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행 4: 1-22

2005년 4월 10일, 현풍제일교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우리 주님의 평화가 가득 넘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여러분은 하루 동안 몇 마디 말을 하고 사십니까? 아마도 일일이 세어보시지 않았겠지만, 상당히 많은 말을 하실 겁니다. 우리는 평생 셀 수 없이 많은 말을 하고 삽니다. 지금 저도 여러분에게 말로 설교하고 있습니다. 물론 말이 아니라도 생각을 전달하는 수단이 많습니다. 손짓과 몸짓, 글과 그림 등으로도 생각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말만큼 생각을 빠르고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수단은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온통 온갖 말로 넘쳐납니다. 말 때문에 말이 많고, 탈도 많은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말을 잘 하는 것은 보통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말을 할 때와 말을 하지 말아야 할 때를 잘 가리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웅변은 은이고 침묵은 금이다."라는 말이나 "돼지에게 진주를 던지지 말라."는 말은 때로는 "침묵이 말보다 더 낫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종종 입을 닫아버리곤 합니다. 너무 기쁘거나 슬플 때, 너무 억울하거나 답답할 때, 우리는 차라리 입을 닫아버립니다. 하지만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아무 말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일에 침묵한다는 것은 그 일에 반대하거나 무관심하다는 말이 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침묵이 말보다 더 강한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늘과 땅은 아무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 시인은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날이 날에게 말하고, 밤이 밤에게 지식을 전한다.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하나님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른다."(시 19:1-4)고 말하였습니다. 이래저래 우리는 말을 하지 않고 살 수는 없습니다. 아니 죽을 때까지 셀 수 없이 많은 말을 합니다.

대개 남자보다는 여자가 말이 많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여자는 구조적으로, 심리적으로 말을 많이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야만 스트레스가 잘 풀리고,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남자들은 좀 귀찮더라도, 여자들의 잔소리와 수다를 너그럽게 이해해 줍시다. 그리고 남자는 시각에 예민한 반면, 여자는 청각에 예민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자는 여자의 외모에 관심이 잘 끌리는 편이고, 여자는 남자의 말에 잘 넘어가는 편이라고 합니다. 예수를 안 믿는 사람보다 예수를 믿는 사람, 예수쟁이는 말이 많다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아마도 교인들이 교회에서 설교를 많이 듣다보니, 세상 사람보다 조금 더 유식해지고 말을 유창하게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쟁이가 말이 많다는 말을 자주 듣는 가장 큰 이유는 전도 때문입니다. 요즘은 전도책자를 비롯한 다른 전도용품을 가지고 전도할 수 있지만, 지금까지 전도는 주로 말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예수쟁이는 자연히 말쟁이라는 '욕 아닌 욕'을 얻어먹게 되었습니다. 물론 욕은 적게 먹거나 안 먹을수록 좋습니다. 그리고 너무 무식하게 전도하는 사람 때문에 기독교인이 통째로 욕을 얻어먹는 것은 좀 억울한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전도하는 방법이 달리 없을 때, 말로 전도하다가 욕을 좀 먹는다고 전도를 그만둘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전도의 대가가 어디 욕뿐이겠습니까? 수많은 성도들이 전도한다는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얼마나 많은 모욕과 핍박과 심지어는 죽임까지도 당하였습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도 베드로와 요한이 복음을 전했다는 단 한 가지 이유로 제사장들과 성전관리들과 사두개인들에게 미움을 사서 붙잡힌 사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튿날에 베드로와 요한은 관원과 장로와 서기관과 대제사장과 그 문중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서 심문을 당하였습니다. "너희는 무슨 권세와 누구 이름으로 이런 일을 행하였느냐?" 그러자 베드로는 성령에 충만하여 담대히 말했습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병자를 고쳤다.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이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 베드로와 요한은 죄수의 몸임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담대하게 전도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을 잡은 사람들은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무식쟁이들이 담대하게 말을 잘 하는 것을 이상히 여겼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와 요한에게 특별한 흠을 발견하지 못한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풀어주면서, "앞으로는 예수의 이름으로 아무 사람에게도 전도하지 말라."고 협박하였습니다. 이런 협박에 전혀 굴하지 않고 베드로와 요한은 말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그래도 관원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처벌할 명분을 찾지 못하였기 때문에 다시 위협하고는 그들을 풀어주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전도의 비결을 배울까 합니다.

