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 1:1-25

2005년 7월 3일, 현풍제일교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주님의 평화가 가득 넘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지난 주일에 이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에 관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보셨다시피, 창세기 1장에는 6번이나 거듭 반복해서 나오는 특별한 구절이 있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구절입니다. 1장 4절에서 하나님은 빛을 보시고 "좋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장 10절에서 하나님은 땅과 바다를 보시고 "좋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장 12절에서 하나님은 풀과 채소와 나무를 보시고 "좋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장 18절에서 하나님은 빛과 어두움을 보시고 "좋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장 21절에서 하나님은 물고기와 땅의 생물과 하늘의 새를 보시고 "좋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1장 25절에서 하나님은 땅의 짐승과 가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보시고 "좋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지으실 때마다 빠짐없이 "좋다"라고 말씀하신 뜻은 무엇입니까? 그 뜻은 세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보시고 "좋다"라고 말씀하신 뜻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세계가 참으로 선하다는 말입니다.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습니다(마 7:17). 하나님은 선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만드신 이 세상도 선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을 악하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악한 신이 이 세상을 만들었기 때문에 세상도 악하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조금 어렵게 말해서 이원론(二元論)이라고 말하는데, 성경은 그 어디에도 이 세상을 악한 신이 창조했다는 말이 없습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선하신 분입니다. 어떤 사람은 악마가 이 세상을 지배하기 때문에 이 세상이 악하다고 합니다. 욥기를 보면, 하늘에서 사탄이 나타납니다. 요한계시록과 같은 묵시문학에도 종종 무시무시한 악마가 나타납니다. 하지만 악마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손안에 있으며,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기간과 범위 안에서만 활동합니다. 악마는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고, 이 세상을 어지럽힐 수는 있지만, 하나님이 만드신 이 세상을 완전히 지배하거나 완전히 망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악마의 일을 언젠가 끝장내실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인간이 악하기 때문에 이 세상이 악하다고 말합니다. 인간의 타락이 이 세상을 괴롭게 만든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죄인을 항상 너그러이 용서하시며, 이 세상을 늘 새롭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이 선한 것이라면, 아무리 세상살이가 힘들더라도, 아무리 죄악이 넘쳐나더라도, 이 세상을 향하여 "망할 세상"이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선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은 당신이 만드신 이 세상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보호하실 것입니다. 아니 이 세상을 보호하실 뿐만 아니라 날로 더 좋게 만드실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 끝 날에는 이 세상을 완전히 새롭게 만드실 것입니다. 그 세상이 바로 요한계시록이 말하는 "새 하늘과 새 땅"(계 21:1)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약속하는 새 창조입니다.

 

