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성육신의 신비

 

요 1:1-14

2005년 9월 4일, 현풍제일교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주님의 평화가 가득 넘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지난 주일에 우리는 성령이 어떤 분인지를 배웠습니다. 성령은 '세상의 영'이나 '인간의 영' 혹은 이런저런 '악신'이나 '귀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라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활동은 무엇보다도 '생명'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성령은 생명과 관련된 활동만을 하시지 않습니다. 생명은 구원의 역사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하십니다. 그래서 성령은 다양하게 불렸습니다. 성령은 인격적으로 주님, 어머니, 심판자라고 불리는가 하면, 비인격적으로 힘, 바람, 불, 사랑, 빛, 물이라고 불리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이름과 표현보다 자주, 그리고 즐거이 성령을 위해 사용된 표현은 바로 '생명의 영' 혹은 '생명의 샘'이었습니다. 성령은 바로 창조와 새 창조의 영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을 향해 기도할 때마다 "창조주 성령이시여, 오셔서 우리를 새롭게 하소서!"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성령을 향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우리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할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고 입술이 둔하여 말을 하기 어려울 때마다 성령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기도하십니다(롬 8:26).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은 삼위 하나님 중의 한 분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태초부터, 아니 영원 전부터 성부와 성자와 함께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활동에 성령도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활동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성령을 통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처음부터 성령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마 1:18).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와 같이 내려왔습니다(마 3:16). 예수님은 성령에 의해 광야로 내몰려 시험을 당하셨습니다(마 4:1). 예수님은 성령의 능력으로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으셨습니다(마 12:28).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성령을 한량없이 주셨습니다(요 3:34). 예수님은 성령을 통해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셨습니다(히 9:14). 예수님은 성령의 능력으로 부활하셨습니다(롬 1:4).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행 2:33). 이처럼 예수님의 활동은 처음부터 끝까지 곧 성령의 활동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성령과 함께 계셨고, 성령으로 충만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예수의 영'(행 16:7), '그리스도의 영'(롬 8:9), '아들의 영'(갈 4:6)이라고도 불렀습니다.

다행히 사도신경도 예수님의 탄생 사건에서 성령이 주도적으로 활동하셨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밝힙니다.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성령으로 잉태되셨다"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셨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 하나님이 주도적인 활동을 하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시는 사건에 그 어떤 신비한 생명력이 활동하지 않았으며, 더욱이 인간의 생명력이 주입된 것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오래 전에 약속하신 대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친히 아들을 주셨다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이 친히 인간으로 오셨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성육신'이라고 말합니다. 인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친히 이 세상에 오셨다는 말입니다. 요한의 말로 표현하면,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또 친히 하나님이셨던 말씀이 육신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 오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으로 빛나셨고, 은혜와 진리로 충만하셨다고 합니다(요 1:1-14). 그러므로 예수님이 성령으로 탄생하셨다는 말은 곧 예수님이 비범한 인간이나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 아니라, 곧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참 인간이면서도 동시에 참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한 인간이 어떻게 인간이면서도 동시에 하나님일 수가 있습니까? 참으로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요리조리 따지고 캐묻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성부, 성자, 성령 삼위로 계시지만 세 분이 아니라 한 분이시라는 삼위일체 교리처럼 성육신 교리도 인간의 이성과 지혜로 쉽게 풀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기적'이라고도 말합니다만, 저는 차라리 '신비'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설교 제목을 '성육신의 신비'라고 붙였습니다. 신비는 어디까지나 신비입니다. 기적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신비는 더욱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신비는 오직 "믿거나 말거나" 할 사항이지, 수긍하고 반박할 사항은 아닙니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사건이라면, 어찌 신비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성육신의 신비를 용광로에서 나오는 쇳덩어리와 비교하곤 합니다. 엄청나게 뜨거운 용광로 속에서 완전히 녹아서 순수한 쇠로 걸러져 나오는, 이글거리는 빨간 물체는 쇳덩어리입니까, 아니면 불덩어리입니까? 완전한 쇳덩어리이면서도 동시에 완전한 불덩어리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물체가 아니므로, 이런 설명도 완전한 비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성령의 존재와 활동이 신비하듯, 성령으로 잉태되신 예수님의 탄생도 신비하기 그지없습니다.  

예수님은 인간 요셉의 씨를 받아 잉태된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나셨다는 말도 바로 이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처녀가 애를 낳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거짓으로 꾸민 이야기라고 하고, 이를 믿는 사람들은 기적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씀을 드렸듯이, 예수님의 탄생은 기적이라기보다는 신비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셨다는 것은 그 어떤 기적보다 더 신비한 기적이요, 그래서 참으로 놀라운 신비가 아닙니까? 어떻게 보면, 기적은 흔한 일입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모세만이 아니라 애굽의 술객들도 막대기를 뱀으로 만들었고, 심지어 물을 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요즘 들어서는, 과학자들이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고 믿었던 일들을 합니다. 예로부터 아기는 하나님 혹은 삼신 할머니가 점지하신다고 했는데, 요즘에는 사람도 인공적으로 아기를 낳게 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남녀를 가려서 낳게 할 수도 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사람이 모든 생명을 복제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사람도 이럴 수가 있거늘, 하나님이 무슨 일인들 하지 못하시겠습니까!

