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우리 주

 

빌 2:6-11  

2005년 7월 31일, 현풍제일교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주님의 평화가 가득 넘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지난 주일에 사도신경에서 예수님이 왜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외아들)이라고 고백되는지, 이 고백의 뜻이 무엇인지를 배웠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이 왜 '우리 주'라고 고백되는지, 이 고백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보겠습니다. 주(主)라는 말은 주인, 소유자, 지배자라는 뜻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주인 대접을 받은 사람들은 여러 종류가 있었습니다. 집안에서는 대개 남자들이 주인 대접을 받았습니다. 유교적인 전통의 영향을 받았던 우리 나라에서도 얼마 전까지 남자들은 집안에서 '주인님'이라고 불리었고, 바깥 사람들에게는 '주인장'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주인'으로 행세한 남자들은 아내와 자식들과 종들을 마치 소유물처럼 부리고 지배하였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남자 가장과 임금과 선생은 한 몸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말이 바로 여기서 나왔습니다. 집안에서는 남자가 주인 행세를 하였지만, 집 바깥에서는 선생과 임금이 주인 행세를 하였습니다. 주(主)라는 말은 임금 왕(王) 위에 한 획을 더 그어 만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임금은 제일 높은 지배자라는 뜻입니다.

성경에서도 여자와 자식과 종을 거느린 남자들은 '주'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선생들과 지체가 높은 사람들, 관리들, 그리고 임금들도 '주'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이런 사람들만이 아니라 예수님도 종종 '주'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자주 '주'라고 불렀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바로 그들을 가르치셨고, 그들을 인도하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주'라고 불린 것은 단지 이런 이유 때문만은 아닙니다. 고대 사회에서 가장과 관리, 임금과 황제만이 아니라 신들도 종종 '주'라고 불리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을 종종 '주'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을 예수님 시대에 통용되던 헬라어로 번역할 때,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야훼)이라는 단어를 항상 '주'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주'라고 불렀다면, 예수님이 하나님과 같은 분임을 인정하고 고백하였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이라는 말처럼 '주'라는 말도 예수님의 신성(神聖)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주'가 되신다는 말은 예수님도 하나님처럼 높은 권세와 권위를 가지고 계시며, 하나님처럼 만물을 지배하시고 심판하신다는 말을 뜻합니다. 그러면 어떤 이유로, 무슨 뜻으로 예수님이 제자들의 주가 되셨고, 또한 우리의 주가 되십니까?  

예수님을 '우리 주'라고 고백하는 이유는 부활의 경험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기 전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다만 인간적으로 뛰어난 분으로 보았고, 바로 그런 의미로 예수님을 '주'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기까지는 제자들은 예수님의 모습을 제대로 알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아무리 뛰어난 권위와 권능을 가지셨다고 하더라도, 아무리 탁월한 지혜를 가르치셨다고 하더라도, 부활 이전의 예수님은 단지 뛰어난 한 인간, 탁월한 선생(랍비)이나 놀라운 예언자에 불과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로 제자들의 생각은 180도 바뀌었습니다. 그 후로 예수님은 다만 세상의 많은 주와 같은 분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임금들이나 여러 신들과 같은 분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간들, 모든 주들, 모든 신들보다 뛰어난 분이요, 그들까지 다스리는 가장 뛰어난 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바울의 신앙 고백은 바로 이같은 사실을 증거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의심이 많고, 어떻게 보면 정직하고 솔직했던 도마는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전혀 믿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직접 보기 전에는 믿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에게 나타나셔서 손과 허리의 못자국을 만져 보라고 하셨을 때, 도마는 살아서 다시 나타나신 예수님의 모습에 완전히 압도되어 버리고 말았고, 할 말을 완전히 잃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의심이 많던 그의 입술에서는 어느새 다음과 같은 고백이 흘러나왔습니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여"(요 20:28).

오순절 날에 베드로는 유대인들과 모든 사람들 앞에서 담대히 복음을 전하였는데, 여기서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부어 주셨느니라.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는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행 2:30-36).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전에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마 28:18-19). 부활하신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권세를 믿고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복음 전도자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의 권세를 빌려 복음을 전하고, 귀신을 추방하고, 병자를 고쳤습니다. 성전 문 앞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베드로는 어떻게, 누구의 이름과 권세로 고쳤습니까? 예수님의 이름과 권세로 고쳤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어라"(행 3:6).

