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웃고 또 웃어라!

 

시 126:1-6

2006년 2월 19일, 현풍제일교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주님의 평화가 가득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지금까지 저는 예수님의 부활이 갖는 네 가지의 의미에 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다시 요약하자면, 예수님의 부활은 새로운 창조였고, 예수님이 옳았음을 증명한 사건이었고, 만물의 부활의 서막이었으며, 죽음을 죽인 승리의 날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부활하셨고, 예수님의 부활 안에는 이처럼 놀랍고 엄청난 약속과 능력이 들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부활을 믿는 우리는 마땅히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좀 더 쉬운 질문을 던져 보겠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을 만나실 때마다 어떤 말씀을 하셨습니까? 지난번에 말씀을 드린 대로 "샬롬"이었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는 인사 말씀입니다. 순수 우리말로 하면, "안녕할지어다!"라는 말이 됩니다. 히브리어 "샬롬"은 우리말로 대개 "평강, 평화"로 번역됩니다만, "샬롬"이라는 단어에는 이보다 훨씬 풍부한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샬롬"은 건강, 평화, 안녕, 복지, 기쁨, 축복 등과 같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처럼 "샬롬"은 구원에 관한 좋은 내용을 모두 담고 있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어로 이보다 더 좋은 단어는 없습니다.

지난번에도 말씀을 드렸다시피, 부활 전의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어떤 인사 말씀을 하셨는지는 분명히 알 수가 없습니다. 부활 전의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특별한 인사 말씀을 던지시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성경은 이를 분명히 기록하지 않았겠습니까? 부활 전의 예수님이 사람들을 만나실 때마다 먼저 던지셨던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 하지만 부활 후의 에수님은 완전히 달라지셨습니다. 사람들을 만나실 때마다 예수님은 "샬롬,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는 말씀을 먼저 던지셨습니다. 이처럼 부활은 예수님의 운명만이 아니라 말투까지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렇다면 부활 후의 예수님의 표정은 어떠했겠습니까?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까지 예수님의 표정은 분명히 고통과 슬픔으로 가득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부활 후의 예수님의 표정은 기쁨과 웃음으로 가득하였을 것입니다. 바로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만나실 때마다 "샬롬"이라는 인사 말씀을 던지셨을 것입니다.

바로 그렇게 때문에 예수님의 입에는 항상 웃음이 가득하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입가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하였고, 이 웃음은 제자들과 세상 사람들을 넘어서 온 우주까지 퍼져 나갔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부활 이후로 온 우주는 웃음으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부활 전의 예수님은 자주 슬퍼하셨고, 그래서 눈물도 종종 흘리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매사에 울기만 하신 것이 아닙니다. 만약 예수님 제자들에게 자주 "기뻐하고 즐거워라"는 말씀을 하셨다면, 예수님도 자주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부활 전의 예수님이 친히 웃음을 보이셨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물론 부활 후의 예수님도 웃음을 보이셨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샬롬을 전파하시던, 특히 부활 후부터는 승리의 소식을 전파하시던 예수님이 어찌 입가에 웃음을 띠시지 않았겠습니까?

그렇다면 부활 후의 예수님은 두려움과 놀라움에 가득 차있던 제자들에게 아마도 이런 우스개를 던지셨을 지도 모릅니다. "용용 몰랐지? 너희들은 내가 영 죽을 지 알았지?" 이런 우스개 말씀 때문에 제자들은 아마도 박장대소(拍掌大笑)하고 포복절도(抱腹絶倒)하며 "깔깔깔"하고 웃었을 지도 모릅니다. 언제나 점잖게 "허허허" 웃으실 법한 예수님도 아마도 이 때만은 "껄껄껄"하고 웃으셨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 자신에게만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그리고 온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고 온 우주에 웃음을 가져 오셨습니다. 이 날 이후로 우주는 정말 웃음으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전설따라 삼천리"가 아니라 실제로 온 우주는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웃음으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어디 우주뿐이겠습니까? 하늘에서 근심어린 눈빛으로, 걱정어린 표정으로 내려다보시던 하나님 아버지와 뭇 천사들도 이 날 이후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온통 웃음과 춤과 노래로 가득 채웠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이후로 이제 하늘과 땅은, 그리고 하늘과 땅에 충만한 모든 것들도 웃고 춤추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이제부터는 망설이지 말고 늘 웃으십시오. 늘 춤추십시오. 늘 노래하십시오.

