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열매로 알리라

마 7:15-27

 2004년 10월 10일, 현풍제일교회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오늘은 산상설교의 긴 여행을 마치고자 한다. 오늘의 본문은 비교적 길다. 그래서 사람들은 본문을 둘 혹은 세 단락으로 나누곤 한다. 7장 15-23절은 '거짓 선지자'에 대해 경고하고, 7장 21-23절은 '행함이 없는 믿음'에 대해 경고하며, 7장 24-26절도 역시 '반석의 비유'를 통해 행함이 있는 믿음에 대해 경고한다. 본문은 '넓은 길과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에 대해 경고한 앞의 본문의 주제를 계속 이어가면서, 산상설교의 대미(大尾)를 엄숙하게 장식한다. 무엇을 보고 거짓 선지자를 아는가? 그의 열매를 보고 안다. 무엇을 보고 천국에 들어갈 자를 아는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지를 보고 안다. 무엇을 보고 성도가 끝까지 승리할 줄을 아는가? 예수의 말씀을 행하는지를 보고 안다. 루터는 성도와 교회의 승패는 오직 신앙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앙의 승패는 무엇에 달렸는가? 본문은 "행위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나무의 종류와 상태는 열매를 보아 알듯이, 신앙의 내용과 상태도 행위를 보아 안다.     

1)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성서는 종종 거짓 선지자와 거짓 사도, 거짓 교사와 거짓 그리스도에 대해 경고한다(민 27:17, 시 100:3, 마 9:36, 18:12-14 등). 오늘의 본문도 그 중의 하나에 속한다. 본문은 거짓 선지자를 일컬어, '양의 옷을 입는 이리'라고 부른다. 구약성서는 이방인(렘 3:6)이나 백성을 속이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이리'라고 표현한다(겔 22:27-28, 습 3:3-4, 잠 28:13). 신약성서(마 10:16, 요 10:1)도 역시 교회를 대적하는 자들을 묘사할 때에 '이리'라는 표현을 쓴다. 거짓 선지자들을 '이리'라고 부르는 것은 그들이 탐욕스럽기 때문이다(겔 22:27, 행 20:29). 거짓 선지자들이 "양의 가죽을 뒤집어썼다"는 말은 그들이 위장에 능숙하다는 사실을 말한다. 이 말은 하나의 비유적인 표현이다. 하지만 예언자들이 실제로 양의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왕하 1:8, 슥 13:4)는 사실을 고려할 때, '양의 옷은 이리'라는 표현은 매우 현실적인 경고를 담고 있다. 거짓 선지자들은 참 선지자들과 구분하기 어렵다.

그러면 거짓 선지자들을 어떻게 식별할 수 있는가? 구약성서에서 거짓 예언자들은 백성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씀, 백성의 귀와 마음을 즐겁게 하는 낙관적인 말만을 늘어놓는다. 그들은 위기의 때에도 "평안하다"고 말한다. 다가올 심판을 경고하지 않으며, 그래서 백성의 회개를 요청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여호와의 회의'에 참여하지 않은 자이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듣지 않았고,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지 않는다(렘 23:16-17). 하지만 그들은 백성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왜냐하면 그들의 말은 아름답고 감동적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들은 귀신을 쫓아내고, 기적도 행할 수 있었다(행 20:29).

하지만 예수는 이런 자들을 '이리'라고 불렀다. 포악한 군주 헤롯을 '여우'라고 불렀던 예수는 거짓 선지자를 '이리'라고 불렀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은 겉으로는 거룩한 옷을 입었지만, 속으로는 온갖 탐욕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성령에 감동된 듯하면서 음식을 요구하고 즐기기 때문이다(디다케). 노략질하는 이리처럼 떼를 지어 다니면서, 교회를 노략질하고 교회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나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듯이, 거짓 선지자들은 결국 나쁜 행위를 드러내고야 만다. 가시나무가 무화과와 포도를 맺을 수 없듯이, 그들의 정체는 결국 그들의 탐욕을 통해 드러나고 만다. 그러므로 나쁜 나무가 찍혀 불에 던져지듯이, 그들도 결국 심판을 모면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거짓 선지자를 삼가라. 오늘날로 말하면, 거짓 목회자, 거짓 선생을 삼가라.

