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아름다운 헌신

 

막 14:3-9

2006년 1월 5일, 현풍제일교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우리 주님의 평화가 가득하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올해 처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헌신을 다짐하는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물론 새해를 맞이하면서 이미 여러분 각자가 새로운 다짐을 하셨으리라 믿습니다만, 올해는 특히 우리 교회가 설립된 지 2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기 때문에 우리의 다짐은 남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용두사미(龍頭蛇尾)라는 말처럼 거창하게 시작했다가 초라한 결과를 맺느니, 차라리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작은 목표를 세우는 것이 더 바람직합니다. 그리고 실천하기 어려운 거창한 구호를 내세우느니 차라리 작은 일이라도 실천할 수 있는 목표를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올해 우리가 "새롭게 도약하는 교회"라는 목표 아래 실천해야 할 사항은 무엇입니까? "1.심령 부흥을 도모하자! 2.사람을 부르고 세우자! 3.미래를 위해 투자하자!"입니다.

먼저 우리 각자의 심령이 새롭게, 다시 뜨겁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대개 사람들은 외모와 형식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지만, 하나님은 마음과 태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십니다. 그런 점에서 올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보여주길 원하거나 우리가 자랑하기를 좋아하는 외형적인 성장보다는 내면적으로, 영적으로 알찬 내실을 다지는 일에 매진합시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심령이 새로워질 수 있고, 다시 뜨거워질 수 있습니까? 5월경에 심령부흥회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좋은 부흥강사를 보내주시도록, 그리고 큰 은혜를 받도록 지금부터 기도합시다. 하지만 일시적인 부흥도 좋지만, 매일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기독교의 역사에서 침체하고 부패했던 교회와 성도들이 다시 부흥하게 된 것은 다른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찔림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에 감동을 받았을 때, 사람들은 회개하고 각성하고 새로운 헌신을 다짐할 수 있었습니다. 성령은 감정의 흥분보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 더 강하게 활동하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올해 우리 모두가 매일 성경 한 장씩을 읽고, 중요한 요절을 뽑아서 외우고 묵상하기로 합시다. 그리고 말씀을 읽은 다음에는 말씀대로 실천할 수 있기를 위해 기도합시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 제목을 위해, 특히 우리 각자에게 맡겨진 영혼들을 위해 뜨겁게, 진심으로 기도합시다. 개인의 사정과 형편에 따라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시간을 달리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다 보면,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것을 잊어버리거나 나태해질 수 있으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나누어 드린 계획표에 따라 말씀을 읽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특히 릴레이 기도는 마라톤처럼 모두가 바통을 이어받아 연달아 기도하는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한 분도 빠짐이 없기를 바랍니다. 반드시 교회당에 나와서 기도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지정된 시간이 되시면, 언제 어디서든 잠시(30분) 시간을 내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사람을 부르고 세우는 일에 더욱 매진합시다. 사람을 어떻게 부를 수 있습니까? 먼저 기도하는 시간에 여러분이 기도해 주는 사람의 이름을 소리내어 부르시기를 바랍니다. 그의 이름을 여러 차례 부르다 보면, 그를 더욱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그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그 사람을 불러내시기를 바랍니다. 그 사람이 귀찮게 여겨도, 온갖 핑계를 둘러대도 실망하지 마시고 그 사람을 자주 부르시고, 자주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지정된 분들, 잃은 양과 찾을 양을 위해 여러분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기, 전화하기, 문자 보내기, 생일 카드 보내기, 주보 보내기, 방문하기, 초대하기, 선물하기 등을 통해 잃은 형제와 자매를 교회로, 하나님의 품으로 부르는 일을 열심히 해 봅시다.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오직 충성을 다합시다!

그리고 올해 우리 교회는 두 분의 일꾼을 세우려고 합니다. 장로 한 사람과 권사 한 사람을 세우려고 합니다. 교회 직분은 세상 직분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장로와 권사를 세우는 것은 세상 직분처럼 승진과 영전이 아니라 더 큰 봉사를 맡기는 일입니다. 이것은 물론 하나님 앞에서는 영광과 기쁨이 되겠지만, 사람들 앞에서는 더 무거운 짐을 지우는 행위입니다. 하지만 여러분도 각자 올해 새로운 직분을 맡았습니다. 맡는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직분을 받는 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올해는 더욱 뜨거운 마음으로 교회를 더욱 섬길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합시다.

