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유일하신 아들

요 3:16

       2005년 7월 17일, 현풍제일교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주님의 평화가 가득 넘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사도신경을 통해 하나님에 관한 신앙고백을 배웠습니다. 사도신경은 전능하신 하나님,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을 고백합니다. 맨 먼저 "하나님이 어떤 분이 되시는지"를 고백한 다음에 사도신경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 되시는지"를 고백합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사도신경은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다시 풀이하면, 사도신경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님, 그리스도로 고백합니다. 이와 같은 고백은 실로 기독교 신앙의 핵심 사항입니다. 이제 저는 세 번에 걸쳐 예수님에 관해 이와 같은 고백을 설명해 드릴까 하는데, 오늘은 그 첫 순서로서 "예수님의 하나님의 아들 되심"에 관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이 되십니까? 지금까지 사용해 오던 사도신경은 '외아들'이라는 말을 써 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지금까지 사용해 온 개역성경에 기록된 대로 '독생자'라는 말을 자주 써 왔습니다. '독생자'라는 말보다는 '유일하신 아들'이 훨씬 친근하게 들리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독생자'이라는 말이나 '유일하신 아들'이라는 말은 모두 한자말입니다. 부르기 좋고 듣기도 좋은 순수한 우리말 '외아들'을 쓰지 않고, 왜 굳이 한자말 '유일하신 아들'이라는 말을 썼을까요? 그래야 더 유식하고 고상하게 보여서 그랬을까요? 그보다는 아마도 '외아들'이라는 말이 가져다주는 잘못된 오해를 피하려고 그렇게 한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래 전에 교회를 다지니 않던, 나이가 지긋한 어떤 분이 놀리는 말로 제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예수쟁이들은 하나님이 전능하다 말하는데, 전능한 하나님이 왜 아들을 많이 낳지 않고 외아들만 달랑 낳고서는, 소중한 외아들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생색을 내고 난리냐?" 말이 되지 않습니까?

정말로 전능하신 하나님은 여러 자식들, 여러 아들과 딸을 많이 낳으셔서 행복하게 사시지 않고, 왜 달랑 아들 하나만 낳으셨다는 말입니까? 이처럼 조롱하는 질문이 나오는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오해 때문입니다. 지난 주일에 설교한 대로,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고 해서, 하나님을 사람이나 남자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외아들, 독생자, 유일하신 아들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마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누구(어머니 하나님?)와 결혼하신 후에 아들을 낳으신 것처럼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신 고로 그 누구와도 결혼하실 수 없으며, 그래서 하나님이 말 그대로 아들을 출산하실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예수님을 하나님의 외아들이라고 부릅니까? 우리 인간도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리지 않습니까?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은 외아들이 아니라 수많은 자녀들을 거느리시는 셈이 아닙니까? 하지만 인간은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흙으로 인간을 만드셨다고 말하지, 하나님이 인간을 낳으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로 삼아주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 방법은 우리와 다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낳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낳으셨다"고 해서, 방금 말씀을 드린 대로, 다시 하나님이 결혼하셔서 출산하신 것으로 착각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낳으셨다"는 말은 하나님이 아들을 만드신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낳으셨다"는 말은 "하나님으로부터 아들이 나왔다"는 말과 같습니다. 마치 빛이 태양으로부터 나오듯이, 아들도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셨습니다. 빛은 태양이 만든 것이 아니라, 태양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이처럼 아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인간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종종 "아버지가 나를 보내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이처럼 "나오셨다, 보내셨다"라고 하면 처음부터 괜한 오해가 생기지 않을 텐데, 왜 굳이 "낳으셨다, 출생하셨다"는 말을 합니까? 태양이나 빛처럼 하나님과 예수님이 물체가 아니라 인격적인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격적인 표현을 쓴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능하신 하나님이 왜 아들을 많이 낳으시지 않았느냐?"는 질문은 이 같은 내용을 몰라서 한 질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어찌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외아들이 되시는지"를 우리는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우리가 어린이 시절부터 자주 들어온 요한복음 3장 16절의 말씀을 가지고 쉽게 풀이해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바로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죄와 저주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 유일하신 아들을 보내주셨습니다. 말로만의 사랑, 마음만의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댕댕"하고 울리지 않은 종은 진정한 종이 아닙니다. 그런 종은 있어나 마나한 종입니다. 이처럼 손과 발로,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그런 사랑은 있어나 마나한 사랑, 아니 거짓 사랑입니다. 이웃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만약 그가 굶주릴 때에 그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는다면, 이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거짓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하늘에서만, 마음으로만 우리를 사랑하시지 않고 실제로, 행동으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징표로서 가장 소중한 분, 유일하신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거짓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사랑은 어떻게 생겨납니까? 사랑이 어디 억지로 되던가요? 컵에 물이 가득 차면 물이 흘러 넘치듯이, 사랑으로 가득한 사람, 아니 사랑의 사람만이 사랑을 줄 수 있습니다. 사랑이 무엇인지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은 남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어릴 적에 부모의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커서 남을 사랑할 줄 모르며, 남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남의 사랑을 받을 줄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어린 아기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밥보다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 곧 사랑으로 충만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 4:16)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곧 사랑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비로소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는 말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 편에서 보면,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전부터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바로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전부터, 아니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부터 영원한 사랑이십니다.

