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보배로운 질그릇

고후 4:6-7

2006년 7월 9일 : 현풍제일교회

 

 

사람은 질그릇이다. 성경을 여러 곳에서 종종 사람을 질그릇, 흙으로 만든 토기라고 부른다. 귀하고 아름다운 물건들이 있건만, 하고많은 물건 중에서 사람을 왜 하필 질그릇에 비유하는가? 가장 큰 이유는 질그릇을 만든 주인이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아무리 볼품이 없고 쓸모가 약한 그릇도 이를 만든 장인, 토기장이가 분명히 있는 법이다. 도자기가 스스로 만들어질 리는 없다. 진흙과 물과 불이 있다고 해도,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도 도자기가 저절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도공이 얼마나 땀흘려 일하는가? 이처럼 사람을 질그릇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람을 만드신 조물주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고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사야는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라"(사 64:8). 그리고 이사야는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자들을 이렇게 나무란다. "너희의 패리함이 심하도다. 토기장이를 어찌 진흙같이 여기겠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어찌 자기를 지은 자에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나를 짓지 아니하였다 하겠으며, 빚음을 받은 물건이 자기를 빚은 자에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총명이 없다 하겠느냐"(사 29:16)?

그릇의 재료가 상당히 많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유독 흙으로 만든 질그릇에 비유하는 또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흙은 매우 부드러워서 도공이 자유자재로 흙을 빚어 다양한 모습의 그릇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흙은 도공이 자유롭게 자신의 솜씨를 마음대로 발휘할 수 있는 훌륭한 재료다. 즉 흙은 그릇을 만들기에 안성마춤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질그릇이라고 함은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의 주권과 자유를 강조하는 말이다. 도공은 마음대로 흙을 주무를 수 있고, 마음대로 그릇을 만들고 부술 수 있다. 이처럼 하나님은 마음대로 사람을 만드실 수 있고, 마음대로 사람을 쓰실 수 있고, 마음대로 사람을 없애실 수도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의 하는 것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렘 18:6).

그렇다면 사람의 편에서 볼 때, 사람은 하나님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의존적이고 매우 허약하고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사람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만들고 사용되고 버려질 수 있다. 사람이 돌과 나무와 동물 등에 비해서는 상당히 자유롭다고 해도, 사람의 자유라는 것도 상당히 제한적이다. "나는 내 마음대로 살아간다"고 하는 자랑하는 사람을 보아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사람이 타고난 성격과 환경, 타고난 운명을 거스르기가 쉽지 않다. 사람의 자유라는 것도, 깊이 알고 보면, 감옥 속의 자유와 같다. 아무리 자유롭게 움직이고, 아무리 아름답게 집을 꾸며도, 감옥 속의 죄수처럼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자유는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겸손해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질그릇이므로 자신을 친히 지으신 조물주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빚어진 것이므로 하나님께 함부로 대들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 하리니,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롬 9:19-20)? 하나님의 주권과 자유에 대해 사람이 함부로 따지고 대들 수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나무그릇, 쇠그릇에 비해 흙으로 만든 질그릇은 쉽게 깨어진다. 이처럼 사람은 매우 허약하고 연약한 존재다. 그러므로 아무리 잘나 봤자, 삶은 흙으로 만들어진 초라한 존재다. 아무리 강해 봤자, 사람은 흙처럼 쉽게 부서지는 존재다. 그러므로 남에게 함부로 말하고 행동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남들 앞에서 사람은 항상 겸손하고 조심해야 할 것이다.

