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부활의 의미(3)

롬 4:25

2006년 1월 29일, 현풍제일교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주님의 평화가 가득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도 계속해서 예수님의 부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앞에서 설교한 것을 다시 한번 간단히 상기시켜 드리면, 먼저 예수님의 부활은 새로운 창조, 종말의 시작입니다. 예수님이 몸으로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바로 예수님 안에서 온 만물이 새롭게 창조되기 시작하였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이 옳았다는 것을 인정하였고, 그리하여 하나님도 옳은 분임을 증명한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공의가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졌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부활이 갖는 의미를 다른 각도에서 새롭게 설명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태어나시고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활동하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오로지 자신 때문에만 돌아가시고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부활하신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할 때,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님이 우리 앞에서 하나님을 대표하시고 하나님을 대변하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하나님의 일을 위해 우리에게 오신 분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을 "사람의 아들"이라고 고백할 때,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님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대표하시고 우리를 대변하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아들로서 사람을 위해 오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육신을 입으심으로써 또한 만물의 구원을 위해서도 오셨습니다.

만약 예수님의 일이 오로지 예수님 자신만을 위한 일이었다면, 우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예수님의 이야기는 지금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지나간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예수님은 오늘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그리스도가 되시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님을 경배할 이유가 없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이유도 없을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의 믿음도 다 헛된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中保者)로 오셨고, 지금도 우리를 위한 중보자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음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부활도 우리 모두를 위한 일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 한 분에게, 오로지 예수님 한 분만을 위해 일어난 사건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 안에서 만물의 부활이 미리 약속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도 부활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고전 15:13). 거꾸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죽은 자들도 부활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부활은 만물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주는 우주적인 사건입니다. 우리 모두를 위한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을 옳다고 인정한 사건일 뿐만이 아니라, 또한 우리를 의롭게 하기 위해 일어난 사건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의 범죄를 위해, 우리 대신에 저주와 형벌을 감당하신 속죄와 화해의 죽음입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모든 저주와 형벌을 지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아무런 대가도 없이, 오직 예수님의 피 값으로 의롭다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동시에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만약 예수님의 피로 인해 의롭다함을 받은 우리가 죽음 속에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하신 사건이 우리에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물론 의로운 일을 하다가 죽은 사람이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인정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예컨대 역적으로 죽은 사람이 죽은 후에 충신으로 인정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어린 조카 단종을 폐위하고 죽인 세조에게 대들었다가 죽임을 당한 사육신(死六臣)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후세들은 그의 무덤을 아름답게 치장하며, 후손들은 잃었던 명예를 되찾게 됩니다.

하지만 억울하게 죽은 자들에게는 이 모든 것이 무슨 영광과 기쁨이 되겠습니까? 이처럼 만약 사람이 죽음으로써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면, 하나님이 그를 용서하셨고 그를 의롭게 하셨다는 것이 그에게 무슨 위로와 기쁨이 되겠습니까? 더욱이 만약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장난다면, 의롭게 살다가 고난을 받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차라리 마음대로 사는 게 더 낫지 않겠습니까? 더욱이 만약 죽음으로 모든 것이 사라진다면, 세월을 허송하며 마음대로 방탕한 생활을 사는 것도 뭐 그리 큰 잘못이겠습니까? 만약 하나님을 믿고 의롭고 신실하게 살아간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공의는 물론이고 하나님의 사랑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만약 죽은 자들의 부활이 없다면,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은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은 조롱을 받는 셈입니다. 만약 의인이 죽으면 만사가 끝장이라면, 그리고 죄인이 죽어도 만사가 끝장이라면, 의인에게 죽음은 허망한 종말이 될 것이고, 죄인에게 죽음은 안전한 도피처가 될 것입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의롭게 하시기 위해 아들을 희생 제물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의로움을 드러내시기 위해, 그리고 당신의 의로움을 드러내시기 위해서도 죽은 자들을 반드시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얼마 전에 말씀을 드린 대로 이스라엘 사람들의 가슴에서 부활의 소망이 모락모락 피어나게 된 것도 다만 "죽어도 영원히 살고 싶다", 아니 "영원히 죽고 싶지 않다"는, 어쩌면 추하고 부질없는 그런 생존본능 때문이 아닙니다. 부활의 소망이 생겨난 이유는 바로 의로운 하나님에 대한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의롭고 신실하신 분이라면, 의인이 죄인과 함께 음부에서 썩도록 내버려두실 리가 없다고 사람들은 믿었습니다. 아니 하나님이 의인을 반드시 다시 살리실 것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이 땅에서는 의로 인해 핍박을 당한 사람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이 땅에서는 무고하게 짓밟히고 찢기고 빼앗기고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형 가인에게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아벨로부터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에게 이르기까지, 그리고 인류의 역사에서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무고하게, 억울하게, 의롭게, 외롭게 죽어갔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억울함을 진정 누가 풀어 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들의 의로움을 누가 증명하고 보상해 줄 수 있겠습니까? 오직 공의의 하나님만이 그리하실 수 있습니다. 과연 공의의 하나님은 공의를 위해 사신 예수님을 죽음에서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과 함께 의로운 자들도 죽음에서 일으켜 세우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예수님 때문에 핍박을 받더라도, 낙담하거나 절망하지 않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 4:8-10). 부활의 소망이 있기에, 아니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 속에서 견고히 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비록 힘들더라도, 우리는 악과 대적할 수 있습니다. 비록 쓰러지더라도, 악과 타협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궁금한 질문이 일어납니다. 만약 의로운 자가 부활한다면, 죄인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가? 여기서 사람들의 의견은 서로 엇갈립니다. 어떤 사람들은 죄인은 죽음으로써 완전히 사라진다고 말합니다. 오직 그리스인에게만 영생이 약속되었기 때문에 불신자들은 당연히 죽음으로써 완전히 멸망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사람이 죽음으로써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면, 이것은 차라리 죄인들에게 기쁜 소식이 될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죽으면 다 해결이 되니, 아니 죽으면 모든 게 끝장이니 얼마나 좋습니까! 더욱이 죄를 짓느라 양심적으로 무척 괴로웠는데, 죽고 난 다음에는 아무도, 심지어 양심도 더 이상 괴롭히지 않을 테니, 죽는 것이 오히려 얼마나 다행이겠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굳이 의롭게 살 필요가 없어지는 셈입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공의는 어디서 찾을 수 있단 말입니까? 사도신경은 "예수님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 위해 다시 오신다"고 고백합니다. 죽은 자들이 죽음으로 이미 심판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장차 예수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죽어서 완전히 사라진 자들이 어떻게 심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들도 다시 살아나야만, 아니 하나님이 그들도 부활시키셔야만, 그들도 예수님의 심판대 앞에 설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만약 불의한 자들도 예수님 앞에서 부활하게 된다면, 그들은 영원한 형벌을 받기 위해 부활합니까, 아니면 그들에게도 구원의 기회가 다시 주어질 것입니까? 이 문제에 관해서도 사람들은 서로 완전히 엇갈린 견해를 내어놓습니다. 한편의 사람들은 불신자들이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라는 것입니다. 다른 한편의 사람들은 비록 불신자들이 어느 정도의 형벌을 받기는 하지만, 영원한 형벌을 받지는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도 두 가지 생각이 다 들어 있기 때문에 어느 한쪽 편만을 들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생애와 죽음을 생각해 본다면, 문제는 쉽게 풀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의인을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위해 오셨습니다. 바리새인들과는 달리 예수님은 죄인을 저주하시지 않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선포하시지 않고 하나님의 용서를 선포하셨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미움을 받으셨지만, 부활로 인해 예수님이 "옳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사실 죄인들은 남의 비난을 받기 전부터 이미 양심적으로 괴로워하는 자들입니다. 아무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고, 양심에 화인(火印)을 맞은 사람처럼 태연히 죄를 짓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하지만 그들도 악한 사람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불쌍한 사람이 아닙니까?

