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추수할 일꾼을 보내주소서

 

마 9:35-38

2006년 7월 23일: 현풍제일교회


 

1. 천국복음을 전하심.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천국 복음을 전파하기 위함이다. 천국 하면, 모든 사람이 대개 죽은 후에 들어갈 복된 장소를 상상하지만, 천국의 원래 뜻은 하나님의 나라, 즉 신국(神國)이다. 신국이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을 말한다. 신국이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곳을 말한다.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일 것을 가르쳤다.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할 것을 가르쳤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곳,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는 곳이 곧 신국, 천국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믿고 천국에 가자"고 가르친 것이 아니라, "지금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여서 우리 가운데 천국이 오게 하자, 천국이 이루어지게 하자."고 가르쳤다.

왜 이 땅에 천국이 와야 하는가? 왜 이 땅에 천국이 이루어져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사람들이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제 멋대로, 제 욕심대로 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큰 곤경에 빠졌고, 멸망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과 탕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죄인과 탕자가 제 아무리 많은 자유를 즐기고 향락을 즐긴다고 해도, 그의 인생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바람직하고 아름다운 인생이 아니다. 그의 인생은 빗나간 인생이요, 장차 멸망할 인생이다. 탕자가 외치는 자유는 결국 돼지를 치는 주인에게 빌붙어 살아야 할 정도로 비참해지는 노예와 종의 운명으로 바뀔 것이고, 그가 즐기는 향락은 머잖아 탄식으로 변하고 말 것이다. 현대인을 보라. 말로는 스스로 '자유인'이라고 하고, 실제로도 상당히 '자유인'이지만, 욕심과 죄악에 매어 얼마나 불쌍히 살아가는가!

예수님은 왜 이 땅에 오셨는가? 불쌍한 죄인, 방탕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다. 그들에게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다. 돼지우리, 아니 지옥 속에서 살아가는 탕자들에게 구원을 주기 위함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쉴 틈이 없이 복음을 전하셨고, 온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셨다. 본문이 말하는 대로 예수님은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셨다." 유대인이 가기를 꺼리는 사마리아 땅에도 들어가셨고, 자기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언제 어디든 기꺼이 찾아가셨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시고, 병든 사람들을 고치셨다.

2. 무리를 불쌍히 여기심. 그렇지만 예수님은 무리를 참으로 불쌍히 여기셨다.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왜 예수님은 무리를 불쌍히 여기셨는가?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모든 인간은 양과 같다. 양처럼 인간은 제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지 못한다. 아니 인간은 양보다 더 무능하고 무력하다. 목자가 없는 양은 제대로 살아갈 수 없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아니 양보다 더하다. 태어나면서부터 인간은 무엇을 먹어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전혀 모른다. 부모의 양육과 교육이 없다면, 벌거숭이로 태어난 인간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어른이 되어도, 인간은 별반 다르지 않다. 어른은 갓난아기와 어린아이에 비해서는 지혜롭고 능력이 있다. 하지만 어른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아는 것도 아니고,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인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하고 지혜로운지, 죽은 후에 어떻게 되는지 어른도 잘 모른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지혜의 교사가 필요하다. 그래서 어리석은 양과 같은 인간에게는 목자가 필요하다.

그런데 예수님이 보실 때, 세상에는 목자가 없었다. 그래서 무리는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방황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에는 목자가 전혀 없었다는 말인가? 아니다. 목자들이 있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나쁜 목자, 악한 지도자가 되어 무리를 방임하거나, 잘못 인도하거나, 심지어 혹사하였다. 에스겔의 고발을 들어보자. "자기만 먹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진저, 목자들이 양 떼를 먹이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 떼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 주지 아니하며, 쫓기는 자를 돌아오게 하지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포악으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겔 34:2-6). 이스라엘의 목자로 세움을 받은 왕과 방백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은 참 목자가 되신 아들을 보내셨다.