종은 울리기 전에는 진정한 종이 아니듯이, 사랑은 행동으로 사랑하기 전에는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영원 전부터 홀로 계신 하나님이 어떻게, 누구에게 사랑하실 수가 있습니까? 손뼉도 마주 쳐야 소리가 나듯이, 홀로 계신 하나님이 어찌 사랑을 하실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리고 사랑을 하실 수가 없는 분이 어찌 사랑이실 수가 있겠습니까? 로빈슨 크루소처럼 무인도에서 혼자 사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가 혼자서 "나는 사랑이다"라고 아무리 크게 외친다고 해도, 만약 그가 사랑할 대상이 없다면, 만약 동물이라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런 외침은 공허하기 짝이 없는 헛소리입니다. 이처럼 만약 하나님이 영원부터 홀로 계신다면,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는 말도 공허한 헛소리가 됩니다.

그런데 다행히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홀로 계시지 않았습니다. 마치 태양으로부터 빛이 나오고, 태양과 빛으로부터 열이 나오듯이, 영원 전부터 하나님으로부터 아들이 나왔고, 하나님과 아들로부터 성령이 나왔습니다. 이를 어려운 말로 '삼위일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존재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셨고, 아들도 아버지를 사랑하셨습니다. 두 분 사이에서 성령은 사랑을 전달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삼위로 계시면서 서로 사랑하시는 모습을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전부터, 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부터 이미 삼위 안에서 서로 사랑을 속삭이고 사랑을 주고받던 위대한 사랑의 샘, 사랑의 공동체, 사랑의 가족이셨습니다.

만약 아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셨다면, 아들도 하나님과 동일한 분입니다. 아들 하나님은 2천년 전에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가 나를 보내셨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나를 보는 자는 아버지를 본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다.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아버지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부인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아버지를 부인하는 것이다." 이처럼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으로 말씀하셨고, 그렇게 행동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하여, 아니 예수님이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생각하여 예수님을 십자가 못박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오직 유일신 야훼 하나님만을 믿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같은 유대인으로서 기독교인을 핍박하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회심한 바울을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빌 2:6-8).

하지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예수님이 진정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신 하나님,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신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면, 예수님의 발언과 행동은 전부 새빨간 거짓말이 되고, 예수님은 희대의 사기꾼이 됩니다. 그리고 만약 하나님이 삼위일체 하나님이 아니라면, 상당히 곤란한 문제가 생깁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만약 하나님이 오직 한 분이라면, 하나님이 2천년 전에 유대 땅에 내려오셨을 때, 하나님은 다른 시간과 다른 공간에서는 전혀 안 계시는 셈이 됩니다. 다만 한 분이신 하나님이 2천년 전에 유대 땅에 30년 동안 내려오셨다면, 그 동안에는 하늘도 텅텅 비는 셈이 되고, 유대 땅 밖에는 하나님이 전혀 안 계신 셈이 됩니다. 30년 동안 이 세상은 유대 땅을 제외하고 온통 하나님이 안 계신 세상이 됩니다. 하나님이 안 계신 세상은 무법천하가 아니라, 바로 혼돈과 지옥입니다.

하지만 다행히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되시는 고로, 이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아들이 이 땅에 내려오셨을 때, 아버지 하나님은 하늘과 모든 땅을 지키고 계셨고, 여전히 천하를 통치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땅에 오신 아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에게 기도하셨고, 그분과 대화하셨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셨고, 아버지의 뜻대로 죽으셨고, 아버지의 능력으로 부활하셨으며, 부활하신 후에 다시 아버지의 우편에 올라가셨습니다. 아들은 이제 아버지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를 하시고,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려고 다시 이 땅에 오실 것입니다.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만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도 믿습니다. 영원 전부터 아버지로부터 나와서 아버지의 품에 함께 계신 아들, 아버지와 함께 일하셨던 아들, 하나님 아버지의 유일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신비하고 놀라온 하나님의 모습을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고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깊이 느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도 사랑의 하나님을 본받아, 아니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받아서, 사랑에 목마른 이웃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풍성히 전달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