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담대히 전하라

 

행 4:23-31

2005년 4월 17일, 현풍제일교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우리 주님의 평화가 가득 넘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저는 4월 첫 주일부터 지금까지 계속하여 여러분에게 전도에 관해 설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도에 관해 설교를 하면서부터 제 마음은 점점 괴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먼저 전도의 모범을 보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 양심은 저에게 이렇게 속삭입니다. "전도를 제대로 안 하는 네가 어찌 성도들에게 열심히 전도하라고 말할 수 있는가? 너부터 먼저 전도의 모범을 보여라, 네가 어떻게 전도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라." 이런 양심의 가책을 처리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양심의 가책을 뻔뻔하게 덮어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자신을 이렇게 달래는 겁니다. "성도들이 내가 전도하는지 안 하는지를 어떻게 알겠는가? 성도들은 내가 목사니까 당연히 전도를 열심히 하는 줄 알겠지! 그러니까 내가 열심히 전도하는 척하면서, 성도들에게도 열심히 전도하라고 가르치는 게 제일이야!"

이런 속임수는 아마도 성도들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저의 양심과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저는 바리새인처럼 '회칠한 무덤'이 되고 맙니다. '위선자'가 되고 맙니다. 그럴듯한 말로 대중을 속이면서 싸구려 약이나 가짜 약을 비싸게 팔아먹는 약장수와 다름이 없게 됩니다. 약장수는 말도 유창하게 잘하고 사람을 속이는 수법이 워낙 뛰어나서 대중을 잘 속입니다. 하지만 약장수의 거짓말은 금방 탄로가 나고 맙니다. 그래서 대개 이런 약장수는 같은 동네에 두 번 다시 오지 않는 법입니다. 제가 아무리 약장수처럼, 아니 약장수보다 더 그럴 듯하게 거짓말을 잘 해도, 약장수처럼 교회를 수시로 옮겨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닙니까?

저는 지금까지 학자로 생활하면서 주로 책을 통하여 기독교를 널리, 그리고 자세히 알리려고 힘썼습니다. 그러나 제가 쓴 책은 모두 전도를 위한 책이 아니라 이미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 기독교를 더 잘 알려주는 책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까지 말로 전도한 사람은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적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누가 예수님을 믿고 교회를 다니게 되었는지도 전혀 모릅니다. 하나님 앞과 여러분 앞에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저의 사명이 학자로서 교단에서 강의하고 목사로서 강단에서 설교를 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에 지금까지 전도하려고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전도 때문에 고민하지 않았고, 전도를 열심히 하지 못한다고 양심의 괴로움도 전혀 느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성도 여러분에게 전도를 권하는 입장이 되고 보니, 양심의 가책을 적잖게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저는 단 한 사람이라도 전도할 대상을 분명히 정해 놓고, 매일 빠짐없이 그를 위해 기도하고 있고, 그에게 조금씩 접근하고 있습니다. 먼저 저부터 모범을 보이려고 애를 쓰겠습니다. "양이 새끼를 낳는 것이지, 목자가 어찌 새끼를 낳겠는가! 목자는 다만 영양이 많은 꼴을 양에게 먹이기만 하면 되지 않는가!" 이런 말도 자주 들어왔지만, 저도 양처럼 양을 한번 낳아보려고 애써 보겠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일보다는 그 일을 시작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시작하기만 하면, 이미 반은 이룬 셈이다"라는 말이지만, "시작이 더 어렵다"는 말도 되지 않겠습니까? 무슨 일이든 겁부터 먹으면, 아무 일도 시작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일단 시작해 보면, 일은 수월하게 풀릴 수 있습니다. 수영을 예로 들어봅시다. 사람은 약 9개월 동안 어머니 뱃속의 물(양수) 속에서 살다가 나왔지만, 나오자마자 뭍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물을 점점 멀리하게 되고, 급기야는 물을 무서워하게 됩니다. 그래서 수영을 점점 어렵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수영은 생각보다 쉽습니다. 부력의 이치를 깨닫고 자연스럽게 물에 자신을 맡기면, 신기하게도 몸은 가라않기 시작하는 게 아니라 뜨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손발을 조금만 움직여 주어도, 몸은 앞으로 가게 됩니다. 그래서 어린 꼬마들도 물 속에서 놀다가 쉽게 수영을 배우게 됩니다. 하지만 어른은 어린이보다 훨씬 물을 겁냅니다. 어린이보다 몸이 더 무거워서 그럴까요? 아니면 물에서 나온 지 더 오래 되어서 그럴까요? 아니면 더 오래 살다 보니 매사에 겁이 많아진 탓일까요? 좌우간 물을 겁내고 수영을 무서워하는 한, 수영은 영원히 배울 수 없습니다. 비록  물 속에서 종종 곤두박질치고, 물을 잔뜩 들이마시는 한이 있더라도, 물 속에 오래 버티고 있으면서 이렇게 저렇게 발버둥을 치다 보면, 어느 새 물과 친숙해지고 점점 수영의 이치를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수영을 전혀 하지 못한다고 주저하지 말고, 일단 물 속에 들어가 보십시오!

