 등, 하늘과  조상과 신체를 걸고 맹세를 하곤 한다. 이것은 우리 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거짓말과 거짓 맹세에 능한지를 거꾸로 증명한다. 동양인들이 서양인들에 비해 거짓말과 거짓 맹세를 더 잘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서양인들이 거짓을 매우 미워하고 정직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관행에는 기독교가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본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얼마나 진실하고 정직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