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나님의 자녀(1)

 

롬 8:12-17

2006년 6월 11일: 현풍제일교회

 

우리는 누구인가? 자신의 신분을 정확히 알지 못하면, 정확히 말하고 행동할 수 없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모두가 하나님의 피조물이고, 죄인이며, 구원을 갈망하는 존재다. 이런 점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하지만 모든 인간은 같은 신분을 갖지 않는다. 타고난 신분이 있는가 하면, 선택된 신분도 있다. 옛날에는 대개 신분은 타고난 것이었다. 양반의 자식은 양반이고, 상놈의 자식을 상놈이었다. 인도에도 오랫동안 인간을 네 가지 신분으로 나누는 제도(카스트)가 있었다. 지금은 신분 제도가 법적으로 폐지되었지만, 여전히 영향을 떨치고 있다.

요즘 우리의 신분은 대개 선택과 노력에 따라 달라진다. 신분의 귀천은 없지만, 사람들마다 신분의 차이가 있다. 여러분은 신분에 따라 여러 가지 이름을 불린다. 이 모든 것들은 세상 사람들이 붙여주는 이름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붙여주시는 신분의 이름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주신 신분은 세상의 그 어느 신분보다 더 귀하고 영광스러운 신분인데,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은 어떻게 주어지며, 하나님이 자녀가 갖는 특권과 소망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영, 성령으로 태어난다(8:12-14) 하나님의 자녀는 성령의 작품이다. 세상의 신분은 부모로부터 태어남으로써 주어진다. 사람은 태어남으로써 누구의 아들 혹은 누구의 딸이라는 신분을 얻는다. 그리고 태어난 순서에 따라 형과 아우, 삼촌과 조카 등의 신분을 얻는다. 그리고 세상의 신분은 세상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다. 사람이 하는 일에 따라 선생, 공무원, 기사, 주부, 관리인, 기능인, 예술가 등의 신분을 얻는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성령으로 태어나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얻는다. 그리스도인,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성령의 신비한 역사다. 겉으로는 내가 믿고 내가 회개하고 내가 세례를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 같지 보이지만, 이 모든 것들은 성령의 은밀한 역사가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4)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하나님의 자녀는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라 성령에 따라 살아야 한다. 육신의 본능을 무시하라는 말이 아니다. 육신의 일은 악하고 더럽고 허무하니 오직 영적인 일만 생각하고 행하라는 말이 아니다. 육신도 하나님의 선한 창조물이다. 그러므로 육신의 본능과 욕망도 하나님의 성한 창조물이다. 그렇다면 육신대로 살지 말라는 뜻은 무엇인가? 자기중심적으로 살지 말라는 뜻이다. 하나님 중심적으로 살라는 말이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므로 성령을 모시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시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모시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 나보다 더 높고 더 크신 분,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고 더 많이 사랑하시는 분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 그릇의 본성과 쓰임새를 누가 더 잘 아는가? 그릇을 만든 도공인가, 그릇인가? 당연히 그릇을 만든 도공이다. 사람의 본성과 본분을 누가 더 잘 아는가?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인가, 사람인가? 당연히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다.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특권을 누린다(8:15-16)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롬 8:15-16).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은 누구이신가? 아빠라는 말은 어린아이, 갓난아이는 말을 배우기도 전에 응얼거리는 말이다. 아마도 갓난아이는 아빠라는 말보다 맘마라는 말을 먼저 하게 될 것이다. 갓난아기가 아빠, 맘마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를 낳고 품고 양육하는 자비롭고 신실하고 책임적인 부모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자녀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은 한없이 자비로우시고, 죽을 때까지 신실하시고, 세상 끝 날까지 신실하신 분이다.

특히 아빠 아버지는 기도의 말이다. 갓난아기가 부모를 부르는 이유는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부모가 좋아서, 부모와 놀고 싶어서 아빠, 엄마를 찾을 때도 있다. 하지만 갓난아기의 말은 철저히 기도의 말이다. 내가 배고프다. 내가 목마르다. 내가 오줌 마렵다. 내가 똥마렵다. 내가 아프다. 내가 덥다. 내가 춥다. 이런 말에 사랑하는 부모는 가능한 빨리 응답한다. 물론 늦게 응답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부모가 바쁘거나 아기의 사정을 잘 모를 때, 혹은 아기의 습관을 바르게 들게 하려고 부모가 늦게 응답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긴급한 경우에 부모는 긴급하게 응답하고, 아기의 욕망과 소원을 들어준다. 이럴 때마다 부모와 자녀의 친밀감이 깊어진다.

하지만 하나님 아버지는 이 땅의 부모보다 훨씬 더 신속하게, 빨리 응답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수시로 기도할 수 있고, 응답을 기대할 수 있다. 응답이 늦거나 응답이 거부될 때에도 우리는 갓난아기처럼 영문을 모르고 보챌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만사가 선을 이루도록 모든 일을 유익하게 만들어 가시기 때문이다. 때로는 기도에 응답하지 않는 것이 응답하는 것보다 더 낫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도 응답이 안 되는 것도 기도의 응답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신실하심, 전능하심, 자비로우심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자녀는 장차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소망을 갖는다(8:17) 이 땅에서 자녀는 부모의 유산을 물려받을 수 있는 소망을 갖는다. 이처럼 하나님의 자녀도 하나님의 후사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영광을 물려받을 소망을 갖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와 함께 죄에 대해 죽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의 영생을 얻을 것이다. 부활의 영광은 한없이 크고 놀랍다. 그 영광은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다. 이미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는 이미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이는 영광은 아직은 작고 희미하다. 하지만 장차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수 있는 영광은 한없이 크다. 하늘의 영광을 날로 커질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영광에서 더 큰 영광으로 날로 발전하고 진보할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받을 영광을 영원무궁하다. 하지만 그리스도가 영광을 얻기까지 고난을 받으셨듯이, 우리도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해서는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롬 8:17)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오직 값없이,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일이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받을 영광은 결코 공짜가 아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가 기쁨으로 단을 거둘 수 있다. 불리한 환경을 잘 견디고 이긴 나무일수록 더욱 달고 탐스런 열매를 맺는다. 이처럼 고난이 깊을수록 영광도 더욱 크다. 그러므로 바울은 일평생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받는 것을 기뻐하고 자랑했다. 하나님의 자녀는 단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하나님의 풍성한 영광에 참여할 수 있기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희생과 수고, 땀과 눈물, 아니 피까지 바칠 각오를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