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주의 얼굴빛을 비취소서

 

시 80:1-19

2005년 3월 6일, 현풍제일교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주님의 평화가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지난 주일에 제가 말씀을 드렸듯이, 주님의 얼굴은 언제나 영광의 빛으로 가득합니다. 이 빛을 늘 사모하고 받아들이는 성도는 세상 사람처럼 어려운 환경에서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빛을 늘 받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밝고 기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의 얼굴은 언제나 환하게 빛나게 됩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는 병든 성도, 아니 가짜 성도일 것입니다. 누가 참 성도인가 아닌가를 분별하려면,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십시오. 만약 늘 환한 얼굴을 하고 있다면, 참 성도입니다. 만약 늘 얼굴을 찡그리고 있다면, 참 성도가 아닙니다. 물론 참 성도라고 해서, 고난이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참 성도라면, 고난을 이길 뿐만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감사할 줄 압니다. 아니 고난을 통해서 오히려 하나님에게 더 큰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참 성도는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하는 얼굴과 웃는 얼굴이 어디 억지로 되던가요? 잘, 아니 절대로 안 됩니다. 오직 주님의 빛나는 얼굴을 늘 바라보는 성도라야, 언제나 환한 얼굴을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님을 늘 바라보기를 원하지만, 만약 주님이 등을 돌리시고 우리를 바라보시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거울이 아무리 태양을 쳐다보려고 해도, 만약 태양이 구름 속에 들어가 있다면, 아무런 빛도 발할 수 없습니다. 태양이 얼굴을 들기 전에는 아무리 큰 거울도 빛을 반사할 수 없습니다. 그처럼 성도가 아무리 주님의 얼굴을 사모해도, 아무리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려고 해도, 만약 주님이 얼굴을 우리에게 돌리시지 않는다면, 만약 주님이 얼굴을 우리에게 감추신다면,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우리편에서 볼 때,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도 대단한 노력이요, 간절한 기도의 행위가 되겠지만, 주님을 바라보려고 아무리 애타게 노력해도, 주님의 얼굴을 보려고 아무리 간절히 기도해도, 만약 주님이 우리를 외면하신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바라보셔야만, 우리도 주님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반겨주셔야만, 우리가 위로와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80편을 쓴, 이름을 알 수 없는 어느 성도는 하나님을 향해 이렇게 외칩니다. 주의 얼굴빛을 비취소서! 한번도 아니고 네 차례에 걸쳐, 1절, 3절, 7절, 19절에서 그렇게 거듭 거듭 외칩니다. 주의 얼굴빛을 비취소서! 그가 부르짖고 찾는 그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절은 "요셉을 양떼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라고 말합니다. 4절과 7절, 14절, 19절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성도는 그 혼자서, 개인 자격으로, 개인의 처지에서 그 자신만의 하나님을 향해 외치지 않습니다. 그는 지금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신 하나님을 부릅니다. 그가 부르는 하나님은 단지 그만이 알고 있는 은밀한 하나님이 아니라 만군의 하나님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 종살이로부터 구원하신 하나님, 이스라엘 민족을 다른 민족으로부터 보호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하나님을 부르는 성도는 지금 이스라엘 민족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사실 민족이 없는 개인은 없으며, 개인이 없는 민족도 없습니다. 물론 옛날이나 요즘에도 민족이나 국가가 없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국적이나 민족도 없이 마치 집시처럼, 나그네처럼 떠도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36년 동안 일제로부터 국가를 빼앗겨보았듯이, 국가와 민족이 없는 개인은 참으로 비참합니다. 참으로 무력합니다. 그러므로 비록 국가와 민족도 영원하지는 않지만,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는 국가와 민족은 참으로 소중합니다. 더욱이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모든 민족을 구원하려고 선택하신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사람 하나, 하나가 곧 이스라엘이었습니다. 본문에는 여러 사람의 개인 이름이 나옵니다. 요셉,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므낫세라는 이름입니다. 이와 같은 이름은 개인의 이름이지만, 여기서는 이스라엘 전체를 말하는 이름입니다.

다른 성경 본문을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야곱이라고 부르십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시든, 다른 족장의 이름을 부르시든, 하나님은 항상 이스라엘 전체를 염두에 두고 부르십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부를 때, 단지 개인의 하나님만을 부르지 않습니다. 특히 국가와 민족에 크고 작은 일이 있을 때마다, 애국가의 가사처럼 하나님이 우리 나라를 늘 보호하심을 믿고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는 바로 애국자입니다. 물론 국가와 민족이 망해도, 교회는 여전히 존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와 민족이 없는 교회는 얼마나 무력하고 서러운지는 역시 일제 시대를 경험해 보신 분들은 잘 아시지 않습니까? 일제가 우리 나라의 땅과 재산, 말과 문화만이 아니라 교회를 파괴하려고 얼마나 못된 짓을 많이 했습니까! 국가와 민족을 잃은 교회의 고통은 얼마나 컸습니까?