마지막으로 미래의 세대,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합시다. 교회가 물론 고령화 사회를 위해서도 대비해야 하겠지만, 그보다 더 시급한 것은 미래의 세대, 우리의 자녀들을 위해 더욱 봉사하는 것입니다. 출산율이 날로 떨어지는 것은 국가와 사회의 위기만이 아니라 교회의 위기이기도 합니다. 더욱이 청소년들은 점점 더 출세 교육, 입시 교육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주말만이 아니라 이제는 주일에조차 우리의 청소년들은 학원과 공부방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대개 부모와 어른의 지나친 욕심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공부를 잘 하는 자녀가 반드시 사회 생활을 잘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그리고 사회 생활을 잘 하는 자녀가 반드시 행복하다는 법도 없습니다. 더욱이 아무리 공부를 잘 하고 사회 생활을 잘 한다고 해도, 그리고 세상 기준으로 볼 때에는 아무리 행복해 보여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영혼들은 결국 불행해질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자녀들을 진정으로 사랑하신다면, 그리고 이웃과 동네의 자녀들이 진정으로 잘 되기를 바라신다면, 그들에게 옷과 책과 음식과 컴퓨터 등을 마련해 주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들이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도록, 그 누구보다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사랑하고 부모와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도록 말씀으로 양육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유대인이 인류의 역사에서 훌륭한 인물을 가장 많이 배출한 비결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유대인이 땅과 집을 잃고 방랑한 오랜 유랑 생활 속에서도, 그리고 지금은 중동의 강대국 사이에서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발전하고 있는 비결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토라, 즉 성경 때문입니다. 유대인은 다른 것은 다 잃고 빼앗겨도 성경만은 잃거나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유대인은 다른 시설과 재산은 다 망가져도 오직 성경만은 가장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유대인은 비록 성경책은 빼앗겨도, 성경의 말씀은 결코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유대인은 성경을 통해 지혜를 배웠고, 위대한 상상력을 품었고, 강인한 생명력을 길렀습니다.

링컨 대통령이 미국의 역사에서 가장 존경을 받는 위대한 대통령으로 기억된 비결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가난했던 그의 부모가 돌아가실 때에 그에게 남겨준 가장 소중한 유산은 바로 성경책이었습니다. 링컨은 오랜 가난과 수많은 좌절 속에서도 성경을 통해 용기와 지혜를 얻었습니다. 대통령이 된 그가 당면한 가장 무거운 짐은 바로 흑인노예 해방이었습니다. 언제 패배할지도 모르는 위태로운 남북전쟁 중에도 그는 늘 성경을 읽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백악관에서 매일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의 위대함은 바로 성경의 위대함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들도 정말 훌륭한 인물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신다면, 그 무엇보다도 성경 말씀을 부지런히 듣고 배우게 하십시오. 성경을 싫어하는 자녀들에게 성경 한 구절을 외울 때마다 용돈을 주시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장차 자녀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 억지로 읽고 외운 성경 말씀이 큰 힘과 용기를 줄지 어떻게 압니까! 자녀들에 큰 곤경을 당할 때에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학교 공부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를 하실 때, 갑자기 한 여인이 남의 집안으로 뛰어들어 왔습니다. 남의 집에, 그것도 식사시간에 초대를 받지도 않은 낯선 사람이 뛰어들어온 것은 보통 무례한 짓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 여자의 갑작스러운 행동이 너무 이상해서 그랬는지, 일단 예수님의 제자들과 집주인은 그 여자를 내어쫓지 않고 바라보았습니다. 그 여자는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향유의 값이 약 삼백 '데나리온'이었다고 합니다. 한 '데나리온'은 그 당시에 일꾼의 하루 임금에 해당하는 가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삼백 '데나리온'은 일꾼의 거의 일년 치 임금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많은 돈을 모으기 위해서 그 여자는 여러 해 동안 생활을 줄이고 소비를 아껴서 열심히 모았을 것이다. 이 비싼 향유를 그 여자는 기쁘게, 자진해서 주님의 머리에 쏟아 부었습니다. 한꺼번에, 아낌없이 모두 다 부었습니다.

이와 같은 행동은 그 여자의 무조건적 헌신을 보여줍니다. 이 이야기는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헌신적으로 섬긴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만약 그 여자가 예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다면, 아니 예수님의 사랑에 진정으로 감격하지 않았다면, 이런 행동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누군지는 몰라도, 아마도 회계를 맡은 유다를 비롯하여 계산에 익숙한 약삭빠른 사람들이 그 여자의 행동을 보고 화를 내었을 것입니다. 너무나 귀한 것을 일시에 낭비했다는 불평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매우 합리적이고 똑똑한 사람인 것처럼 말합니다. 그 비싼 향유를 그렇게 낭비하느니 차라리 그것을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만사를 계산적으로만 본다면, 그리고 만사를 겉모습으로만 본다면, 그 사람들의 말이 전적으로 옳습니다. 오늘날처럼 매사를 돈으로 계산하고 사람을 오직 돈의 가치로만 보는 사람들의 눈에 이런 행위는 참으로 어리석은 일처럼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여자의 행동을 "말리지 말라"고 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 여자의 행동을 전적으로 변호하셨습니다.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했다." 더 정확히 번역하면, "그녀는 내게 아름다운 일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내 장사를 준비하기 위하여 내 몸에 미리 향유를 뿌렸다." 예수님은 그 여자의 행동을 그렇게 해석하셨지만, 과연 그 여자가 예수님의 장사를 미리 준비하기 위해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그 여자가 예수님의 칭찬을 받은 것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미리 예측했기 때문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실로 그 여자의 지혜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여자의 아낌없는 헌신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모든 계산을 초월합니다. 더욱이 사랑에서 우러나온 참된 헌신은 목숨까지 초월합니다. 그러므로 그 정도로 비싼 향유도 그 여자에게는 조금도 아까울 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은 그 여자의 행위를 '거룩한 낭비'라고 불러왔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거룩하다고 해도, 그 여자의 행위는 결코 낭비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헌신'이었습니다.

