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선한 싸움을 싸우라

 

딤전 6:3-12

2004년 4월 25일, 현풍제일교회

 

 

지난 주일(4월 19-21일)에 우리는 모처럼 심령부흥회를 열어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수정교회 조일래 목사님이 아무런 보수를 받으시지 않고 열심히 말씀을 전해주신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큰 은혜를 받았지만, 생생한 간증을 통해 힘차게 설교하신 내용을 통해서도 우리는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은혜를 소중히 간직하시고 종종 말씀을 되새기시면서, 여러분이 생활이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넘쳐 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번 부흥회의 마지막 시간에 조일래 목사님은 '성도답게 삽시다'라는 제목으로 다섯 가지를 가르치셨습니다. 아직 잊지 않으셨으리라 믿습니다. 그것은 바로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1.하나님에게 순종하라. 2.악마에게 대적하라. 3.주의 종에게 협력하라. 4.이웃을 사랑하라. 5.자기를 희생하라. 이 다섯 가지 말씀 중에서 우리가 가장 이해하기 어렵고 또 실천하기도 어려운 말씀은 바로 두 번째 말씀, 즉 "악마에게 대적하라"는 말씀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본문 6장 12절에서 바울도 감옥에서 쓴 편지를 통해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싸움을 싸우라? 하지만 누가 싸움을 좋아하겠습니까? 전쟁에 관한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지옥이 따로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사람들은 대개 전쟁을 마지막 수단으로 사용하지만, 마지막 운명이 어떻게 결정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전쟁에는 영원한 승리가 없습니다. 설령 한편에서 승리를 거두었다고 하더라도, 오직 상처뿐인 승리만 있을 따름입니다. 베트남 전쟁이 그러하며, 지금 한창 진행 중인 이라크 전쟁도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게 지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 히브리서 기자도 말합니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좆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