우리도 대개 편할 때보다는 어려울 때에 하나님을 찾듯이, 본문에 나오는 한 성도도 역시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을 향해 외칩니다. 이 성도가 어떤 고난에 처해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5-6절과 12-23절, 15-17절을 통해 미루어 볼 따름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지금 눈물의 빵을 먹고 있고, 심지어 눈물까지 먹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웃나라로부터 시비를 당하고 있고, 원수들로부터 비웃음을 사고 있습니다. 나라의 울타리가 무너지고 나그네와 짐승들이 살림살이를 마구 빼앗아갑니다. 나라가 불타고 있고, 망해가고 있습니다. 아마 지금 이스라엘은 외국의 침략을 받고 있거나, 그런 침략 앞에 떨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라가 점점 쇠약해지고, 멸망 직전에  처해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성도가 처해 있는 형편은 우리 나라가 일제의 침략과 지배를 받았던 형편과 매우 비슷해 보입니다. 지금 우리는 일제로부터 해방은 되었지만, 아직도 완전한 해방과 독립을 쟁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아직도 우리를 깔보고 있습니다. 충분한 사과와 배상을 하기는커녕, 엄연히 우리 나라 땅인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일본의 군사력은 날로 강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직 안심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작은 이 나라가 둘로 쪼개진 채, 아직도 서로 원수처럼 싸우고 있고, 지금도 통일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아직도 우리 민족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시편을 쓴 한 성도처럼 우리도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남의 나라의 종살이를 할 때에는, 우리가 찢어지게 가난하고 서러울 때에는, 하나님에게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고, 하나님을 그렇게 간절히 의지하더니만, 조금 잘 먹고 잘 살게 되었다고, 벌써부터 교만한 인간이 되어 하나님을 부인하고, 방자하게 하나님을 버리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집니다. 주님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이런 형편에 우리도 시편을 쓴 한 성도처럼 다음과 같은 기도를 드리고 싶은 심정이 됩니다. "하나님이여, 우리를 회복시켜 주십시오. 우리가 구원을 받도록 주님의 빛나는 얼굴을 비추어 주십시오. 우리가 주님을 떠나지 않을 테니, 우리에게 새 힘을 주십시오."

며칠 전에 3.1절을 지켰습니다만, 해방된 지 벌써 50년이 넘었건만, 아직도 일본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버젓이 남아서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한승조(75)라고 하는 고려대의 한 명예교수가 일본의 한 잡지에 쓴 글 때문에 지금 장안이 시끄럽습니다. 그 사람이 뭐라고 말했는가 하면, 일본의 한국에 대한 식민지배는 원망할 게 아니라 오히려 축복해야 하는 것이며, 일본인에게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일본의 지배를 받지 않았다면, 러시아의 지배를 받을 뻔했으므로, 차라리 우리와 여러 가지 면에서 닮은 점이 많은 일본 사람의 지배를 받은 것이 오히려 감사할 일이라는 말입니다. 공산주의 국가인 러시아 지배를 받는 것보다는 일본의 지배를 받는 것이 훨씬 더 낳았다는 주장이 일리가 전혀 없다고 말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지배를 감사와 축복으로 여기라는 말은 너무 지나친 황당한 주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일제로부터 온갖 수모를 당해본 사람의 입장에서는 비통한 주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누구로부터 수모를 당하든, 수모는 수모입니다. 비록 우리가 못나서 수모를 당했다고 하더라도, 수모를 준 사람의 책임은 면키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리도 반성할 것은 반성해야 합니다. 우리도 돌이킬 것은 돌이켜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을 섬긴다면, 양심과 정의를 저버리고 부패와 불의를 마구 행한다면, 하나님의 진노를 다시 받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일본이 아무리 악독했어도, 우리가 우리 땅을 잘 지켰더라면, 불행한 과거는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이순신 장군과 같은 애국자보다 이완용 같은 매국노가 더 대접을 받는 세상을 계속 만들어간다면, 우리 나라의 미래는 암담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남의 탓을 하기 전에 우리 자신부터 되돌아봅시다. 하나님이 얼굴을 돌리시도록,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시도록, 우리가 잘못하는 일이 없는지를 살펴봅시다. 늘 뉘우치고, 늘 개혁합시다. 무엇보다 늘 기도합시다. 더 이상 눈물의 빵을 먹지 않도록, 더 이상 눈물을 삼키지 않도록, 더 이상 남의 나라로부터 설움과 핍박을 당하지 않도록, 늘 깨어 기도합시다  "만군의 하나님! 주님의 얼굴빛을 비취소서!" 그리고 주님으로 받는 그 환한 빛으로 어두운 세상을 환히 밝히십시다. 여러분이 비취시는 밝은 빛으로 인하여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에게 큰 영광을 돌릴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