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신앙의 경주

 

히 12:1-2

2006년 6월 25일 : 현풍제일교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민족적으로는 동족 상잔이라는 비극이 일어난 바로 그 날이지만, 우리 교회가 창립된 지 20주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해이기도 합니다. 먼저 우리 교회를 창립하시고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지금까지 헌신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인간의 나이로 보면, 20살의 나이는 성년의 나이입니다. 이 나이에 이르면, 대개 사람들은 부모를 떠나 신체적으로 독립적인 생활을 하고, 경제적으로도 독립하여 사회인으로서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20살이 되면, 무엇보다도 인간은 정신적으로 자기 정체성을 서서히 확립하기 시작합니다. 다시 말하면, 왜 살아야 하는지,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지 등에 관해 확고한 신념을 갖기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의 정체성은 무엇입니까? 다시 말하면, 우리 교회가 무엇 때문에 존재하고, 우리 교회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물론 우리 교회는 유별난 교회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교회로서 세상의 모든 교회가 지닌 본질과 사명을 함께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수많은 교회들 가운데 하필 우리 교회가 굳이 존재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리고 앞으로 우리 교회는 어떤 목표를 바라보아야 합니까? 앞으로 우리 교회는 이 부분에 대해 좀 더 명확해지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야만 앞으로 30주년 혹은 50주년을 더욱 뜻깊게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사명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밝혀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히브리서 기자는 그리스도인을 무엇보다도 경주하는 사람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한 자리에 머물러 있는 바위와 같은 존재가 아니라 앞을 향해 달려가는 마라통 선수와 같다는 말입니다. 인생이 무엇이고 인생이 왜 사는지를 모르고 사는 세상 사람들은 대개 인생을 나그네에 비유합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최희준 씨의 노래처럼 인생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인생은 오늘은 여기에 묵고 내일은 저기에 묵는 정처 없는 나그네와 같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도 한편으로는 나그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는 영원히 머물 수 있는 참 고향이 없기 때문에 영원한 고향을 찾아 방랑하는 나그네와 같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들과 같이 정처 없이 헤매는 나그네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어디서 왔고 어디고 가는를 분명히 압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뜻을 품으시고 이 세상에 보내신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때까지 이 세상에서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뜻도 모르고 세월에 떠 밀려가는 부평초가 아니며, 아무 의미도 없이 생명을 연장하는 식물 인간도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한 뜻을 따라 이 세상에 보냄을 받았고, 그래서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특별히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 무엇입니까? 물론 사람들마다 사명이 조금씩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단 한 가지뿐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오직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기 위함입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은 오직 한 가지, 선교입니다. 그렇지만 선교의 방법은 매우 다양합니다. 교회마다 능력과 처치에 따라 사명은 조금씩 다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교회는 오직 한 가지 목적, 즉 선교를 위해 존재합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사명을 띠고 교회는 세워졌습니다. 교회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해야 하며, 어느 곳에서든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이것이 곧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사명입니다.

하지만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완전히 실현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를 찾고 있고 있습니다.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실 그 때에만 실현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날을 바라보고 기도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막연하게 기다려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갑자기 떨어지도록 입을 벌리고 앉아 있어서도 안 됩니다. 비록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는 미래에 완전히 이루어질 것이지만, 그 나라는 이 땅에 임합니다. 하늘 나라는 땅에 심겨지고, 땅에서 자라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더 넓게, 더 빨리 들어오고 세워질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야 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불러야 합니다. 이것이 곧 선교입니다. 이것이 곧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입니다.

이 목적을 바라보고 우리는 열심히 뛰어야 합니다. 본문이 말한 대로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해야" 합니다. 여기서 경주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장거리 경주, 곧 마라톤입니다. 마라톤 선수는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한시도 쉬지 않고 앞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히 임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수고한 대로 주실 영광의 상급을 바라보고, 열심히 뛰어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4장 6-8절에서 바울도 자신의 인생을 경주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바울만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곧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면류관을 얻기 위해 달려가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는 잘 달려갈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 승리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습니까? 본문으로부터 귀한 교훈을 들어보도록 합시다.

먼저 본문은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히브리서 11장이 말한 믿음의 영웅들입니다. 이들은 아벨과 에녹을 비롯하여 노아, 아브라함, 이삭과 야곱, 요셉,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사무엘을 위시한 수많은 선지자들입니다. 이들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끝까지 인내로써 믿음을 견고히 지켰기 때문에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이처럼 수많은 믿음의 영웅들을 우리에게 모범으로 소개합니다. 힘든 세상을 살아갈 때, 그것도 거친 세상을 달려갈 때, 우리는 종종 지치고 쓰러지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종종 "왜 나는 남달리 힘들게 살아야 하는지?" 반문하면서, 사람과 하나님께 불평하곤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해서 더 편하게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보다 더 힘들게 살아가야 할 때도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낙담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우리 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처럼, 아니 우리보다 더 힘든 경주를 다 마쳤다는 사실을 알 때, 우리는 큰 위로와 용기를 얻게 됩니다.

