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마 7:13-14

2004년 8월 25일, 현풍제일교회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1) 인간이 한평생 걸어가는 길에는 여러 갈래가 있고, 인간이 통과해야 할 문도 수없이 많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길을 가지 않으며, 모든 사람이 똑같은 문으로 들어가지도 않는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목표에 도달하지도 않는다. 왜 어떤 사람은 넓고 편한 길을 가고, 어떤 사람은 좁고 불편한 길을 가는가? 왜 어떤 사람은 대문으로 들어가고, 어떤 사람은 쪽문으로 들어가는가? 왜 어떤 사람은 실패하고, 어떤 사람은 성공하는가? 왜 사람들마다 운명이 서로 엇갈리는 걸까? 어떤 사람은 팔자 소관이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노력 여하에 달렸다고 말한다. 두 가지 말이 다 맞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운명이 크게 엇갈리는 이유는 주어진 조건만이 아니라 사람의 결단도 달랐기 때문이다. 악조건 속에서도 훌륭한 길을 걷기로 결단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좋은 조건 속에서도 나쁜 짓만 골라서 하는 사람들도 많다. 일부러 쉬운 길만을 골라서 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일부러 어려운 길을 자원해서 가는 사람들도 있다. 이처럼 사람의 운명은 선택과 결단에 크게 좌우된다.

성경도 곳곳에서 우리에게 두 가지 길 앞에서 결단하기를 요구한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오늘날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좇으면 저주를 받으리라"(신 11:26-28, 30:15-18). 여호수아도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음과 같은 결단을 촉구하였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너희의 열조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4-15).

엘리야도 갈멜 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결단을 촉구하였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왕상 18:21). 시편 기자도 두 가지 다른 길을 말한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시 1:1-5).

 2) 오늘의 본문에서도 예수는 인생의 앞길에 두 갈래 길이 있고, 인생이 들어갈 문에도 두 가지 종류가 있으며, 서로 다른 길과 문을 선택함으로써 서로 다른 운명을 자초하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밝힌 후, 제자들에게는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길로 걸어가고 작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촉구한다. 왜 기왕이면 넓고 확 트인 길로 가기를 촉구하지 않고, 구태여 좁고 불편한 길을 가기를 촉구하는가? 왜 기왕이면 큰 대문으로 들어가길 촉구하지 않고, 일부러 작은 문으로 들어가길 촉구하는가? 넓은 길과 큰 문은 멸망으로 인도하고, 좁은 길과 작은 문은 생명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사람과 차가 다니는 길과 문은 넓을수록 좋다. 하지만 인생의 길은 항상 넓은 길과 큰 문만이 성공과 영광으로 가는 길은 아니다. 아니 위대한 생애는 때때로, 아니 훨씬 자주 험한 길과 좁은 문을 통해서 성취되었다. 더욱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과 영광으로 들어가는 문은 오직 좁고 작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구원의 첫 발길은 가볍고 쉽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전심으로, 그리고 진심으로 믿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실천하고 실현하는 길,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은 좁고 험하다.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한 예수의 길이 그러했다. 예수의 처음 길은 쉬었다. 많은 대중이 환호하였고, 많은 제자들이 줄줄이 따라 나섰다. 하지만 예수의 마지막 길은 험하고 고달팠다. 그래서 대중과 제자들은 떠나갔고, 그를 모독하거나 이해할 수 없었던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의 곁에 있었다. 하지만 십자가의 고난이 없었더라면, 부활의 영광도 없었을 것이다. 만약 한 알이 떨어져 썩은 희생이 없었더라면, 많은 생명을 거둘 수 없었을 것이다. 일제 시대에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순교한 주기철 목사는 예수의 십자가 길을 이렇게 묘사하였다.

 1. 서쪽 하늘 붉은 노을 영문 밖에 비취누나   
       연약하온 두 어깨의 십자가를 생각하니   
       머리에는 가시관 몸에는 붉은 옷   
       힘없이 걸어가신 영문 밖의 길이라네.
   2.  한 발자국 두 발자국 걸어가신 자국마다   
       뜨거운 눈물 붉은 피 가득하게 고였구나  
       간악한 유대 병정 포악한 로마 병정   
       걸음마다 자국마다 가진 포악 지셨구나.
   3.  눈물없이 못 가는 길 피없이 못 가는 길   
       영문 밖의 좁은 길이 골고다의 길이라네   
       영생복락 얻으려면 이 길만은 걸어야 해   
       배고파도 올라가고 죽더라고 올라가세.  

 3) 몸소 좁은 길을 걷고 작은 문으로 들어간 예수는 영광의 부활로 들어갔다. 그리하여 그는 만인의 구주가 되었고, 만왕의 왕이 되었다. 이러한 예수는 제자들에게도 좁은 길을 걷고 작은 문으로 들어가길 촉구하였다. 이 길과 문은 험하고 고달픈 길일뿐만 아니라, 외로운 길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매우 좁아서 찾는 이가 적기 때문이다. 물론 이 말은 하나님이 오직 적은 수의 사람들만을 구원하시고 많은 자들을 지옥에 가도록 결정하셨다는 사실을 말하진 않는다. 요한이 환상 중에 본 하늘의 예루살렘 성에는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서 큰 소리로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 양 예수를 찬양하고 있기 때문이다(계 7:9-10). 하지만 예수의 제자들은 언제나 적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길은 대중이 꺼리는 좁고 힘들고 고독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은 결코 대중의 눈치를 보지 않으며, 숫자에 연연하지도 않는다(본회퍼). 왜냐하면 오직 이 길만이 생명과 영광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넓은 길과 큰 문은 멸망으로 인도한다. 탐욕스럽고 완고하고 불의하고 분노하고 간음하고 거짓말하고 미워하고 자랑하고 염려하고 비난하는 사람의 끝은 멸망이다. 이런 행위들은 생명에 치명적이다. 그와 달리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고 남을 측은히 여기고 온유하고 의를 갈구하고 마음이 깨끗하고 평화를 실천하고 진실하고 경건하게 살려는 사람의 끝은 생명이다. 오늘날 우리도 이와 같은 양극단의 운명으로 갈라지는 두 가지 길과 두 가지 문, 두 종류의 사람과 두 가지의 목표 앞에서 올바르게 선택해야 한다. 그리함으로써, 이 땅에서는 예수의 제자로서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고,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찬란한 영광과 영생을 누리는 복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