예수님은 죄인과 병자를 같은 부류의 사람으로 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의인과 죄인을 말씀하실 때, 건강한 자와 병자를 동시에 말씀하셨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막 2:17). 예수님은 건강한 자를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병든 자를 위해 오셨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가 없습니다. 건강한 자는 의사를 찾지 않지만, 의사가 찾아도 문전박대를 할 것입니다. 병자만이 의사를 찾으며, 의사는 오직 병자를 위해 존재합니다. 병자가 어떤 이유로 병을 얻었든, 사실 병자는 "나쁜 사람"이라기보다는 "불쌍한 사람"이 아닙니까? 불량, 악덕, 돌팔이 의사라면 모를까, 참 의사는 병자를 나무랄 수는 있겠지만 그를 더 나쁘게 만들 수 없지 않습니까? 참 의사로 오신 예수님도 죄인을 나무라실 수는 있겠지만, 죄인을 완전한 멸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으실 분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려고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십니다(딤전 2:4). 사도 바울도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기를 원하신다"고 말합니다(롬 11:32).

더 자세한 말씀은 나중에 다시 드리겠습니다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온 인류의 죄를 지셨다면, 예수님의 구원은 온 인류에게 미칩니다. 설령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구원을 끝까지 거부할지라도, 그들을 위한 예수님의 사랑은 한도, 끝도 없습니다. 설령 어떤 사람이 세상 끝까지 달아날지라도, 예수님은 그곳까지도 따라가십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에 사흘 동안 지옥에 내려가셨다는 고백도 바로 그런 뜻입니다. 예수님은 원수가 저주와 멸망을 받기를 원하시지 않았기에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과연 자신을 핍박한 죄인들을 용서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모든 인류를 위해, 의인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죄인들을 위해, 모든 사람들을 위해 저주와 형벌을 대신 지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부활도 모든 사람들을 위한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의인을 옳다고 인정하기 위해 일어났을 뿐만 아니라, 죄인에게도 새로운 공의와 새로운 생명을 선사하기 위해 일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도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동시에 증명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의 말대로 사랑은 영원합니다. 아니 사랑만이 영원합니다. 그런데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사랑하는 자와 영원히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죽음에서 일으켜 세우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에는 한계와 제한이 없습니다. 사랑은 또한 용서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원수도 사랑하고 원수를 친구로 만듭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하나님은 죄인도 구원하시고, 죄인의 친구가 되어 주십니다. 죄인도 끝내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뿌리치지 못할 것입니다. 죄인도 끝내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으리로다!"(롬 11:36).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물을 창조하시고 사랑하실 뿐만 아니라 만물에게 놀라운 구원과 영광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크고 놀랍고 오묘하고 위대한 은혜를 영원토록 찬양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