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아버지 하나님

 

마 6:25-33

2005년 7월 10일, 현풍제일교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주님의 평화가 가득 넘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은 사도신경 해설 다섯 번째 시리즈로서 "아버지 하나님"에 관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고백한 사도신경은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사오며..."라고 시작하며, 이번에 개정된 사도신경은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라고 시작합니다. 문장과 어순과 표현은 조금 바뀌었지만, 근본 내용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사도신경은 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까?

 

1) 먼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는 하나님이 만물의 근원이 되시고 만물을 유지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전통은 매우 오래된 것이며, 모든 사회에 널리 펴져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만이 아니라 주변의 다른 나라의 백성들도 그들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최고의 신 제우스는 모든 신들과 인간들의 아버지라고 불렸습니다. 비단 종교와 신화를 신봉하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많은 철학자들도 최고의 신을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던 이유는 바로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시고 생명을 낳으시고 돌보시는 분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하필 아버지가 되십니까? 어머니도 생명을 낳고 기르고 돌보지 않습니까? 아니 어쩌면, 생명을 낳고 기르고 돌보는 일에는 아버지보다는 어머니가 훨씬 더 수고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하나님을 오직 아버지라고만 불러야 합니까?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중요한 두 가지 진리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아버지라는 사실은 하나님이 남자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버지라는 것은 하나의 상징이지, 말의 뜻 그대로 남자라는 말이 아닙니다. 연령이 낮은 어린아이나 정신적으로 미숙하거나 소박한 어른들은 하나님을 긴 수염이 난 할아버지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바울의 말대로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려야 합니다(고전 13:11).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고 해서, 하나님을 남자로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물건이라는 말은 더욱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은 남녀의 성의 차별을 넘어서 계신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인격적인 하나님은 남성적인 특징과 여성적인 특징을 함께 갖고 계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 우리가 착각해서는 안 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사람이 어릴 적부터 부모와 맺는 관계는 어른이 되어서도 하나님과 맺는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다행히 훌륭한 아버지 아래 자라난 자녀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데 아무런 거리낌과 주저함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폭력적이고 무책임한 아버지 아래 자라난 자녀라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일에 심한 거부감을 느낄 것입니다. 그런데 어린 자녀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남자들의 일방적인 지배와 억압을 받아온 여자들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데 심한 거부감을 느낍니다. 이번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개정하여 새로 내놓았고, 올해 우리 교단의 총회는 이를 수용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개정에 가장 심하게 반대한 사람들은 바로 여자들입니다.

특히 주기도문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시고... 세 번이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번역하느냐?"고 항의하였습니다. 원래의 주기도문에는 "당신의 이름이..., 당신의 뜻이..."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말로 "당신"은 조금 상스러운 말이어서 하나님을 부르기에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어쩔 수 없이 맨 처음에 나오는 아버지라는 말을 이어 받아 계속 "아버지의 이름이..., 아버지의 뜻이..."라고 번역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성들은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너무 남성중심적이라고 항의합니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여자들의 항의를 받아들여서 어떤 교회에서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라고 기도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는 아직도 남자들이 힘이 더 센 탓인지, 그냥 아버지로 통일되었습니다.

불행히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이 땅의 아버지들이 하나님의 권위를 빌려, 아니 하나님의 권위를 악용하여, 여자와 자녀를 지배하고 억압해 왔던 게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전통에는 확실히 가부장적인 흔적이 짙게 배어 있습니다. 하지만 옛날에는 어머니와 여자는 가정과 사회에서 아주 낮은 대접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시대만 해도, 여자와 어린이와 바보는 거의 같은 수준으로 취급될 만큼 사회적으로 천대를 받은 약자였습니다. 이처럼 어머니의 처지가 열악한 형편에 하나님을 어떻게 어머니라고 부를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힘이 세고 지혜로운 아버지의 모습에 따라 하나님도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오늘날까지 이런 악습을 계속 이어갈 수는 없습니다. 비록 오늘도, 아니 영원히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고 하더라도, 이 땅의 아버지를 드높이기 위해, 아버지의 지배와 억압을 인정하기 위해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이 땅의 아버지를 세우신 분만 아니라, 또한 이 땅의 아버지를 심판하시는 분이기도 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이 땅의 아버지가 하나님 아버지를 핑계로 삼아 나쁜 짓을 일삼는 일은 삼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남자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 모든 인간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바울의 말씀처럼 만유의 아버지 하나님은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십니다(엡 4:6).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 누구도 차별하거나 억압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2) 구약성서에서도 하나님은 자주 아버지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만물과 인류와 이스라엘을 창조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32장 6절은 말합니다. "우매무지한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너를 얻으신 너의 아버지가 아니시냐? 너를 지으시고 세우셨도다." 이사야 64장 8절도 말합니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라." 말라기 2장 10절도 말합니다. "우리는 한 아버지를 가지지 아니하였느냐? 한 하나님의 지으신 바가 아니냐? 어찌하여 우리 각 사람이 자기 형제에게 궤사를 행하여 우리 열조의 언약을 욕되게 하느냐?" 구약성서에서 특히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시고 구원하시고 그와 언약을 맺으셨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63장 16절은 말합니다.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치 아니할지라도, 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 상고부터 주의 이름을 우리의 구속자라 하셨거늘..." 시편 89편 26-30절은 말합니다. "저가 내게 부르기를, 주는 나의 아버지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구원의 바위시라 하리로다. 내가 또 저로 장자를 삼고 세계 열왕의 으뜸이 되게 하며, 저를 위하여 나의 인자함을 영구히 지키고 저로 더불어 한 나의 언약을 굳게 세우며, 또 그 후손을 영구케 하여 그 위를 하늘의 날과 같게 하리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세우실 뿐만 아니라 그를 돌보시는 자비로우신 아버지가 되십니다. 하나님은 특히 고아를 불쌍히 여기시는 고아의 아버지가 되십니다(시 68:5). 하나님은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우리를 위로하십니다(사 66:13). 설령 부모는 자식을 버릴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영접하십니다(시 27:10). 이처럼 구약성서의 하나님은 공의와 심판의 하나님이 되실 뿐만 아니라, 자비와 사랑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친 부모보다, 우리의 어머니보다 더 자상하시고 더 자비로우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티끌과 같고 먼지와 같은 우리를 자녀로 인정하시고, 불쌍히 여기시며, 끝까지 돌보시는 신실하신 아버지이십니다.  

