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다시 오시리라

 

행 1:9-11

2006년 3월 19일 : 현풍제일교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주님의 평화가 가득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승천하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셨고, 그리하여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에 참여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주와 왕으로서 만물을 통치하시는 분이 되셨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이 하늘의 보좌에서 뭇 천사들의 호위를 받으시며, 홀로 영광을 누리신다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더욱이 하늘에 계신 예수님이 이 세상의 일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듯이, 홀로 하늘의 영광을 즐기신다고 오해해서도 안 됩니다. 교회의 머리가 되신 계신 예수님은 성령 안에서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말씀과 성례전을 통해 우리 안에 오십니다. 그리고 만물의 머리가 되신 예수님은 만물 안에서 만물을 통치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통치를 벗어날 수 있는 곳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만물은 예수님의 통치 아래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주일에 말씀을 드렸다시피, 예수님의 통치는 아직 완전히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성령 안에서 보이지 않게 통치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통치는 오직 믿음 가운데서만 파악되고 실천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런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통치를 말로 선포해야 하고, 생활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 끝 날까지, 그리고 세상 끝까지 예수님이 만물의 주와 왕이 되신다는 사실을 알려야 합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교회는 복음 전도, 선교의 사명을 충성스럽게 완수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다시 오십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다시 오십니다. 이천 년 전에 육신으로 오셨던 예수님은 지금 성령 가운데 우리 가운데 오고 계십니다. 그리고 지금 성령 가운데 오고 계시는 예수님은 장차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다시 오실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대로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은 하늘로 가신 그대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이것은 다만 천사들의 약속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장차 영광 중에 다시 오신다는 것을 여러 차례 말씀하셨습니다. 인자(人子)이신 예수님은 장차 영광에 싸여 거룩한 천사들을 거느리고(마 25:31), "큰 권능과 영광에 싸여"(막 13:26) 다시 오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가 되면, 사람들은 "전능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막 14:26)을 보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하늘'이란 눈에 보이는 '자연의 하늘'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은 '은혜의 하늘', 즉 하나님이 계신 거룩한 곳을 말합니다. 그리고 '하늘의 구름'이란 하늘에 떠 있는 물방울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의 가리개(출 16:10)와 하나님의 임재를 표시합니다(출 13:21, 계 10:1).

그러므로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말을 여러분은 순진하게 문자 그대로 생각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에 물방울을 타고 올라가시지 않았듯이, 다시 오실 때에도 물방울을 타고 오시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은 손오공처럼 구름을 타고 다니는 마술사가 아닙니다. 만약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셨다면, 구름이 마치 하늘 두레박처럼 하늘 높은 곳에서 땅으로 내려왔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구름은 그리 높은 곳에 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비행기로도 능히 구름을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날씨가 흐린 날에 작은 산에만 올라가도, 구름은 손에 잡힐 듯이 가까이 있고, 구름이 온 몸을 감싸줍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구름에 올라타셨다는 말입니까? 만약 그렇다면, 구름이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곳에서는 예수님은 다시 무엇을 갈아타고 하늘로 올라가셨단 말입니까? 아무리 신기한 구름이 있어도, 아무리 멀리 갈 수 있는 우주선이 있어도, 이것들이 예수님을 하늘로 인도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올라가신 하늘은 자연의 하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예수님이 정말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신다면, 갑자기 어디서 나타나셨다가 구름을 올라타신다는 말입니까? 그리고 만약 예수님이 진짜로 구름을 타고 오신다면, 모든 사람들이 어찌 동시에 예수님을 볼 수 있겠습니까? 마태복음 24장 27절에 의하면 인자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에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이는 것과 같이" 갑자기, 세상 천지에 두루 보이도록 나타나신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예수님이 구름을 타시는 것보다는 차라리 번개를 타시는 게 더 낫지 않겠습니까? 그래야만 순식간에 모든 사람들이 번개를 보듯이 예수님을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지구 반대편에 사는 사람들은 번개를 타고 오시는 예수님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말은 다름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나님의 영광에 둘러싸여 놀라운 능력으로 오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왜 다시 오십니까? 사도신경은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을 심판하려고" 다시 오신다고 말합니다. '심판'하면, 요즘 사람들은 운동 경기를 생각하기 쉽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 야구팀이 세계 4강의 대열에 올랐기 때문에 온 국민이 열광하고 있습니다. 세계 최강팀인 미국 팀과 일본 팀을 꺾고, 아니 여섯 번 시합을 다 이기고 기대 밖에 놀라운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에 축구 월드컵에서 세계 4강의 대열에 올랐던 그 날처럼 온 국민이 기뻐하고 있습니다. 모든 운동 경기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심판은 공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미국이 처음 주최하는 세계야구대회(WBC)에서 미국 심판이 편파적으로 판정을 내렸다고 말이 많습니다. 더욱이 미국은 자기에게 유리하게 경기 일정을 짜는 등, 강대국답지 않게 매우 불공정한 행동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팀은 결국 4강 대열에 끼이지 못하고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하늘의 심판자가 공정한 심판을 내리신 탓일까요?

