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이름이 거룩하게 하소서

 마 6:9

  2004년 2월 11일, 현풍제일교회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주기도문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부른 후, 먼저 하나님을 향해 청원을 올린다. 이 청원은 세 가지로 표현된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6:9-10).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올바른 기도는 우리의 소원을 드리기 전에 하나님의 거룩하심,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뜻을 위해 기도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올바른 기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구한다. 예수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고 하였다. 십계명도 사람이 동료 피조물에게 해야 할 일을 말하기 전에 하나님에게 해야 할 일을 먼저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의 소원보다는 우리의 소원을 먼저 성취하려고 애쓰는가? 그리고 기도할 때,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의 소망보다는 우리의 소망부터 먼저 들어달라고 조르는가?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의 일에 먼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 즉 하나님의 이름의 거룩함,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고 완성될 것을 먼저 간청해야 한다. 바로 그리함으로써, 하나님의 일이 동시에 우리의 일이 되기를 간청해야 한다. 먼저 주기도문의 첫 번째 청원,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기도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알아보자.    

 (1)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나님의 이름은 곧 하나님 자신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이름은 단순히 하나님 자신과 동일하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을 나타낸다. 옛날 사람들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이름은 뗄 수 없는 관계를 갖는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의 이름 속에 하나님의 능력과 성품이 함께 들어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기를 바라는 기도는 하나님 자신이 거룩하기를 바라는 기도와 같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다면, 하나님 자신도 거룩하시다. 이사야가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났을 때, "거룩하다"라는 말을 세 차례 외쳤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그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압도되었다. 그는 하나님의 거룩하심 때문에 벌벌 떨었다. '거룩'을 뜻하는 히브리어 '카도쉬'는 '분리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은 이 세상과 세속과는 완전히 분리되어 계신다. 하나님은 이 세계를 완전히 초월해 계신다. 하나님은 우리와 절대로 다르시다. 하나님은 너무나 크시고 높으시고 두려우신 분이다. 그러므로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고, 경외해야 한다.

 (2)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나님은 피조물에 의해 거룩하게 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스스로 거룩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조금도 가감할 수 없다. 우리가 거룩하지 않은 하나님을 비로소 거룩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홀로 거룩하시고, 홀로 위엄에 넘치시고, 홀로 영광으로 가득하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이름, 즉 하나님이 거룩하게 되기를 위해 기도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은 하늘에서는 거룩하지만, 이 땅에서는 아직 거룩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는' 거룩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키프리안).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기를 비는 기도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제3계명과 맞닿아 있다.

망령(妄靈)이라는 말은 '늙거나 정신이 흐려서 언행이 정상이 아닌 상태'를 말한다. 영어 성경은 대개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고 번역하고 있다. '망령되이'라는 히브리어 '샤베는 '헛되다','비었다', '가치가 없다', '거짓되다'는 뜻을 갖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말은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게, 거짓되게, 거짓된 목적을 위해 부르지 말라"는 뜻을 갖는다. 그래서 루터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말을 "하나님의 이름을 오용하지 말라"고 번역하면서,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하나님의 이름은 오용으로 말미암아 더럽혀질 수 있다. 하나님의 이름은 주문, 속임, 맹세, 저주를 위해 오용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은 거룩한 교만을 통해서도 더럽혀질 수 있다. 스스로 의롭고 거룩하고 진실하다고 자랑함으로써, 하나님의 이름을 도용해서는 안 된다.

 (3) 다른 한편으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기도는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이 세상과 삶 속에서 세워지길 바란다. 이 기도는 이방인들에 의해 더럽혀진 하나님의 이름을 다시 거룩하게 하기 위해 하나님이 친히 역사 속으로 개입하실 것을 바란다. 그래서 에스겔은 약속된 미래에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영광스럽고 거룩하게 입증하시기를 기대한다. "열국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은 이름, 곧 너희가 그들 중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로 인하여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열국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너희를 열국 중에서 취하여 내고, 열국 중에서 모아 데리고 고토에 들어가서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겔 36:23-27).

이 기도를 통해 예수와 초대교회는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공의가 승리할 것을 믿고 기대했다. 그렇지만 이 기도는 단지 종말에 가서야만 비로소 하나님의 공의가 승리할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가 지금도 경험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하나님이 거룩하시듯이, 이 기도를 드리는 자들도 거룩하게 되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 11:45)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거룩하다'는 말은 또한 '하나님에게 바쳐졌다', '하나님에게 속한다'는 뜻도 갖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 바쳐진 사람,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 즉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아야 한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기도하는 사람은 사고와 행동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려고 노력해야 한다(슈트렉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