 

3) 하나님이 우리의 자비로우신 아버지가 되신다는 진리는 특히 예수님을 통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악인과 선인에게 두루 해를 비취시고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다 같이 비를 내리시는, 만인을 사랑하시는 아버지가 되십니다(마 5:45). "탕자의 비유"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집을 떠난 죄인과 같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잘 보여줍니다. 비록 탕자의 아버지는 힘이 세더라도, 자식의 자존심 때문에 집나간 자식을 억지로 끌고 오지 않습니다. 집나간 아들은 아버지를 완전히 잊을지라도, 아버지는 아들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아니 아버지는 자식이 돌아올 날을 애타게 기다립니다. 자식이 아무리 큰 실수와 잘못을 지었다고 하더라도, 돌아오는 자식의 몰골의 아무리 더럽다고 하더라도, 돌아오기만 한다면 아무런 조건도 없이 아들의 권리를 회복하려고, 그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려고, 매일 매일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과연 아들이 멀리서 돌아오는 것을 보자, 아버지는 심하게 변한 아들을 금방 알아보고, 남은 힘을 다해 뛰어 나갑니다. 그리고 더럽고 못난 아들을 와락 껴안고, 아들이 잘못했다고 다 빌기도 전에 이미 용서합니다. 너무 기뻐 춤을 추며, 돌아온 아들을 위해 동네 사람들을 다 불러놓고 성대한 잔치를 베풉니다.

이 비유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경험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너무나 자애롭고 자비로운 분입니다. 아버지보다, 어머니보다, 이 세상의 그 어떤 분보다 (부처님보다!?) 더 자비로운 분입니다. 그러므로 이 때에는 하나님을 어머니, 할머니라고 불러도 부족합니다. 그 무엇으로도 하나님의 사랑을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전통과는 달리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을 좀 딱딱하게, 그냥 아버지라고 부르시지 않고, "아빠" 혹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셨습니다. "아빠"라는 말은 젖먹이 아기가 중얼대는, 입을 때면서 처음으로 불러보는 말투입니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나오는 말투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우리에게 소개하신 하나님은 무섭고 권위가 넘치는, 멀리 있는 낯선 하나님이 아니라 어린 아기처럼 친숙하게 부를 수 있고, 언제나 달려가 안길 수 있고, 언제나 칭얼대고 졸라댈 수 있는, 참으로 좋으신 아버지, 어머니 같은 아버지, 우리의 좋으신 아빠와 엄마입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자녀들의 기도에 좋은 것으로 응답하십니다(마 6:6, 7:11). 은밀한 중에 구제한 것도 다 갚아주십니다(마 6:4). 자녀의 잘못을 기꺼이 용서하십니다(마 6:15). 참새와 같이 보잘 것 없는 동물도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땅에 떨어지지 아니할 정도로 피조물을 세심히 보살피십니다(마 10:29). 공중의 새와 들의 풀도 친히 돌보시고, 머리털 하나까지 세실 줄 아십니다(마 10:30). 이처럼 섬세하시고 자상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가 하물며 친히 택하신 백성, 친히 사랑하시는 자녀들을 얼마나 잘 보살피시겠습니까(마 6:25-34)? 더욱이 이 땅에서 좋은 것들을 주실 뿐만이 아니라, 영원한 행복이 넘치는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와 같이 작은 무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고,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자에게 기꺼이 주십니다(눅 12:32). 얼마나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이십니까?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니,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맙시다.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미리 다 아시는 아버지 하나님에게 감사함으로 구합시다. 범사에 좋은 것을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을 신뢰하고, 우리의 모든 계획과 걱정을 그분에게 소상히 아룁시다. 설령 괴롭고 힘든 일이 찾아온다고 하더라도,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이 되게 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을 진심으로 의지하고, 사랑하고, 찬양합시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의 당연한 본분이 아닙니까? 아니 세상 사람들이 알 수도 없고 뺏을 수도 없는 하나님의 자녀의 고귀한 특권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괴로우나 즐거우나 늘 아버지 하나님을 부르십시다. 아버지 하나님과 늘 동행하십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기 전부터, 이미 이 땅에서도 아버지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행복을 마음껏 누리고, 마음껏 나눕시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여러분의 앞날에 아버지 하나님의 자비가 늘 함께 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