이 세상에서는 이미 많은 심판과 재판이 이루어져 왔는데, 굳이 예수님이 다시 심판하실 필요가 있습니까? 그리고 모든 일에 심판이 꼭 이루어져야만 합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셔야 하는 이유는 세상에서 심판이 제대로, 그리고 공정하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불의에 의해 희생을 당한 수많은 사람들의 아우성이 하늘 끝까지 사무치기 때문입니다. 정의를 향한 목마름으로 탄원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기도가 하늘의 보좌를 흔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심판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공의로운 분이시기 때문입니다(욥 34:17). 하나님은 정의와 공의를 사랑하십니다(욥 37:23, 시 37:28, 사 61:8). 그러므로 하나님은 세상을 공의로 다스리십니다(삼하 23:3). 하나님은 공의로 옷을 삼으십니다(욥 29:14). 그러므로 하나님은 세상을 공의로 심판하실 것입니다(시 9:8). 하나님의 종 메시아도 공의로운 분입니다(슥 9:9). 그분은 세상에 공의를 베푸실 것이며(사 42:3), 세상에 공의를 세우실 것입니다(사 42:4). 그분은 세상을 공의로 심판하실 것입니다(계 19:11). 메시아는 가난한 사람들을 공의로 재판하시고, 세상에서 억눌린 사람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선포하실 것입니다(사 11:4).

만약 정의로운 심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 분쟁과 전쟁이 그칠 날이 없을 것입니다. 지금도 지구 곳곳에 분쟁과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도 대개 불의 때문입니다. 만약 불의가 심판을 받지 않으면, 만약 정의가 수립되지 않으면, 이 세상은 온통 피와 눈물과 한숨으로 넘쳐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의를 제거하고 공의를 세움으로써 온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 예수님은 다시 오십니다. 다시 오시는 예수님은 민족들 사이의 분쟁을 판결하시고, 백성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게 하시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게 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나라와 나라가 칼을 들고 서로를 치지 않게 될 것이며, 다시는 군사훈련도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사 2:2-4). 사람마다 평화롭게 살 것입니다. 사람마다 아무런 위협을 받지 않으면서 살 것입니다(미 4:1-4).