3. 기도를 명하심. 하지만 예수님 홀로 온 세상을 돌아다니실 수 없었다. 예수님 홀로 그 많은 무리를 돌보실 수 없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셨고, 그들을 작은 목자로 삼으셨다. 그래도 목자가 부족하여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명하셨다.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은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추수란 성경에서는 쭉정이와 알곡을 가르는 최후 심판에 대한 상징을 의미한다(사 17:5). 하지만 본문에서 추수는 최후 심판이 일어나기 전에 하나님의 백성을 모으는 일을 의미한다. 추수는 흩어진 양, 방황하는 양을 모아들이는 일을 의미한다. 추수는 죄인을 불러 회개시켜서 구원의 공동체를 만들고, 그래서 천국의 백성이 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막 1:17). 그런데 예수님은 이 같은 목자가 부족함을 탄식하셨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명하시기를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고 하셨다. "하나님에게 일꾼을 보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라는 말이다.

우리 나라에 기독교인이 상당히 많고 교회도 꽤 많다고 해도, 네 명 중의 한 명은 아직 불신자다. 그리고 숫자상의 기독교인이 모두 진정한 기독교인일 수는 없다. 교회 안에도 여전히 알곡과 쭉정이가 섞여 있다. 그러므로 정확히 셀 수는 없지만, 한국의 기독교인은 아직도 절대 소수다. 더욱이 대구는 다른 도시에 비해 기독교인이 매우 적다. 불교와 유교, 우상 숭배가 강한 대구의 기독교인 숫자는 전국에서 꼴찌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무리를 보고 민망히 여기셨던 것처럼, 우리도 대구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야 한다. 대구 경제가 다른 곳에 비해 더 나빠서 불쌍한 것이 아니다. 대구 사람이 다른 도시의 사람보다 더 못나서 불쌍한 것도 아니다. 대구 사람이 불쌍한 것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품에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우상을 섬기고, 권력과 재물과 명예에 눈이 팔려 하나님을 등지고 살기 때문에 대구 사람은 참으로 불쌍하다. 더욱이 대구에는 웬 사고가 그리 많이 일어나는지, 대구 사람은 참으로 불쌍하다. 하나님은 대구 사람을 참으로 불쌍히 여기신다. 우리도 대구 사람을 불쌍히 여겨야 한다.

그런데 이 불쌍한 대구 사람을 인도할 목자와 일꾼이 너무 부족하다. 훌륭한 인재들은 전부 서울에 가고 없다. 대구 사람들이 서울에 올라가서 성공한 다음에는 고향에 내려오거나, 고향에 내려오지 않아도 고향의 발전을 위해 봉사하려고 애써야 하는데, 잘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대구가 발전할 턱이 없다. 그렇다면 외지의 사람들이 대구에 잘 내려오는가? 아니다. 대구처럼 폐쇄적이고 보수적이고 살기 힘든 곳에 누가 섣불리 내려오려고 하겠는가? 대구의 기독교는 어떤가? 특징이 있는 교회도 별로 없고, 모범적인 교회도 별로 없다.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교회도 없고, 한국교회를 이끌어갈 만한 인물도 별로 없다.

우리 교회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우리 교회는 정말 일꾼이 너무 없다. 전체 숫자도 적지만, 그 중에서도 노인에 비해 젊은 사람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전도를 많이 하는 것도 아니고, 젊은 사람이 열심히 일하는 것도 아니다. 모두가 교회를 마치 손님처럼 왔다가는 것 같다. 교회에 대한 주인 의식도 별로 없다. 목사의 동역자라는 의식은커녕, 작은 목자라는 자부심도 없다. 그러니 경험과 열정이 부족한 나 홀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새벽기도회 때마다 나의 입에도 이런 기도가 저절로 나온다. "하나님은 우리 교회에는 빈자리가 너무 많습니다. 그렇지만 교인들은 열심히 전도하지 않고, 저도 전도할 줄을 잘 모릅니다.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이 마을에도 아직은 추수할 것이 많은데, 일꾼이 너무 부족합니다. 그러니 하나님, 젊은 일꾼을 좀 보내 주십시오!" 여러분이 열심히 일하기 싫다면, 여러분이 스스로 작은 목자가 되기 싫다면, 여러분도 "하나님, 할 일은 많고 일꾼은 심히 적은 이 때에 우리에게 추수할 일꾼을 보내주소서!"라고 매일 기도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최소한 하나님 앞에서는 부끄럽지 않는 성도가 되지 않겠는가? 아니 그래야 최소한 성도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는 여러분이 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