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딤전 4:7-8

  2004년 1월 11일, 현풍제일교회

 

 

우리 교회의 올해 목표는 '진보하는 교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점에서 진보해야 합니까? 무엇보다도 우리의 믿음이 더 한층 진보하기를 바랍니다. 외형의 성장도 물론 해야 하겠지만, 그보다 먼저 우리의 믿음이 더 크게 진보하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성장이 없는 외형의 성장은 사상누각(砂上樓閣)이요, 빛좋은 개살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 하나님이 의롭다고 여기시는 일을 먼저 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가장 의롭다고 여기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실한 믿음,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부모님들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들은 자식들의 값싼 위로나 값비싼 선물이 아니라 진실한 믿음입니다. 하물며 육신과 영혼의 부모님이신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만물이 다 하나님의 것이거늘, 우리가 그 무슨 귀중한 물건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겠습니까?

부모님을 믿는 자식들이 가져야 할 합당한 태도가 공경심이듯이,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마땅히 가져야 태도는 바로 경건심입니다. 경건에 대해 사람들이 여러 가지로 말을 해 왔지만, 오늘 우리는 사도 바울이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주었던 교훈을 통해 큰 은혜를 받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깨닫고 실천한 경건을 조금이나마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그가 깨달은 경건의 비밀이 얼마나 큰지, 디모데전서 3장 16절에서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요"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경건이 얼마나 중요한지,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낸 두 번의 편지 속에서 10번이나 경건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1. 왜 경건해야 합니까?

왜 우리는 경건해야 합니까? 아니 만약 우리가 경건하지 못하면,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먼저 경건하지 않은 사람의 특징을 알아봅시다. 디모데전서 6장 4-5절 말씀을 보면, 경건하지 못한 사람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들은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며, 투기하고, 분쟁하고, 훼방하며, 악한 생각을 가지며, 마음이 부패하며, 진리를 잃어버립니다. 디모데전서 6장 9-10절 말씀을 보면, 경건하지 못한 사람들은 돈을 사랑하는 결과로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찌르며, 시험과 올무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며, 결국 파멸과 멸망에 빠집니다. 디모데후서 3장 1-4절 말씀은 말세의 특징을 열거하는데, 이런 특징은 바로 경건하지 못한 사람들의 특징을 꼭 빼어 닮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뽐내고, 교만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않으며, 거룩하지 않으며, 무정하며, 원한을 풀지 아니하며, 비방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합니다. 지금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의 모습과 너무 흡사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우리도 세상 사람들에게 감히 손가락질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자칫하면,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이 없는 사람이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경건 생활을 게을리 하면, 바로 이런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주의에서 그런 사람들을 너무나 많이 볼 수 있습니다.

 

2. 어떻게 경건에 이릅니까?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경건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경건에 이르기 위해 우리가 버려야 할 것과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을 말합니다.

