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마 6:10

2004년 3월 3일, 현풍제일교회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주기도문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부른 후, 사람을 위한 청원을 올리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위해 청원을 올린다. 이 청원은 이미 설명한 대로 세 가지로 표현된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6:9-10). 비록 이 세 가지 청원이 서로 다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용적으로는 서로 관련되어 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해진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나라가 온다는 뜻이요, 하나님의 나라가 온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거꾸로도 마찬가지다. 만약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온다. 그리고 만약 하나님의 나라가 온다면, 하나님의 이름도 거룩해진다. 그러므로 이 세 가지 청원은 결국 같은 목적을 바라본다. 다만 누가복음에는 두 가지 청원, 즉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해지기를 비는 청원과 하나님의 나라가 오기를 비는 청원만 있는 반면,  마태복음에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비는 청원이 더 나타날 따름이다. 마태복음은 하나님의 뜻'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보인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청원하는 기도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가?     

(1) 바리새인과 서기관보다 '더 나은 의'를 행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것처럼(5:20),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만이 들어갈 수 있다"(7:20-21).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와 자매와 모친이 될 수 있다"(12:50). 이처럼 예수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기를 원한다. 단지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거나, 마음으로만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기를 바란다. 생활의 열매를 맺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것은 공로에 의한 구원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주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기도문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이 친히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해 주소서"라고 기도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자가 하나님이듯이, 하나님의 나라가 오게 하는 자가 하나님이듯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는 자도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뜻은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만 실현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도 없고, 더욱이 실현할 수도 없다. 우리는 마음까지 속속들이 부패한 죄인이요, 하나님의 뜻을 철저히 거스르는 교만한 피조물이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다시금 우리의 무력함을 토로하고 하나님의 개입과 도움을 바란다.     

 (2) 바울은 편지를 통해 로마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려고 애썼고,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도록 충고하였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12:2). 그렇다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은 무엇인가? 바울은 로마서 12장에서 16장까지 그리스도인의 생활 규범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12:10-13).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13:1). "믿음이 연약한 자가 의심하는 것을 비판하지 말라, 서로 판단하지 말라"(롬 14:1,13). "이웃을 기쁘게 하고,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라"(15:2). 바울의 윤리적 교훈의 핵심은 한 마디로 사랑으로 요약된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13:10). 산을 옮길 만한 온전한 믿음을 가졌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다면 아무 것도 아니다(고전 13:2).

 바울의 생각은 예수의 생각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것이다. 예수는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이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 22:37-39). 신앙은 사랑의 열매를 보아 안다(마 7:1-6). 사랑은 신앙의 반석이다(마 7:24-25), 사랑은 율법과 예언서의 핵심이다(마 22:34-35), 사랑은 마지막 심판의 표준, 즉 신앙을 인식하는 근거가 된다(마 22:34-35). 예수의 아버지가 되신 하나님, 그래서 우리에게도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을 사랑으로 보살피시는 자비로우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특히 작고 약한 자들을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두루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게 하신다(마 5:45).

 (3)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청하는 예수는 우리를 향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고 명한다.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처럼 원수까지 사랑하고, 특히 약하고 작은 자에게 자비를 실천하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혹은 "하나님이 친히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주소서"라고 기도하는 자는 자신의 의지를 하나님의 뜻에 수동적으로 내맡기는 사람이 아니다. 물론 자신의 뜻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는 태도는 참으로 아름답고 고귀하며, 그 자체로서 하나님의 귀한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기도는 우리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적응시키려는 적극적인 자세를 갖게 한다. 하늘의 천사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처럼, 우리도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기를 원한다. 하늘의 천사들은 하나님의 뜻을 즐거움으로 수행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애호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기쁘게 듣는다.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것이 그들의 음식이며, 그들의 최상의 영광과 기쁨이다. 그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실행한다. 그들처럼 우리도 우리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을 통해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실천하기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요한 웨슬리).

 "하늘에서와 같이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라고 기도할 것을 가르친 예수는 친히 삶으로 모범을 보여 주었다. 예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왔으며(요 6:38),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실천하는 것을 양식으로 삼았다(요 4:34).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예수는 세상의 모든 영광과 목숨까지도 초개(草芥)처럼 버렸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로마 군인에게 잡히기 전날 밤에 예수는 다음과 같이 기도했다. "내 원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소서"(눅 22:42). 그리고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었다"(요 19:3)고 외쳤다. 우리도 예수처럼 살다 죽으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