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창조주 하나님

 

창 1:1

 2005년 6월 19일, 현풍제일교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주님의 평화가 가득 넘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지난 주일에 이어 오늘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TV가 나오기 전에는 우리는 주로 라디오를 통해 세상 소식을 들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에 다닐 즈음에 유명한 라디오 드라마 중에 '하숙생'이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그 줄거리와 제목은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최희준 씨가 불렀던 노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노래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나그네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 없이 흘러서간다." 이 노랫말의 의미를 풀어보면, 인생이라는 것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름이 흘러가고 강물이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세월과 자연에 이치에 따라, 아무런 정도 미련도 남기지 말고 한 세상을 살아가자는 뜻입니다.

인생이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를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왜 모른다는 말입니까? 아무리 배워도 모르겠고,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낳으신 부모님들은 우리가 조상의 핏줄을 받아 태어났다고 말하지만, 조상이 어디서 왔는지는 말해 주지 못합니다. 생물학을 가르치시는 선생님들은 우리가 인류와 닮은 동물로부터 진화해 왔다고 말하지만, 모든 존재가 어디서 생겨났는지는 말해 주지 못합니다. 우주물리학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만물이 까마득한 옛날에 갑자기 생겨났다고 말하지만, 누가 갑자기 만물을 만들었는지는 말해 주지 못합니다. 그 누구도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는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아니 정직하게 말하면, 가르쳐 주지 못합니다. 고등학교의 국어 교과서에는 김상용 시인의 시가 실려있는데, 그 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왜 사느냐? 물으면, 그냥 웃지요." 왜 웃습니까? "왜 사는지를 알 수 없거늘, 바보같이 왜 이런 질문을 하느냐?"는 그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왜 사는지를 왜 모른다고 합니까?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를 전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디로 가야할지도 모른다는 말입니다. 왜 모릅니까?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말은 단지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는 말과 같은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말은 "인생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인생이 무슨 이유로 태어나서 무슨 목적으로 사는지?"를 전혀 모른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마지막 날에 비로소 심판을 받기 때문에 불쌍한 사람이 아니라, 인생의 의미와 목적도 모르고 살기 때문에 이미 이 세상에서 불쌍하게 사는 사람들입니다. 물에 떠내려가는 부평초처럼,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그렇게 세월따라 유행따라 아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인생은 덧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허무주의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인생을 비관하고 자살하는 사람들은 거의 무신론자들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인간은 죽으면 모두 흙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쾌락주의에 빠지기 쉽습니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죽으면) 못 노나니" 하면서 언제 죽을지도 모르고 즐기려고 하는 사람들도 거의 무신론자들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다르게 말합니다. 성경은 사람이 태어난 이유와 목적이 있고,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 있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바로 성경의 첫 장을 펼치자마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사도신경도 바로 첫 문장에서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을 믿사오니"라고 고백합니다.   

   

(1) 그러면 하나님이 천지를 만드셨다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과학자가 알려주어서 압니까? 아니면 자연 만물을 보고 저절로 깨달아 압니까? 아닙니다. 오직 믿음으로 압니다. 믿음의 위대함을 노래한 히브리서 기자는 말합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 11:3). 현미경으로, 혹은 망원경으로 아무리 사물을 살펴보아도, 하나님의 입과 손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물이 하나님의 입과 손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믿음의 눈으로 봅니다. 믿음의 귀로 듣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시19:1-4).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이 없는 것에서 있는 것을 만드시는 분임을 더욱 분명히 믿게 되었습니다. 부활은 무엇입니까? 죽은 몸이 다시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죽은 몸이 다시 일어나는 사건은 하나님이 인간을 새롭게 창조하시는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죽은 몸을 새롭게 창조하신다면, 자연 만물도 새롭게 창조하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몸도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만물을 새롭게 창조하신다면, 만물이 이미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부활의 사건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을 다시 새롭게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부활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믿음으로 알 수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은 다만 기절하신 예수님이 다시 일어나신 사건이거나, 제자들의 속임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도마처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지 않으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건입니다. 그래도 도마는 다행히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 흔적을 보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보고 믿는 자보다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더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미국에 가보지도 않은 사람이 미국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요즘에는 TV와 사진을 보고 알 수 있지만, TV와 사진이 없던 시절의 사람들은 미국에 가 보지 않고도 미국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미국을 갔다온 사람을 믿고 알았습니다. 이처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보지도 못한 우리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한 증인들의 말을 믿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도, 천지 창조도 오직 믿음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는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하는 신비한 기적이요, 감히 상상하지도 못한 일을 믿게 하는 놀라운 은총입니다.

