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할까?

 

신 6:4-9

 2004년 10월 3일, 현풍제일교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주님의 평화가 늘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오늘 신명기 6장4절에서 9절까지의 말씀을 토대로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할까?"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아, 들으라"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들어라"라고 명령하는 자는 모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스라엘을 애굽의 종살이로부터 해방하고 광야로 인도한 지도자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까지 데려오기는 했지만, 백성들은 그야말로 오합지졸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애굽의 생활에 젖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이 누구시며, 그들이 장차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전혀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광야에서 교육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소명을 받은 호렙산으로 올라가 다시금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으로부터 백성이 지켜야 할 계명과 명령을 받아 백성에게 전달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그 중의 하나이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매일마다 온 가족과 더불어 낭독하던 매우 중요한 본문입니다.

비록 여기서 명령하는 자는 모세이지만, 그는 단지 하나님의 입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여기서 명령하시는 분은 아브라함과 야곱과 이삭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입니다. 다시 말하면 여기서 명령하시는 하나님은 아무나 부를 수 있는 이런저런 하나님이 아니며, 누구나 믿을 수 있는 일반적인 하나님도 아닙니다. 그분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종살이로부터 구출하시고 그들과 영원한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여기서 명령하시는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너무 사랑하셔서 그들을 종살이로부터 구원하시고 광야 생활 동안 줄곧 함께 하시고 가나안 땅을 향해 인도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이 지금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령하십니다. "들어라..."

그러면 이스라엘이 들어야 할 말씀은 무엇입니까?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를 사랑하라"고 명령하십니까? 여호와는 오직 한 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말은 무엇을 뜻합니까? 우주와 생명의 근원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는 말씀이요, 그래서 구원과 소망도 오직 하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진기한 보물이 있다면, 사람들이 얼마나 이를 사랑하겠습니까? 세상에 부모님이 단 한 분 밖에 없기 때문에 부모님을 진심으로 공경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상에 목숨이 단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목숨을 소중하게 여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세상에 보물과 부모님과 목숨이 여러 개라면, 굳이 하나만을, 한 분만을 사랑할 필요는 없습니다. 더욱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높으신 분, 가장 거룩하고 놀라우신 분, 하나님이 단 한 분밖에 없다면, 우리는 그분을 진정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합니까? 성경은 말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하나님을 두 마음으로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적당히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온 마음과 온 뜻과 온 힘을 다하여 사랑해야 합니다. 이 사랑의 명령 뒤에 나오는 말씀(6:10-15)을 보면, 사람이 다른 신들을 섬기느라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을 소홀히 하는 것에 대해 엄히 경고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향하여 네게 주리라 맹세하신 땅으로 너로 들어가게 하시고, 네가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읍을 얻게 하시며, 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얻게 하시며,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얻게 하사, 너로 배불리 먹게 하실 때에 너는 조심하여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섬기며, 그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 너희는 다른 신들, 곧 네 사면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좇지 말라. 너희 중에 계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신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진노하사, 너를 지면에서 멸절시키실까 두려워하노라."

오늘날의 말로 하면, "세상의 재물이나 학식이나 명예나 그 밖의 소중한 보물에 마음을 뺏기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진심으로 사랑하라"는 말이 되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만약 우리의 일부만을 하나님에게 건다면,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전적으로 의지해야 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 우리의 모든 재산과 생명까지 걸어도 좋은 분이십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참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만약 하나님이 적당히 사랑해도 좋은 하나님이시라면, 우리의 믿음만이 거짓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믿는 하나님도 거짓된 하나님, 우리가 지어낸 하나님임이 드러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거짓말을 하든지,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시든지, 둘 중의 하나가 진리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 앞에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진심으로, 전적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온 마음과 온 정성과 온 힘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까? 사랑만큼 사람들이 좋아하는 말도 없고, 사랑만큼 사람들이 실천하는 일도 없지만, 사랑만큼 모양이 제 각각인 것도 없습니다. 다 제 멋대로 사랑하고, 제 생각대로 사랑합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까지 버리는 고귀한 사랑도 있고, 결코 이루지 못한 짝사랑도 있고, 서로 얽히고 설킨 삼각 사랑도 있고, 사랑을 성취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주저하지 않는 비뚤어진 사랑, 불륜의 사랑도 있나 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랑하기 때문에 "죽어도 같이 죽는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죽였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랑하기 때문에 살려 주었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더욱이 요즘 사람들은 "사랑이 움직인다"고 합니다. 사랑의 대상이 이리 저리로 바뀐다는 말입니다. 사람마다 사랑의 대상도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 사람만을 좋아합니다. 어떤 사람은 여러 사람을 좋아합니다. 어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수시로 바꿉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보다 동물과 식물, 심지어 광물을 더 사랑합니다. 어떤 사람은 사랑보다 이념을 더 사랑합니다. 사랑이 하도 여러 모양이고, 하도 여러 꼴을 갖추고 있으니, 세상이 이렇게 어지러운가 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하는 방법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바로 그 뒤에 나오는 말씀이 말합니다.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진심을 사랑하는 비결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비결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에게 많은 제물 혹은 재물을 드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하나님이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있단 말입니까?