심지어 메시아가 다시 오시는 날에는 자연 안에도 완전한 평화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울 것입니다. 송아지와 새끼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풀을 뜯고, 어린아이가 그것들을 이끌고 다닐 것입니다. 암소와 곰이 서로 벗이 되고,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눕고,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입니다.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 곁에서 장난하고, 젖뗀 아이가 살무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서로 해치거나 파괴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물이 바다를 채우듯이, 주님을 아는 지식이 땅에 가득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사 11:6-9). 그러므로 메시아가 다시 오시는 날은 평화가 시작되는 날이 될 것입니다. 메시아는 불의와 증오를 심판하심으로써 평화의 우주적 왕국을 세우실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항상 궁금해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곧 오신다, 속히 오신다"고 약속하신 예수님은 도대체 언제 다시 오신다는 말입니까? 예수님은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나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마 24:36, 막 13:32)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신랑이 오기를 기다리던 열 처녀처럼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인이 더디 온다고 생각하고 술에 취하고 졸고 자던 동안에 주인이 갑자기 나타나서 큰 낭패를 당했던 악한 종(마 24:48, 눅 12:45)처럼 되지 말하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속히 오신다"던 예수님의 약속이 더디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오래 참으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멸망하지 않고 회개하여 구원을 받기를 하나님이 간절히 원하시기 때문입니다(벧후 3:9).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하는 사람들의 어리석을 말을 믿고 이리저리 끌려 다니지 마십시오. "하나님 나라는 어디나 있고, 바로 우리 가운데도 있습니다." 바로 그처럼 "예수님이 이 날, 이 때에 오신다"는 사람들의 허황한 말도 믿지 마십시오. 1992년에 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휴거파동'을 여러분은 기억하시지요! 이장림 씨가 주장한 '시한부 종말론'을 믿던 사람들이 1992년 10월 28일 새벽 12시에 예수님의 재림과 휴거가 이루어진다고 믿고, 흰옷을 입고 찬양하면서 휴거될 것만을 고대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간절히 바라던 휴거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기독교 전체가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와 같이 재림의 날짜를 잘못 집었던 사람들은 기독교의 역사에서 부지기수로 많았습니다. 어리석은 평신도만이 아니라 뛰어난 신학자들과 교회 지도자들 중에도 그렇게 착각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므로 다시 오실 예수님이 "나도 모르신다!"고 하신 재림의 날짜를 "나는 안다!"고 허풍과 사기를 치는 사람들을 조심하십시오.

다만 한 가지 우리가 꼭 알아야 할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언제 다시 오실 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예수님은 그 날에 어떤 징조가 일어날지는 소상히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주님이 재림하실 때와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말씀하신 다음에 종말의 징조에 대해 몇 가지 말씀을 하셨습니다.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지만, 아직 종말은 아니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마다 기근과 지진이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다.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고, 너희를 죽일 것이다.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할 것이다.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질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다"(마 24:3-13). 그런데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전쟁과 기근과 지진과 박해와 같은 징조들은 지금까지 자주 일어났고 앞으로도 자주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언제 종말이 올지 확실히 알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미혹을 받거나 속임을 당하지 않도록 조심하시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종말의 징조에 관한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은 상당히 분명하게 들립니다.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 모든 민족에게 천국 복음이 전파된 후에 비로소 종말이 온다는 뜻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아직 종말은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한 민족과 종족이 상당히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모든 민족에게 더 빨리 복음을 전한다면, 주님은 더 빨리 오실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재림을 촉진하기 위해 더 열심히 선교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수님의 재림을 임의로 앞당길 수 있다는 것은 영적인 교만입니다. 왜냐하면 선교의 주체도, 엄밀히 말하면,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만 선교의 도구일 따름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눈감고 아옹!" 하자는 말은 아닙니다. "감나무 아래 입벌리고 앉아 있자"는 말도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마지막 분부에 따라 세상 끝까지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다만 마지막 날은 오직 하나님에게 맡기고, 우리는 최선을 다 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만 우리는 매일 "마라나다! -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마치 도적같이 갑자기 오실 지 모르기 때문입니다(살전 5:2, 5:4, 벧후 3:10, 계 3:3, 16:15).

"예수님이 언제 오시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오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로 이 날을 기다리면서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항상 깨어 있으시길 바랍니다. 때가 되면 반드시 거둘 것이므로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마시길 바랍니다(갈 6:9).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공의로운 재판관이 계시므로, 비록 악인이 형통한 것을 보더라도 부러워하지 마시길 바랍니다(잠 24:1, 24:19). 비록 이 세상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더라도, 환난 중에 참으시며 소망 중에 즐거워하시기를 바랍니다(롬 12:12). 의로운 재판장이 되신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그분이 여러분의 눈물을 씻어주시며, 여러분에게 면류관(영광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을 씌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광의 그 날을 바라보며, 선한 싸움을 싸웁시다. 끝까지, 죽기까지 충성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