 

 (2) 그러면 하나님은 천지를 어떻게 만드셨습니까? 오직 말씀 한 마디로 아무 것도 없는 데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므로 말씀 한 마디로도 원하시는 것을 다 만드실 수 있습니다. 그러면 말씀이 무엇이길래 그토록 신통망통하다는 말입니까? 사람의 말도 실로 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 한 마디로 사람을 죽이고 살릴 수 있습니다. 이번에 전방의 한 군부대에서 한 사병이 총기를 난사하여 동료 군인 8명을 죽인 끔직하고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지금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지당한 여러 의견들이 있겠습니다만,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소심하고 내성적이고 행동이 느린 졸병인 그가 자신을 모독하는 말 때문에 심한 상처를 입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말은 사람을 죽이는 대단한 힘이 있습니다. 말 한 마디로 천냥 빗도 갚을 수 있고, 말 한 마디로 죽일 사람을 살릴 수 있으며, 말 한 마디로 멀쩡한 사람을 병신으로 만들거나 죽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잠언은 말의 중요함을 말합니다.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잠 10:19). "혹은 칼로 찌름같이 함부로 말하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 같으니라"(잠 12:18).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은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잠 15:23). 말을 잘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지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말 한 마디로 없는 것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말 한 마디로 부하와 로봇을 움직일 수는 있어도, 말 한 마디로 없는 물건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마술사들이 그렇게 하는 것처럼 보여도, 다 눈속임일 따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으로 모든 만물이 생겨났습니다. 말씀으로 모든 만물에 질서가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말씀으로 모든 만물이 계속 새로워집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놀라운 능력을 발휘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곧 사건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죄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 4:12)라고 말합니다.

 

(3)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천지를 왜 만드셨습니까?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오직 사랑 때문입니다. 오직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시려고 이 세상과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자식들이 여러분에게 "어머니, 왜 나를 낳으셨나요?"라고 물으실 때, 여러분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나도 몰라, 어쩌다 생겼어"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심심해서 낳았어"라고 말씀하십니까? 아니면 "실수로 낳았어"라고 말씀하십니까? 아니면 "노후대책을 위해 낳았어"라고 말씀하십니까? 사실 이 모든 말에 정답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부모님들이 자녀에게 해야 할 정답은 이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너를 사랑해서 낳았어"라고 말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녀들의 성격이 비뚤어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자녀들이 또 이렇게 물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누군지 미리 어떻게 아시고 나를 사랑하셨다는 말이에요?" 그럴 때 여러분은 뭐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물론 네가 태어나지 않았으니까, 너를 미리 사랑했다고는 말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내가 사랑으로 너를 낳았으니까, 너는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야"라고 말씀하는 게 옳습니다.

우리 모두는 사랑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누구의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났다는 말입니까? 물론 부모친척, 형제자매와 친구들의 사랑입니다. 하지만 더 분명한 정답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를 부를 때마다 우리는 코끝이 찡해오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낍니다. 나 같이 하찮은 존재를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만드셨다니,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고맙고 감격스럽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를 창조하신 사랑의 하나님에게 늘 감사와 사랑을 돌립시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니 어떤 처지에도 기쁘게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