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한 사람 때문에

롬 5:12-19

 

2003년 2월 19일, 현풍제일교회

 

 

어제 아침 대구 지하철역에서 우리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끔직한 대형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56세의 나이를 먹은 한 남자가 지하철 객실 바닥에 신나를 뿌려 불을 저지른 결과로 많은 사람들이 참혹한 피해를 당했습니다. 뜨거운 불과 매연 속에서 죽은 사람들이 서로 엉켜 있었기 때문에 사망자의 신원과 수를 파악하기 어렵지만, 불행하게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수가 130명을 넘을 거라고 합니다. 그밖에도 뜨거운 매연과 화재 때문에 중상을 입은 사람들의 수도 상당하다고 합니다. 쾌적한 교통 수단으로 사랑을 받던 지하철이 졸지에 아비규환의 지옥철로 변해버렸습니다. 화재로 인해 전기가 나가면서 지하는 완전히 암흑 천지가 되었다고 하며, 닫혀진 문을 열지 못한 채 매연과 불길에 휩싸인 사람들은 사투의 고통 끝에 대부분 생명을 잃었다고 합니다.

언론은 특히 4차례나 발생한 대구 지하철 사고 때문에 대구 지하철의 악연을 지적하곤 합니다. 1995년 4월에 상인동의 도시가스 시설이 폭발하여 101명의 학생들과 시민들이 죽었으며, 같은 해 8월에는 지하철 공사 현장에서 폭약이 폭발하여 4명의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2000년 1월에는 지하철 공사 현장이 붕괴하여 4명의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왜 하필 대구 지하철에만 이렇게 계속되는 불운이 닥치는 걸까요? 저는 그 이유를 잘 모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는 이 마당에 그들을 돕지는 못할망정 한가하게 그 이유를 따질 순 없습니다. 그래도 자꾸 의문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왜 대구 사람에게 유달리 가혹한 고통을 계속 허락하실까요? 물론 이 사고는 사람이 일으킨 재난이므로 비겁하게, 아니 무책임하게 그 원인을 하나님에게 돌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마10:29).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이런 재난을 허락하였을까요? 아니 왜 하나님은 이런 재난을 막으시지 않았을까요?  

하나님은 사람에게 자유를 주셨으므로 사람의 일을 일일이 간섭하시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비하시므로 사람들을 행위대로 일일이 심판하시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계속 일어나는 재난을 보면서, 혹시 하나님이 대구 사람들을 징계하시거나 경고하시는 뜻이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되기도 합니다. 물론 징계도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잠언 3장 12절은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고 말하고 있으며, 히브리서 12장 6절도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고 말하고 있습니다.

대구는 어느 도시보다 더 미신이 성행하는 것 같고, 그래서 대구에 교회가 뿌리를 내리기가 여간 어렵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정치적으로도 상당히 보수적입니다. 인간의 가치와 윤리는 보수해야 하지만, 악한 정권과 불의한 현실까지 보수하는 것은 하나님의 법도에 어긋납니다. 이곳 사람들의 종교 심성은 상당히 보수적인 편이어서 인권과 민주, 경제 정의 등에 관심을 갖는 교회가 많이 없는 듯합니다. 전국적으로 갓바위가 매우 알려진 탓으로 입시 철이나 연말에 그곳에 모여드는 사람들을 텔레비전에서 종종 본 적이 있습니다. 가장 유치하고 타락한 불교의 모습을 보는 듯하였습니다. 그곳은 불교의 이름 아래 기복신앙과 미신을 한껏 조장하는 자리가 되고 있습니다. 더욱이 작년에 우연히 그 아래 있는 찜질방에 들어가 보았는데, 공공연히 전시해 놓은 낯뜨거운 조각품을 보고 저는 굉장히 놀랐습니다. 갓바위 앞에는 타락한 미신 문화가 성행하며, 그 아래는 음란 문화를 조장하는 대중 목욕탕이 성업 중입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자비로우신 하나님인들 끝까지 노하시지 않겠습니까? 마치 로마 시대의 음란한 도시 폼페이가 화산 폭발로 완전히 파괴되는 것을 허락하신 하나님처럼 말입니다.

그렇다고 이번에 희생을 당한 분들이 우리보다 더 죄가 많아서 그런 징계를 받았다고 생각하지는 마십시오. 예수님은 실로암의 망대가 무너져 열 여덟 사람이 죽었을 때, "그들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줄 아느냐?"(눅 13:4)고 물으셨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당할 수 있는 희생을 대신 당한 분들입니다. 이번의 일을 계기로 우리 모두가 회개해야 합니다. 인간의 생명을 경시하고 기술 발전과 돈벌이에만 혈안이 되다 보면, 우리도 언제든지 이런 재난을 당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 끔직한 재난을 보면서, 그리고 재난을 당한 분들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느껴보는 가운데서, 한 사람이 얼마나 큰 일을 저지를 수 있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단 한 사람의 분풀이 방화가 엄청난 인명과 재산의 손실을 가져왔습니다. 아무도 그가 그런 큰 일을 저지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겁니다. 뇌경색으로 인한 우울증과 반신불수 때문에 가해자는 평소에도 병원에 불을 지르겠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가 진짜로 그런 일을 하리라고는 예상하지 않았을 겁니다. 만약 한 사람이라도 그 말을 유의 깊게 듣고 그를 잘 지켰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가해자는 결국 무모한 행위를 저질렀고, 그로 인해 상상할 수 없이 큰 고통이 일어났습니다. 작년 한 해 동안 분풀이 등을 이유로 불을 질러 화재가 일어난 사고가 무려 2,800건이나 된다고 하며, 그로 인해 105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아까운 생명을 잃었다고 합니다. 참으로 한 사람의 죄악 때문에 수많은 희생이 생겨났습니다.