2)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이 본문도 거짓 선지자를 예로 들어서, 올바른 행위를 강조한다. 거짓 선지자들도 매사에 주의 이름을 들먹인다. 그들의 활동을 예수의 이름으로 정당화한다. 심지어 그들도 귀신을 쫓아낼 수 있고, 많은 기적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을 소홀히 여겼다. 기적을 행하면서도 이웃 사랑의 계명을 무시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불법을 행하는 자'(7: 23)라고 불리며, 그래서 마지막 심판을 면치 못한다. 마태복음 25장 31-46절에는 '마지막 심판'의 비유가 나온다. 여기서 사람들은 마지막 심판대 앞에서 "무엇을 믿었느냐?" 혹은 "무슨 큰 일을 했느냐?"에 따라서 심판을 받지 않고, "작은 자들에게 작은 선행을 했느냐?"에 따라서 심판을 받는다. 심판의 척도는 믿음이 아니라 행위, 사랑이다. 왜냐하면 나무는 열매를 보아 알 수 있듯이, 믿음은 행위를 보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성도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말씀을 읽고 아는 목적은 말씀을 혼자서 즐기는 것이 아니라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것이다. 아무리 주를 믿고 주를 불러도, 주의 뜻대로 행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바울의 말대로 온 세계를 꿰뚫는 지식이 있어도, 사랑이 없이는 아무 소용이 없다. 아무리 큰 기적을 행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만이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씀은 우선적으로는 선지자들, 오늘날의 말로 하면, 교회 지도자에게 적용되는 말씀이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말씀은 모든 온 성도들에게도 해당된다. 왜냐하면 선지자들과 목회자들은 더 엄격히 심판을 받겠지만, 성도들도 모두 마지막 심판대 앞에 서야 하기 때문이다. "참 선지자이냐 거짓 선지자냐?"를 식별하는 척도와 마찬가지로 "천국에 들어가느냐 가혹한 심판을 받느냐?"를 식별하는 척도는 사랑이다. "열매로 보고 그들을 알게 된다."

 3) '반석 위에 지은 집'의 비유도 다시 한번 순종, 사랑, 하나님의 뜻의 실천을 강조한다. 이것은 다시 한번 더 들음과 행함을 결합하여, 예수의 말씀을 순종하는 제자의 길을 결론적으로 말한다. 이 비유는 예수가 산상설교에서 가르친 말씀들을 듣고 행하는 자와 듣고 행하지 않는 자의 운명이 어떻게 선명하게 갈라질 것인지를 비교하면서 가르친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자에 해당하고,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는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자에 해당한다. 보통 때는 괜찮지만, 위기의 때, 홍수가 나는 때, 종말의 심판 때에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는 심하게 허물어진다, 심판을 통과하지 못한다. 작년에 우리가 맞이했던 폭풍(매미) 때문에 마을의 약한 주택들은 큰 피해를 보았다. 집을 잘 짓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 유대교 선생들은 집은 강한 벽을 강조했지만, 예수는 집의 올바른 기초를 강조한다. 집은 반석 위에 세워져야만 튼튼할 수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마태복음 16장 18절에 예수가 베드로를 '반석'이라고 부르고, 교회를 반석 위에 세우겠다고 말한 것은, 카톨릭 교회가 착각하듯이 교회를 베드로라는 위대한 사도 위에 세우겠다는 뜻이 아니라, 종교개혁자들이 가르친 대로 베드로의 고백, 즉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우겠다는 뜻이다. 교회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는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건강한 교회, 온갖 시련과 박해를 견딜 수 있는 교회가 되려면, 오직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워져야 한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옳게 듣고 행할 때, 교회는 올바로 설 수 있고, 영원한 복을 누릴 수 있다. 성도의 기초도 바로 말씀이다. 말씀을 올바른 듣고 올바로 실천할 때, 성도는 온간 환난과 유혹 속에서도 넘어지지 않고 굳건히 설 수 있다. 굳건한 말씀의 반석 위에 인생을 설계하고 인생을 세울 때, 세상에 휩쓸려 타락하지 않고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천국의 영광을 누릴 수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입술과 마음으로만 믿지 말고 사랑의 생활로 믿음을 증거하자. 허황한 기적과 무익한 명분을 좇지 말고, 작은 사랑을 실천하자. 금방 떠내려갈 허무한 재물과 아침 안개와 같은 세상의 영광을 잡으려고 허우적거리지 말고, 구원의 영원한 반석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자. 마지막 경주 끝에 영광의 면류관이 여러분이 기다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