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다

 마 5:6

2003년 8월 13일, 현풍제일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배부르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읽을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이 반문하게 된다. 논리적으로 말하자면, 실제로 "빵이 없어 굶주리고 물이 없어 목마른 자가 배부르게 될 것이다"라고 말해야 맞지 않은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얻게 될 배부름이란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즉 이 세상에서 정의롭게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은 대개 가난한 길을 걸어오지 않았는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어떻게 배부르게 될 수 있는가?

성경에서 의(義)는 질서정연한 것, 올바른 관계 속에 있는 것, 일치와 조화를 의미하며 진리와 가까운 단어다. 하지만 의는 존립할 수 있는 것, 존속하는 것, 존재의 근거를 얻게 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며, 그래서 생명과도 가까운 단어다. 하나님의 의는 모든 피조물의 생존의 근거다. 하나님의 의와 신실함이 없이는 아무 것도 존재할 수 없다. 하나님의 의는 생명을 의롭게 하고, 만물의 존재 근거가 된다. 하나님은 자신의 의를 어떻게 실현하시는가? 하나님의 약속을 신실하게 지킴으로써 그리하신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지나간 역사 속에서 계약을 신실하게 지키신 하나님의 행위를 기억하였고, 감사하였고, 찬양하였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의롭게 될 수 있는가? 신실하게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신실하게 지킴으로써, 인간도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된다.

그런데 의는 단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만이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의는 인간들과의 관계에서도, 그리고 사물과의 관계에서도 이루어진다. 만약 하나님의 의로부터 자기 자신과의 올바른 관계, 자신의 동료와의 올바른 관계, 온 피조물과의 올바른 관계가 생겨날 수 있다면, 그것은 현실적인 삶의 근거가 될 뿐만 아니라 미래로부터 오는 새로운 희망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는 아직도 하나님의 의가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또한 하나님이 실현하실 완전히 새로운 세상, 새로운 창조를 기다린다.

예수는 바로 이 새로운 세상이 가까이 왔음을 선포했다.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 4:17).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는 율법적인 의, 도덕적인 의와 다르다. 율법은 오직 율법을 신실하게 지키는 사람만을 의롭다고 인정한다. 도덕은 도덕의 표준에 도달한 사람만을 칭찬한다. 하지만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의 의는 단순히 율법적, 도덕적인 의를 넘어선다. 하나님의 의는 의인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보상이 아니라, 죄인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의 의는 죄인들을 의롭게 하시고 죽은 자들을 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러므로 오늘의 본문도 "의로운 자가 복이 있다"고 말하지 않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예수는 말한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마 6:33).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의를 향한 갈망이야말로 세상 사람과 그리스도인을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의 것만을 갈망한다.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만을 갈망한다. 물론 이런 것들도 중요한 것들이다. 예수는 일용할 것을 위해 기도할 것을 가르쳤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일용할 물질을 구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도 아니고, 더욱이 죄악도 아니다. 다만 그리스도인은 이런 것들을 먼저 구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자신과 가족의 필요만을 위해 먼저 기도해서도 안 된다. 그는 그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의를 구해야 한다. 만물에게 임할 하나님의 보편적인 통치, 온 피조물에 미치는 하나님의 의를 구해야 한다.   

구약성서에서 이미 '주리고 목마름'은 단순히 물질적인 갈망만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갈망,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갈망,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갈망이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시 42:1).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사 55:1-3).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암 8:11). 신약성서에서도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갈망은 목마른 상태로 표현된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 7:37-38).

하나님의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하나님의 의로 배부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성서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진리와 말씀에 주린 자들이 얻게 될 만족을 약속한다.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시 107:9).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3-14).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요 7:37-38).

 그러므로 예수의 제자는 언제나 자신의 권리와 자신의 의보다 먼저 하나님의 의를 갈망한다. 때로 그는 하나님의 의를 위해 자신의 권익과 의도 포기할 줄 안다. 그는 언제나 미래의 하나님의 의를 갈망한다. 그는 하나님의 의가 이 땅에 완전히 이루어지기를 갈망한다. 그는 이 세상에서 언젠가 하나님의 의로 만족하게 될 것임을 믿는다. 그는 언젠가 예수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에서 참된 생명의 빵을 먹을 것임을 믿는다. 그는 장래의 성만찬에서 주님과 함께 먹을 것임을 믿는다. 바로 이 미래의 빵을 갈망하기 때문에 그는 복이 있다(본회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