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노동과 안식

신 5:12-15

2006년 8월 6일 : 현풍제일교회

 

 

1. 노동이 없는 안식은 없다. 올해는 유난히 덥다. 그래서 올해도 많은 사람들이 더위를 피해서, 그리고 휴식과 오락을 위해서 고생을 마다 않고 먼길을 떠난다. 휴식은 참으로 필요하고 유익한 것이다. 기독교만큼 정기적인 휴식 안식을 강조하는 종교도 별로 없을 것이다. 일주일 중의 하루를 안식일 혹은 주일로 지키면서 일을 쉬게 된 것도 하나님 때문이다. 하나님은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신 후 제7일에는 쉬셨다. 하나님을 본받아 사람도 칠일만에 쉬게 되었다. 만약 기독교가 이 땅에 생겨나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10일만에 혹은 12일만에 하루를 쉬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는 내세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현세를 위해서도 기쁜 소식이다. 그리고 복음은 영혼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육신을 위해서도 좋은 소식이다. 요즘은 점차로 주5일제를 실시하면서, 쉬는 날이 더 많아졌다.

하지만 진정한 노동이 없다면, 진정한 안식도 없다. 사람들은 노동을 많이 했기 때문에 쉬고 싶어한다. 오직 하루를 열심히 살았을 때, 비로소 밤잠도 달콤할 수 있다. 힘든 노동 후에 맛보는 휴식은 얼마나 달콤하고 즐거운가! 노동을 하지 않는 자는 쉴 필요가 없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일하지 않고 쉬기만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난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3가지 종류로 나뉜다.

1) 어떤 사람은 돈이 많아서 일하려고 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일을 하는 주요 목적은 돈을 벌기 위함인데, 돈이 많다 보니 일을 할 이유를 못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일하지 않는 부자를 부러워하지만, 사실 이런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이 아니다. 사람이 돈으로만 살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람이 땀흘려 일하도록 만드셨다. 괴로운 노동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즐겁고 보람있는 노동도 많다. 그러므로 할 일이 없이 빈둥빈둥 놀고먹는 사람은 편안하게 살지는 몰라도 즐겁고 보람있게 살기 어렵다. 전혀 할 일이 마냥 노는 것만큼 괴로운 일도 없다. 아니 할 일이 전혀 없이 마냥 노는 것은 노동보다도 더 고된 일이다. 더욱이 땀흘려 일하지 않는다면, 달콤한 휴식도 맛볼 수 없다. 낮에 열심히 일하지 않은 사람은 밤에 편히 잠들기도 어렵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시 127:2)고 하지 않았는가! 고로 밤잠을 편히 이루지 못하는 사람만큼 불행한 사람이 없다.

2) 게을러서 일하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다. 게으른 사람은 가난하게 되기 십상이니 매우 불쌍한 사람이다. 그리고 게으른 사람은 시도 때도 없이 놀거나 잠자기 때문에 달콤한 휴식과 수면을 취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은 먹어야 살고, 먹고살려면 그 누가 반드시 일해야 한다. 그렇다면 게으른 사람은 남의 것을 착취하거나 남에게 고생을 떠맡기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게으른 사람은 불행하고 불쌍한 사람일뿐만 아니라 나쁜 사람이다.그래서 성경은 게으른 자를 보고 "개미에게 배우라"(잠 6:6)고 말한다. 게으른 자는 개미보다도 못한 자라는 뜻이다.

3) 아마도 요즘엔 돈이 많아서 일하지 않는 사람보다, 게을러서 일하지 않는 사람보다 일거리가 없어서 일할 수 없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일거리가 없어서 일할 수 없는 사람은 생계의 타격을 입고 삶의 보람을 얻지 못하는 고통에 더하여, 노동 후에 찾아오는 달콤하고 편안한 휴식과 수면을 취하지 못하는 이중 고통을 받는다. 그런 점에서 일거리가 없는 실직자들은 가장 불행하고 불쌍한 사람이다. 오늘날 점점 더 일자리가 줄어든다. 이런 판국에 요즘 사람들은 더럽고 힘든 노동은 점점 더 기피한다. 일자리를 뻔히 두고도 일자리가 없다고 불평하다가, 급기야는 대통령에게까지 삿대질한다. 대통령이 정치를 못해서 경제가 어렵다는 말이다. 모든 책임이 대통령 한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모든 욕을 다 뒤집어쓰는 것을 보니,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대통령도 일자리를 많이 만들려고 노력해야 하지만, 백성들은 노동과 직업의 귀천이 없이 열심히 일해야 한다. 그래야만 가정과 나라의 살림살이가 튼튼해지고, 그래야 편안하고 달콤한 휴식과 안식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안식이 없는 노동도 없다. 노동이 없다면 안식이 없듯이, 안식이 없다면 노동도 없다. 돈이 많아서 일하지 않는 사람, 게을러서 일하지 않는 사람, 일자리가 없어서 일하지 못하는 사람도 불행하지만, 쉴 틈이 없이 일만 하는 사람도 불쌍하기는 마찬가지다. 생존과 인생의 보람을 위해, 그리고 달콤한 안식을 위해 인간은 반드시 일해야 하지만, 일만 죽으라고 하거나 죽을 때까지 일하는 것은 비참한 일이다. 노동이 아무리 중요해도, 사람은 노동을 위해서만 살 수 없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므로 쉴 새 없이 돌아갈 수 없다. 아무리 튼튼한 기계라도 무리하면 고장이 난다. 하물며 사람은 얼마나 고장나기 쉬운 연약한 존재인가! 그러므로 사람은 자주 쉬어야 하고, 적당한 잠을 자야 한다. 더 잘 일하기 위해서라도 쉬어야 한다.

