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

 마 6:11

2004년 3월 10일, 현풍제일교회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주기도문에는 먼저 나오는 세 가지 청원을 사람들은 '당신-청원'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이 세 가지 청원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위해 하나님을 부르며 기도하는 청원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는 사람을 위해 비는 네 가지 청원이 나오는데, 이를 사람들은 '우리-청원'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이 네 가지 청원은 바로 우리의 소원을 위해 기도하는 청원이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는 그 중에서 첫 번째 청원인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를 만나게 된다.  

(1) 앞의 세 가지 청원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기도였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오게 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는 기도는 성도가 무엇보다 먼저 구해야 할 우선적인 기도, 가장 고상하고 거룩하고 위대한 기도라고 할 수 있다. 설령 우리가 이 세 가지 기도로 기도를 끝맺는다고 하더라도, 전혀 부족함이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광은 하늘에서만 빛나지 않고 땅을 환하게 비추기 때문이요, 하나님의 영광은 인간의 행복과 구원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오로지 하나님만이 홀로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홀로 독점하기를 원치 않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영광 안에는 피조물을 위한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쓸 것을 위해 일일이 기도하지 않아도 된다. 하나님은 자녀들의 쓸 것을 위해 미리 배려하신다.

그렇다고 우리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위해 기도할 필요가 없다는 말은 아니며, 더욱이 필요한 것을 위해 노동하고 수고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말은 아니다. 노동은 죄의 결과가 아니며, 더욱이 저주도 아니다. 땀흘려 일할 때에 우리는 사는 보람을 느끼며, 열심히 일할 때에 우리는 많은 소득을 올릴 수 있다. 하지만 비록 우리가 이 땅에서 땀흘려 노동하여 많은 것들을 거두었다고 하더라도,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생명과 그리고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이 하나님에게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깨닫고 항상 감사해야 하며, 언제나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것들을 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2) 사람들은 '오늘 일용할 양식'이라는 말을 여러 가지 뜻으로 이해해 왔다. '오늘의 양식' 혹은 '내일의 양식' 혹은 '영원한 양식' 혹은 '생존을 위해 필요한 양식' 등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의 말씀' 혹은 '성만찬'으로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체적으로 사람들은 일용할 양식을 '당장 필요한 양식'으로 이해한다. 만약 아침에 이 기도를 한다면, 일용할 양식은 '오늘의 양식'을 뜻하고, 만약 저녁에 기도한다면, 일용할 양식은 '내일의 양식'을 뜻한다. 좌우간 이 기도는 '하루를 위한 양식'을 위해 기도한다. 이 기도는 출애굽기 16장의 만나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그날그날 필요한 양식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서 먹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두었다. 하지만 일용할 양식은 단지 음식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대표한다. 이 기도는 인간이 이 땅에서 필요한 모든 것들을 위해 비는 기도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루터는 음식과 건강한 몸과 좋은 날씨와 집과 가정과 아내와 자녀들과 좋은 정부와 평화와 이 세상의 유지를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였다.   

 (3)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라고 비는 기도는 두 가지 욕망을 제한한다. 첫째로 이 기도는 이기적인 욕망을 제한한다. 즉 이 기도는 나와 나의 가정 혹은 나의 나라에 필요한 것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류, 즉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위해 기도한다. 실로 하나님은 하늘의 새를 위해 먹을 것을 예비하셨고, 들의 백합화를 위해 입을 것을 예비하셨다. 그리고 모든 생명을 위해 양식을 배려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다. 한쪽에서는 배가 불러 죽고, 다른 쪽에서는 배가 고파 죽는다. 한쪽에서는 살을 빼려고 안달하고, 다른 쪽에서는 먹지 못해 아우성이다. 왜 그런가? 양식이 한쪽으로 편중되었기 때문이다. 사랑이 아니라 욕심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잘 살면 잘 살수록 오히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날로 커져간다. 잘 사는 사람들은 더 잘 살려고 허덕이며, 못 사는 사람들의 몫을 빼앗아간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임을 깨닫고, 서로 나누며 살아야 한다. 하늘을 혼자 차지할 수 없듯이, 밥도 혼자 차지해서는 안 된다.

둘째로 이 기도는 축적하려는 욕망을 제한한다. 이 기도는 '그날의 양식'만을 위해 기도할 것을 명령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주시는 것은 매일의 필요를 채우기 위함이지, 내일을 위해 축적하기 위함이 아니다. 광야에서 많이 거둔 만나는 그 다음 날이 되자 모두 썩어 버렸다. 축적은 축적한 것들을 무용하게 만들뿐만 아니라, 인간의 영혼을 썩게 만든다. 한쪽은 한 끼조차 먹지 못해 굶주리는데, 다른 한쪽은 평생 먹을 양식을 쌓아놓고 인생을 즐기려 한다. 하지만 하나님이 지켜주시지 않으면, 생명과 축적은 덧없는 것으로 변한다. 더욱이 과도한 축적을 하는 동안 인간의 영혼은 얼마나 부패해지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잠언 기자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잠 30:8-9).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라고 비는 기도는 인간의 탐욕을 제한하고, 물질의 양을 제한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모든 염려를 우리를 위해 염려하시는 하나님에게 맡기도록 인도한다. 우리는 매일 매일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의지하며 산다는 것을 고백해야 하며, 하나님 앞에서 가난한 자로서, 하루 손으로 벌어서 입으로 먹는 자로서 하나님의 손에 의지하여 산다는 것을 고백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라는 것을 고백하며 감사해야 하며, 또한 생명을 주시고 지켜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