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나는 믿습니다!

 

막 9:17-27

2006년 4월 30일 : 현풍제일교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주님의 평화가 가득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지금까지 저는 여러분에게 사도신경을 중심으로 교리 설교를 해왔습니다. 오늘 저는 35번째 설교로써 긴 연속 설교를 드디어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딱딱하고 지루한 설교를 인내심을 갖고 들어주신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이런 설교를 시작할 때부터 지금 끝날 때까지 솔직히 제게는 마음의 부담감이 늘 있었습니다. 재미가 없는 설교를 성도들이 끝까지 잘 들어줄까? 더욱이 성도들이 어려운 교리 설교를 잘 이해할 수 있을까? 혹시 설교가 현실과 동떨어진, 아니 공중에 붕 떠 있는 설교가 되지 않을까? 이런 저런 걱정이 없지는 않았지만, 끝까지 잘 들어주신 성도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끝까지 지혜와 용기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언제까지 감정을 흥분시키다가 금방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게 하는 설교를 듣고 계실 겁니까? 언제까지 부드러운 음식, 달콤한 젖과 연한 죽만을 먹기를 좋아하는 어린 아기와 같은 신자가 되실 겁니까? 비록 씹기 어렵고 소화하기가 거북하더라도, 질기고 딱딱한 고기도 종종 먹어야만 건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처럼 지루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설교였지만, 저의 설교를 통해 여러분의 신앙이 날로 성장하고 성숙해졌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로마서 10장 10절은 "마음으로 믿어서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마음으로만 믿지 않고 입으로 분명히 고백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리고 로마서 10장 13절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마음으로 주님을 믿기만 할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주님이 누구이신지를 모른다면, 주님의 이름을 어떻게 부를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만약 주님이 하신 일을 모른다면,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어떻게 알 수 있겠으며, 만약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모른다면, 주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우리는 우리 주님, 즉 하나님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그분을 정확히 알아야만 그분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위급하고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게 될 때, 그분의 이름을 부를 수 있고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20절은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바로 사도들의 터 위에 세워졌습니다. 교회는 사도들의 신앙고백 위에 서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계의 모든 교회가 공통적으로 사도신경을 고백합니다.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것은 곧 사도들이 고백했던 신앙을 "우리도 믿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도신경은 바로 우리가 믿는 주님이 어떤 분이시며, 그분이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가장 잘 설명해 줍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이 어떤 분이시며,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를 사도신경을 통해 자세히 배웠습니다.

사도신경은 세례를 받는 자들에게 기독교의 근본 교리를 가르치기 위해서 만들어졌습니다. 세례를 받는 자들은 회중 앞에서 자신들에게 주어진 질문에 대해 "나는 믿습니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3세기 초엽에 세례를 받는 사람들은 세 가지 질문을 받았습니다. 첫째, 당신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습니까? 둘째, 당신은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시어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고 장차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셋째, 당신은 성령을 믿으며, 또한 거룩한 공교회와 육체의 부활을 믿습니까? 이와 같은 세 가지 질문에 대해 "예, 나는 믿습니다"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내용이 조금 더 보충되어, 바로 지금 우리가 고백하는 사도신경이 완성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주일마다 사도신경을 고백합니다. "나는 믿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믿습니다"라고 우리가 고백할 때, "믿는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그리고 "믿는다"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주며, 믿음은 무슨 능력을 갖고 있습니까? 우리는 종종 "나는 너를 믿는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을 믿는다는 뜻도 되고, 그 사람의 능력을 믿는다는 뜻도 됩니다. 그렇다고 우리는 그가 아무런 거짓말도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그가 전혀 실수하거나 실패하지도 않는 사람이라고 과신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의 연약함과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를 믿어 줍니다. 그에게 신뢰를 겁니다. 즉 그가 끝까지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이처럼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라는 말은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신뢰한다"는 뜻입니다. 설령 사람은 거짓말하고 실수하고 실패하더라도, 하나님은 결코 그러실 수 없다는 것을 전폭적으로, 절대적으로 신뢰한다는 뜻입니다.

