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하나님의 자녀(2)

 

요일 3:1-12

2006년 6월 18일, 현풍제일교회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태어난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3:1). 지난 주일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영, 성령으로 태어난다(롬 8:12-14)는 바울의 말을 들었다. 그런데 오늘 요한은 조금 다르게 말한다. 요한은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태어난다(3:1)고 말한다. 누구의 말이 진리인가? 두 사람의 말이 다 진리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은 또한 사랑의 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영으로 태어난다는 말이나,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태어난다는 말은 전혀 다른 말이 아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은 곧 사랑이시다. 우리가 성령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돌보시는 사건을 통해 드러난다. 만물은 아무 공로와 대가를 치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공짜로 창조되었다. 그리고 만물이 스스로 자신을 돌보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돌보심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리고 만약 하나님의 돌보심이 없다면, 피조물도 자신을 온전히 돌볼 수 없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시 127:1).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이 유일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고, 우리를 위해 화목 제물로 그를 죽음에 내어주신 하나님의 구원 행위를 통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요한은 말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요일 3:16).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었고, 하나님의 사랑이 언제까지나 우리를 지키고 보호한다.

하나님의 자녀는 완성을 바라보고 산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3:2). 지금 우리는 벌써 하나님의 자녀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미래의 약속이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바로 지금, 여기서 경험하고 누릴 수 있는 복된 특권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그래서 장차 하나님의 자녀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완전히 다 드러나지 않았다. 지난 주일에 말씀을 드린 대로 하나님의 자녀는 장차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소망을 갖는다(롬 8:17). 하지만 우리가 장차 누릴 하나님의 영광이 얼마나 놀랍고 얼마나 큰지는 감히 상상하지 못한다. 뱃속의 태아는 태어난 후의 자기의 모습을 감히 상상할 수 없다. 이미 태어난 아기도 장차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자라갈지 쉽게 상상할 수 없다. 하물며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 죽은 자들이 어떤 모습으로 부활할지, 그리고 부활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떤 영광으로 변할지 감히 상상하지 못한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안다. 장차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시면, 하나님의 자녀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자가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이신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시고, 하나님의 형상이시라"(히 1:3). 그렇다면 우리도 장차 예수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와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한다는 말이 아닌가? 얼마나 고맙고 얼마나 감격스러운 영광인가? 그래서 "나 같은 죄인 살리신"(Amazinf Grace)을 지은 존 뉴톤(J. Newton)은 이렇게 노래했다.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하리라." 그리고 존 오트만(J. Oatmann)은 이렇게 노래했다. "괴롬과 죄가 있는 곳 나 비록 여기 살아도 빛나고 높은 저곳을 날마다 바라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지난 주일에 하나님의 자녀는 마치 하늘에 날아다니는 생활과 같다고 하였다. 하나님의 자녀는 땅 위에서 살고 있지만, 그의 소망은 언제나 하나님의 나라에 있다. 그래서 비록 하나님의 자녀는 땅을 딛고 살아가지만, 언제나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고 산다. 이 땅이 하나님의 나라로 변할 것을 바라고 산다. 아니 하나님의 나라는 미래의 꿈만은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우리 안에 들어와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는 이미 여기서, 괴로운 세상 한복판에서도 이미 하늘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 그래서 버틀러(C.F.Butler)는 이렇게 노래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그렇다면 이미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땅의 법칙대로 살 것이 아니라 하늘의 법칙대로 살아야 한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가 땅의 지도와 땅의 형세를 보고 날 순 없다. 그것은 사람과 자동차가 하는 짓이다. 비행기는 하늘의 지도와 하늘의 형세를 보고, 공기의 흐름을 타고 날아야 한다. 만약 비행기가 하늘을 무시하고 땅만 바라본다면, 하늘의 법칙은 무시하고 땅의 법칙만 따르려고 한다면, 금방 땅으로 곤두박질하고 말 것이다. 이처럼 하늘로부터, 위로부터, 성령으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세상의 법칙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법칙대로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1) 하나님의 자녀는 깨끗하게 살아야 한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3:3).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 (2) 하나님의 자녀는 의롭게 살아야 한다.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3:6).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3:7).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마 5:6,10). (3) 하나님의 자녀는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우리가 서로 사랑할지니..."(3:10-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요일 4: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