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다

 마 5:8

2003년 9월 3일, 현풍제일교회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 있다고 하는 말은 구약성서의 배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저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시 24:3-5).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니..."(시 73:1).

마음의 청결함이란 인간의 가장 은밀한 면까지, 즉 전 인간을 지배하는 깨끗함을 말한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생활의 은밀한 내면에 이르기까지 순수한 자, 개방성과 진실성을 지닌 자, 위선과 이중성을 지니지 않는 자, 어떤 연극도 하지 않는 자, 숨바꼭질하지 않고 남을 속이지 않는 자, 엉큼함과 위선으로부터 떠난 자, 솔직하고 정직한 자, 올바르고 분명한 자이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한 마음을 품고, 사악하거나 비열하거나 음흉하지 않으며, 정직하다. 그는 외식과 기만을 매우 싫어하며, 교활하지 않다.

이러 의미에서 마음의 청결함은 무엇보다도 외식적인 태도, 특히 바리새인들의 의식적, 외형적인 태도와 날카롭게 대립된다. 예수는 내적인 태도와 외적인 태도의 일치를 요구하였다. 이런 이유로 예수는 외적인 청결함에 집착하는 것에 대해 심히 꾸짖었을 뿐만 아니라, 외식과 위선을 심히 나무랐다. 예수의 눈에 비친 바리새인들의 위선은 다음과 같다. 그들은 구제행위를 남에게 자랑한다.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공공연히 기도한다. 그들은 금식하고 있다는 기색을 드러낸다. 그들은 자신의 잘못보다 남의 잘못을 더 부풀린다. 그들은 율법의 형식에 치우쳐 공의와 자비를 버린다. 그들은 마음 속에는 탐욕과 방탕이 가득하면서도,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닦기를 즐겨한다. 그들은 선지자의 무덤을 화려하게 꾸미면서도, 실제로는 선지자를 박해한다. 그들은 입술로는 하나님을 존경하지만, 생활 속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지 않는다. 그들은 안식일에 소나 나귀에게 물을 먹이서도, 예수가 안식일에 병자를 고친 행위를 비난한다. 그들은 과부의 재산을 삼키면서도, 기도는 길게 한다. 그들은 천지의 기상은 분별하면서도, 시대를 분별하지 못한다.

물론 하나님은 도덕적, 윤리적으로도 깨끗한 삶을 요구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도덕적, 윤리적으로 완전하기를 요구하신다.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우리도 거룩하기를 바라신다. 하지만 거룩한 삶은 결코 쉽지 않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 가능하지 않다. 그리고 거룩은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고, 일평생 도달하려고 애써야 할 험난한 목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성령의 도움을 구해야 하며, 매 순간마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며, 예수의 피로 항상 우리의 더러움과 악함을 씻어내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정직한 마음을 요구하신다. 하나님은 위선과 거짓으로 가득한 외형적, 형식적, 가식적인 청결함보다는 차라리 죄로 인해 슬퍼하고 애통하는 솔직한 자세를 더 기뻐하신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정직한 마음, 진실한 자세를 그 어떤 행위보다 더 기뻐하신다. 그렇다면 아마도 어른보다는 어린이가 훨씬 더 솔직하고 정직할 것이다. 어른은 거짓과 위선에 길들여지거나 이에 능한 반면, 어린이는 상대적으로 훨씬 더 정직하다. 거짓말이 탄로가 났을 때, 어린아이의 얼굴은 부끄러움 때문에 대개 붉어지지만, 어른의 얼굴은 대개 노랗게 변한다고 한다. 거짓을 부끄러워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거짓을 숨기고 이를 또 다른 거짓말로 둘러댈까 고심하기 때문에 어른의 얼굴은 대개 노랗게 변한다고 한다.

 실로 어린아이는 위선과 가식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본회퍼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마음이 깨끗한 자는 누구냐? 자신의 마음을 자신의 죄악으로는 물론 자신의 선으로도 더럽히지 않은 자다. 깨끗한 마음이란 어린아이의 단순한 마음이다. 선악을 모르는 마음이며, 타락 이전의 아담의 마음이며, 양심이 아니라 예수의 뜻에 지배되는 마음이다." 이런 점에서 왜 예수가 유독 어린아이와 같은 자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는지를 우리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천국은 부정직한 의인이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 정직한 죄인이 들어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한다. 깨끗한 거울이 사물의 진실을 그대로 비추듯이, 깨끗한 물이 하늘을 고스란히 담듯이, 마음이 깨끗한 자의 마음은 하나님의 모습을 비추는 투명한 거울이 된다. 어거스틴은 그리스인의 최고의 복은 하나님을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누가 하나님을 볼 수 있는가? 오직 마음이 깨끗한 자, 마음이 깨끗해진 자가 하나님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정직하고 깨끗하고 진실하고 거룩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 12절에서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추어 보듯이 희미하게 보지만, 그 때에 가서는 얼굴을 맞대고 볼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지금 우리의 인식은 아직 희미하다. 오직 종말에 가서야 우리는 하나님을 온전히 볼 수 있다. 종말이 되어야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을 투명하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종말이 오기 전에라도 우리는 비록 불완전하나마 하나님을 볼 수 있다. 만약 우리의 마음을 깨끗이 비워놓는다면,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에 들어오실 수 있다. 우리는 깨끗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진실한 예수가 그렇게 약속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