세상에는 많은 주인들, 주인 행세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에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한 사람들은 하나도 없습니다. 아니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는 헛소문은 들어보았지만, 실제로 그런 사람들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더욱이 죽었다가 살아나서 세상의 모든 권세를 지녔다고 당당히 말하는 사람들은 전혀 없었습니다.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높고 위대하다고 자랑하고 방자하게 권세를 휘두른 왕들도 죽음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중국 천하를 통일했다는 진시황도 죽지 않으려고 불로초를 구하려고 안달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업적은 거대한 만리장성과 거대한 무덤으로만 남아 있을 뿐, 그의 권세는 이미 까마득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그가 천수를 누리고 죽었다니, 다행입니다. 중국의 황제들은 언제나 암살과 역모의 위험 때문에 잠시도 편하게 살 수 없었습니다. 우리 나라의 역대 임금들도 세 사람 중에 한 사람은 암살을 당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죽음 앞에 벌벌 떠는 왕이 무슨 대단한 왕입니까? 그저 우리와 똑같은 인간일 따름입니다.

하지만 죽음을 대하는 초대 교회 성도들의 태도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로마 황제가 자신을 신으로 섬기라고 강요했을 때, 심지어 황제 숭배를 거부하는 기독교인들을 사자의 밥으로 내어주고, 불에 태워 죽이기까지 혹심하게 박해를 했을 때, "황제에게 절하겠다"는 말 한 마디만 해도 살 수 있었던 많은 기독교인들은 오히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순교하였다고 합니다. 이에 관해 전해 오는 여러 이야기들 중에서 특히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었던 폴리캅이 황제 숭배를 거부한 결과로 장렬하게 순교한 사건은 지금까지도 감명 깊이 전해 내려져 오고 있습니다. 폴리캅은 주후 155년 경에 순교한 과정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집행관 헤롯과 그의 부친 니케테스가 그를 만났다. 그들은 그를 마차에 옮겨 태우고 옆에 앉아서 설득하였다. "황제를 주님이라고 부르고  제사를 드리고 구원받는 것이 무엇이 나쁘냐?" 그러나 그는 처음에는 그들에게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끈덕지게 그는 말하였다. "나는 그대들이 나에게 충고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그를 설득하는 것에 실패하자 그들은 험한 말을 하였고, 그를 급히 내려가게 하였다. 그래서 그는 마차에서 내려오다가 정강이를 부딪히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돌이키지 않고 조금도 다치지 않은 것처럼 당당하게 걸어서 경기장 안으로 인도되었다. 경기장 안은 대단히 소란스러워서 그 누구의 말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폴리캅이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고 있을 때, 하늘로부터 그에게 소리가 있었다. "폴리캅아, 담대하라, 남자다워라". 아무도 그 말하는 사람을 보지 못하였다. 사람들이 폴리캅이 체포되었다는 것을 들었을 때 큰 소동이 일어났다. 그러므로 그가 인도되었을 때, 총독이 그에게 그가 폴리캅인지를 물었다. 그가 시인하자 그는 배교할 것을 설득하였다. "맹세하시오. 그러면 내가 그대를 놓아주리다. 그리스도를 모독하시오"라고 말하였을 때, 폴리캅이 말하였다. "나는 86년 동안 그분을 섬기고 있소. 그런데 그분은 한번도 나에게 불의를 행하지 않았소. 내가 어찌 나를 구원한 나의 왕을 모독할 수 있겠소?" 그들은 그를 묶었다. 그러나 그는 마치 많은 양떼 중에서 빼어난 양이 제물로 하나님께 받을만한 준비된 번제로 드려지듯이, 하늘을 우러러보며 말하였다. "주 하나님, 나는 당신을 찬양하나이다. ... 이로 말미암아 나는 모든 일에 관하여 당신을 노래하며, 찬양하며, 영원한 하늘에 계신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통하여 당신께 영광을 돌리나이다. 그로 말미암아 그와 성령과 더불어 당신께 영광이 지금과 장차 올 영원까지 있으리이다. 아멘". 그가 아멘을 말하고 기도를 마쳤을 때, 사람들이 그의 몸에 불을 붙혔다. 그러나 큰 불길이 빛을 발하였을 때, 우리는 기적을 보았다. 불은 마치 바람을 가득 안은 배의 돛처럼 덮개의 모양을 이루었고, 그 순교자의 몸을 빙 둘러쌌다. 그는 불타는 몸이 아니라 구워진 빵처럼, 또는 가마 속에서 제련되는 금이나 은처럼 그 가운데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마치 향냄새와 같은 냄새를 맡았다.

왜 폴리캅을 비롯하여 수많은 초대 교인들은 그렇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하였고, 예수님처럼 죽어도 부활할 것임을 굳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기는커녕 예수님처럼 순교하는 것을 오히려 큰 영광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로마 황제는 목숨은 뺏을 수 있지만, 신앙은 뺏을 수 없었습니다. 로마 황제는 얼마 안 가서 죽어 허울좋은 이름만을 남겼지만, 죽은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을 누리면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왕노릇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오직 한 분의 주만 계실 따름입니다. 그 어떤 권세가도, 그 어떤 힘있는 세력도, 심지어 죽음도 우리의 주가 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 주가 되십니다(롬 10:12, 고전 8:6).