질그릇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질그릇의 가치는 물건을 담고 보관하는 데 있다. 그릇을 위해 그릇을 만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이 그릇을 만드는 이유는 그릇을 요긴하게 쓰기 위해서다. 특히 그릇은 음식을 담는 데 매우 유용하다. 비록 흙으로 만든 질그릇은 값이 싸고 부서지기 쉽지만, 질그릇만큼 좋은 그릇은 별로 없다. 특히 저장과 발효 음식을 많이 먹는 우리 나라 사람에게는 옹기그릇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 김치는 세계 5대 식품의 하나로 인정을 받았고, 김치와 함께 간장과 된장, 청국장, 고추장 등도 앞으로 세계에 널리 알려지고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래서 옹기는 우리 나라의 자랑스러운 문화 상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이 그릇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릇이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 그렇다면 어떤 그릇이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가? 무조건 크면 좋은 그릇인가? 아니면 무조건 비싸면 좋은 그릇인가? 아니면 무조건 아름다우면 좋은 그릇이 좋은가? 용도에 따라 물론 가치가 달라지겠지만, 음식을 담기에 가장 적합한 그릇은 무엇인가? 무조건 큰 그릇도 아니고, 무조건 비싼 그릇도 아니고, 무조건 아름다운 그릇도 아니다. 사실 그릇에는 귀천이 따로 없다. 용도에 따라 그릇의 가치가 달라질 뿐이지, 큰 그릇이 늘 좋은 것도 아니고, 비싼 그릇이 늘 좋은 그릇도 아니고, 아름다운 그릇이 늘 좋은 그릇이 아니다. 된장은 뚝배기 맛이라고 했듯이, 된장을 금으로 된 그릇에 담아주면 맛이 더 있겠는가? 간장 그릇은 클 필요가 없다. 간장을 큰 그릇에 담아주면, 상이 비좁아질 뿐이다. 김치를 비싸고 화려한 상감청자에 담아 준다고 맛이 더 나겠는가?

모든 그릇은 용도에 따라 달라질 뿐이지, 그릇에 귀천이 따로 없다. 집안에는 밥그릇도 필요하고, 김치 그릇도 필요하고, 간장 그릇도 필요하고, 심지어 옛날에는 요강도 필요했다. 모두가 다 필요하다. 이처럼 하나님이 질그릇으로 만드신 사람도 모두 귀하고, 모두가 쓸모가 있다. 하지만 모든 그릇에 공통적으로 꼭 필요한 것 하나가 있다. 음식을 담는 그릇으로 가장 적합한 그릇은 깨끗한 그릇이다. 아무리 크고 비싸고 화려해도, 깨끗하지 못한 그릇으로는 음식을 담을 수 없다. 그래서 디모데는 이렇게 말한다.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라,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으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딤후 2:20-21).

성도는 보배로운 질그릇이다. 사람은 스스로 생겨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이 빚으신 피조물이다. 더욱이 사람은 흙으로 만들어진 존재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을 아담이라고 부른다. 아담이라는 말은 흙(아다마)에서 온 존재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연약하고 허무한 존재다. 사람은 늘 흙을 딛고 살아야 하고, 흙에서 자라난 것을 먹고 살아야 하며, 죽어서는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을 겸허하게 경외해야 하고, 연약한 자신과 이웃을 진심으로 사랑해야 한다. 하지만 사람의 운명은 질그릇과 똑같은가? 사람은 그릇처럼 마음에 안 들면 쉽게 부수고 마구 버리고 해도 될 정도로 하찮은 존재인가? 사람은 마음에 안 들면 쉽게 다른 그릇으로 바꾸면 될 정도로 무가치한 존재인가? 사람은 일회용 그릇처럼 한번 살다가 죽으면 그만인가?

아니다! 비록 사람은 흙처럼 연약하고 허무하고 값싼 존재이지만, 하나님은 보잘 것 없는 흙으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고, 더욱이 질그릇과 같은 사람 속에 하나님의 영광이 빛을 비추셨다. 그래서 본문은 이렇게 말한다.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이 보배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말한다. 질그릇과 같은 사람의 마음 속에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비추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이란 무엇인가? 부활의 영광이요, 영원한 생명의 영광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빛나고 있다. 그러므로 흙으로 빚어진 몸이 무너지면, 다시 영원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이 썩어질 몸이 언젠가는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몸을 덧입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날 것이고, 장차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할 것이다(벧후 1:4). 생명의 씨앗, 그리스도의 말씀을 품고 있는 자는 장차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이 열매를 맺을 것이다. 성령, 부활의 능력을 모시는 사람은 장차 영광스러운 부활로 거듭날 것이다. 그러므로 질그릇과 같이 하찮은 여러분은 예수님을 모시고 있다는 바로 그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존재가 되었다. 그러므로 소망 중에 즐거워하라. 항상 기뻐하고, 항상 감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