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예수는 부활하셨다

고전 15:1-8

2005년 12월 18일, 현풍제일교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우리 주님의 평화가 넘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도 여러분의 얼굴을 뵙게 되어서 참으로 기쁩니다. 지난 밤 중에 갑자기 돌아가신 분은 한 분도 안 계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우리 나라의 인사말 "안녕하십니까?"라는 말은 사실 지난 밤 동안에 아무 일도 없었는지 궁금해서 물어보는 인사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초라한 초가집만이 아니라 고래등같은 기와집이라도 밤중에 도둑과 강도가 들어오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습니까! 심한 가뭄이 들고 인심이 흉흉해질 때마다 도둑과 강도가 수시로 칼을 들고 안방까지 쳐들어옵니다. 더욱이 심신이 피곤하여 깊은 잠에 골아 떨어진 사이에 언제 도둑과 강도가 들어와, 또 무슨 짓을 할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게다가 영양이 부실한데다가 역병까지 돌면,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이 한 밤중에 황천길로 떠나고 맙니다. 그러니 잠자리에 들 때마다 "내일 아침에는 무사히 일어날 수 있을까?" 걱정하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이웃집 사람도 밤새 안녕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은 예전보다 형편이 훨씬 나아졌지만, 그래도 하루밤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래서 여전히 우리는 아침마다, 아니 사람을 만날 때마다 "안녕하십니까?"하고 묻습니다. 이 말은 "밤새 아무 일도 없었습니까? 식사는 잘 하셨습니까?"라는 말과 다름이 없는 말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인사말에는 이웃을 걱정해 주는 따뜻한 마음씨가 베여 있지만, 조금 애달픈 느낌이 들곤 합니다. 아무리 하루 밤새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살아가지만, 그래도 이제 우리의 인사말은 조금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라고 궁금함과 걱정이 서려 있는 인사말도 정겹긴 하지만, "안녕하십시오!"라고 축복과 기대에 가득 찬 긍정적인 인사말이 더 좋지 않겠습니까? 사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인사말이 그러합니다. "샬롬"이라는 인사말은 "안녕하십니까?"가 아니라 "안녕하십시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저도 종종 이런 인사말을 하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제가 일부러 웃기려고 농담을 하는 줄 알고 오해합니다만, 그래도 이런 인사말을 듣는 사람들이 종종 웃음을 터뜨리게 되므로 자주 이런 인사말을 쓸까 합니다.

십자가에서 참혹한 고난과 죽음을 당하시고 무덤에 장사되신 후에 사흘만에 부활하신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샬롬"이라고 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흥미로운 점은 부활 이전에는 예수님이 이런 인사말을 전혀 하시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신약성경에 이런 인사말이 4번(눅 24:36, 요 20:19,21,26) 나오는데, 모두가 부활하신 예수님이 먼저 던지신 인사말입니다. 부활 이전에는 이런 인사말을 전혀 쓰시지 않던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왜 갑자기 이런 인사말을 쓰기 시작하셨을까? 여러분 궁금하시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안식 후 첫날 동트기 전에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가 예수님의 몸에 향유를 바르기 위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그렇지만 "무덤을 가로막고 있는 육중한 돌을 누가 치울 수 있겠는가?"라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런데 막상 무덤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놀랐습니다. 왜 놀랐습니까? 그 이유는 먼저 무덤이 열려 있고, 예수님의 몸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훔쳐간 후에 예수님이 살아났다고 거짓말을 퍼뜨릴까 걱정이 되어, 제사장들이 돌무덤을 굳게 인봉하고 파수꾼이 지키도록 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파수꾼은 온데 간데도 없고, 무덤은 텅 비워져 있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혹시 예수님이 기절하셨다가 일어나신 걸 아닐까?" 궁금하기도 했겠지만, 그보다는 "누가 예수님을 훔쳐 갔을까?" 걱정이 더 되지 않았겠습니까? 아니 걱정보다 두려움이 더 크게 생겨나지 않았겠습니까?