(2)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보시고 "좋다"라고 말씀하신 뜻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세계가 참으로 흡족하고 만족스럽다는 말이요, 하나님의 마음을 즐겁고 기쁘게 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만드신 피조물을 보시고 기뻐하셨고, 즐거워하셨고, 만족하셨습니다. 그래서 "좋다"라고 감탄사를 연발하셨습니다. 부모들이 오랜 임신과 해산의 고통 끝에 아기를 낳으면, 앞으로도 많은 수고와 희생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분신과 같은 사랑스런 아기를 좋아합니다. 아무리 점잖은 사람도 어린 자식을 바라보면 싱글벙글 웃습니다. 막 태어난 아기는 어미젖을 세게 빨고 울고 오줌과 똥을 싸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합니다. 참으로 무능하고 귀찮은 존재입니다. 그래도 부모는 아기를 보고 정말 즐거워합니다. 아기는 자랄수록 더 세게 젖을 빨고 더 크게 울고 더 많은 오줌과 똥을 쌉니다. 참으로 귀찮고 더럽습니다. 그래도 부모는 자라나는 아기를 더욱 기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마도 남의 아기라면, 그렇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자신이 낳은 자식이니까, 자신의 피를 이어 받았으니까, 그리고 자신을 닮았으니까, 그렇게 좋아합니다. 이처럼 부모도 자신이 낳은 자식을 참으로 기뻐하거늘, 하나님은 당신이 만드신 것을 얼마나 기뻐하셨겠습니까? 부모는 고작해야 몇 안 되는 자식들을 보고도 기뻐하거늘, 천지를 만드시고 그 천지 안에 가득한 수많은 것들을 만드신 하나님은 얼마나 기뻐하셨겠습니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정성껏 만든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온갖 수고와 노력이 들어가더라도, 창작의 기쁨과 보람 때문에 뭔가를 창작하려고 애씁니다. 아기가 자신이 눈 똥을 보고도 더럽다고 생각하기는커녕, 똥을 가지고 즐겁게 노는 이유가 무엇인 줄 아십니까? 자신이 이 땅에 태어난 후 자신의 노력으로 처음 멋진 작품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기는 자신이 눈 똥을 보고는, 자신을 매우 대견스럽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어른은 더욱 그렇습니다. 남자는 가정과 인류를 위해 뭔가 새로운 일을 하였을 때, 가장 기뻐합니다. 여자는 가정을 위해 좋은 옷과 음식을 장만하고 아늑한 집을 꾸몄을 때, 매우 행복해합니다. 하물며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은 인간을 비롯하여 모든 만물을 만드신 후에 얼마나 기뻐하셨겠습니까?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이 기쁘고 즐거운 것이라면, 이 세상을 향하여 "괴로운 세상"이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작품을 모독하는 일이요, 그래서 하나님 자신을 모독하는 일입니다. 만약 누가 여러분이 정성껏 만든 아름다운 작품을 보고, "보기 괴롭다"라고 말한다면,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습니까? 그리고 이 세상을 향하여 "허무한 세상"이라고 욕해서도 안 됩니다. 아무리 인생이 짧고 고달프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은 즐거운 곳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을 부정하고 저주하고 도피하는 어리석을 짓을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좋다"고 판단하신 이 세상을 좋게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즐겁다"고 여기신 이 세상을 즐거워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을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들처럼 인생과 세상을 즐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잘못입니다. 회개를 위해, 혹은 슬픈 일이나 중요한 일을 당할 경우에는 잠시 슬퍼하거나 금욕할 수는 있지만, 그리스도인은 원칙적인 비관주의자, 금욕주의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원칙으로 말한다면, 그리스도인은 항상 즐거워하는 낙천주의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즐거워하라", "기뻐하라"는 말이 얼마나 자주 나옵니까!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후 기뻐하셨습니다. 심지어 성경은 하나님이 하늘에서 웃으신다고 말합니다(시 2:4, 시 37:13, 시 59:8). 하나님은 어리석은 세상을 보시고 비웃으신다는 말입니다. 비웃음도 웃음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보시고 웃으신다면, 우리도 웃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이 세상을 즐겁게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라고 시작하는 전도서도 결국 뭐라고 말합니까? "이에 내가 희락을 칭찬하노니, 이는 사람이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보다 해 아래서 나은 것이 없음이라. 하나님이 사람으로 해 아래서 살게 하신 날 동안 수고하는 중에 이것이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니라"(전 8:15). 그러므로 이 세상에 살 동안 항상 기뻐하십시오(고후 6:10, 빌 4:4, 살전 5:16). 이것이 세상과 여러분을 만드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3)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보시고 "좋다"라고 말씀하신 뜻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세계가 참으로 아름답다는 말입니다. 하늘과 구름과 달과 별들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산과 들과 강과 호수와 바다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 속에서 사는 모든 생명체들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하지만 사람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예술가들은 사람의 알몸을 그려왔습니다. 사람의 몸매만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의 자태도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공작새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웃지는 못합니다. 오직 사람만이 웃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어린 아기의 웃음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오직 사람만이 만물을 보고 "아름답다"고 감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하는 일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그래서 아름다운 사람이 만들어 가는 이 세상도 아름답습니다.

전도서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다"(전 3:11)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아름답게 만드신 세상을 향해야 "아름답다"고 말해야 하며, 이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대상 16:29, 시 96:9). 다른 말로 하면, 이 세상이 아무리 아름답고 웅장하더라도, 이 세상을 경배하거나 찬양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행위는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숭배입니다. 아름다운 세상을 볼 때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솜씨와 권능을 아름다운 예술로 찬양해야 합니다. 아름다운 예물로 하나님에게 경배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이 이처럼 아름다운 곳이라면, 이 세상을 향하여 "더러운 세상"이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이 세상이 더러운 곳으로 넘친다고 하더라도, 아무리 이 세상이 더럽게 보인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이 세상을 처음부터 아름답게 만드셨으며, 그래서 이 세상을 아름답게 보시며, 추하고 더러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가십니다. 어린 아기가 자신이 눈 똥을 보고 좋아하듯이, 부모도 자식이 눈 똥은 아름답게 여길 줄 압니다. 자식을 진정으로 사랑하면, 자식의 똥도 아름답게 보이는 법입니다. 비록 이 세상이 더럽고 추한 것으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이 아름답게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이 세상을 우리도 아름답게 보아야 합니다. 이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어야 합니다. 만약 이 세상을 향하여 우리가 "더럽다"고 말한다면, 이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을 모독하는 셈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이 세상을 좋게 만드셨고, 그래서 당신이 만드신 이 세상을 보시고 "좋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이 세상은 선하고, 즐겁고, 아름다운 곳입니다. 세상이 악하고 괴롭고 더러운 것은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만들어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은 원래 선하고 즐겁고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마땅히 선하고 즐겁고 아름답게 살아갑시다. 다 같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서로를 선하게 대하고, 서로를 즐겁게 하고, 서로를 아름답게 만들어 갑시다. 이것이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보기 좋다"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하고 온전한(아름다운)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