전도도 마찬가집니다. 전도의 가장 큰 장애물은 두려움입니다. 대개 많은 사람들은 전도하기도 전에 겁부터 잔뜩 먹습니다. 그러니 어찌 전도가 되겠습니까? 더욱이 겁먹는 표정으로 어떻게 전도가 잘 되겠습니까? 사람을 고칠 수 없는 가짜 약도 대담하게 말을 잘 해야 팔 수 있습니다. 하물며 사람을 구원하는 진짜 약, 신약과 구약을 파는 우리가 왜 대담하게 말하지 못합니까? 이왕 전도하려면, 시작부터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일단 전도하기 시작했다면, 담대해야 합니다. 담대하게 전도해야 합니다. 성도가 담대하게 전도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무엇이 두렵습니까? 아마도 실패와 수모를 가장 두려워할 겁니다. "상대방이 싫은 소리를 하면 어떻게 하지? 전도하다가 도리어 망신을 당하면 어떻게 하지? 모처럼 큰마음을 먹고 전도했는데, 바늘도 안 들어가면 어떻게 하나?" 이런저런 걱정을 미리 하면서, 지레 겁부터 먹기 때문에 전도할 엄두조차 못 내는 겁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초대교회 성도들은 참으로 담대하게 전도했습니다. 그들은 실패와 수모의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담대하게 전도했을까요? 아닙니다. 실패와 수모는 사실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생명의 협박을 당하였고, 실제로 복음을 전하다가 죽음을 당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오늘의 분문은 베드로와 요한이 병자를 고치고 복음을 전했다는 이유로 공회에 끌려가 온갖 협박을 당하고 풀려난 후에 일어난 일을 전합니다. 그들이 당한 협박이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지만, 짐작컨대 매로 맞고 감옥에 가두고 심지어는 돌멩이로 쳐죽이겠다는 협박이 아니겠습니까? 이 소식을 들은 성도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벌벌 떨면서 전도를 포기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럴수록 더 담대하게 전도했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호랑이도 무서워할 줄 모르는 하루 강아지들이었습니까? 아닙니다. 본문을 보면, 그들도 분명히 겁을 잔뜩 먹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대히 전도할 수 있게 된 비결을 무엇입니까? 그들은 자신의 담력과 용기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얻기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주여,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하옵시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29-31절).

전도에 겁먹지 말고, 일단 전도해 보십시오. 생각보다 쉽게 전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도하기 전에 먼저 전도의 두려움을 떨쳐 내십시오. 그러려면 먼저 하나님에게 기도하십시오. 전도는 우리가 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전도는 우리 힘으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힘으로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전도하기 전에 먼저 기도하십시오. 기도로 무장하십시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십시오. 기도로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도록 준비하십시오. 모든 운동에는 반드시 준비 운동이 따릅니다. 수영하기 전에도 준비 운동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몸이 굳어서 몸이 잘 움직이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몸에 탈이 납니다.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도하기 전에 먼저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확신이 설 때까지 하루가 아니라 한 달, 아니 한 두 달, 아니 여러 해 동안 꾸준히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는 자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응답은 선물입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 11:13)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과연 예수님의 말씀대로 초대교회 성도들이 열심히 기도할 때에 성령이 충만히 임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권능을 받게 되었고, 그래서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담대하게 전도할 수 있는 가장 큰 비결은 담대하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담대하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외부로부터의 위협과 수모가 전도의 큰 장애물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아무런 수모와 박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전도하기를 망설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아마도 전도를 부끄러워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무엇이 부끄럽습니까? "전도하는 내 모습을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날 보고 '너나 예수를 잘 믿어라.'고 손가락질하지 않을까? '예수를 믿고 뭐 좋아진 게 있어? 한번 보여 줘라'고 말할 때, 뭘 보여줘야 할까? '남 걱정하기 전에, 네 걱정이나 해라.'" 이런저런 말을 들을까 미리 부끄러워합니다. 하지만 전도를 부끄러워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에 대해 부끄러움을 잘 타서라기보다는 복음을 부끄러워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에 대해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돌팔이 약장사는 거짓 약, 가짜 약, 효력이 없는 약을 비싸게 팔면서도, 대담하게 약을 잘도 팝니다. 하물며 죽은 영혼을 살리는 둘도 없는 약을 파는 우리가 어찌 부끄러워해야 하겠습니까? 지옥에 떨어질 영혼을 구원하는 최고의 약을 파는 우리가 왜 부끄러워해야 합니까? 돈으로 살 수 없는 천국을 공짜로 파는 우리가 어찌 부끄러워하겠습니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막 8:38, 눅 9:26). 바울도 말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 1:16). 바울은 복음이 구원을 주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고 담대하게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복음을 전하는 일을 가장 고상한 일로 여겼습니다. 전도하는 일을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일로 여겼습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복음을 당당하게 자랑했습니다. 복음을 위해 당당하게 목숨까지 걸었습니다.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2-2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렇게 수많은 성도들이 온 세상보다 더 귀한, 단 하나 밖에 없는 목숨을 바쳐 우리에게 전해준 복음을 전하는 일에 더 이상 주저하지 맙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목숨을 바쳐 성취하신 구원의 복음을 담대히, 감사히 전합시다. 일단 전도를 시작해 보십시다. 겁이 나면, 기도합시다. 기도로 무장한 다음에 담대히 전도하십시다. 전도하는 우리 모습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다. 복음도 부끄러워하지 맙시다. 아니 복음을 자랑합시다. 복음을 당당하게 전합시다. 세상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사명인 복음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시려고 애쓰시는 여러분을 예수님은 지켜보실 뿐만 아니라, 여러분에게 힘을 주실 것입니다. 하늘 나라에서 빛나는 면류관을 준비하시고, 기뻐하실 것입니다. 한 영혼이 돌아올 때마다 하늘에서 큰 잔치를 베푸시려고 준비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저하지 말고, 겁내지 말고, 당당하게 복음을 전하십시오. 힘을 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