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겸손하게 금식하라

마 6:16-18

2004년 5월 19일, 현풍제일교회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저희는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1) 요즘 사람들은 건강 관리를 위해 금식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지만, 원래 금식은 종교적인 수행의 중요한 한 요소였다. 불교와 힌두교, 회교를 믿는 신자들만이 아니라 요가를 수행하는 자들도 종종 금식한다. 유대인들도 이레 두 번씩, 월요일과 목요일에 정기적으로 금식하였다. 누가복음 18장 12절을 보면, 어떤 바리새인이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하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처럼 금식은 기도와 구제와 함께 유대 사회에서 적극적으로 권장되고 칭찬을 받는 경건 생활의 하나였다. 세례 요한과 그의 제자들도 규칙적으로 자주 금식하였다.

하지만 예수는 규칙적으로 금식하지 않았다. 그래서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에게 나아와 금식하지 않은 이유를 묻는 장면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이 질문에 대해 예수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뇨?"(마 9:14-15). 잔치 때에 일부러 굶는 사람이 없듯이, 하나님의 나라가 다가왔으니, 금식하고 슬퍼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아니 잔치 날에는 배부르게 먹듯이, 하나님의 나라가 다가 왔으니, 오히려 먹고 마시기를 즐겨야 한다는 말이다. 실로 예수는 금식하기보다 먹고 마시기를 즐겨했다.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마 11:19).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예수를 '파티광'이라고까지 표현했다.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금욕적인 종교가 아니라 축제적인 종교이다.  

그렇다면 예수는 금식을 전혀 하지 않았거나 금식을 완전히 폐지했는가? 아니다. "잔치 날에 금식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 예수는 바로 이어서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마 9:15)고 말했다. 슬픔의 때가 오면, 마땅히 금식해야 한다는 말이다. 사실 마음이 슬프면, 일부러 음식을 먹지 않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입맛이 떨어져서 음식을 멀리하게 된다. 하지만 예수는 단지 슬플 때에만 금식한 것은 아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 금식했으며, 여러 가지 이유로 종종 금식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도 금식은 분명히 권장할 만한 일이다.

 (2) 그렇다면 금식의 목적 혹은 금식의 유익은 무엇인가? 성경에는 금식을 행하는 이유와 상황을 여러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회개할 때에 겸손의 표현으로 금식하였음을 알 수 있다(느 9:1-2, 욘 3:5). 하나님의 인도와 자비를 빌 때에도 사람들은 금식하며 기도하였다(출 24:18, 에 4:16, 마 4:1-2). 사람들은 육체의 방종을 다스리기 위해, 즉 자기 훈련을 위해 금식하였다(고전 9:24-27). 그리고 사람들은 절제와 나눔을 위해 금식하였다(욥 31:16). 이처럼 금식은 여러모로 유익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자주 금식 훈련을 할 필요가 있다. 매일 금식하지 못하더라도, 한 주에 한 번(금요일) 혹은 한 달에 한 번, 아니면 고난 주간 동안 단 하루라도 금식해 보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육체적 건강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영혼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금식은 가끔 실천할 필요가 있다. 배부른 육체는 기도하기를 좋아하지 않으며, 주기적인 봉사에 흥미를 가지지 않는다. 활동 의욕이 없어지고 침체하며, 남의 생활과 허물에 대한 책임과 하나님에 대한 기쁨이 감소하고 기도할 힘이 없을 때, 금식과 기도로 자기 육체에 제한을 가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본회퍼).  

 (3) 하지만 기도와 구제처럼 금식도 남에게 보이기 위해, 혹은 자기 자랑을 위해 행해져서는 안 된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구제하거나 기도하지 말라"고 경고한 적이 있는 예수는 여기서도 "사람에게 보이려고 금식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저희는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여기서 예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영광을 위해 금식 행위를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엄격하게 경고한다. 유대인들, 특히 바리새인들은 금식을 할 때에 슬픈 기색을 보이고 얼굴을 흉하게 하였다. 그들은 창백하고 힘없이 보임으로써, 혹은 머리를 베로 덮거나 얼굴에 재를 바름으로써 금식한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렸다. 하지만 이로써 그들은 바로 자기의 상을 이미 받았다. 즉 그들은 대중의 칭찬을 받음으로써, 은밀한 가운데서 지켜보시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상을 잃게 되었다.

이러한 외식 행위에 대해  엄중히 경고한 예수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고 명하였다. 이 말은 "화려하게 꾸미고 금식하라"는 말이 아니다. 만약 그렇게 오해한다면, 이 말은 마치 금욕을 빌미로 사치를 조장하는 말이 된다. 만약 그렇게 되면, 칼빈의 말대로 외식을 물리치기 위해 다른 외식을 불러들이는 셈이 된다. 이 말은 "남들이 금식하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평소처럼 단정하고 깨끗한 모습을 보여라"는 뜻을 지닌다. 이 말은 본회퍼의 말대로 겸손을 위한 자발적인 훈련에서도 철두철미 겸손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허영과 명성을 위해, 사람들의 칭찬과 보상을 바라고 금식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외식을 싫어하시고 진실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은밀하게 금식하는 자에게는 은밀한 중에 계신 하나님이 갚아 주시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만을 의식할 때, 우리의 기도와 구제와 금식은 진실할 수 있고, 그에 합당한 하나님의 상급을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은밀하게, 진실하게 기도하고, 구제하고, 금식하기를 힘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