그들이 놀란 두 번째 이유는 갑자기 낯선 인물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28:2-4)에는 여자들이 "번개와 같고 흰옷을 입은 천사"를 보고 무서워하고 떨고, 죽은 사람처럼 되었다고 합니다. 마가복음(16:5-8)에는 여자들이 "흰옷을 입은 청년"을 보고, 심히 놀라고, 떨고, 도망하고, 무서워서 아무 말도 못하였다고 합니다. 누가복음(24:4-5)에는 여자들이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을 보고,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댔다고 합니다. 요한복음(20:11-12)에도 여자들이 "두 천사"를 보고 놀랐다는 기록은 없습니다만,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진 것 때문에 계속 울고 있었고, 예수님을 보고도 알아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당황했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빈 무덤에 관한 설명이 조금씩 다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많은 학자들은 "빈 무덤"의 이야기가 제자들이 나중에 문학적으로 꾸며낸 이야기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설명도 제 각기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럴듯한 주장이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무덤을 찾아간 사람들이 너무나 당황하고 놀랐기 때문에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설명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의 기록을 보면, 그들은 오랫동안 불안했다고 합니다. 도대체 예수님의 몸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누가 훔쳐갔을까? 예수님의 말씀대로 실제로 부활하셨을까? 그리고 주위에 나타난 사람들은 누굴까? 천사일까, 산지기일까? 아니면 예수님을 훔쳐간 도둑놈일까?

혹시 여러분도 여러분의 가족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보시면, 먼저 얼마나 놀라겠습니까?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나면, 무슨 생각이 문득 들겠습니까? 아마도 "죽은 사람이 살아났구나!"하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자들처럼 "누가 훔쳐 갔을까? 왜 훔쳐 갔을까? 도둑놈이 보물을 훔치다가 증거를 없애려고 시신까지 없애버렸을까?" 등등 온갖 걱정과 두려움이 앞서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이 제자들이라고 해도, 빈 무덤을 보고 즉시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순 없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여러분이 부활의 소망으로 가득하다고 해도, 빈 무덤을 보자마자 "옳거니, 구약성경의 소망과 약속대로, 아니 예수님의 말씀대로 참으로 부활하셨구나?"하고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만, 설령 진짜 예수님의 무덤에 여러분을 데려간다고 해도, 빈 무덤을 보고 부활을 확신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순례하지만, 예수님의 빈 무덤을 보았기 때문에 예수님이 확실히 부활한 것을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을 하나도 보지 못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빈 무덤 이야기가 곧 예수님의 부활을 말해 주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빈 무덤은 다만 걱정과 놀라움을 안겨 줄 따름이고, 기껏해야 예수님이 "무덤 속에 안 계시다"(막 16:6)는 사실을 말해 줄 따름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된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등장 때문입니다. 빈 무덤을 본 이후에 이런 저런 걱정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갑자기 나타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나타나실 때마다 "샬롬" -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걱정하지 말아라, 두려워하지 말아라, 의심하지 말아라, 내가 죽음을 이기고 살아났으니, 안심하고 기뻐하라."라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마태복음을 보면, 11명의 제자가 갈릴리에서 예수님을 다시 만났습니다(28:16-17). 마가복음을 보면, 11명의 제자들이 식사할 때에 예수님이 갑자기 나타나셨습니다(16:14). 누가복음(24:13-49)을 보면,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들과 11명의 사도와 그와 함께 한 자들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막달라 마리아과 제자들과 의심하던 도마에게, 그리고 나중에는 7명의 제자와 베드로에게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에서 바울은 예수님이 그 밖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나셨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등장은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현상이었습니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은 이런 현상을 의심합니다. 이것은 착각, 환상, 환영, 꿈, 환각, 거짓 속임수라는 말입니다. 사실 그렇게 의심할 만도 합니다. 죽은 자가 실제로 살아나서 돌아온 예가 역사에는 없었습니다. 더욱이 생물학적으로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날 수 없지 않습니까? 숨이 완전히 끊어지고 썩기 시작한 시체가 어떻게 갑자기 벌떡 일어날 수 있단 말입니까? 더욱이 모든 것을 만져 보아야만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과학만능의 시대에 예수님의 부활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부활의 경험은 제자들에게도 예기치 못했던, 참으로 황당한 체험이었다고 성경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도마를 보고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그는 정말로 정상적인 사람입니다. 눈으로 보지 않고, 손으로 만져 보지 않고 어떻게 사물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단 말입니까? 어떻게 보면, 도마는 현명한 사람이었습니다. 성급히 남의 말대로 믿기보다는 자기가 확신할 때까지 일단 의심해 놓고 보는, 매우 신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도 현대인처럼 예수님을 직접 보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부활을 믿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의심 속에서 살아갑니다. 의심이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도 속고 살다보니, 우리는 점점 더 의심이 많아졌습니다. 더욱이 과학을 맹신하는 현대인들은 옛날 사람들보다 의심이 더 많아졌습니다. 믿을 만한 일도 일단 무조건 의심하고 봅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사물을 의심할 수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우리가 보지 못해도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우리를 속이는 현상들(신기루, UFO 등)도 자주 나타나지만, 우리가 보지도 알지도 못했던 새로운 사실이 속속 나타나고 발견되곤 합니다. 과학의 역사는 새로운 진리를 발견해 온 역사입니다. 인간의 역사도 새로운 사건이 계속 일어난 역사입니다. 지구와 우주에는 우리가 이전에는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놀라운 현상들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의 체험을 모두 환각으로 치부하거나 꾸며낸 거짓 이야기로 매도할 수는 없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무슨 일인들 못하시겠습니까?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실 수 없겠습니까? 실제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 돌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했다는 사람들의 증언만이 아니라 그들의 삶의 변화를 통해서도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확실히 믿을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 시대에 많은 전설과 설화 중에도 종종 "죽은 사람이 다시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우리 나라의 전설과 민담에도 그런 이야기가 상당히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전해준 사람들의 삶이 통째로, 완전히 변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은 철저히 달라졌습니다. 비겁과 체념, 두려움과 의심 속에 있던 제자들이 목숨까지 걸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파하였습니다. 그 누가 꾸며낸 이야기, 몽롱한 환상에 목숨을 걸겠습니까? 도마가, 그리고 나중에는 다른 제자들과 제자들을 핍박하던 바울이, 그리고 예수님 때문에 순교한 수많은 성도들이 엉터리 이야기에 목숨까지 걸 정도로 순진하고 무지몽매한 사람들이었다는 말입니까?