부활하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고, 만물의 주가 되신 예수님은 지금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영원히 우리의 주가 되시며, 장차 다시 오셔서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온 세상을 의와 진리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주'로 믿지 않고, '주'로 섬기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주권을 부인하고 이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아직까지 많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아직도 어둠의 권세들이 활개치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 당시에도 세상을 지배하려던 권세들은 포악한 황제만이 아니었습니다. 온갖 귀신들과 미신들이 사람들을 두렵게 했습니다. 하늘과 바다, 땅과 땅 속에서 온갖 정령들과 귀신들, 온갖 잡신들이 우글거리고 있다고 믿었던 고대의 사람들은 이들 앞에서 두려워 떨거나, 이들을 달래려고 온갖 제물을 갖다 바쳤습니다. 우리 조상들도 실로 온갖 귀신을 섬겼습니다. 하늘과 산, 강과 바다만이 아니라, 곳곳마다, 부엌과 마당에도, 나무와 풀에도 온갖 귀신들이 숨어 있다고 믿었고, 이들을 잘 섬겨야 재앙을 면하고 복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런 미신에 사로잡혀 어리석은 우상을 섬기던 우매한 민족을 가장 먼저 깨우친 것은 과학이라기보다는 기독교였습니다.

오늘날에도 기독교는 온갖 귀신과 우상을 배격하고, 오직 한 분의 주님만을 섬기는 일에 앞장을 서고 있습니다. 요즘의 귀신과 우상은 예전의 것들과 상당히 다릅니다. 요즘 사람들을 사로잡고 괴롭히고 넘어뜨리고 결국 잡아먹는 우상은 무엇입니까? 20세기에 들어와서 사람들을 노예로 부리고 사람들을 괴롭히고 죽였던 우상은 바로 이데올로기, 즉 이념의 우상입니다. 공산주의든, 자본주의든, 식민주의든, 민주주의든, 사람이 만든 제도와 이념은 모두가 우상입니다. 20세기에는 또 사람을 우상으로 섬겼습니다. 칼 맑스와 히틀러, 레닌과 모택동, 김일성 등 많은 사람들을 우상으로 만들고 섬겼습니다. 그 결과는 비참한 노예 생활과 전쟁이었습니다. 21세기의 우상은 무엇입니까? 때로는 막강한 영향력은 지니는 매스 미디어(TV, 방송, 컴퓨터)가 우상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연예인이나 체육인이 우상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대인의 가장 큰 우상은 "뭐니뭐니 해도 머니(돈)"인 것 같습니다. 돈 때문에 무슨 짓이든 다 하고, 돈 때문에 사람이 꼭 해야 할 도리를 안 합니다. 만약 우리가 돈을 우상처럼 섬기면, 우리는 돈의 노예가 됩니다. 돈의 노예가 된 사람은 결국 돈으로 병들고, 돈으로 미치고, 돈으로 망합니다.

옛날에는 우상이 분명했기 때문에 우상 앞에 절하는지 절하지 않는지도 분명히 가려졌습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우상 앞에 절하지 않기 때문에 누가 어떤 우상을 섬기는지를 식별하기가 참으로 어려워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박해가 없는 오늘날이 도리어 우상을 섬기기가 더 쉬운 시절이 되었고, 그러면서도  우상 숭배를 가리기는 더 어려워졌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를 다니고 주님을 믿고 부르는 성도라고 해서, 모두가 우상 숭배로부터 떠난 것은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도 우상을 모실 수 있습니다. 아니 세상 욕심을 신앙의 이름으로 포장할 수 있기 때문에 성도는 세상 사람보다 더 교묘하고 은밀하게 우상을 섬길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사실은 주님이 다시 오셔서 우리 모두를 심판대 앞에 세우실 때에 밝히 드러날 것입니다. 숨기운 것이 드러나지 않은 법이 없습니다. 그날에는 모든 것이 백일하에 드러날 것입니다. 하지만 이 땅에서 진정으로 주님을 섬기는 사람은 많은 손해와 고통을 겪습니다. 성경 말씀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을 것입니다"(딤후 3:12). 아직도 순교와 핍박의 시대는 완전히 지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이름으로 고난을 받는 성도들은 주님이 빨리 다시 오시기를 고대합니다. "마라나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그 날에는 모든 족속들이 주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주님을 경배할 것입니다. 이 날이 오기까지 우리 모두 그 어떤 우상 앞에서도 무릎을 꿇지 맙시다. 그 어떤 세상의 주들을 섬기지 맙시다.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섬깁시다. 죽도록 충성합시다. 그리하면 영광의 주님이 우리에게도 승리와 영광의 면류관을 주실 것입니다(계 2:10).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고, 오직 주님만을 섬기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