우리 교회가 20년을 달려왔습니다. 그 동안 하나님께 칭찬을 받을 일도 했겠지만, 하나님의 꾸지람을 받을 일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무엇보다 우리의 안일함과 잘못을 회개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에는, 아니 하나님의 상급을 받기에는 지금 우리는 너무나 태만하고 안일합니다. 그렇다고 중도에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다시 출발해야 합니다. 다시 새롭게 도약해야 합니다. 우리 앞에서, 우리보다 더 힘들게 충성한 믿음의 조상들을 생각하면서, 다시 일어서야 하겠습니다. 각오를 새롭게 다지고, 다시 힘차게 뛰어야 하겠습니다.

두 번째로 본문은 경주하는 사람이 지켜야 할 중요한 교훈을 구체적으로 주고 있습니다. 먼저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라"고 말합니다. 경기에 참여하는 사람은 경기에 방해가 되는 것들은 다 벗어버립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달려갈 때에 방해가 되는 것들을 모두 벗어버려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경주를 방해하는 가장 무거운 것은 아마도 지나간 사건에 대한 후회와 다가올 사건에 대한 두려움일 것입니다. 경주하는 사람은 일단 뒤를 깨끗이 잊어야 합니다. 자꾸 뒤를 돌아보면, 그리고 지금까지 실수한 것을 자꾸 생각하면, 앞으로 열심히 달려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닥칠 험한 일을 걱정해도, 열심히 달려갈 수 없습니다. 지나간 일도 하나님께 맡겨야 하지만, 다가올 일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앞을 보고 열심히 달려가야 합니다.

본문은 무거운 것을 벗어버릴 뿐만 아니라 '얽매이기 쉬운 죄'도 벗어버릴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달리지 못하도록 얽어매는 죄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늘을 잊고 오직 땅의 것에만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하늘의 영광을 모르고 오직 세상의 영광만을 구하는 것입니다. 의로운 길을 버리고 악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태와 안일에 빠져있는 생활 습관도 앞으로 달려가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는 것입니다. 더 큰 상급을 바라보고 앞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영혼을 얽매는 죄를 벗어버려야 합니다.

세 번째로 본문은 경주하는 자에게 '인내'를 요구합니다.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장거리 경주, 특히 마라톤은 피나는 훈련과 헌신과 인내가 요구되는 경주입니다. 마라톤 경기에는 오르막길도 있고, 내리막길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숨이 차서 꼭 죽을 것만 같은, 심장이 터질 듯한 고통이 있다고 합니다. 중도에 포기하고 싶은 때가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고비를 넘기면, 그 다음부터는 오히려 새로운 힘이 솟아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경주에서 끝까지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끝까지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포기하고 유혹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경주, 믿음의 경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때로는 낙심할 때도 있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고, 게을러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도중에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끝까지 참고, 견뎌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해 놓으신 승리의 면류관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본문은 옛날의 믿음의 영웅들과는 다른 분을 모범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라.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인생과 믿음의 험한 경주에서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믿음의 창시자'와 '믿음의 완성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보다 더 힘든 세상에서 살아가셨지만, 무거운 걱정을 다 내려놓으셨고 영혼을 옭아매는 죄를 과감히 뿌리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통과 치욕을 끝까지 참아내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영광스러운 승리의 부활을 맞이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경주, 믿음의 경주에서 우리는 늘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시련을 참으시고 끝내 승리하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우리도 큰 용기를 얻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고 달려갈 때, 예수님은 언제나 앞에서 달려가시면서, 우리를 보고 늘 "너희도 열심히 달려 오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종종 우리 곁에 오셔서 우리의 등을 두드려 주십니다. 우리의 손도 굳게 쥐어주시고, 팔짱도 껴 주십니다. 아니 우리가 지치고 쓰러질 때, 예수님은 우리를 업어 주시기도 합니다. 우리를 등에 업고 끝까지 달려 주시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든지 안심할 수 있습니다. 끝까지 달려갈 수 있습니다. 20주년을 맞은 우리 교회는 여러 모로 힘든 경주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점점 힘이 빠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점점 나태해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갈 길은 점점 희미해져가고 있습니다. 저도 인간인지라, 종종 힘이 빠집니다. 포기하고 싶은 유혹도 받습니다. 여러분도 그러실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앞을 달려간 믿음의 증인들과 특히 예수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늘 새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계속 힘차게 달려갑시다. 결론적으로 갈라디아서 6장 9절의 말씀을 교훈으로 삼아 모두가 새 힘을 얻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