순진하고 착한 여러분이라도 얼토당토 않는 요상한 이야기에 돈이나 시간은 바칠망정, 오직 하나뿐인 소중한 목숨만은 송두리째 내어놓으시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의 부활이 가짜라면, 바울의 말대로 복음도 헛것이요, 믿음도 헛것이고, 우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가 모든 사람들 중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고전 15:17-19). 하지만 우리는 불쌍한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남들이 알지도 믿지도 못하는 진리, 예수님의 부활을 알게 되었고, 믿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어리석은 사람도 아닙니다. 우리는 정말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남들은 보이는 현실만을 바라보고 살지만, 우리는 보이지 않은 더 큰 현실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남들은 이 세상만을 전부로 알고 울다가 웃고 웃다가 울지만, 우리는 이 세상보다 더 큰 현실을 바라보기에 언제나 꿋꿋하게, 언제나 감사하며, 언제나 기뻐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아직은 믿음으로만 알 수 있고, 마음으로만 볼 수 있지만, 예수님은 실제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찾아오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 가운데 오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돌아가신 과거의 예수님만을 자꾸 바라보지 말고, 죽음을 이기고 지금도 살아 계신 현재의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아니 예수님을 바라보지만 말고, 친히 영접하십시오. 예수님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듯이, 제자들에게 놀라운 삶의 변화가 일어났듯이, 여러분에게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의 말대로 "소망의 하나님이 기쁨과 평강으로 여러분을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실"(롬 15:13)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