"신뢰한다"는 말은 단지 "기대한다"는 뜻을 넘어서 "맡긴다"는 뜻을 갖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을 때, 나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합니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할 때, 나는 나의 모든 것을 그분에게 맡깁니다. 그분의 약속과 말씀에 나를 던져 버립니다. 아니 그분의 품에 나를 던집니다. 그분의 활동과 말씀이 진실하다는 것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바로 신실하고 정직한 그분에게 나의 모든 것을 맡깁니다. 나의 운명을 그분에게 송두리째 던져버립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비행기를 탈 때마다 비행기를 운전하는 조종사를 믿고, 우리의 몸을 그에게 맡깁니다. 하지만 우리가 비행기에 오를 때, 다만 조종사만을 믿지 않습니다. 우리는 또한 비행기의 성능도 믿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공기(부력)의 힘도 믿습니다. 공기가 비행기를 떠 받쳐줄 것을 믿습니다. 이 모든 것을 믿고 우리는 안심하고 비행기에 오릅니다.

고소 공포증을 느끼는 사람들은 비행기를 잘 타려고 하지 않습니다. 물론 비행기를 타지 않으면, 떨어질 염려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비행기를 전혀 안 타는 것도 정상은 아닙니다. 만사를 의심하면,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자동차도 탈 수 없고, 약도 먹을 수 없고, 심지어 물도 마실 수 없습니다. 운전사와 의사와 약사를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설령 운전사와 의사와 약사는 믿을지언정, 자동차와 약과 물은 어떻게 늘 믿을 수 있습니까? 물론 항상 조심은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조심이 지나쳐서 자동차를 전혀 안 타고, 약을 전혀 안 먹고, 물을 전혀 안 마시고 살 수 있습니까? 설령 자동차 사고가 나더라도, 설령 약을 잘못 먹어 고생하더라도, 설령 물을 잘못 마셔 배탈이 나더라도, 우리는 믿고 타고 믿고 먹어야 합니다. 사람의 인격과 약과 물의 성능을 믿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저는 비행기를 탈 때마다 항상 조종사와 비행기와 날씨를 절대로 신뢰하는 것은 아닙니다. 조종사도 종종 실수할 수 있습니다. 비행기도 종종 고장날 수 있습니다. 더욱이 날씨도 매우 험악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 비행기가 추락하곤 합니다. 그래서 비행기를 탈 때마다 저는 조종사와 비행기와 공기에 저를 맡길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게도 저를 맡깁니다. "하나님! 저는 사람과 기계와 자연법칙을 믿지만, 이 모든 것들을 만드신 하나님을 더욱 믿습니다. 하나님이 안전하게 지켜 주실 것을 믿습니다. 만약 이 비행기가 추락해야 한다면, 꼭 그래야만 하는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저는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의 뜻대로 하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어느 날 저는 아내와 함께 광주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그 날에는 바람이 심하게 불어 다른 비행기는 모두 뜨지 못했지만, 우리 비행기만은 다행히 떴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탄 비행기는 착륙할 때까지 위아래로 심하게 요동쳤습니다. 사람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하고, 아내는 멀미 때문에 괴로웠습니다. 저라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렇지만 그 순간에 제가 학생 시절에 즐겨 불렀던 찬송가 470장의 가사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입가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내심으로는 적잖이 불안했지만, 그리고 남은 가족에 대한 걱정도 생겼지만, 그래도 저와 가족의 운명을 하나님의 품에 맡긴 저의 영혼은 놀라운 평화를 느꼈습니다. 다행히 비행기는 무사히 착륙하였지만, 이 사건을 통해 믿음이 얼마나 소중하고 위대한지를 새삼 발견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적당히 마음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적당히 의심하고 적당히 맡긴다는 것이 아닙니다.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전폭적으로 맡기는 것입니다. 사도신경을 고백할 때마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신뢰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고백하는 내용 그대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폭적으로 믿고 살아야 합니다. 그분이 하신 일과 겪으신 일을 전폭적으로 믿고 살아야 합니다. 성령과 성령이 행하시는 일을 전폭적으로 믿고 살아야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우리가 없이, 그러나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을 나의 것으로 삼는 것입니다. 과거의 일이나, 현재의 일이나, 장래의 일이나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과거에 행하신 일, 지금 우리를 위해 행하시는 일, 우리를 위해 장차 약속하신 일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럴 때, 믿음은 살아 움직입니다. 믿음은 놀라운 능력을 발합니다. 믿음이 갖는 능력, 믿음이 주는 힘은 이루 다 말할 수도 없지만, 가장 중요한 것만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첫째, 믿음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 2:4)고 했고,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예수님에게 데리고 왔을 때, 예수님은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시로 구원을 받으니라"(마 9:22). 야고보는 말했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약 5:15).