사도신경은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로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동정녀로 하여금 어찌 아기를 낳을 수 있게 못 하시겠습니까? 아니 하나님이 원하시기만 한다면, 동정녀 마리아의 자궁을 전혀 빌리지 않고서도 어찌 사람을 만들지 못하시겠습니까? 하물며 전능하신 하나님이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서 태어난 완전한 자연인 속에서조차 완전한 하나님의 아들이 출현하도록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실 수가 없겠습니까? 그러므로 동정녀 마리아의 예수 출생 사건은 기적이라기보다는 신비라고 해야 옳습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한다면, 신비라기보다는 은혜라고 해야 더 옳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아니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친히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그것도 화려한 궁전이나 고급호텔이 아니라 낮고 비천한 땅, 더럽고 흉한 구유(동물의 밥통) 안으로 오셨습니다. 이처럼 놀랍고 큰 은혜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이처럼 고귀하고 놀라운 은혜를 인간적으로 이해하려고 이리저리 쪼개고 분석하려는 행동은 참으로 은혜를 주신 분에 대한 배반, 배은망덕이 아니겠습니까? 오직 믿음으로 감사히 받을 뿐입니다. 오직 기쁨으로 찬양할 뿐입니다. 오직 신비 속에서 영원히 경외할 뿐입니다.

예수님 탄생의 사건은 인간을 위해 한없이 낮아지신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 인간이 한없이 낮아지게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한없이 높이는 행위는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교만, 불신 아니 배신 행위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아니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라고 해서,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은 참으로 몰상식한 일입니다. 성경 어디도 마리아를 그렇게 부르는 곳이 없으며, 더욱이 마리아를 숭배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습니다. 초대교회에서 마리아는 그저 평범한 성도, 신앙의 자매였을 따름이었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았지, 어디 하나님을 낳았습니까? 인간 마리아가 어찌 '하나님의 어머니'가 될 수 있단 말입니까? 더욱이 마리아가 하나님에게 난자를 제공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정자와 마리아의 난자가 결합하여 예수님을 낳은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에게 정자가 어디 있습니까? 성령을 어찌 정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오직 '여자의 몸'(갈 4:4)을 빌리셨을 뿐입니다. 아기 예수님을 밴 마리아가 친척 엘레사밧에게 달려가서 뭐라고 고백하였습니까? 스스로를 '비천한 계집종'(눅 1:48)이라고 불렀습니다. 자기처럼 비천한 여종을 돌보셨음에 감격하여, 마리아는 오직 하나님만을 찬양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카톨릭 교회가 스스로 낮춘 겸손한 마리아를 '성모'라고 칭하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어도, 마리아를 드높이고 찬양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짓, 어불성설(語不成說)입니다. 한 술 더 떠서, 인간 마리아를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이어주는 '중보자'로 생각하여 그녀에게 기도를 올리고, 심지어 그녀를 하나님의 위치, 하나님의 반열(班列)에까지 올리는 것(사위일체?)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만약 죽은 마리아가 다시 살아 돌아온다면, 제일 먼저 카톨릭 교회를 달려가서, "내가 원치 않는 일을 당장 집어 치워라"고 호통을 칠 것입니다. 엘리사벳에게 달려간 마리아는 뭐라고 말했습니까?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다"(눅 1:46-53)고 하지 않았습니까? 마리아를 우상처럼 높이고 떠받든다고 하지만, 실은 스스로 높아지려고 애쓰는 카톨릭 교회와 교황의 교만과 권세를 예수님은 흩으셨고, 내리치셨습니다. 장차 그리하신다는 말이 아니라, 이미 그리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지금도, 앞으로도 그리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낮추십니다. 그리고 비천하고 겸손한 자를 높이십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통해 일하십니다. 마리아는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탄생을 위해 겸손하게 봉사한 비천한 여종일 따름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밴 마리아도 이처럼 겸손하였거늘, 하물며 예수님을 섬기는 우리는 얼마나 겸손해야 하겠습니까? 성령은 사랑의 영입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는다고 바울은 말했습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신 아기 예수님을 밴 마리아도 교만하거나 자랑하지 않았는데, 우리가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오직 우리를 위해 가장 귀한 아기 예수님을 선물로 주신 사랑의 하나님만을 높이 찬양합시다. 그분의 깊고 넓고 높은 은혜만을 길이 노래합시다. 그리고 비천한 몸을 빌려 성령으로 잉태되신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원토록 찬양합시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우리를 위해 무력하고 연약한 아기로 태어나신 예수님의 겸손을 본받아서, 우리도 하나님과 이웃을 겸손히 섬깁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