"세상이 얼마나 고달픈데 늘 웃으라니, 세상에 슬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늘 웃으라니!" 이게 말이 되는 말입니까? 기쁠 때에는 물론 웃어야 하겠지만, 슬플 때는 울어야 하겠지요! 아니 기쁠 때에는 절로 웃음이 나오듯이, 슬플 때에도 절로 눈물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어찌 매사에 희희낙락할 수 있습니까! 어찌 그렇게 싱겁고 가볍고 무책임한 웃음을 웃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세상만을 쳐다본다면, 사람만을 쳐다본다면, 내 모습만을 쳐다본다면, 늘 웃을 수야 없겠지요! 세상만을 쳐다보면, 웃음과 울음은 늘 반복됩니다. 달이 차면 기울고, 달이 기울면 차듯이, 세상 환경도 좋다가 나빠지고, 나빠지다가 좋아집니다.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속담, 아니 실제의 이야기처럼 좋은 처지가 도리어 나쁜 처지로 변하기도 하고, 거꾸로 나쁜 처지가 도리어 좋은 처지로 변하기도 합니다. 사람만을 쳐다봐도, 웃음과 울음은 늘 반복됩니다. 남이 웃으면 나도 따라 웃습니다. 남이 울면 나도 따라 웁니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웃으면 나는 울고, 그 사람이 울면 나는 웃습니다. 내 모습만을 바라보아도 그렇습니다. 거울 속의 나, 아니 내 마음은 시시각각으로 울고 웃고, 웃고 웁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잘 웃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잘 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네 살 짜리 어린이는 하루에 평균 500번 웃지만, 어른은 하루에 평균 6번 웃는다고 합니다. 어른도 타고난 성격과 환경에 따라 낙천주의자가 되는가 하면, 비관주의자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떤 신념과 신앙을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 사람들이 웃고 우는 이유와 모습도 다릅니다. 좌우간 세상의 이치를 따지자면, 사람은 성격과 환경과 신념에 따라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합니다. 세상 이치를 크게 깨달은 사람들, 예컨대 부처와 부처를 믿은 사람들은 세상 만사를 초월하는 듯한 초연한 웃음을 웃기도 합니다. 법당에 앉아 있는 부처의 모습은 내면적인 깨달음 속에서 만사를 초월하는 듯한 잔잔한 미소를 띠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웃음은 부처의 미소와는 조금, 아니 많이 다릅니다. 부처의 미소가 세상을 달관한 듯한 초연한 웃음이라면, 예수님의 웃음은 세상을 이긴 웃음입니다. 그러므로 부처의 미소는 잔잔한 웃음이라면, 예수님의 웃음은 쾌활한 웃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가 된 우리는 언제나 쾌활하게 웃어야 합니다. 고통 속에서도, 박해 속에서도, 심지어 죽음 속에서도 쾌활하게 웃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부활 안에서 이제 고통과 박해와 죽음은 허깨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니 예수님이 주신 소망 안에서 고통과 박해와 죽음은 도리어 축복의 통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고통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죽는 자는 복이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찌 매사에 기뻐하고 웃고 즐거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적어도 예수님의 부활 이전에는 우리가 울고 또 웃었지만, 예수님의 부활 이후부터 우리는 웃고 또 웃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죽음과 절망을 비웃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제자들만이 아니라 우리도 웃기셨습니다. 완전히 바보처럼 죽어간, 완전히 무능한 멍청이처럼 죽어간 예수님이 돌연히 살아서 돌아 오셨으니, 놀랍다 못해 어찌 즐겁고 우습지 않겠습니까? 만약 죽었다고 생각한 자식이, 아니 실제로 죽은 자식이 돌아온다면, 얼마나 기쁘고 우습겠습니까! 하물며 만인의 눈앞에서 완전히 죽은 예수님이 살아나셨으니, 그리고 예수님 때문에 의로운 자들과 불의한 자들까지, 만물까지 다시 회생하고 부활한다니, 얼마나 즐겁고 우스운 일입니까! 아니 얼마나 우리 모두를 웃기는 소식입니까? 온 우주가 이 날 이후로 깔깔 웃고 있는데, 어찌 우리가 웃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남들은 다 웃는데, 나 혼자 영문을 몰라서, 어리벙벙하여 웃지 않으면, 참으로 어색합니다. 그럴수록 남들은 더 배꼽을 잡고 웃습니다. 아니 남들이 다 웃으면, 영문을 모르는 나도 절로 웃게 됩니다. 제가 독일에서 유학할 때, 아무리 제가 독일어를 잘 한다고 해도, 솔직히 강의를 완전히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대충 강의 내용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괴롭게도 교수의 우스개 소리, 농담은 참으로 알아듣기 어려웠습니다. 독일 학생들은 다 깔깔거리고 웃는데, 저 혼자 멍청하게 있는 것은 참으로 어색한 노릇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저도 마치 교수의 우스개를 알아들은 듯이 거짓 표정을 지으며 웃어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일부로 웃었지만, 생각해 보니 억지로 웃는 제가 참으로 우스워서 또 웃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도 남들이 웃는 모습이 재미있어서 더 크게 웃게 되었습니다. 이래저래 저도 결국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영문을 몰라도 웃을 수 있습니다. 억지로 웃을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정말 우리는 웃게 됩니다. 웃게 되면, 만사가 좋아 보입니다. 웃게 되면, 만사가 밝아 보이고, 또 실제로 밝아 옵니다.