하지만 성도가 악마와 죄악과 더불어 화평하게 지낼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죄인을 향해서는 한없이 너그러우셨던 예수님도 마귀와 죄악을 향해서는 단호한 심판을 선언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마 10:34). 그리스도인은 분쟁의 한 복판에서 평화의 일꾼으로 살아가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죄악과 더불어 싸우는 의의 군사요, 십자가의 군병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이는 개인적인 죄와 더불어 싸우고, 어떤 이는 사회적인 악과 더불어 싸우고, 어떤 이는 세계적인 악과 더불어 싸우고, 어떤 이는 우주적인 악과 더불어 싸웁니다. 개인의 처지와 역량에 따라 싸우는 대상이 제 각기 다릅니다만, 우리는 아직 최종적으로 승리한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까지 힘겹게 싸우는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대장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선한 싸움, 의의 싸움을 잘 싸울 것을 명령하십니다. 다른 곳에서도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 6:12). 그러므로 우리의 싸움은 세상의 싸움보다 더 고상하고 더 벅찬 싸움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바울이 그리스도인에게 명하는 싸움이 어떤 싸움인지를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본문 3절에서 5절까지 바울은 먼저 우리가 종종 이끌려 들어가기 쉬운 잘못된 싸움을 경고합니다.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아니 하면, 저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여기서 말하는 싸움은 변론과 언쟁으로 시작되는 이론적인 싸움입니다. 하지만 흔히 사소한 말싸움이 칼부림으로 발전하듯이, 이론적인 싸움은 실제적인 싸움으로 발전합니다. 그것은 바로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과 마음의 부패와 진리의 상실과 경건의 악용입니다. 왜 거룩한 교회 안에서 이런 싸움이 일어납니까? 그것은 바로 다른 교훈을 전하기 때문이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충실하지 않기 때문이요, 바로 그래서 성도가 교만해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다른 교훈이란, 지난 시간에도 말씀을 드렸듯이, 바로 학자들이 일반적으로 '영지주의'라고 부르는 사상입니다. 영지주의의 핵심은 바로 이원론입니다. 즉 영지주의는 물질을 악하게 생각하고, 영혼의 세계를 동경합니다. 그러므로 영지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신령한 구원을 받기 위해 육신과 물질을 억압해야 한다고 믿었으며, 이런 거짓된 교훈을 가지고 교회 안을 들어와 분쟁을 일으켰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물질의 세계인 육신을 들어오지 않았다고 가르쳤으며, 심지어 예수는 십자가에서 달려 돌아가지 않고 구레네 시몬이 대신 십자가에 달려 죽었고, 그래서 예수는 부활하지 않았다고 가르쳤습니다. 영지주의를 믿는 사람들은 이처럼 거짓 교훈을 가지고 그리스도인을 미혹하였습니다. 이들은 변론과 분쟁을 일삼으며 그리스도인을 투기하고 훼방하였을 뿐만 아니라,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삼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이단과 사설을 분간하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대개 이단과 사설은 교묘하게 진리를 위장하기 때문에 평신도들이 올바로 판단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단과 사설에 미혹되지 않도록 조심하기 바랍니다. 이럴 때에 여러분은 이단의 가르침이 과연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일치하는지 꼼꼼히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전문적인 신학자와 목회자의 조언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이단과 사설을 쉽게 구분하는 중요한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새로운 교훈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무엇을 노리는지를 살펴보는 길입니다. 그들은 신령한 교훈과 경건한 몸짓을 내세우지만, 그들이 노리는 목적은 바로 진정한 경건이 아니라 바로 물질적인 이익입니다. 5절에 나오는 말씀처럼 그들은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그들은 경건을 이득의 수단으로 생각합니다. 이단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개 신도들의 재산을 가로채고, 가정을 파괴하며,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킵니다. 여러분은 이런 사람들과의 싸움은 가급적 피하시되, 교회 안으로까지 들어오는 이런 사람들과는 단호히 결별해야 합니다. 거룩한 교회를 지키기 위해 사악한 그들과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진정한 경건에 이르기 위해 그리스도인이 싸워야 할 두 번째의 대상은, 본문 6절에서 10절까지 쓰여 있듯이, 바로 돈입니다. 아니 돈이라기보다 돈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영지주의자들처럼 물질을 악하게 보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러므로 돈도 결코 악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만드시고 주신 것들은 모두 선합니다. 하지만 돈은 우리가 벌고 쓰고 사용해야 할 생활의 필수품이지, 우리가 사랑해야 할 대상은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돈을 사랑하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사랑하라"고 가르치는 대상은 오직 하나님과 이웃뿐입니다. 그 외의 대상들은 우리가 선용할 수는 있어도 사랑할 것까지는 없습니다. 돈을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9절의 말씀처럼 부자가 되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물론 아무나 부자가 되고 싶다고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부자는 하늘이 내린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심히 어렵다"고 말씀하셨고,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에서도 바울은 "먹을 것과 입을 것으로 족한 줄로 알라"고 말합니다. 왜 바울은 부자가 되려는 것과 돈을 사랑하는 것을 경고합니까? 그것은 바로 자족하는 마음이 없으면, 경건에 아무런 이익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족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은 "재물을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더 많이 가지고 싶은 끝없는 탐욕의 수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괴롭다"는 말이요, 바로 그래서 "재물을 아무리 가져도 감사와 기쁨이 없다"는 말입니다. 감사할 줄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과 가족과 이웃을 참으로 존경하고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감사가 없는 곳에 어떻게 경건한 자세가 우러나오겠습니까?

그리고 바울이 부자가 되려는 것과 돈을 사랑하는 것을 경고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부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이 어떤 시험과 올무와 정욕에 떨어집니까? 하나님과 이웃의 것을 도둑질하려는 시험에 빠집니다. 뇌물과 부패의 올무에 떨어집니다. 향락주의, 쾌락주의, 이기주의에 떨어집니다. 그 결과는 바로 멸망입니다. 재물을 섬기는 사람은 결국 재물을 우상처럼 받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부인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버림을 받는 상태, 즉 멸망에 이릅니다.  

성결교회가 낳은 위대한 부흥사인 이성봉 목사님은 올바른 물질관을 가르치기 위해 '물과 배'를 비유로 들었습니다. "물은 배를 뜨게 하는 데 대단히 필요한 것이지만, 만일 배에 구멍이 뚫어져 물이 배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 배는 물에 잠겨 물로 망하고 만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물질의 힘으로 산다. 그러나 욕심의 구멍이 뚫어져 물질을 탐하다가는 물질로 망하는 것이란 말이다. 황금은 흑사심(黑邪心)이라 하였고, 우리 주님께서는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하셨다. 다시 말하면 너희는 먼저 생명 있는 말을 앞세워라. 물질 마차는 따라가리라." 돈은 생활의 필수품이지만, 사람이 마음을 돈에 대한 욕심, 돈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채워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다가 돈 때문에 망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돈과 싸울 필요는 없지만, 돈을 사랑하는 잘못된 자세와는 싸워야 합니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