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다

마 5:10-12 

2003년 10월 1일, 현풍제일교회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세상 사람들은 정의롭게 살기를 싫어할 뿐만 아니라, 불의한 자들과 짝을 맺고 불의한 자들과 더불어 불의를 도모하기를 좋아한다. 설령 세상 사람들이 정의를 표방한다고 하더라도 속내를 깊이 들여다보면, 불의를 가장한 경우가 허다하다. 예를 들면, 오직 국방의 의무에만 전념해야 할 전두환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제5공화국을 세운 후, 그는 자신의 불의를 은폐하기 위해 이른바 민정당(민주정의당)을 세웠으며, '정의사회구현'이라는 허황한 구호를 내걸었다. 하지만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그가 집권 전후에 얼마나 많은 불의를 자행하였는지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 더욱이 정의를 지키고 법을 정당하게 집행해야 할 사람들, 즉 정치가들과 경찰, 검찰들이 얼마나 자주 불의한 권력에 아부하였으며, 얼마나 자주 더러운 재물과 타협하였는가! 그들은 불의를 자행하는 일에 그치지 않고, 양심적인 사람들과 정의롭게 살려던 수많은 의인들을 감옥에 보내고, 죽음으로 내몰았다. 이러한 불의의 역사는 아직도 그치지 않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거룩하고 정의롭게 살아야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서도 불의는 그치지 않았다. 특히 권력자들과 지도자들의 부패와 불의는 하나님의 진노와 예언자들의 고발을 불러왔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권력자들과 지도자들은 불의를 고발하고 의로운 말을 하는 예언자들을 수없이 핍박하였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예수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너희는 이전에 선지자들을 핍박하였느니라"(마 5:12).

의를 위하여 사는 것은 곧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예수는 '의의 길'을 가르쳤기 때문이다(마 21:32). 그러므로 예수의 부름을 받은 제자는 의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악인의 꾀를 좇거나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시 1:1), 의인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하지만 불의를 좋아하는 불신자들 틈에서 의롭게 살아가야 하는 성도들은 온갖 고난과 박해를 감수해야 한다. 고난과 박해를 원하거나 즐거워하는 성도들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성도들은 하나님의 보호 아래 가급적 평안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 하지만 이리가 득실거리는 광야에서 양들은 쉽게 이리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듯이, 불의한 사람들은 의롭게 살려고 노력하는 성도들을 가만히 놓아두지를 않는다. 자기편에 들어오지 않으면, 왕따를 시킬 뿐만 아니라 심하게 괴롭히고 짓밟는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세상 가운데서 핍박을 당하는 일을 당연한 일로 여겨야 한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요일 3:13-14). 사도 바울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 3:12).

하지만 예수는 우리에게 "고난과 핍박을 잘 참고 견디어라"고 말할 뿐만 아니라, "핍박 속에서도 오히려 즐거워하고 기뻐하라"고 권한다. 왜 그런가? 그리스도인은 고난을 즐기는 정신병자, 마조키스트(학대를 즐기는 정신병자)이기 때문인가? 그리스도인은 고난을 즐기는 사람가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오히려 기뻐할 줄 아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에서 상이 크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은 자는 생명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마 10:39). 성도는 환난 중에도 즐거워한다. 왜냐하면 환난은 인내를 이루고, 인내는 연단을 이루고,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을 알기 때문이다(롬 5:3-4). 시험과 환난 중에서도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받는 줄을 굳건히 믿기 때문이다(계 2:10).

그래서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을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였다"(행 5:41)고 한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루터도 고난을 참된 교회를 식별하는 표지로 보았다. 다른 말로 하면, 십자가를 회피하고 영광만을 추구하는 교회는 진정한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라는 말이다. 고난의 흔적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말이다. 웨슬리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핍박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지닐 표요, 그리스도의 제자가 당할 운명이다. 만일 우리에게 이것이 없다면, 우리는 사생아요, 참 아들이 아니다. 천국 가는 길에는 호평만이 아니라 악평도 따른다. 동무들에게서는 호평을 받되, 세상 사람에게서는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고전 4:13) 같은 대우를 받는다."

본회퍼는 고난을 참된 제자도의 표지라고 강조하였을 뿐만 아니라, 히틀러 치하에서 미국에서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고난의 현장 속으로 들어갔으며, 그래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는 의를 위하여, 아니 그리스도를 위하여 젊은 나이에 순교를 하였으나,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을 받는 신학자 중의 하나요, 가장 사랑을 받는 형제 중의 하나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장차 하나님의 나라에서 큰 상을 받을 위대한 성도가 되었다. 그가 말한 대로, "하나님 나라에서 상처를 입고 고문을 당한 몸은 새 몸으로 변할 것이고, 죄와 참회의 옷 대신에 영원한 의의 흰옷을 입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