요즘 들어와서 새삼 웃음의 효력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가 상당히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웃음으로 병자를 치료하는 의사들과 웃음을 전파하는 전도사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웃음은 보약이다"는 말이 있고, "웃으면 젊어지고, 성내면 늙는다(一笑一少 一怒一老)"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처럼 웃음은 정말로 건강과 수명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웃음은 백혈구의 생명력을 강하게 합니다. 웃음은 몸의 항체를 분비하여 더욱 튼튼한 면역체를 갖게 합니다. 웃을 때에 심장박동수가 두 배로 증가하고, 폐 속에 남아 있던 나쁜 공기를 신선한 산소로 빠르게 바꿔줍니다. 웃음은 근육, 신경, 심장, 뇌, 소화기관, 내장을 한꺼번에 움직여 줍니다. 웃음은 스트레스와 긴장, 우울함을 줄입니다. 웃음은 통증을 강하게 억제하는 호르몬을 분비합니다.

그래서 예방의학 전문 의사들은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합니다.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웃는 표정을 연습하라. 거의 모든 스트레스는 욕심으로 인해 생긴다고 하니, 마음을 비워라. 집 환경을 밝게 꾸며라. 우습거나 즐거운 장면을 연상하라. 자꾸 웃다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웃기는 영화나 드라마, 비디오, 유머, 책, 유머 사이트 등을 자주 보아라. 아이를 즐겁게 하거나, 간지럽게 하라. 아이들의 웃음은 그 자체가 기쁨이므로 따라 웃지 않을 수 없다. 긍정적인 사고로 살아가라. 매사를 긍정적이며 낙천적으로 생각하도록 노력하고, 남의 실수도 즐겁게 받아들이며, 항상 좋은 쪽으로 생각하라. 항상 나보다 못한 사람과 비교하라. 한도 끝도 없는 위를 보지 말고 낮은 곳을 보며, 조그만 일에 행복해라.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웃도록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웃을 때에만 건강하도록, 잘 되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에 따라서 우리는 웃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구원 원리를 볼 때에도 우리는 항상 웃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웃음을 주려고 오셨습니다. 비록 우리가 잠시는 울어야 하지만, 울음이 끝은 아닙니다. 비록 우리가 때로는 애통해야 하지만, 애통이 마지막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웃을 것이기 때문입니다"(눅 6:21). 슬픔과 애통은 결국 기쁨과 웃음을 위한 전주곡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통 중에서도 소망을 바라보며 즐거워해야 합니다. 실로 예수님은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를 주셨고, 세상을 넉넉히 이길 수 있는 소망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어찌 우리가 즐거워하고 웃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특히 예수님의 부활은 완전한 승리와 웃음의 시작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생활에서 풀려나는 것을 기뻐하며 불렀던 노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 여호와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괴로운 포로생활에서 고향으로 되돌아오는 것도 이처럼 기쁘거늘, 하물며 죄악과 질병과 죽음과 절망의 포로생활로부터 완전히 풀려나는 것, 예수님이 시작하신 부활의 생명에 들어가는 것은 얼마나 영광스럽고 놀랍고 고맙고 즐거운 일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처한 형편이 어떠하든, 소망 중에 늘 즐거워하십시오. 범사에 항상 기뻐하십시오. 우는 자들과 더불어 잠깐 동안은 울어야 하겠지만, 언제까지 그들과 함께, 아니 그들보다 더 오래 울고만 있어야 하겠습니까! 우는 자들에게 우리는 슬픔을 이길 웃음을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웃음으로 자신과 이웃과 세상의 슬픔을 이기시고, 여러분의 소망으로 자신과 이웃과 세상의 절망을 이기십시오. 범사에, 매사에,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웃고 또 웃으십시오! 하늘과 땅이, 아니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더 큰 웃음, 아니 영원한 웃음으로 보답하실 것입니다. 소망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이여, 우리 모두 다같이 한번, 아니 지금부터 영원히 크게 웃어 봅시다. 킥킥킥! 하하하! 깔깔깔! 으하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