옛날 어느 마을에 어떤 양반이 이른 아침에 종을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애야, 오늘 너 한양에 좀 갔다 와야 하겠다." 종은 "예, 알았습니다, 주인님"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에 주인이 물건을 챙겨 종에게 심부름을 시키려고 종을 부르니, 도저히 어디에 있는지 대답이 없고, 하루 종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해가 질 때가 되자, 종이 어슬렁거리며 주인 앞에 나타났습니다."이놈, 오늘 너를 한양에 보내려고 하루 종일 찾았는데, 어디 갔다 오는 거야?"라고 주인이 다그치니, 종의 대답이 참으로 웃깁니다. "네, 주인님, 방금 한양에 다녀왔습니다."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한양에 다녀왔다는 이야깁니다. 주인이 왜 한양에 보내는지, 무슨 심부름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한양에 다녀온 것만으로 제 할 일을 다 했다는 이야깁니다. 이게 주인을 기쁘게 해 드리는 일입니까? 우리가 이 종이 어리석다고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우리도 이런 어리석은 종이 되고 있지 않은지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도 지금까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고, 하나님은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를 제대로 알려고 하지는 않고,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기만 하면 된다고 착각해 오지는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무엇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듣고 알고 깨닫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이 어느날 마르다의 집을 방문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시는 것이 너무 기쁜 나머지 마르다가 예수님을 극진히 영접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시장하실까 봐 - 실제로 많이 시장하셨을 겁니다만 - 마르다는 부엌에 들어가 맛있는 음식을 차리느라 매우 분주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때에 언니의 일을 거들어 주어야 할 여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아래 앉아 예수님의 말씀을 열심히 듣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화가 난 언니 마르다는 예수님에게 "주님,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내버려두고 있는 것을 보시지 않습니까? 나를 도와주라고 말씀해 주소서."라고 했습니다. 당연히 동생 마리아를 꾸짖으실 줄 알았던 마리아는 예수님에게 뜻밖의 충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음식을 차리려고 애쓰는 것은 좋으나, 몇 가지 음식만 차리든지, 한 가지 음식만이라도 족하다. 마리아는 더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눅 10:38-42). 예수님도 예수님을 위한답시고 많은 일을 벌리는 것보다, 그 이전에 먼저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듣고 새기고 가르치는 것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가장 중요한 비결이라는 말입니다.

"말씀을 마음에 새기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심중에 깊이 새겨 담아 두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건성으로, 그냥 지나가는 말씀으로 가볍게 들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가슴 깊이까지 파고들어, 우리의 감정과 지성과 의지를 전적으로 지배하게 하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마음의 중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간직하고 행동한다고는 하지만, 때로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고 자신의 생각과 소견대로 행동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고, 또한 우리들의 연약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 한 복판에 당신의 말씀을 새기고 우리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그 말씀대로 살아갈 것을 명령한 것입니다.

말씀을 마음에 새긴 후에, 이 말씀을 행하려고 하기 전에 성경은 먼저 "자녀들에게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말합니다. 우리 자손들에게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시며, 그분이 행하신 구원의 행위가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주고 들려주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 이유는 후손들도 길이길이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고, 과거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총을 거울삼아 앞으로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야만 구원의 역사는 단절되지 않고 계속 이어집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사람이 계속 배출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자녀 교육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말씀을 쓴 종이를 손목에 매고, 이마 사이에 붙이고,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하라."는 말씀입니다. 집 안팎에 성경 말씀을 걸어 놓는 경우는 종종 볼 수 있습니다만, 말씀을 손에 걸고 이마에 붙이는 사람은 보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나 이런 일을 실천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처음에는 잘 했을 겁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귀찮고 어색하고 조롱거리가 되니까, 이런 일을 하지 않았을 법합니다. 이 말씀이 진의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내 눈에 띄기 좋게 손에 붙여 다니고, 남의 눈에 띄기 좋게 이마에 붙이고 다니라는 말입니다. 그만큼 말씀이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도록, 어디서나 말씀을 보게 하고 읽게 하라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