(1) 먼저 경건에 이르기 위해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 4장 6-7절에서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라"고 말하며, 디모데후서 2장 15-16절에서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고 말합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란 "저속하고 헛되고 꾸며낸 이야기"를 말합니다. 여기서 저속하고 헛되고 꾸며낸 이야기란 그 당시에 교회를 상당히 위협하던 잘못된 사상, 학자들이 일반적으로 "영지주의"라고 부르는 사상입니다. '영지'란 신령한 영적인 지식'을 말하는데, 영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이론의 핵심은 바로 이원론입니다. 디모데전서 4장 3절 말씀을 보면, 그들은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였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육신과 결혼, 물질을 악한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영지주의자들의 가르침에 의하면 천지를 창조한 신은 악한 물질의 신이고, 그래서 육신과 물질은 악합니다. 어쩌다가 우리의 선한 영혼이 악한 물질과 육신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구세주가 이 땅에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육신은 악하기 때문에 구세주가 육신을 입고 올 수는 없으며, 그래서 구세주는 육신으로 죽지도 않았으며, 육신으로 부활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신령한 지식을 가르침으로써 인간들을 영혼의 세계로 안내한다고 합니다. 이런 가르침이 교회 안으로 파급해 들어왔을 때, 성령 충만을 받았다고 생각한 열광주의자들이 이런 가르침을 따르게 되었고, 그래서 교회 안에 심각한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런 헛되고 이야기에 속아서 넘어가지 말 것을 경고합니다.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니, 감사함으로 받으라"고 말합니다. 기독교는 육신과 세상을 악하고 더러운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육신과 세상은 선한 하나님의 좋은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육신의 욕망과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 죄악일 따름이요,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하나님보다 피조물을 더 사랑하는 것이 잘못일 따름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을 입고 오셨고, 육신을 문제를 위해 구원을 베푸셨고, 육신으로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신령한 육신으로 부활할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영혼만의 구원을 바라지 않고, 몸과 혼과 영혼의 온전한 구원을 바랍니다. 오늘날에도 가끔 이런 이상한 가르침을 퍼뜨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도 교회를 위협하고 성도를 미혹하는 이단과 사설, 사이비 종교들이 계속해서 출몰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사람들의 가르침에 조심하십시오. 성경 말씀을 자기 마음대로 가감하고 꾸미는 이단들을 단호히 물리치십시오. 이단과 사설은 처음에는 매우 달콤한 말로 사람의 말을 미혹하지만, 결국에는 사람들의 정신과 물질, 심지어는 순결까지 빼앗으며, 결국 가정과 사회를 파괴합니다. 이런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항상 경건에 이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2) 그러면 경건에 이르기 위해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 4장 6-7절에서 "선한 교훈으로 양육을 받고", 디모데후서 2장 15-16절에서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써라."고 말합니다. 이단과 사설에 빠져서 결국에는 경건하지 못한 파멸의 삶으로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는 늘 선한 교훈으로 교육을 받아야 하며,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성경의 교훈, 교회의 가르침에 늘 유념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전서 4장 13절에서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고 가르치며, 6장 3절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전념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경건에 이르기 위해 바울은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써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자신이라 함은 우리 전체를 말합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 우리의 시간과 재물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써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실천하기 위한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은 역시 예배입니다. 예배를 통해 우리는 기도와 물질, 찬양을 하나님에게 드립니다. 더욱이 예배 중에 우리는 설교를 통해 선한 교훈을 듣고, 진리를 옳게 분별하는 법을 배웁니다. 그러므로 경건에 이르는 일에 예배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예배를 게을리 하면, 우리의 삶을 결국 경건에서 멀어집니다. 예배에 소홀할수록, 우리에게는 경건의 모양만 남고 경건의 능력은 사라지고 맙니다. 이름만의 신자, 껍데기 신자가 되고 맙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자족하는 마음도 경건한 삶에 이르는 일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영지주의자들처럼 현실과 물질을 무시하는 금욕주의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현실과 물질에 지나치게 집착해서도 안 됩니다. 일용할 것으로 만족하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6장 6-8절에서 바울은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므로,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만족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대개 이단과 사설은 "갑자기 큰  부자가 되게 해주겠다. 갑자기 병을 고쳐 주겠다"고 장담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자들에게서 멀리 떠나라고 말합니다. "투기와 증권 등으로 쉽게 돈을 벌게 해 주겠다"는 사람들도 조심하십시오. 이런 사람들에게 순진하게 속아넘어가 돈과 신앙까지 완전히 까먹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닙니다.

    

3. 경건의 유익은 무엇입니까?

경건은 무엇에 유익합니까? 디모데전서 4장 8절에서 사도 바울은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고 말합니다. 육체의 연습도 상당히 유익합니다. 꾸준한 육체 훈련은 건강한 삶을 보장합니다. 강한 육체적 훈련은 경기의 승리를 보장합니다. 우리 나라 월드컵 팀이 16강을 넘어 4강의 기적을 이룬 것은 바로 체력 훈련을 잘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경건의 훈련은 육체의 훈련보다 더 유익하다고 말합니다. 육체의 훈련은 약간의 유익이 있지만, 경건의 훈련은 범사에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즉 경건의 훈련은 이 세상과 장차 올 세상에 생명을 약속한다는 것입니다. 실로 육체의 훈련도 건강한 생명을 유지해 주지만, 과도한 운동은 활성산소를 많이 만들기 때문에 오히려 생명에 해롭다고 합니다. 그래서 육체적 운동을 많이 한 선수들이 비교적 오래 살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에 반해 종교인들은 가장 오래, 건강하게 산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기도와 찬송, 감사의 생활은 심신에 큰 유익을 주기 때문입니다.

요즘 명상 운동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이 뇌에 관해 실험을 해 보았는데, 명상을 많이 하게 되면,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왼쪽 뇌(좌측 전전두피질)가 왕성하게 활동한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긍정적인 감정은 심신의 건강에 아주 좋습니다. 그런 점에서 경건의 훈련이 이 세상에 생명을 약속한다는 사도 바울의 말은 과학적으로도 타당합니다. 더욱이 경건의 훈련은 이생의 건강한 생명만이 아니라 내세의 영생을 약속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경건한 믿음은 영원한 구원을 약속합니다. 그러므로 운동도 좋고 보약도 좋지만, 경건 생활만큼 좋은 운동과 보약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올해 동안은 특히 우리가 모두 경건 생활에 큰 진보를 나타냅시다. 그리하여 범사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생명의 기쁨을 풍성히 누리는 나날이 됩시다. 그렇게 하려면 이전보다 더 열심히 말씀을 읽읍시다. 기도 생활에 더욱 더 매진합시다. 찬양과 감사를 더 많이 드립시다. 모이기를 더욱 힘쓰고, 더욱 열심히 하나님을 예배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