 

1) 먼저 베드로와 요한은 전도할 때,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지 않고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내세웠습니다. 사도행전 2장 21절에서 베드로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합니다. 2장 38절에서 베드로는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고 말합니다. 3장 6절에서 베드로는 앉은뱅이에게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말합니다. 4장 12절에서 베드로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말하였습니다. 이처럼 베드로는 가는 곳마다, 전도할 때마다 예수님의 이름을 외쳤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이름을 지을 때, 가급적 부르기 좋고 듣기 아름다운 이름을 지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름은 그야말로 사람을 부르기 위한 수단일 뿐이지, 이름이 무슨 대단한 마력이나 능력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이름은 단지 부르기 위한 방편이 아니라 예수님의 권세를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예수님의 권세를 빌리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기의 권세로 전도하거나 병자를 고치지 않았습니다. 물론 베드로는 정치적으로 큰 힘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면서 모든 재산을 버렸습니다. 더욱이 베드로는 높은 수준의 학식을 갖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남에게 자랑하거나 내세울 만한 것이라고는 전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오랫동안 물고기를 잡던 어부였기 때문에 신체가 늠름하고 목소리도 굵직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육체를 과시하면서, 강압적으로 전도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장가를 들었기 때문에 형제들과 친척들이 많았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사돈팔촌을 들먹이면서 인연을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오랫동안 뱃사람으로 일했기 때문에 거래를 통해 얽혔던 사람들이 많았을 겁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그런 사람들을 골라 다니며, 인정에 호소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예수님의 이름을 빌려서, 오직 예수님의 권세만을 의지하면서, 담대하게 전도하였습니다. 그 결과로 수많은 병자들이 고침을 받고, 수천 명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곧 예수님의 권세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물리쳤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많은 병을 고쳤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유혹과 박해를 이겼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전도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함께 모였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으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한 일을 행하였습니다. 이처럼 초대교회 성도의 모든 생활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 이루어졌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배워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거나 남을 도울 때, 우리는 우리가 가진 권력과 물질과 지식과 인연을 앞세워서는 안 됩니다. 인간적인 수단으로 하는 전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인간적인 수단으로 이루어진 전도는 효과가 별로 없을 뿐만 아니라, 결국 오래가지도 못합니다.

지난 시간에 저는 전도의 주체가 우리가 아니라 성령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다만 성령의 도구일 따름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우리는 능력을 입고, 그래서 담대하고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은 누구십니까? 예수님이 약속하신 하나님의 영으로서 바로 예수님을 증거하시는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전도할 때마다 우리도 성령의 힘을 빌려, 예수님의 이름으로 전도해야 합니다. 나의 체면과 위신도 버리고, 나의 권세와 수단을 버리고, 오직 예수님의 이름을 부를 때, 바로 그때에 우리도 베드로처럼 많은 사람들을 회개시킬 수 있고, 많은 병자들을 낫게 할 수 있습니다.

 

2) 우리가 베드로와 요한으로부터 배워야 할 중요한 두 번째 교훈은 바로 "보고들은 것을 말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관원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협박하면서, "앞으로는 예수의 이름으로 아무 사람에게도 전도하지 말라."고 하였을 때, 베드로와 요한은 뭐라고 말했습니까? "우리는 보고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베드로와 요한은 자신의 사상이나 견해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직 자신들이 보고들은 것을 전하였을 따름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보고 들었습니다. 특히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사건과 부활하신 사건을 생생하게,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물론 오늘 우리는 베드로와 요한처럼 예수님의 모습을 생생히 보고들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로부터 생생한 말을 듣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로부터 들은 말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직접 목격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생애를 통해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누리게 된 놀라운 은혜와 하나님의 큰 축복을 이웃에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누릴 수 없었던 기쁨과 평화와 소망 등을 이웃에게 말해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얼마나 큰복이 되었는지, 예수님을 믿기 전의 생활과 비교하면서, 솔직하게 담백하게 말해 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철학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입니다. 기독교는 이론의 종교가 아니라 체험의 종교입니다. 기독교의 모든 이론은 체험을 설명한 것이지, 체험도 없이 마음으로 상상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전도할 때에도 이런저런 이론을 전달하지 마시고, 여러분이 구체적으로 경험한 사실을 전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실력과 재주를 믿지 말고, 여러분의 힘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성령을 의지하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할 때, 여러분도 베드로와 요한처럼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고,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부탁하건대, 제발 억지로 전도하지 마십시오. 누가 시켰다고 마지못해 전도하지도 마십시오. 하지만 만약 여러분이 좋은 소식, 놀라운 소식을 분명히 보고 들었다면, 이것을 이웃에게 전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입니다. 임금님의 귀가 당나귀의 귀라는 것을 알게 된 이발사처럼 숲을 보고도 말하지 않고서는 답답해서 못 견딜 것입니다. 다만 임금님의 귀를 보지 않고서도 어찌 보았다고 거짓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듣지 않고서도 어찌 들었다고 거짓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만약 여러분이 아직 보지 못했다면, 볼 수 있기 위해 기도하십시오. 하지만 예수님이 도마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보지 못하고 믿는 사람은 더욱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최소한 예수님의 말씀을 사도들을 통해, 성경 말씀을 통해, 설교를 통해 들었습니다. 여러분이 들었던 말씀을 담대히 들려주십시오. 씨를 뿌리는 자는 여러분이지만, 하나님이 언젠가 열매를 거두실 겁니다. 그러므로 당장 열매를 볼 수 없다고 낙담하지 마시고, 믿음으로 뿌리십시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