오늘날도 이 여자처럼 하나님의 일을 위해 아낌없이 헌신한 사람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눈에 띄게 헌신한 남자들도 많지만, 남몰래 헌신한 여자들은 더욱 많습니다. 이들의 눈물어린 헌신과 아낌없는 희생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교회가 존재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이런 행동을 비난한 사람들이 주위에 수없이 많습니다. 더욱이 오늘날 신자들 가운데도 교회에 헌금하는 것보다 불우한 이웃을 돕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그런 일도 아름다운 일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하는 선행은 자칫하면 자기 자랑의 수단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남몰래,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는 개인적인 선행도 때로는 은근한 교만의 표현일 수도 있고, 하나님의 보답을 바라는 은근한 계산적인 행동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보답을 바라지 않습니다. 더욱이 진정한 헌신은 자신마저 잊어버리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선행도 자기 혼자서 하기보다는 교회의 이름으로, 교회와 함께 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우리는 이웃을 사랑하기 이전에 먼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을 사랑하는 것이 세상의 아들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귀합니다. 그리고 진정한 이웃 사랑도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우러나옵니다, 바로 그럴 때에만 이웃 사랑도 오래 지속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헌신이 없는 이웃 사랑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에게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쳐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이웃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헌신은 억지로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헌신은 오직 구원에 대한 진지한 감격과 감사로부터 나옵니다. 베다니의 여인이 그처럼 뜨겁게 헌신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예수님을 통해 용서와 구원을 받았고, 자신의 존엄성과 가치를 되찾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여자는 예수님의 사랑에 보답하고 예수님의 진리를 위해 자신의 남은 생애를 예수님에게 바치겠다는 심정으로 그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에게 무엇을 드리고 계십니까? 여러분이 가장 아끼는 것을 예수님에게 드릴 수 있습니까? 모든 인간적인 계산과 남의 비방을 무릅쓰고라도 예수님을 위해 아낌없이 헌신하실 수 있습니까? 무엇이 여러분의 헌신을 망설이게 합니까? 여러분에게는 그 여자처럼 값비싼 것이 없다고 망설이십니까? 여러분에게는 재물보다 더 귀한 시간이 있지 않습니까? 아니 시간보다 더 귀한 몸이 있지 않습니까? 아니 온 천하보다 더 귀한 여러분의 영혼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도 베다니의 여인처럼 거룩한 낭비, 아니 아름다운 헌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예수님은 진정으로 귀하게 여기십니다. 아니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을 칭찬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가 도울 수 있지만,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을 오늘의 상황에 옮기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너희는 가난한 사람들을 언제든지 도울 수 있다. 하지만 너희는 항상 나를 위해 헌신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베다니의 여인처럼 예수님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기회는 늘 돌아오지만, 예수님에게 헌신할 기회는 자주 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위해 헌신할 기회가 올 때마다 그 여자처럼 거룩한 낭비, 아니 거룩하고 아름다운 헌신을 하십시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예수님의 거룩한 죽음과 부활을 예비하였던 그 여자처럼 여러분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위대한 일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교회 창립 20주년은 영원히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생애 중에 30주년이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헌신도 때에 맞게, 기회가 주어져 있을 때에 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마음 속에 선한 의지, 선한 충동, 아니 거룩하고 아름다운 감동이 일어날 때, 이를 애써 억누르지 마십시오. 이런저런 계산으로, 이 눈치 저 눈치 끝에 헌신을 망설이거나 포기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마십시오. 세상 일과 자기 일을 위한 충동은 종종 시험의 올무가 되지만, 주님의 일을 위한 충동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한 충동은 거룩한 성령의 명령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성령의 명령으로 거룩한 헌신을 위한 충동이 일어날 때, 즉시 순종하십시오. 남이 아니라 내가 보더라도, 정신이 나가거나 엉뚱하고 생뚱맞은 일이라도, 만약 그 일이 진정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행동이라면, 지체하지 말고, 아끼지 말고 여러분의 소중한 것을 다 바쳐 헌신하십시오. 그렇다면 본문의 여자처럼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여러분의 이름이 기억되지 않을지는 몰라도, 여러분의 헌신의 행동은 자녀들과 성도들의 마음에 길이, 깊이 감동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에 길이 새겨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