더욱이 이번에는 불이 일어난 차량보다는 마침 마주보며 들어오던 차량에서 더 많은 인명 피해가 났다고 합니다. 한 사람의 운전사가 잘못을 저지른 바람에, 혹은 한 사람의 연락 책임자가 미연에 사고를 방지하지 못한 바람에 그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더욱이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한 사람의 난동을 제대로 저지한 사람이 왜 없었을까요? 그리고 불이 갑자기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차분히 소화기를 이용했더라면 더 빨리 불을 끌 수 있었을 텐데, 사람들이 저마다 혼자 살려고 우왕좌왕하고, 서로 밀치고 당기며 하다가 다함께 피해를 입지는 않았을까요? 한 사람의 지혜롭고 용기있는 사람만이 있었더라면, 이런 일을 막을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에 미치면,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그 고통의 현장에서도 의로운 한 사람, 한 사람을 보게 되었습니다. 위험을 아랑곳하지 않고 죽음의 장소로 뛰어내려가는 소방대원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용감하고 의로운 한 사람, 한 사람 때문에 소중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이  죽음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하철을 정비하기 위해 그곳에 가고 있던 두 정비원이 불길에 뛰어들어 많은 사람들을 살려내었다고 하며, 한 사람의 목숨이라도 더 건지려고 노력하다가 결국 자신의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진흙탕 속에서 피어난 한 떨기 장미꽃을 보는 듯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한 사람의 소중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한 영혼이 온 천하보다 더 귀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를 대하는 듯, 아니 예수님의 모습을 대하는 듯, 진실하고 경건하게 대하고 섬기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 자신도 남 앞에서 온 천하와 바꿀 수 없는 고귀한 생명으로서 당당히 살아가야 하며, 남 앞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고 예수님의 모습을 지닌 사람으로서 아름답게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한 사람이 얼마나 큰 일을 할 수 있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한 사람이 얼마나 큰 일을 할 수 있는가는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아담이 죄를 범하므로 온 인류에 죄악과 죽음이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 예수님이 오시므로 온 인류에게 은혜와 생명이 들어왔습니다. 한 사람 히틀러가 유대인을 증오하므로 600 만명의 유대인을 죽였습니다. 그런 시련 중에서도 한 사람 쉰들러가 수백 명의 유대인을 살렸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그처럼 큰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한 생명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수많은 사람들의 운명이 바뀌게 됩니다. 지하철에 불을 놓은 사람처럼 쉽게 좌절하고 막가는 삶을 사는 사람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엄청난 고통이 닥쳐왔습니다. 하지만 그런 중에서도 용기있게 살아간 사람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삶의 힘과 가치를 얻었습니다. 그처럼 여러분의 걸음 하나 하나가 다른 사람에게 엄청난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면, 여러분은 결코 경망스럽게 살아가서는 안 될 것입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영향을 줄 수 있을까요? 그것은 모방과 교육을 통해서입니다. 운전을 하다 보면, 한 사람이 교통 법규를 어기고 운전하며, 마치 병아리가 어미 닭의 꽁무니를 뒤따르듯이, 다른 사람들이 금방 모방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이처럼 사람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남을 모방하고 흉내내는 일에 능합니다. 모방의 힘을 가장 잘 활용하는 것이 바로 교육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범사에 좋은 교육을 주고받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가해자도 피해자의 한 사람입니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의 잘못된 행동 때문에 잘못된 모방을 했을 지도 모르며, 가정과 사회에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을 지도 무릅니다. 히틀러도 어릴 때에 자기를 돌보지 않고 유대인 남자를 사랑한 어머니 때문에 유대인을 증오하게 되었다고 설명하는 심리학자들이 있습니다. 탕자 어거스틴은 어머니의 사랑의 기도 때문에 성자 어거스틴으로 변했다고 합니다. 더욱이 요즈음 유전자 공학을 통해서 우리가 알게 되는 점은, 선조들의 모든 정보가 후손들에게 남김없이 전달된다는 사실입니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요소가 모방이나 교육보다는 유전에 의해 영향을 받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모든 정보와 행동은 유전자 속에 차곡차곡 쌓이고 전달된다고 합니다.

성경도 일찍부터 유전을 가르쳐왔습니다. 인류의 첫 조상 아담이 범한 죄를 통해 모든 사람들에게 죄와 죽음이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잘못되면 조상 탓이라는 말은 무조건 잘못된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인류의 조상 중에 그래도 좋은 것을 물려준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그나마 이 세상이 이렇게 보존되고 발전되어 왔습니다. 하나님도 소돔성의 의인 5명 때문에 그 성을 보존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소돔성이 멸망한 것은 악인들이 많은 탓도 있지만, 의인들이 적은 탓이기도 합니다. 인류의 운명을 결정적으로 뒤바꾸신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분은 자신의 한 몸으로 저주와 타락의 역사의 바퀴를 구원과 생명의 역사로 되돌려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도 이 저주의 범죄의 도시 대구를 구원과 생명의 도시로 바꾸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이런 일에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귀하게 쓰임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한 사람 때문에 대구와 한국, 아니 인류의 역사까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어깨에 가정과 교회와 사회만이 아니라 인류의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아니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큰 일을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생활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희망을 버리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루하루가 아무리 힘들더라고, 의연하고 당당하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한 사람 때문에 하나님의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것을 저는 진심으로 보고 싶습니다, 여러분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