휴식과 안식은 인간의 필요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십계명 중의 네 번째 계명으로서 안식을 명령하셨다. 오늘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안식일을 지켜야 할 이유를 두 가지로 말하고 있다.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첫째 이유는 창조주 하나님도 창조를 마치시고 쉬셨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종살이로부터 해방시키셨기 때문이다. 안식의 명령은 사람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동물과 심지어 땅에게도 주어졌다. 누구를 위해 하나님은 주기적으로 안식을 명령하셨는가? 바로 사람을 위해서다. 그래서 이스라엘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이스라엘이 안식일을 지킨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이스라엘을 지켰다. 안식이 없다면, 재생산도 없다. 안식이 없다면, 진정한 기쁨도 없다 안식이 없다면, 소망도 없다.

3. 진정한 안식을 누리자. 여러분은 살려고 일하는가, 일하려고 사는가? 사람은 살려고 일한다. 일하기 위해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일 중독(中毒)에 빠진 사람은 오로지 일만을 위해 일한다. 물론 일도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고, 보람이 있다. 하지만 일이 인생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창조 사건을 보면, 창조의 목적은 노동이 아니라 안식이다. 창조의 마지막은 안식일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열심히 일하는 것은 나중에 편히 쉬기 위해서다. 젊을 때에, 건강할 때에 열심히 일하는 것은 노후에 편히 쉬기 위해서다. 물론 늙어서도 소일거리와 취미거리를 위해, 그리고 인생의 보람을 위해 적당히 일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늙어서 하는 노동은 쉬엄쉬엄 놀고 즐기는 것이어야 한다. 허리가 휘어도, 허리가 휘도록 일하는 것은 불쌍한 일이다. 사람은 늙어가면서 노동을 줄여야 하고, 또 줄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람의 마지막은 무엇인가? 죽음, 즉 안식에 들어가는 것이다. 인생의 마지막이 안식이듯이, 인생의 목적도 안식이다.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인간은 점점 더 하나님이 주신 안식을 빼앗기거나 안식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있다. 쉬는 날에도 일을 걱정하는 사람이 늘어난다. 쉬는 날에도 일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일거리가 많아서도 그렇지만, 일에 대한 걱정, 아니 실업에 대한 걱정, 아니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일을 잠시도 손에서 놓지 못하는 것이다. 설령 쉬는 날에 야외로 나가더라도, 현대인은 편히, 제대로 쉬지 못한다. 온갖 상업주의와 향락주의가 사람을 쉬지 못하도록 유혹한다. 쉬는 날에는 푹 쉬어야 하건만, 열심히 물건을 사야만 직성이 풀린다. 휴가를 즐기려고 바깥을 나갔지만, 교통 체증과 다툼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더 피곤해지고, 심지어 사고와 질병까지 얻게 되는 경우도 많다.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 일인가! 도대체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쉰다는 말인가! 집에서 쉬더라도, 평안히 쉬지 못하고 가족끼리 다투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미국의 통계에 따르면, 일하는 날보다는 오히려 쉬는 날에 부부 싸움과 가정 폭력이 더 자주 일어난다고 한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쉬지 않는 게 더 낫다. 하지만 사람이 쉬지 않고 어찌 일만 할 수 있겠는가! 쉬는 날도 제대로 쉬지 못하지, 현대인은 얼마나 불행한가!

교인이라고 해서, 형편이 더 나은 것은 아니다. 주일에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교인은 더 잘 쉬어야 하건만, 교회의 일로 주일에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다. 그리고 공휴일에도 교회가 주로 행사를 많이 치르기 때문에 교인은 쉴 틈이 없다. 어떻게 보면, 세상 사람들보다 더 불쌍한 것 같다. 왜 그런가? 교회 부흥과 교회 성장에 대한 거룩한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면,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명령을 어떻게 전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교회 부흥이 좀 더디더라도, 교인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주일에는 안식하기를 힘써야 한다.

일하지 않고 쉬는 것과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다. 열심히 일하라. 그래야 평안히 쉴 수 있다. 그리고 열심히 쉬어라. 그래야 제대로 일할 수 있다. 하지만 인생의 목표를 일에 두지 말라. 일을 위해 일하지 말라. 인간은 일만 하도록 만들어진 비참한 기계가 아니다. 인간은 죽어서 안식에 들어갈 뿐만 아니라 장차 하나님의 나라에서 평화와 기쁨의 축제를 누리도록 창조되었다. 그러므로 열심히 일하되, 주기적으로 쉬어라. 그리고 쉴 때마다 일만 생각하지 말고, 장차 누리게 될 영원한 안식과 축제의 소망을 품어라. 그리하면 일이 즐거워질 것이고, 일이 끝난 다음에는 참으로 평안하고 달콤하게 쉴 수 있을 것이다.