둘째, 믿음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이 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 17:20).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다"(마 21:21).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눅 17:6). 아브라함은 백 세가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였습니다. 사라 자신도 나이가 늙어 단산하였으나, 믿음으로 잉태하는 힘을 얻었습니다(히 11:11). 견고한 여리고 성도 믿음으로 무너졌습니다(히 11:30).

셋째, 믿음은 어떠한 형편에든지 평안과 소망을 주는 능력이 됩니다. 여호사밧은 말했습니다.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대하 20:20).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눅 12:28). 평안은 물질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 달려 있다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말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롬 5:1). "소망의 하나님은 믿음 안에서 기쁨과 평강을 충만케 하신다"(롬 15:13)고 바울은 말했습니다

넷째, 믿음은 죄악과 세상을 이기는 능력이 됩니다. 에베소서는 "믿음의 방패가 악한 자의 모든 화전(불화살)을 능히 소멸한다"(엡 6:16)고 했으며, 디모데전서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딤전 6:12)고 했습니다. 세상 속의 전투 속에서 누가 이깁니까? 아니 누가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까? 무슨 힘으로 영적인 싸움을 이길 수 있습니까? 믿음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말했습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 5:4). 믿음은 세상 속에서 남을 이기게 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믿음은 아예 세상을 이겨 버립니다. 믿음은 세상 속에서 남보다 더 잘 뛰게 할뿐만 아니라 아예 세상을 뛰어넘게 만듭니다.

다섯째,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는 능력이 됩니다. 히브리서는 말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 11:3). 세상에는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훨씬 더 많습니다. 마음은 보이지 않습니다. 마음은 오직 믿음으로만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도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믿음으로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는 보지 않고도,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믿음으로 살았던 수많은 믿음의 증인들을 열거합니다. 노아는 믿음으로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다(히 11:7)고 했으며, 아브라함도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믿음으로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다(히 11:8)고 했습니다. 모세도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같이 하여 참았다(히 11:27)고 했습니다. 이처럼 믿음은 보이지 않은 것을 마음으로 확증시켜 주며,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을 미리 보게 합니다.

믿음의 힘, 믿음의 능력은 이토록 크고 놀랍고 신비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 안에 늘 굳게 서십시오. 믿음 안에서 흔들리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늘 믿고, 의지하십시오. 의심과 회의가 여러분의 믿음을 흔들 때마다, 절망과 두려움이 여러분을 덮쳐올 때마다, 그리고 무슨 말로 기도해야 할지를 전혀 알지 못해 답답할 때, 주기도문으로 확신 있게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사도신경을 용감하게 고백하십시오. 어거스틴은 북아프리카의 개종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와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마다 당신의 신조를 말하되, 주님 앞에서 말하십시오. 마음 속에 늘 이 신조를 가지고 있되, 이 신조를 되풀이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마십시오." 사도신경은 우리 모두에게 놀라운 능력을 가져다줍니다. 그러므로 주일 예배 때만이 아니라 자주 사도신경을 고백하십시오. 언제나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오. 여러분의 믿음을 통해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